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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曜이슈]“죽기 前에 眞正한 謝罪-賠償 받을 수 있을까”|동아일보

[土曜이슈]“죽기 前에 眞正한 謝罪-賠償 받을 수 있을까”

  • 東亞日報
  • 入力 2015年 12月 26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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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慰安婦 協商 바라보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

23일 내부 단장을 마치고 재개관한 경기 광주시의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위안부 피해자 박옥선(가운데 왼쪽), 이옥선 할머니가 손을 잡은 채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왼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뒤로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모습을 담은 판화가 보인다. 생존 피해자 46명이 고령인 데다 대부분 질환을 앓고 있어 그림자로 남겨진 생존자들의 액자도 얼마 뒤엔 영정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광주=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3日 內部 丹粧을 마치고 再開館한 京畿 光州市의 ‘日本軍 慰安婦 歷史觀’에서 慰安婦 被害者 박옥선(가운데 왼쪽), 이옥선 할머니가 손을 잡은 채 안신권 나눔의 집 所長(왼쪽)의 說明을 듣고 있다. 뒤로는 慰安婦 被害者들의 모습을 담은 版畫家 보인다. 生存 被害者 46名이 高齡인 데다 大部分 疾患을 앓고 있어 그림자로 남겨진 生存者들의 額子도 얼마 뒤엔 影幀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光州=홍진환 記者 jean@donga.com
“食事는 하셨어요? 點心을 좀 잡숴요.”

18日 京畿 光州市 퇴촌면에 나지막하게 자리 잡은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은 처음 만난 記者에게 연신 밥을 먹으라는 人事를 건넸다. 方今 食事를 마쳤지만 찾아온 손님을 配慮한 것이다. 年末이라 慰問客으로 북적일 것으로 豫想했지만 意外로 조용했다. 할머니들은 TV에서 흘러나오는 連續劇 再放送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消日하고 있었다.

韓日 修交 50周年인 올해는 日本軍 慰安婦 解決에 對한 期待가 어느 때보다 높았다. 올해가 보름도 안 남은 狀態에서 할머니들의 心情은 어땠을까. 아베 신조(安倍晋三) 日本 總理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日本 外相에게 慰安婦 問題 妥結을 위해 年內 訪韓하라고 指示했다는 消息이 알려지기 前의 時點에 물어본 ‘올해도 問題가 解決이 안 돼 서운하시겠어요’라는 質問에 對한 答辯은 繼續 겉돌았다. 日本軍에 끌려갔던 苦楚, 돌아온 故國 땅에서 받은 蔑視, 6·25戰爭과 生活苦 等 忍苦의 時節이 너무 길었기 때문일까.

꿈 많은 少女였을 慰安婦 被害者

올해 89歲인 유희남 할머니는 “아프지만 않았으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81歲 때 肺癌 診斷을 받았다. 나눔의 집 生活은 4年째다. 이날도 “抗癌劑를 먹어서 皮膚가 엉망이다”라며 연신 주름잡힌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고 부끄러워했다. 植民地 國民이라는 桎梏(桎梏)만 없었다면 예쁘고 꾸미기 좋아하는 少女로 자랐을 어릴 적 모습이 聯想되는 듯했다. 忠南 牙山 出身의 외동딸은 16歲에 日本軍 慰安婦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뒤 여태 故鄕집에 가지 못했다. 젊을 때는 親戚들의 손가락질 때문에 못 갔고 只今은 健康이 나빠서 갈 수가 없다. 視力이 나빠져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할머니는 모두 10名. 이 中에는 大小便을 받아내야 하거나 부축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患者가 折半이 넘는다. 이날도 TV 周邊에는 할머니 5名이 둘러앉아 있었지만 對話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柳 할머니뿐이었다. 健康 問題로 對話가 不可能했고, 옛날 일을 꺼내기조차 싫어하는 분들도 있었다.

