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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冥福을 빕니다]조요한 前숭실대總長 別世|東亞日報

[冥福을 빕니다]조요한 前숭실대總長 別世

  • 入力 2002年 3月 4日 18時 12分


4日 作故한 照耀한(趙要翰·76) 前 숭실대 總長은 篤實한 信仰人이자 韓國美의 哲學的 正體性을 追求한 格調 높은 藝術哲學者였다.

故人은 1954年 崇實大가 서울에 再建되던 初期에 敎授로 赴任하면서 숭실대와 첫 因緣을 맺었다. 故人은 숭실대 哲學과 招待 學科長을 맡았고 1989年부터 1993年까지 總長 在職 後 退任할 때까지 숭실대와 함께했다.

故人은 두 番에 걸쳐 總長에 選任될 程度로 同僚 敎授들의 信望을 얻었다. 1986年에 理事會에서 總長으로 選任됐지만 當時 軍事獨裁政權의 反對로 總長에 就任하지 못했다. 1980年 전두환 政權이 들어설 當時 韓國基督者敎授協議會 會長으로 知識人 宣言에 參與했다는 理由로 5年間 解職됐던 經歷이 問題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9年 숭실대 敎授協議會에서 다시 總長으로 選出됐고 結局 두番 만에 總長으로 任命돼 1993年까지 在職했다.

그러나 故人의 眞面目은 大學 總長보다는 藝術哲學者로서의 硏究活動에 있었다.

그는 學生時節 畫家 金煥基의 집에 下宿을 하면서 藝術에 눈을 뜨게 됐고, 그의 關心은 西洋古代哲學 中에서도 藝術哲學에 集中됐다. 이 因緣으로 1988∼1996年 환기미술관 初代理事長을 맡기도 했다. 그는 藝術哲學을 硏究하면서 韓國 美(美)의 正體性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探究해 이를 哲學的으로 體系化하려 애써 왔다.

故人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篤實한 信仰人으로서의 姿勢다. 그는 서울 銅雀區 黑石洞 베델敎會 長老로서 김재준 안병무 牧師 等과 가깝게 지내며 韓國敎會의 앞날을 걱정했다. 그의 弟子들 中 哲學敎授보다 牧師가 된 사람이 더 많다는 事實도 그의 삶의 한 斷面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故人은 周邊 사람들에게언제나 따뜻하고 仁慈한 人品의 所有者로 記憶된다. 殘忍하다며 TV 拳鬪中繼도 못 볼 程度였다.

김형찬記者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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