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中區 서소문동 37. 1928年 이 터에 現代的 樣式의 경성재판소가 지어졌다. 日帝强占期 當時 韓國人들에게는 恐怖의 對象으로, 以後에는 法 適用의 잘잘못을 따지는 最高法院으로 使用됐던 이 建物은 現在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서울市는 光復 後 大法院을 거쳐 2002年 市立美術館으로 活用 中인 이 建物의 아치형 玄關이 大法院의 象徵性을 잘 담고 있다고 評價, 2日 文化財廳에 ‘登錄文化財’로 登錄했다.
登錄文化財는 近·現代(開港期∼6·25戰爭 前後) 形成된 것 中 保存과 管理가 必要한 文化遺産을 말한다. 있는 그대로 永久히 保存하는 指定文化財와 달리 外觀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는 範圍에서 다양하게 活用할 수 있다. 剝製된 文化財가 아닌 사람과 呼吸하는 文化財인 셈. ▽近代가 現代로 이어진다=서울에는 옛 大法院廳舍, 혜화동 聖堂, 공민왕 祠堂, 옛 민형기 家屋, 옛 美國文化院 等 2日 登錄된 5件을 합쳐 모두 34件의 登錄文化財가 있다. 1938年 當時 鐵筋 콘크리트와 甓돌壁 救助, 스팀 暖房施設을 갖춘 最新式 學校建物이었던 종로구 화동 옛 競技高校. 學校가 1975年 서울 江南區 삼성동으로 移轉하면서 現在는 韻致 있는 정독圖書館으로 쓰이고 있다.
鏡城의 大公演場으로 1935年 지어진 中區 태평로 府民館(府民館)은 光復 以後 國會議事堂으로 使用됐다. 1975年 國會가 汝矣島에 자리 잡으면서 서울市議會가 建物의 精神을 잇고 있다.
1938年에 지어진 中區 을지로 미쓰이(三井)物産株式會社 京城地點 建物은 美文化院을 거쳐 現在 市廳 別館으로 使用되고 있다. ▽市民에게 가까이 가는 文化財=市民들을 위한 文化空間으로 再誕生을 기다리는 登錄文化財度 있다. 성북구 동선동에 있는 권진규 아틀리에는 1959年 韓國의 1世代 彫刻家 권진규 先生이 日本에서 歸國한 뒤 1973年 生을 마칠 때까지 作品 活動을 한 場所다. 當時의 作業 痕跡이 그대로 남아 있어 누이同生 권경숙 氏가 記念空間으로의 活用을 檢討 中이다.
日帝强占期 民族資本으로 設立돼 韓國 近代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産業施設人 ‘京城紡織’의 옛 事務棟. 경방은 영등포구 영등포洞의 建物을 近代 産業社를 보여 주는 博物館으로 活用할 豫定이다.
이 밖에 鍾路區가 買入한 홍파동 洪蘭坡 先生 家屋과 누하동 이상범 畫伯 家屋은 來年 初면 各各 公演場과 記念館으로 市民을 찾아간다.
홍수영 記者 gaea@donga.com
:登錄文化財:
近代文化遺産 가운데 保存이나 活用을 위해 措置가 必要한 것을 폭넓게 登錄해 所有主의 自發的인 保護에 期待하는 制度. 文化財廳에 申告해야 建物을 修理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