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합정동 145 外國人墓地 附近 切頭山 一帶의 옛 모습이다. 只今은 切頭山(切頭山)이라 부르지만 그 時節에는 잠두봉(蠶頭峯) 또는 龍두봉(龍頭峯)이라 했다. 江가에 絶壁을 이루며 솟구쳐나온 山봉우리가 누에머리나 龍머리 같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截頭는 머리를 자른다는 뜻이다. 高宗 3年(1866) 病인 1月에 大院君이 天主敎徒들을 이 곳에서 處刑하면서 切頭山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래서 只今은 이 一帶가 天主敎 聖地가 됐지만 本來는 楊花나루가 들어서 있어 서울과 陽川 사이에 물길을 이어주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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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나루가 設置된 것이 언제인지는 分明치 않다. 다만 金浦 仁川 쪽에서 서울로 들어오자면 이 나루를 건너는 것이 가장 지름길이므로 首都를 漢陽으로 옮긴 朝鮮 太祖 3年(1394) 以後에는 이 나루의 效用이 매우 커졌으리라 생각된다.
世宗 32年(1450)에 明나라 使臣으로 왔던 翰林學士 例兼(倪謙)李 漢江에서 뱃놀이 待接을 받던 中 이곳 잠두봉 楊花나루에 들러 이런 詩를 남겨놓았다.
‘漢江의 묵은(오래된) 나루 洋畫라 하네, 좋은 景致 찾아 亭子 지으니 곁에는 物價, 떠나가 닿는 돛단배 아득히 멀고, 기러기 울음소리 모래밭에서 인다.’
이 詩로 보면 世宗 때에 이미 잠두봉 아래에 楊花나루가 들어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즈음에 벌써 景致 좋은 이 잠두봉 一帶는 太宗의 第7王子인 온녕군 情(溫寧君 程·1397∼1453)이 차지하고 있었던 模樣이다. 例兼이 올라가 쉬었던 亭子도 온녕군 집 精子였을 것이다.
이런 事實은 온녕군의 孫子인 無風情 李摠(茂豊正 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