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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代 이야기/나를위해 산다]송림高 配球監督 홍해천氏|東亞日報

[30代 이야기/나를위해 산다]송림高 配球監督 홍해천氏

  • 入力 1997年 4月 27日 08時 46分


舊팬들에게 홍해천(33)이란 이름은 낯설지 않다. 장윤창 유중탁 정의탁 이재필 等과 高麗證券 全盛時代를 열었던 專門 守備手. 排球 選手치고는 작은(1m83) 축이지만 그는 쓸모가 많은 才幹둥이였다.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코트의 뒤便에서 몸을 던져 强打를 건져올렸다. 華麗하지는 않았지만 부지런한 德澤에 靑少年代表와 國家代表까지 거쳤다. 只今 그는 가난하다. 그러나 幸福하다. 來달엔 지난 1年餘동안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 찾아낸 「송사리」弟子들을 거느린 盆唐 송림고 排球팀의 監督이 된다. 交替 選手조차 없는 달랑 6名 1學年生들이다. 그가 18年 愛憎이 서린 코트를 떠난 것은 95年 봄. 힘도 부쳤지만 코트속에서 살아온 人生이 溫室속 花草같았다. 뭔가 다른 經驗을 해보고 싶었다. 고려증권 良才洞 地點에 代理로 發令이 났다. 年俸이 3千萬원을 조금 넘었고 洋服에 넥타이를 매고 株式을 사고 팔았다. 고려증권에서 뛸 때 짬짬이 京畿大 敎育大學院에서 體育學 碩士學位와 敎師資格證까지 따냈던 熱誠派. 株式이라고 다를 게 뭐 있겠는가. 專門 書籍을 밤새워 읽었고 自尊心은 잊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물어가며 배웠다. 1年餘가 흘렀다. 모두가 그를 「落下傘」이 아닌 證券 分析家 홍해천으로 여길 때쯤 平素 恩師로 모셔온 송림고 校長으로부터 連絡이 왔다. 條件이 너무 안좋았다. 큰 아들 강표가 初等學校에 入學하고 막내딸 나연이가 이제 다섯살. 돈 들어갈 일이 泰山같았던 그때 年俸 1千5百萬원을 주겠다고 했다. 코치도 없었고 選手도 없었다. 『當身 하고픈 대로 하셔요』 아내가 아니었다면 決心하지 못했을 것이다. 해맑은 아내의 微笑앞에서 비로소 마음을 굳혔다. 송림고 體育敎師로 發令을 받은 그는 一週日에 12時間 學生들을 가르치고 午後면 「송사리」選手들과 코트를 누빈다. 스카우트 때문에 마음苦生이 甚했던 지난 1年間은 一週日에 3,4日은 學校에서 먹고 잤다. 『30代는 뛰어야할 나이에요. 나의 길을 가고 있는 내 自身이 누구보다 자랑스럽습니다』 〈異訓 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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