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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 “증조모 도와준 동아일보, 백범일지에도 기록됐죠”

    김진 “曾祖母 도와준 東亞日報, 白凡逸志에도 記錄됐죠”

    “上海(상하이)에 있는 여러 사람들이 故國에는 가까운 親戚도 한 사람 없는데 늙으신 분이 그대로 가시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挽留했으나 白骨이라도 故國 江山에 묻히겠다고 하며 아주 傷害를 떠나기로 作定하였다는데….” ‘죽어도 故國江山’이란 題目으로 1925年 11月 6日子 東亞日報 …

    • 201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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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친 항일기록 찾아준 동아는 큰 은인”

    “父親 抗日記錄 찾아준 동아는 큰 恩人”

    《 全北 完州郡의 農村마을에서 어린 時節을 보낸 나는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 아버지는 막둥이인 내가 태어난 지 1年 뒤인 1951年 돌아가셨다. 홀로 3兄弟를 키우셨던 어머니는 “너희 아버지는 抗日運動을 하셨다”고 늘 말씀하셨다. 1910年代에 故鄕 平安南道 成川과 …

    • 201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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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방송 ‘스무고개’, 나를 ‘스타 방송인’ 만들어줘”

    “東亞放送 ‘스무고개’, 나를 ‘스타 放送人’ 만들어줘”

    1955年 蒼空樂劇團에서 歌手로 正式 데뷔한 송해 氏는 63年째 放送人으로 活動하며 只今까지 演出者를 300名 以上 겪은 記錄도 갖고 있다. 그가 大衆的 人氣를 얻기 始作한 첫 프로그램이 1960年代 人氣를 끌었던 라디오 동아방송의 ‘스무고개’다. “梁柱東 博士 等 名士들을 불러놓고 …

    • 20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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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작품 주인공은 시대 최전선에 선 동아 기자”

    “내 作品 主人公은 時代 最前線에 선 東亞 記者”

    동아일보가 내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理由는 내가 쓰고 演出한 演劇 ‘市民K’(1989年 初演) ‘가시밭의 한 송이’(1999年 初演), 그리고 最近의 演劇 ‘露宿의 詩’(2017年 初演)에 登場하는 男女 主人公이 모두 동아일보 記者라는 因緣이다. 좀 더 仔細히 들여다보면, 이 세 作品의…

    • 2018-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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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을 보는 창, 東亞는 내 인생 최고의 동반자”

    “世上을 보는 窓, 東亞는 내 人生 最高의 同伴者”

    “내가 동아일보 記者가 된 것은 偶然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幸運이었다.”(이낙연 國務總理) “來日 아침 東亞日報∼. 來日 아침 東亞日報∼. 목이 터져라 소릴 질러대며 新聞을 팔았다.”(방열 籠球協會長) “‘물拷問 途中 窒息死’ 동아일보 1面의 大門짝만 한 記事로 종철이의 犧牲은…

    • 2018-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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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국종 “병원 쪽잠-헬기장 잠입… 東亞 기자들 치열함에 감탄”

    李國鍾 “病院 쪽잠-헬기場 潛入… 東亞 記者들 熾烈함에 感歎”

    ‘사람이 아닌 組織에 충성하라’는 말이 있음에도 나는 ‘사람’을 보며 같이 가는 것이 人生이라고 생각한다. 民族 政論紙를 標榜하는 동아일보는 日帝强占期에 손기정 選手의 寫眞에서 日章旗를 지웠고 光復 後엔 不合理한 政權에 맞서 왔다. 이렇게 목에 칼이 들어오는 狀況에서도 ‘옳은 일’을 …

    • 2018-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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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먼저 떠나간 아들, 동아 인턴신문에 10년전 모습 그대로”

    “먼저 떠나간 아들, 東亞 인턴新聞에 10年前 모습 그대로”

    아버지란 單語는 오랫동안 그리움이란 말과 同義語였다. 50年 前, 서른셋 나이로 돌아가신 아버지. 어떤 寫眞 속 모습도 이제는 나보다 近 30年이나 젊은 靑年. 그렇게 흐른 歲月 내내 아버지에 對해 궁금했다. 그러다 偶然히 찾은 작은 노트 속 아버지 日記에서 본 그 젊은 靑年의 熾烈했…

    • 2018-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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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 “가슴 벅찬 월드컵 4강 동아 호외… 내 기고도 광장서 춤을 췄다”

