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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外交史 名場面|東亞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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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外交史 名場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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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拉北 김영남 送還 輿論壓迫에… 南北 “特別相逢에 包含시키자”

    2006年 6月 28日. 拉北者 김영남 氏(當時 45歲)와 八旬의 어머니 최계월 氏(當時 82歲)가 金剛山에서 劇的으로 만났다. 當時 離散家族 相逢 行事의 하이라이트는 斷然 두 사람의 相逢이었다. 두 달 前 金 氏는 日本 拉致 被害者 問題의 象徵인 요코打 메구미 氏(1977年 拉北…

    • 201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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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70년/한국 외교사 명장면]<10·끝>남북 첫 이산가족 상봉

    [光復 70年/韓國 外交史 名場面] <10·끝>南北 첫 離散家族 相逢

    ‘1000萬 離散家族’은 南北 分斷과 그 分斷을 固着化시킨 6·25戰爭이 낳은 最大의 悲劇으로 評價된다. 分斷의 아픔을 달래려는 첫 試圖는 1970年 우리 政府의 公式 離散家族 相逢 提議로 이뤄진다. 그 뒤 1972年 7·4共同聲明을 發表하고 그해 8月 平壤에서 南北 赤十字 會談…

    • 201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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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의 核能力 어디까지 왔을까

    北韓의 核爆彈과 運搬手段 能力은 2次 北核危機 當時보다 質的, 量的으로 크게 增加한 狀態다. 核武器를 만드는 材料는 플루토늄과 高濃縮우라늄(HEU) 2가지인데 北韓은 둘 다 갖고 있다. 使用後核燃料를 再加工해 플루토늄 數十 kg을 確保했고 寧邊 5MW(메가와트) 黑鉛 減速爐에서 2…

    • 201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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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70년/한국 외교사 명장면]<9>2차 북핵위기

    [光復 70年/韓國 外交史 名場面] <9>2次 北核危機

    2002年 10月 3∼5日 제임스 켈리 美國 國務部 次官補는 조지 W 부시 美國 大統領의 特使 資格으로 北韓을 訪問했다. 訪北을 하루 앞두고 켈리 次官補는 최성홍 外交通商部 長官을 만나 訪北 目的을 이렇게 說明했다. “이番에 訪北해 北韓에 高濃縮우라늄(HEU) 問題를 直說的으로 第…

    • 201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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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國 外交史 名場面]最强 軍事同盟, 사이버-宇宙로 擴張 中

    6·25戰爭 休戰協定이 締結된 直後인 뒤 1953年 10月 締結된 韓美相互防衛條約은 62年이 지난 現在까지도 ‘世界에서 가장 强力한 軍事同盟’이라는 評價를 받는다. 이제는 韓美同盟이 安保 協力을 넘어 戰略·價値 同盟으로까지 發展했지만 그 中心에는 韓美聯合司令部(CFC)가 버티고 있다.…

    • 201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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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70년/한국 외교사 명장면]<8>1953년 반공포로 석방

    [光復 70年/韓國 外交史 名場面] <8>1953年 反共捕虜 釋放

    1953年 6月 18日 午前 2時 10分. 論山, 馬山, 釜山, 尙武臺 等 韓國의 4個 捕虜收容所에 있던 2萬7388名의 反共捕虜(共産主義에 反對하는 共産軍 砲로)가 電擊 釋放된다. 李承晩 大統領이 美國에 알리지 않은 채 獨斷的으로 斷行한 決斷이었다. 美國의 反對를 무릅쓰고 半恐怖…

    • 201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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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國 外交史 名場面]낮엔 地下炭鑛, 밤엔 圖書館… 博士 學位 따서 歸國하기도

    派獨(派獨)을 斷行한 사람들 가운데는 鑛夫, 看護師 生活을 土臺로 人生의 轉換點을 만든 사람이 적지 않다. 김영희 前 州(駐)세르비아·몬테네그로 大使가 代表的인 境遇다. 金 前 大使는 全州女高를 卒業한 뒤 9級 公務員試驗에 合格해 서울 中區廳에서 勤務하다 1972年 派獨 看護補助…

    • 201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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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외교사 명장면]<6>독일로 간 광부-간호사

    [韓國 外交史 名場面] <6>獨逸로 간 鑛夫-看護師

    1963年 12月 21日 韓國人 123名이 金浦空港에서 飛行機에 올랐다. 西獨으로 가는 派獨(派獨) 鑛夫 1鎭이었다. 獨逸 뒤셀도르프 空港을 向한 16時間의 飛行을 앞둔 이들에게는 一生一大의 꿈을 이뤄 보려는 熱情이 가득했다. 石油 波動과 外國人 勤勞者가 社會 問題化하면서 獨逸이 中斷…

    • 201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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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외교사 명장면]<4>北테러에 맞선 ‘3대 外交戰’

    [韓國 外交史 名場面] <4>北테러에 맞선 ‘3代 外交戰’

    “바레인에서 김현희를 반드시 韓國으로 데려와라.” 1987年 12月 國家安全企劃部(安企部·只今의 國家情報院) 要員들에게 떨어진 特命이다. 그해 11月 29日 대한항공 858篇 航空機를 爆破해 115名의 生命을 앗아간 김현희의 身柄을 引渡받아 韓國으로 押送해야 한다는 것. 自身의 소…

    • 201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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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외교사 명장면]반세기 장벽 허문 ‘마오타이 협상’

    [韓國 外交史 名場面]半世紀 障壁 허문 ‘마오타이 協商’

    “1990年代 初까지만 해도 韓國은 ‘禁止된 地域’이었다. 中國人들 中에 그곳(韓國)에 가본 사람이 거의 없었을 程度였다.” 1992年 8月 韓中 修交의 主役 中 한 名인 첸至賤 當時 中國 外交部長은 自身의 回顧錄 ‘10가지 外交의 記錄(外交 十記)’에서 韓中 修交 過程을 紹介하는…

    • 201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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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외교사 명장면]<2>6·25이후 대화 물꼬 튼 두 사건

    [韓國 外交史 名場面] <2>6·25以後 對話 물꼬 튼 두 事件

    韓中 修交는 ‘北方外交’의 하이라이트이자 決定版이었다. 1992年 8月 24日 當時 李相玉 外務部 長官과 첸至賤(錢其琛) 中國 外交部長이 베이징(北京)에서 修交 署名을 함으로써 마무리됐다. 修交 協商은 意外의 場所에서, 意外의 方式으로 始作됐다. 空中과 海上에서 이뤄진 被拉, 叛亂 社…

    • 201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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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외교사 명장면]북방외교의 또 다른 성과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韓國 外交史 名場面]北方外交의 또 다른 成果 ‘南北韓 유엔 同時加入’

    韓國 政府의 北方外交는 北韓에 매우 攻擊的인 壓迫政策이었다. 北韓을 어려운 處地로 몰아넣어야만 對話에 應할 것이라는 認識을 깔고 있었기 때문이다. 韓國은 情報機關까지 나서 北韓의 友邦國들을 包攝하고 ‘우리 便’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에 비해 北韓은 時代 變化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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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외교사 명장면]<1>노태우정부 ‘북방외교’

    [韓國 外交史 名場面] <1>노태우政府 ‘北方外交’

    “年內 모스크바 구경 좀 하게 해 住所.” 1990年 2月 노태우 當時 大統領은 駐모스크바 領事事務處長으로 赴任할 공로명 外務部 長官에게 任命狀을 주고서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蘇聯과 公式 修交를 맺자는 뜻이었다. 10個月이 지난 뒤 盧 前 大統領은 實際 모스크바 땅을 밟았다. …

    •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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