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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物포커스]다음 이재웅 社長 "하고 싶은 일 신나게…"|동아일보

[人物포커스]다음 이재웅 社長 "하고 싶은 일 신나게…"

  • 入力 2001年 5月 17日 19時 13分


《홍콩서 發行되는 아시아위크誌가 지난해에 이어 11日子 最近號에서 아시아 디지털經濟를 이끌 25人의 젊은 리더中 한名으로 選定. 4月 世界 兩大 情報技術 專門사이트의 하나로 꼽히는 지디넷아시아가 ‘아시아의 變化를 이끄는 25人’으로 이건희 三星會長과 함께 擧論. 지난해末 世界經濟포럼이 뽑은 ‘未來의 世界 指導者 100人’中 한名으로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參加. 게다가 14日엔 KBS 앵커우먼 황현정과의 結婚發表까지!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李在雄(李在雄·33)社長에 對한 修飾語는 이렇게 華麗하다. 그가 95年 세운 이 會社는 世界에서 다섯番째이자 美國을 除外한 全世界에서 가장 큰 인터넷 포털사이트로 자리잡았다. 어떤 點이 그를 30代의 젊은 나이에 ‘世界的 人物’의 班列에 올려놓았을까.》

16日 서울 삼성동 事務室에서 만난 그는 灰色 半팔 폴로티에 紫朱色 쫄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니 왠 쫄바지?”하고 記者가 놀란 얼굴을 했더니 “입을 옷이 없어서…”하며 쑥쓰러운 表情을 지었다.

빨랫감을 京畿 분당의 父母님宅에 갖다놓고 洗濯한 옷을 가져와야 하는데 時間이 없었다는 거다. 아시아위크誌는 이 社長이 20달러 짜리 時計를 차고 있었다고 描寫했지만 이 날은 그마저 차고 있지 않았다. 株式 時價總額으로 따지면 그는 1000億원臺의 富者가 아닌가.

예쁜 아나운서와의 結婚에 對해 먼저 묻고 싶었지만 이 會社 弘報擔當者가 事前에 “제발 私生活은 묻지 말라”고 申申當付해온 터였다. 私生活 露出을 싫어한다는 說明. 記者는 ‘닭살 돋는 戀愛談’(황현정의 表現)에는 關心없다는 듯 眞摯한 表情으로 아시아의 디지털 리더로 꼽힌 理由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거야 뽑은 쪽에서 對答할 일이지만…”하면서도 그는 두가지 側面에서 말할 수 있겠다고 했다.

“아시아에서 經濟界 리더는 大體로 財閥이나 富의 世襲에 依해 나타나는데 비해 우리는 맨손과 젊은 挑戰精神으로 出發해 새로운 디지털文化를 이끄는 인터넷企業을 일궈냈다는 點이죠. 저는 인터넷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社會를 이어주는 正말 따뜻한 空間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한 側面은 우리나라가 暴發的으로 成長하는 인터넷强國으로 注目받은 德이죠.”

그는 말이 무척 빨랐다. 性格도 急하냐고 물었더니 “생각이 앞서가는 건 있다. 어릴 때는 머릿 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걸 어떻게 입 하나로 빨리 꺼내나 했다”며 웃었다. 對答할 때는 “두가지로” 或은 “세가지로”하며 미리 整理해둔 것처럼 꺼내놓는 特徵이 있었다.

“디지털經濟를 ‘이끄는’ 사람이라고 表現했는데 저는 두가지 方向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벤처企業으로서 創造的이고 挑戰的이고 다이내믹한 文化를 일구는 點, 또 하나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媒體를 통해 또다른 世界를 만드는 側面이에요. 커뮤니티, 電子商去來 等 只今까지의 비즈니스와는 다른 새로운 世上을 만들어내야죠.”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다음’李 이끈다는 생각은 못했지만 이제는 狀況이 달라졌다고 했다. “例를 들 때는 ‘美國 야후를 보십시오’하면 됐는데 야후가 휘청하고 있으니 이제는, 最小限 아시아에서는, 우리가 가장 注目받게 됐어요. ‘다음’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그들의 모델이 되니까 責任이 莫重해진거죠. 具體的으로 어떻게 갈거냐에 對해서는 繼續 苦悶을 하고 있어요.”

