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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홍氏 人生歷程]봉고神話 主役서 「橫領子」로|東亞日報

[김선홍氏 人生歷程]봉고神話 主役서 「橫領子」로

  • 入力 1998年 5月 11日 19時 46分


‘公金橫領字로 沒落한 봉고神話의 主役.’

기아그룹 김선홍(金善弘·寫眞)前會長의 人生 歷程은 한篇의 드라마를 聯想시킨다.

그는 81年 기아자동차 社長으로 就任, 國內 最初의 乘合車인 봉고를 내놓으면서 破産直前에 몰린 기아를 劇的으로 회생시킨 主人公. 以後 그의 이름앞엔 ‘韓國의 아이아코카’란 修飾語가 붙어다녔다.

金前會長의 人生은 韓國 自動車産業의 산역사. 金前會長은 서울대 機械工學科를 卒業한 58年 起亞自動車(當時 기아산업)에 公採 1期로 入社, 昨年 10月 他의(他意)에 依해 退陣할 때까지 40年間 飢餓와 同苦同樂했다.

그는 自轉車와 三輪車를 만들던 起亞自動車가 世界的인 메이커로 跳躍하는데 決定的인 役割을 했다. 財界의 注目을 한몸에 받으며 專門經營人 神話를 일궈낸 金前會長은 그러나 80年代末以後 無理한 擴張을 거듭, 結局 기아號(號)를 不實化했다는 批判을 면키 어려운 處地에 빠졌다. 特히 昨年 기아事態 以後 退陣을 拒否함으로써 決定的으로 그와 飢餓의 이미지를 毁損시켰다.

기아事態의 責任을 묻는 輿論과 政府의 辭退慫慂에도 不拘하고 그는 事態發生以後 3個月餘동안 退陣을 拒否한 채 政府와 債權團에 맞섰다.

기아任職員들은 只今도 “金前會長이 그때 模樣좋게 물러났으면 只今같은 事態는 없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勞組와의 關係에서도 釋然치 못한 點이 있었다고 周圍에선 批判한다.

‘主人없는’ 기아그룹을 이끌기 위해서란 名分으로 勞組側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讓步했다고 內部에선 指摘하기도 한다. 그리고 萬 18年 동안 起亞自動車 最高經營人으로 在職하면서 任職員들과 끊임없는 軋轢으로 눈에 안보이는 派閥을 造成한 責任도 크다고 周圍에선 말한다.

〈이희성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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