柳 할머니가 ‘나눔의 집’으로 간다고 했을 때 親딸은 “藥을 먹고 같이 죽자”고 했다고 한다. 洞네 사람 보기 부끄럽다는 거였다. 할머니는 그런 딸에 對한 怨望보다는 “그래도 난 子息들 버리지 않고 길렀고 사위는 中央部處 課長까지 지냈다”며 淡淡하게 말했다.

하지만 對話 곳곳에는 親할머니와 같은 푸근함과 被害者로서의 剛愎함이 섞여 있었다. 記者에게 밥 먹었느냐고 물어볼 때와 最近 꽃밭 때문에 싸웠다는 강일출 할머니를 흉보는 모습은 아주 달라 보였다. 辛酸한 90年 人生을 살아온 老人이, 몸까지 不便해진 狀態에서 共同生活을 하는데 每日 웃음소리만 나오지는 않을 터였다. 씻을 수 없는 傷處를 안고 사는 이 할머니들이야 말할 必要도 없을 것 같았다. 脫北者 中에도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過程에서 트라우마가 생겨 韓國 定着 後에 사람을 믿지 못하고 自己 物件에 執着하는 境遇가 많다고 한다. 淸純을, 젊음과 追憶을 송두리째 뺏긴 할머니들의 小小한 하루는 또 이렇게 지나간다.

5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최갑순 할머니의 영정을 앞에 모신 가운데 9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기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동아일보DB
5日 別世한 日本軍 慰安婦 被害者 최갑순 할머니의 影幀을 앞에 모신 가운데 9日 駐韓 日本大使館 앞에서 定期 水曜集會가 열리고 있다. 東亞日報DB
“박유하 敎授는 우리 얘기를 들어야 한다”

박유하 敎授 얘기가 나온 것은 그즈음이었다. “當事者인 내가 아니라는데 왜 朴 敎授가 내 人生을 評價하느냐”는 대목에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帝國의 慰安婦’ 冊을 쓴 朴 敎授는 ‘慰安婦는 日本軍과 同志的 關係였다’ 等의 表現 때문에 할머니들로부터 名譽毁損 嫌疑로 告訴當해 起訴된 狀態다. 學界와 言論에서 ‘學問의 自由’를 들어 朴 敎授를 起訴한 것이 無理라고 指摘하는 데 對해서도 섭섭함이 묻어났다. “그동안 羞恥心 속에 人間답지 못한 삶을 살았다. ‘執筆의 自由’도 좋지만 抑鬱한 내 人生을 16歲로 돌려놓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朴 敎授는 被害者의 말을 들어야 한다.”

自然스레 對話는 日本軍 慰安婦 解法으로 이어졌다. 柳 할머니는 朴槿惠 大統領이 3·1節, 光復節 慶祝辭에서 慰安婦 問題를 直接 擧論하며 챙긴 것에 對한 고마움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답답하다고 말했다. 日本과 談判을 지을 決斷이 必要하다고 했다.

안신권 나눔의 집 所長은 “주철기 前 大統領外交安保首席祕書官을 두 次例 만났고 이상덕 外交部 東北亞局長도 한 次例 만났다. 하지만 具體的인 協商 經過를 알려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朴 大統領이 “(韓日 協商 結果는) 被害者와 國民이 納得할 水準이 돼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提示한 것에 비춰보면 意外였다. 政府가 具體的인 解法을 갖고 被害者들을 說得하는 作業이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4月부터 올해 12月까지 韓日 局長級 慰安婦 協議는 總 11次例 이뤄졌다.

어쩌면 할머니들의 要求事項이 워낙 明確하기 때문에 政府가 再次, 三次 確認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할머니들은 日本의 公式 謝罪와 賠償을 要求하고 있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이 쓸 돈이 必要해서 賠償을 要求하는 것은 아니다. 日本이 繼續해서 ‘韓日 請求權協定으로 補償은 이뤄졌고 法的 責任은 없다’고 하니 公式 謝罪의 徵標로 政府 豫算이 들어간 돈을 내라고 要求하는 것이다.

