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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의 近代를 걷는다] <78>옛 朝鮮耐火 木浦工場과 붉은 甓돌의 꿈|東亞日報 </78>

[이광표의 近代를 걷는다] <78>옛 朝鮮耐火 木浦工場과 붉은 甓돌의 꿈

  • 東亞日報
  • 入力 2018年 1月 11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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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시 유달산 아래에 있는 옛 조선내화 목포공장.
全南 목포시 儒達山 아래에 있는 옛 朝鮮耐火 木浦工場.
儒達山을 背景으로 우뚝 솟은 굴뚝 세 個. 그中 하나는 1930年代 붉은 甓돌로 차곡차곡 30m를 쌓아 올린 것이다. 甓돌 몇 個는 떨어지고 부서졌어도 촘촘히 쌓인 붉은色 堅固함이 木浦 앞바다와도 잘 어울린다. 나머지 두 個는 1950, 60年代에 지은 鐵筋콘크리트 굴뚝이다.

全南 목포시 온금동 옛 朝鮮耐火 木浦工場. 이곳은 不過 熱에 견디는 甓돌 等 耐火物을 生産하던 곳이었다. 1997年 以後 21年째 稼動이 中斷되었지만 現在까지 남아 있는 痕跡들을 둘러보면 過去의 映畫가 그대로 傳해온다. 1938年부터 1970年代에 걸쳐 지은 여러 채의 工場 建物, 甓돌 野積場, 事務室, 工場長 舍宅과 테니스場…. 一部 工場 建物은 天障이 무너져 내렸지만 大體로 天障의 鐵骨 트러스 構造가 雄壯한 모습을 그대로 뽐내고 있다. 工場 建物 內部엔 甓돌을 구워내던 1960年代式 獨逸製 日本製 터널가마(길이 70m)가 如前히 雄壯하다. 옛 事務室 空間으로 들어가 보면 1960, 70年代 雰圍氣다. 社長室, 事務室, 電話交換室이 있고 “技術 좋다 자랑 말고 品質第一 자랑하자”라는 口號가 눈에 쏙 들어온다.

朝鮮耐火는 애初 1930年代 後半 日帝가 세운 會社였다. 武器用 철이 必要했던 日帝가 이를 爲해 製鐵用 耐火甓돌을 이곳 木浦工場에서 生産했다. 光復 以後 1953年 木浦 企業人 이훈동이 會社를 引受했고 1970年代 以後 포항제철 광양제철 等에 耐火甓돌을 集中 供給하면서 全盛期를 謳歌했다. 그러나 1997年 工場을 光陽, 浦項으로 옮기면서 木浦工場은 稼動이 中斷되었다.

朝鮮耐火는 보해양조, 행남사와 함께 木浦의 3大 企業으로 꼽힌다. 그렇기에 朝鮮耐火 木浦工場에 對한 木浦 사람들의 記憶은 더욱 각별하다. 20年 동안 放置하는 바람에 工場 建物이 一部 무너지고 荒廢한 느낌을 주지만 이곳을 補修, 復元한다면 멋진 産業遺産 空間으로 거듭날 것이다. 最近 木浦工場이 近代文化財로 登錄된 것도 이런 背景에서다.

工場 建物을 옛 모습대로 되살려 朝鮮耐火의 歷史를 보여주고 同時에 展示公演場 書店 카페 食堂 等 文化生活空間으로 活用한다면 이곳은 몇 年 뒤 木浦에서 가장 ‘핫’韓 곳으로 變해 있을 것이다. 大規模의 釀造工場을 放置해오다 文化空間으로 復元해 人氣를 누리고 있는 캐나다 토론토의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옛 舊더햄 앤드 워츠 釀造場)처럼 말이다.

이광표 論說委員·文化遺産學 博士
#朝鮮耐火 木浦工場 #製鐵用 耐火甓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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