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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仁村은 民族을 일으켜 세우고자 했다|동아일보

[社說]仁村은 民族을 일으켜 세우고자 했다

  • 東亞日報
  • 入力 2011年 9月 21日 03時 00分


인촌 金性洙 先生(1891∼1955)의 誕生 120周年(10月 11日)을 맞으며, 그가 敎育者 言論人 企業家 政治人으로서 韓國 近現代史에 남긴 큰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學術大會가 어제 열렸다. 隣村은 日帝 植民治下의 嚴酷한 現實에서 民族을 일으켜 세우고자 했다. 光復 後 大韓民國의 基盤을 만드는 데 큰 役割을 한 京城紡織, 中央學校(中央中學校 中央高等學校 前身)와 보성전문학교(高麗大 前身), 동아일보를 통해 國富(國富)의 礎石을 다지고, 人材를 養成했으며, 政府를 代身해 民衆의 눈과 귀 役割을 했다.

李榮薰 서울大 敎授는 隣村이 세운 京城紡織을 “오늘날 先進 韓國經濟를 만든 企業들의 先驅者”로, 한용진 高麗大 敎授는 隣村이 引受한 中央學校와 보성전문학교를 “獨立國家 建設에 이바지한 人材의 道場”으로,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名譽敎授는 隣村이 創刊한 東亞日報를 “民族意識을 잃지 않도록 깨우친 燈불”로 評價했다. 學者들은 “동아일보는 海外에서의 獨立運動, 愛國者들의 投獄과 釋放 等에 關한 消息을 昭詳하게 傳해 民族에 勇氣와 希望을 주었다”고 評價했다.

신용하 울산대 夕座敎授는 “日帝 致賀 國內에서 愛國啓蒙運動을 통해 實力을 培養하고 國外에서 武力 獨立을 準備하는 이中路線은 모든 獨立運動家들이 共有한 생각이었다”며 “左派든 右派든 어떤 獨立運動家도 인촌에게 親日의 잣대를 들이댄 적이 없다”고 말했다. 海外에서의 愛國活動보다 國內에서의 民族自强, 國權回復 努力이 더 가시밭길이었다는 指摘도 나왔다.

隣村은 光復 直後 建國準備委員會(建準)와 조선인민공화국에 속지 않고 臨時政府를 烽臺(奉戴)했다. 또 信託統治 決定 以後 김일성의 政治 煽動에 이용당한 金九의 南北協商論 代身 李承晩의 單政論을 支持했다. 김학준 단국대 理事長은 左派 史學者들이 인촌을 不當하게 分斷勢力으로 몰아가는 根據가 된 建準과 조선인민공화국은 무늬만 左右合作이었으며 모스크바 3商會의 信託統治 決定은 拙速이었다고 指摘했다.

진덕규 이화여대 이화學術院長은 “隣村은 大韓民國 建國 過程에서 李承晩의 權力慾에서 빚어진 政治 行態를 바라보면서도 建國이 民族 最大의 課題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를 堪耐했다”고 말했다. 隣村은 李承晩이 永久執權을 劃策하자 躊躇 없이 副統領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최정호 울산대 夕座敎授는 “當時 不穩文書로 取扱받아 言論에 실리지 못한 隣村의 副統領 辭任書를 複寫해서 읽었다”고 回顧했다.

隣村은 힘든 時代에 先覺者的인 慧眼과 뛰어난 現實認識, 謙虛한 人品으로 衆論(衆論)을 모으고 몸소 實踐했다. 우리가 새삼 隣村의 精神을 되새기는 것은 오늘날 國政의 亂脈과 이념적 混亂이 隣村의 時代만큼 深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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