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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謙齋旌善이 본 漢陽眞景]彰義門|東亞日報

[謙齋旌善이 본 漢陽眞景]彰義門

  • 入力 2002年 12月 20日 18時 08分


彰義門은 漢陽 都城 4所聞(小門) 中 西北文에 該當하는 城門이다. 이 門을 나서면 現在 종로구 신영동 평창동 一帶의 葬儀社 溪谷으로 이어진다. 이곳을 흐르는 홍제천을 따라가면 서대문구 홍제동 弘恩洞 녹번동으로 이어지는 문산大路로 連結된다. 따라서 個性 以北의 黃海道나 平安道로 來往하는 길손들은 이 門을 지름길로 삼았으니 西大門 못지않게 來往이 頻繁했다.

彰義門의 別號 紫霞門(紫霞門)의 줄임말인 ‘諮問’으로 愛稱되며 庶民들의 通行門으로 사랑받아 왔다.

이 彰義門은 서울 都城이 完成되는 朝鮮 太祖 5年에 세워져 只今까지 600年 넘게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그런데 그 門樓는 英祖 17年(1741)에 처음 세워진다. 아마 國初에는 4所聞을 4大門과 區別짓기 위해 月團만 두르고 門樓는 세우지 않았던 模樣이다.

진경문火가 絶頂期에 이르는 英祖代에 와서 朝鮮이 곧 中華라는 自存意識에 따라 世界的인 都邑의 威容을 갖추기 위해 이 彰義門부터 門樓를 세우기 始作한다. 名分은 仁祖反正(1623) 때 倡義軍(唱義軍·意를 부르짖은 革命軍)이 들어온 門이니 이를 補修하고 門樓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그림은 現在 경복고 자리에서 올려다보고 그렸을 듯하다. 北岳山과 仁王山 자락이 내려와 마주치는 곳에 창의문을 내었는데 그곳에 門樓를 세워놓으니 兩쪽 山 稜線을 따라 이어진 石城(石城)李 마치 禿수리가 날개를 펼치는 듯한 모습이다.

只今은 청운중과 碧山빌리지, 많은 民家가 들어서 사람 사는 洞네로 바뀌어 있지만 謙齋 當時에는 이곳이 이렇게 집 한 채 없는 疊疊山中이었던 模樣이다. 작고 큰 바위들이 군데군데 널려 있고 그 사이사이로 솔숲이 우거져 있으며 골짜기마다 개울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보기만 해도 閑寂하고 그윽한 느낌이 절로 일어난다.

仁王山 맨 北쪽 봉우리인 壁蓮봉(碧蓮峯)은 한 덩어리의 巨大한 바위로 이뤄진 白色 암봉(岩峯)이다. 이 그림에서 보면 그 위에 蹴球공같이 생긴 바위 하나가 올려져 있다. 이 부침바위는 只今도 있다.

謙齋는 경복고 자리에서 태어나 51歲까지 살다가 옥인동20 仁王曲으로 移徙간 다음 그곳에서 84歲에 돌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北岳山과 仁王山에 어떤 바위가 어느 位置에 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壁蓮봉 부침바위를 이렇게 表現해놓을 수 있었다. 謙齋가 眞景山水畫에서 內在된 아름다움까지 表出했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英祖 26年(1750)經 緋緞에 엷게 彩色한 29.3×33.5㎝ 크기의 그림으로 국립중앙박물관 所藏品.

최완수 간송미술관 硏究室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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