苦悶만 하기에는 切迫한 時點이 아니냐고 따져봤다. 最近들어 合倂說, 資金難을 겪고 있다는 루머까지 나올 만큼 ‘다음’李 限界에 부딪혔다는 말이 있다고 하자 理事長은 더 빠른 말套로 對答했다.

“會社 規模나 成長이나 利益面에서 限界狀況이라는 指標를 보여준 적이 한番도 없어요. 外國業體들이 危機를 겪고 있으니까 우리도 그럴 거라고 하는 模樣인데 ‘다음’은 繼續 超高速 成長을 하고 있죠. 언젠가 限界가 올 것이라는데는 同意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段階가 全혀 아니예요.”

부드러운 人相이었지만 인터넷과 ‘다음’에 對해 말할 때는 斷乎했다. 가까운데서 理事長을 보아온 知人들과 業界에서는 그가 ‘일에 關한 限 불도저’라고 評하고 있다.

李 社長은 ‘다음’이 이만큼 成長한 要因으로 韻을 꼽았다. 프랑스 留學 時節 남들보다 앞서 인터넷의 可能性을 보고 95年 會社를 차린 것이나, 97年 國內最初로 이메일 住所를 無料로 나눠줘 인터넷人口를 暴發的으로 늘린 것이나, 몇달만 늦었어도 ‘거품 爆擊’을 맞았을 법했으나 99年 11月 코스닥에 上場해 ‘皇帝株’로 登極한 것 等等은 運이 아니고는 說明이 안된다고 謙遜해한다.

구멍가게 하나를 꾸리는데도 남다른 勤勉과 誠實이 必要하거늘 世界的 인터넷企業을 일구는데 어찌 韻만 있었으랴. 그러지 말고 眞짜 祕訣을 털어놓으라는 記者의 말에 李 社長은 “남들이 나설까 말까 망설일 때, 그냥 自己자리에 있겠다고 安住할 때 먼저 치고 나가는 積極性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같은 積極性의 背景엔 타고난 性格말고도 ‘惠澤받은 環境’을 無視할 수 없을 듯하다.

그는 서울 江南의 8學群 出身이다. 영동고 2學年 生日 때 父母님으로부터 當時로서는 貴하기 짝이 없는 컴퓨터를 膳物받았다. 初等學校 1學年 放學에 SF小說 60卷 全集을 膳物받아 一週日 만에 읽어치운 뒤 머릿 속에서는 이미 宇宙船이 쓩쓩 날아다니고 있던 터였다. 安定된 生活을 하고 있는 父母님 德에 大學院 卒業 뒤 學費걱정없이 留學을 떠났고, 博士課程을 하다말고 歸國해 會社를 차린다고 했을 때도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支援을 받았다. “아마 家族生計를 책임져야한다는 負擔이 있었다면 새로운 일은 못했을 것”이라고 李 社長은 말했다.

가난을 原動力삼아 ‘하면 된다’는 막다른 精神으로 뛰었던 産業化時代의 成功談과 달리, 그는 愉快한 樂觀을 지니고 있다. ‘안되면 되게 하라’가 아니라 ‘될 것 같고, 안되더라도 다른 方法이 있을 것’이라고 樂天的으로 생각한다. 프랑스에서 經驗한 多樣性의 魅力은 그의 삶을 결정짓는데 큰 몫을 했다. 마음의 科學을 硏究하는 認知科學을 專攻하면서 ‘이거냐 저거냐’‘아니면 죽는다’ 式의 黑白論理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思考를 키울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본 言語學者 촘스키의 다큐멘터리 映畫는 내게 큰 影響을 미쳤어요. 歪曲된 言論의 모습을 보여주며 代案으로서의 미디어가 必要하다는 內容이었죠. 인터넷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안나왔지만 나는 인터넷이야말로 多樣性을 갖춘 獨立미디어가 될수 있다고, 이거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무릎을 쳤어요.”

그 무렵 파리의 한 食堂에서 高校 同窓이자 寫眞家인 박건희(그는 95年末 心臟痲痹로 夭折했다. 李 社長은 그의 이름을 딴 財團 創立式을 다음달 가질 豫定이다)를 만났다.

인터넷이 열어줄 新天地의 可能性에 意氣投合한 두 사람은 곧바로 歸國해 會社를 차렸다. ‘다음’. 未來를 向해, 여러소리(多音)가 어우러지는 世上을 꿈꾸면서.