柳 할머니는 “方今 들은 얘기는 잊어버려도 70年 前 過去는 잊어버릴 수가 없다”며 “내 90年 人生 비탈길을 모두 報償받으려면 얼마가 必要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푼돈은 이제 더러워서(기분이 나빠서)라도 안 받는다”고 했다.

“돈이 아니라 日本의 마음을 願해”

政府에 登錄된 日本軍 慰安婦 被害者는 모두 238名. 政府의 慰安婦 被害者 接受 첫해인 1993年 153名이 登錄했고 2006年까지 해마다 1∼15名씩 登錄했다. 2007∼2011年엔 新規 登錄이 없다가 2012年 2名, 2013∼2014年 各 1名이 追加됐다. 最大 20萬 名으로 推定되는 慰安婦 規模에 비해 登錄者 數가 턱없이 적은 것은 社會的 雰圍氣와 生存 家族의 體面 等이 複合的으로 影響을 미쳤기 때문으로 推定된다.

最近 3年 사이 追加된 4名도 親姻戚의 督勵로 登錄은 마쳤지만 一部는 疾患을 앓고 있는 데다 癡呆 症勢까지 있어 被害 事實을 證明하는 데 相當히 애를 먹었다고 女性家族部 關係者는 말했다. 좀 더 일찍 登錄했더라면 自身의 抑鬱함을 呼訴하고 關聯 施設에서 治療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미루고 미루다 죽음이 臨迫해서야 陽地로 나온 셈이다. 그러나 올해만 9名이 숨지는 等 登錄 被害者의 80%인 192名은 이미 死亡했다. 生存者 46名의 平均 나이는 89歲. 最高齡者는 99歲다. ‘日本이 生存者가 모두 숨지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냐’고 할 만큼 餘名이 길지 않은 것이 現實이다.

登錄된 慰安婦 被害者들에게는 韓國 政府의 支援이 多角度로 이뤄지고 있다. 올해의 境遇 治療事業費로 總 2億8500萬 원이 支給됐으며 看病費는 1人當 最大 1350萬 원(1年 基準) 提供됐다. 被害者로 처음 登錄할 때 特別支援金 4300萬 원이 나오며 每달 生活安定資金으로 104萬3000원씩 提供된다. 來年에는 生活安定資金이 126萬 원으로 引上된다. 또 基礎需給 對象의 惠澤과 함께 基礎老齡年金, 醫療給與를 받을 수 있다. 住宅 報酬나 휠체어, 틀니 等 ‘맞춤型 支援’이나 該當 地自體의 別途 支援도 있다.

그렇다고 生活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現在 韓國挺身隊問題對策協議會(挺對協)와 나눔의 집 2곳이 被害者 生活施設을 運營하고 있지만 首都圈 以外 地域 居住者들은 大部分 自宅에 머물고 있다. 生活施設에서 지내다 緣故地로 되돌아간 境遇도 있다. 緣故地에선 該當 地域 人權·市民團體들이 돌보고 있지만 끼니를 놓치거나 돈을 아끼기 위해 暖房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내면서 健康을 더 해치기도 한다고 한다. 生活施設에 들어가면 돈이 드는 게 아니냐고 誤解하는 境遇도 있지만 被害者 生活施設은 모두 無料다.

來年에는 힘겨운 삶을 내려놓은 할머니들의 安息處가 새로 마련된다. 女聲部는 忠南 天安市 國立 望鄕의 동산에 日本軍 慰安婦 被害 할머니를 위한 特別 墓域과 追慕碑를 造成하기로 했다. 來年 上半期(1∼6月)에 除幕式이 있을 豫定이다. 望鄕의 동산은 日帝 侵略으로 故國을 떠난 뒤 海外에서 숨진 在日同胞 等의 安息을 위해 1976年 세워졌다. 日本 中國 臺灣 러시아 等 各國의 同胞 英靈을 慰勞하는 慰靈塔과 墓域, 奉安堂 等이 있다.

光州=조숭호 記者 shcho@donga.com
#慰安婦 #나눔의 집 #帝國의 慰安婦 #박유하 敎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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