    박인구 東遠그룹 副會長 “가슴 벅찬 월드컵 4强 東亞 號外… 內 寄稿도 廣場서 춤을 췄다”

    2002年은 내 生涯 가장 멋진 일들이 벌어진 해였다. 월드컵 本選에서 單 한 番도 勝戰譜를 울려 본 적이 없던 韓國 蹴球 代表팀이 월드컵 4强에 進出했다. 自稱타칭 蹴球狂인 내게는 꿈만 같은 ‘事件’이었다. 그 4强行을 결정지었던 6月 22日 스페인戰에서 서울市廳 앞 廣場을 가득 메…

    • 2018-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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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아버지는 창간독자, 나는 필자로… 동아와 代이은 동반자”

    “할아버지는 創刊讀者, 나는 筆者로… 동아와 代이은 同伴者”

    世上에 태어나면서부터 동아일보는 가까이 있었다. 어린 時節 함께 살았던 할아버지께서 동아일보 創刊 讀者라는 自負心으로 平生 購讀하셨기 때문이다. 平安北道 宣川에 사시다가 共産 治下를 被害 6·25戰爭, 1·4後退 때 釜山까지 내려오신 할아버지 德分에 나는 동아일보를 自然히 接하면서 자…

    • 2018-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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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훈현 의원 “동아가 준 최고의 영예… 지금도 曺국수로 불리는게 더 좋아”

    曺薰鉉 議員 “동아가 준 最高의 榮譽… 只今도 曺국수로 불리는게 더 좋아”

    只今도 大韓民國 바둑棋士들에게 가장 榮譽로운 呼稱은 ‘국수(國手)’로 불리는 것이다. 여기서 ‘국수’는 ‘그 나라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大會 名稱도 그러했지만 1956年 創設된 동아일보의 ‘國手戰(國手戰)’ 優勝者가 名實相符한 ‘국수’로 認定받았다. …

    • 2018-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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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레리나 경력 첫줄이 ‘동아’… 내 삶의 항상 든든한 파트너”

    “발레리나 經歷 첫줄이 ‘東亞’… 내 삶의 恒常 든든한 파트너”

    1995年 서울의 봄은 러시아보다 더 이르고 따뜻했다. 오랜만에 봄다운 봄을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찾은 故國에 對한 期待感 때문이었을까. 볼쇼이발레學校 放學 中 ‘儒學의 結實을 맺고 러시아로 돌아가리라’는 決心이 동아舞踊콩쿠르 參加로 나를 이끌었다. 막상 그렇게 맘을 …

    •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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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균 국회의장 “동아 기자의 꿈, 유신체제에 막혔지만 평생 애독자 인연”

    丁世均 國會議長 “東亞 記者의 꿈, 維新體制에 막혔지만 平生 愛讀者 因緣”

    유신은 많은 것을 어긋나게 만들었다. 나와 동아일보의 因緣도 그랬다. 1971年 法大生이 되었다. 維新時代 開幕 한 해 前이다. 同期들은 全北 鎭安의 山골짜기 마을에서 올라온 나에게 ‘진촌’이란 別名을 붙여주었다. 鎭安 村놈, 眞짜 村놈의 줄임말이다. 弄이 많이 섞인 別稱이었지만 …

    • 2018-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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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코스 처음 뛴 동아마라톤서 3위… ‘몬주익 금메달’의 시작”

    “풀코스 처음 뛴 東亞마라톤서 3位… ‘몬주익 金메달’의 始作”

    1991年 3月 17日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을 出發해 京畿 城南을 돌아오는 第62回 東亞마라톤에 出戰했다. 5000m와 1萬 m 國家代表로 活躍하던 나는 42.195km 풀코스를 完走할 訓鍊을 單 한 番도 하지 않았다. 當時 所屬팀(코오롱) 이창우 先輩 옆에서 페이스메이커로 도와주며 2…

    • 201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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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가 마련해준 첫 귀국 독창회… 어머니가 보신 마지막 공연”

    “동아가 마련해준 첫 歸國 獨唱會… 어머니가 補身 마지막 公演”

    1978年 10月 當時 제8회 동아音樂콩쿠르 本選 및 對象 選拔 演奏會를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는 잘 먹어야 된다며 집에서 자주 고기를 구워 주셨다. “노래를 부드럽게 부르려면 목도 부드러워져야 한다”며 내게 비계가 많이 붙은 고기를 줬다. 아무 科學的 根據도 없었지만 어머님의 말씀에…

    • 2018-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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