두時間 남짓한 인터뷰 동안 理事長은 ‘재미’라는 單語를 25番 썼다.(‘인터넷’은 24番이었다). 會社를 차린 理由도 “돈은 못벌지 모르되 재미있을 것 같아서”다. 엔지니어로 出發해 只今은 硏究에서 떠난 最高經營者(CEO)지만 새로운 일이 繼續 發生하고, 만들어나가야 할 일이 많아 재미있다고 했다. 98年까지만 해도 어려움의 連續이었지만 問題가 있다고 挫折하지 않는다. 되레 풀어나가는 過程을 즐긴다. 親舊가 前職에 對해 苦悶한다면? “남의 視線이나 돈에 拘礙받지 말고 재미있게 하고싶은 일을 하라”는 게 그의 助言이다.

좋은 車, 큰 집에 對한 欲心은 없다. 한창 株價가 올랐을 때는 財産이 7000億이었다지만 新聞記事에서 보고 그런가보다 할 뿐, 그림의 떡이라 생각한다. 지난해 年俸은 4000萬원이 좀 안됐고 올해는 4500萬원 程度. 辦公費는 月 50萬원쯤 쓴다.

“會社 始作할 때 앞으로 10年안에 인터넷 成長勢가 安定될 것이라고 봤어요. 앞으로 3年에서 5年 後엔 인터넷이 只今처럼 무서운 速度로 成長하진 않을 거예요. 停滯가 되면 이 일도 재미없어요. 나는 새로운 일에 好奇心이 많거든요. 그 때가 되면 아마 다른 일을 하고 있겠죠.”

어떤 일을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아직은 말할 段階가 아니지만 그 생각을 具體化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李 社長은 對答했다. “저는 어떤 게 재미있냐면요. 中國映畫를 보면 저만치서 흙먼지가 나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場面이 있잖아요. 그 때 맨앞에 붉은 旗발들고 달리는 사람 있지요. 그 사람은 우두머리가 아니더라도 재미는 있을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뜨겁게 革命처럼 움직이는 곳에서 맨앞에 서서 旗발들고 달려가는거.”

7月 結婚 豫定인 그는 結婚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좋은 CEO가 되는 것보다는 좋은 男便이 되는 게 더 쉬울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런데 100名中 95名은 ‘너도 當해봐라’하는 雰圍氣니 참 異常하다”며 그는 하하 웃었다.

▼李在雄 社長은▼

△1968年 서울 出生

△1986年 서울 영동고 卒業

△1991年 延世大 電算科學科 卒業

△1993年 연세대 大學院 電算科學科 卒業

△1993年-94年 프랑스 파리6大學 UPMC認知科學 博士課程 硏究員

△1995年 2月 ㈜다음 커뮤니케이션 創業

‘다음’ 現況

포털서비스 開始 97年 5月

賣出額 2000年 285億원. 2001年 1.4分期 137億원

市價 總額 5349億원(5月16日 宗家 4萬3600원 基準)

ID登錄 加入者 2600萬名(아시아 및 유럽 最大規模)

1日 페이지뷰 2億3000萬

1日 로그인수 1950萬

하루 訪問數 2800萬

액티브 유저(Active User)水 1500萬

카페(同好人 모임) 開設수 65萬個

從業員數 178名

▼재미있게 사는 法▼

當初 計劃은 ‘李在雄의 成功祕訣’을 쓸 作定이었다. 그러나 理事長은 “成功祕訣은 재미없다”고 했다. 그래서 ‘재미있게 살기’를 써보기로 했다.

1. 재미가 없으면 만든다〓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건 지겹다. 없으면 내가 積極的으로 재미있는 일을 만든다. 積極性은 큰 밑천이다.

2. ‘나는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催眠을 건다〓믿는 만큼 이뤄진다.

3. 재미있는 사람과 함께 한다〓일을 재미있어하는 사람과 일하면 成功도 따라온다.

4. 남보다 한발 빨리 움직인다〓인터넷세상에서 ‘先占 效果’만큼 무서운 게 없다.

5. 멀리 본다〓바로 앞에 있는 재미없는 일도 멀리서 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發見된다. 조금만 길게 보면 世上이 달라보인다.

만난사람=김순덕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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