少年院 出身 企業家 김인배 代表 職業訓鍊 後援
1999年부터 講演 活動
꿈 잃지 않도록 激勵하며
機資材-講義料 等 支援도
“光波測定器에 눈을 대고 徐徐히 焦點을 맞춰 보세요. 꽃이 또렷하게 보이죠? 測定 거리는 30m입니다.”
14日 午前 11時 京畿 의왕시 고천동 고봉중高校(서울少年院)의 한 敎室. 박주석 對日建築土木學院長이 學生(少年院生) 11名을 對象으로 測量 敎育課程인 ‘김인배 敎室’의 첫 講義를 始作했다. 이 過程에 參與한 學生들은 5個月間 每週 4回 3時間씩 寫眞 測量, 地形 測量 等 多樣한 測量 技術을 배우게 된다. 이들이 11月 測量技能士 資格證을 따면 學校 側은 積極的으로 就業을 도울 計劃이다. 朴 院長은 “現在 建築現場에서 測量技術者가 크게 不足해 學生들이 資格證만 따면 安定된 職業을 얻어 새로운 人生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現在 全國 9個 少年院에는 製菓·製빵, 헤어디자인, 自動車整備 等의 職業訓鍊過程이 開設돼 있지만 測量技術을 가르치는 것은 이番이 처음이다. 이 過程은 少年院 出身 企業人인 김인배 九龍綜合建設 代表(45)의 後援으로 만들어졌다. 金 代表는 最近 機資材 設備費와 講義料 等 700萬 원을 後援했고, 앞으로 每年 一定額의 後援金을 傳達할 計劃이다.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金 代表는 初等學校만 마친 뒤 親舊들과 어울려 다니다 12歲 때 竊盜罪로 拘束됐다. 春川少年院에서 1年 4個月을 지낸 그는 7年 뒤 다시 暴行罪로 忠州少年院에서 1年 10個月을 보냈다. 그가 새 삶을 찾은 것은 忠州少年院에서 恩師(恩師) 김동우 氏(60)의 가르침을 받게 되면서부터다. 金 氏는 그에게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最善을 다해 살라”며 따뜻하게 감싸줬고 金 代表는 하루에 한 卷씩 每日 冊을 읽으며 希望을 키워 나갔다.
21歲 때 少年院을 나온 그는 煉炭 配達과 택시 運轉을 하며 齷齪같이 돈을 모았다. 틈나는 대로 工夫하며 高入 大入 檢定考試에도 合格했고, 江原大 土木工學科와 大學院을 卒業해 碩士學位까지 땄다. 30歲에 資本金 4000萬 원으로 세운 建設會社는 이제 年間 100億 원臺의 賣出을 올리는 中堅企業으로 成長했다.
그가 過去를 숨기지 않고 다시 少年院으로 눈을 돌린 것도 恩師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少年院을 나온 뒤에도 金 代表와 繼續 連絡을 주고받았던 金 氏는 “少年院 出身인 네가 院生들에게 希望을 줘야 한다”며 少年院生을 對象으로 講演을 하라고 勸誘했다.
金 代表는 1999年부터 法務部 少年保護政策諮問委員으로 活動하며 每月 한두 次例 少年院 等을 찾아 自身의 經驗을 들려주고 있다. 또 少年院에 體育用品이나 컴퓨터를 寄贈하고 다양한 敎育活動을 支援해 왔다. 金 代表는 “大部分 어려운 環境 속에서 자란 少年院生들이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 이 過程을 開設했다”며 “資格證을 取得한 學生 一部는 우리 會社가 採用할 것”이라고 말했다.
法務部는 이 過程을 6個月間 示範 運營한 뒤 成果를 評價해 來年부터 全國의 少年院에 測量 敎育課程을 導入하는 方案을 檢討하고 있다.
義王=최창봉 記者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