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BR INSIGHT]無理數로 國力 消盡시킨 王, 人組|東亞日報

[DBR INSIGHT]無理數로 國力 消盡시킨 王, 人組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4月 25日 23時 30分


코멘트
‘三田渡의 屈辱’ 以後 朝鮮 王室과 朝廷의 權威는 땅에 떨어졌다. 明나라와의 義理를 지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랜 歲月 오랑캐라 부르며 無視하던 女眞族을 上國으로 받들어야 했으니 當時 知識人들이 받은 衝擊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國政이 痲痹되는 것을 放置할 수는 없었다. 戰亂을 收拾하고 民生을 安定시키며 國家 行政을 正常으로 되돌리는 일이 時急했다. 1639年(仁祖 17年) 慶尙道에 示範的으로 大同法을 施行하고 百姓을 쉬게 해야 한다는 ‘與民休息(與民休息)’의 理念 아래 緊縮 財政을 運用하면서 租稅와 附逆을 減免하는 等의 措置를 取한 것도 이 때문이다. 全國的으로 郵驛(牛疫·蘇 傳染病)李 퍼져 被害가 極甚해지자 몽골에까지 가서 소를 購買해 나눠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時期 仁祖는 世子 冊封과 강빈의 獄事로 平地風波를 일으켰다. 1645年(仁祖 23年) 4月 26日 仁祖의 嫡長子 소현世子가 갑자기 世上을 떠났다. 淸나라에서 오랜 人質 生活을 마치고 歸國한 지 채 석 달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仁祖實錄’에 보면 소현世子는 毒殺당한 것으로 推定된다. 하지만 사인이 明確히 밝혀지지 않아서 많은 疑惑을 남기고 있다. 더 큰 問題는 소현世子가 죽은 뒤에 벌어졌다. 仁祖가 原則을 無視하고 元孫 嫡長孫 석철이 아니라 둘째 아들 봉림大君을 後繼者로 삼고 며느리 姜嬪을 逆賊으로 몰아 죽인 것이다. 調整은 混亂에 빠졌고 봉림大君, 後날 孝宗은 政治的으로 큰 負擔을 져야 했다.

事實 仁祖는 소현世子가 淸나라에 있을 때부터 그를 牽制했다. 淸나라 皇室과 密接해진 소현世子가 自身의 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仁祖는 소현世子가 淸나라와의 外交를 成功的으로 이끌고 私財를 털어 砲로 刷還에 힘쓴 일도 애써 無視하거나 嫉視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狀況에서 소현世子가 死亡하자 仁祖는 봉림大君을 世子로 冊封하겠다고 나섰다. 王位 承繼의 基準이 되는 宗法(宗法)에 따르면 嫡長子가 죽으면 嫡長孫이 後繼를 承繼해야 한다. 仁祖가 이를 無視하자 論議에 參與한 16名의 代身 中 領議政 김류와 樂興 府院君 김자점, 兵曹判書 구인후를 除外한 모든 大臣이 反對했다. 仁祖는 世祖 때 맏아들 義警世子가 죽자 嫡長孫 月産大君이 아닌 둘째 아들 睿宗을 世子로 삼은 일을 擧論하며 뜻을 貫徹한다. 結局 봉림大君이 世子로 冊封됐는데 後날 ‘涕洟否定(體而不正)’, 卽 王位를 이었으나 宗法上 正當한 繼承者가 아니라는 論難에 휩싸여 ‘禮訟論爭’李 觸發된다. 禮訟論爭으로 朝鮮 朝廷이 浪費한 에너지를 생각하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仁祖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소현世子의 아내 姜嬪을 逆賊으로 몰아 師事했다. 仁祖는 강빈이 自身의 水剌에 毒을 넣었다며 宮女들을 鞠問했는데 眞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平素 行實로 봤을 때 강빈이 저지른 일이 틀림없다며 備忘記를 내렸다. 臣下들 大部分이 反對했고 一部는 稱病하며 朝廷에 나오지 않을 程度였지만 仁祖는 끝까지 밀어붙였다. 廢庶人하되 죽음만은 면하게 해달라는 妥協案도 들어주지 않았다. 結局 仁祖 24年 3月 15日 강빈은 廢黜된 뒤 賜死된다. 강빈의 죽음과 함께 강빈의 親庭어머니도 賜死됐고 男子 兄弟들은 棍杖을 맞아 죽었으며 이미 죽은 親庭아버지 강석기는 剖棺斬屍됐다. 강빈과 소현世子의 세 아들은 濟州島로 流配됐다. 집안이 滅絶되다시피 한 것이다.

仁祖가 이렇게까지 無理數를 둔 것은 昭顯世子와 강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데다 姜嬪을 逆賊으로 몰아야 元孫 석철이 갖고 있던 王位 承繼의 正統性을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結果的으로 本人이 목적한 바를 이룬 셈이지만 그로 인해 調整은 1年이 넘도록 제 機能을 發揮하지 못했다. 國家的으로 解決해야 할 課題가 山積한 狀況에서 世子 冊封과 姜嬪을 師事하는 問題로 온 調整이 混亂에 휩쓸렸다. 仁祖는 在位 初期에도 아버지 정원군을 王으로 追崇하는 問題로 朝廷의 에너지를 浪費하더니 後半期에는 節次에서 벗어난 世子 冊封과 강빈 獄事로 國政 懸案을 解決하고 未來에 對備할 時間을 빼앗아 버렸다.

※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390號(4月 1號) “丙子胡亂 겪고도…국력 消盡시킨 人組” 原稿를 要約한 것입니다.


김준태 성균관대 幼學東洋學과 招聘敎授
整理=장재웅 記者 jwoong04@donga.com
#無理手 #國力 #王 #人組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댓글 0

只今 뜨는 뉴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