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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現代建築] <6>最惡의 建築 6, 7位 國會議事堂과 靑瓦臺|東亞日報 </6>

[韓國의 現代建築] <6>最惡의 建築 6, 7位 國會議事堂과 靑瓦臺

  • 東亞日報
  • 入力 2013年 5月 1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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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意 저버리고 政治人이 設計 干涉

《 建築 專門家 100人이 뽑은 最惡의 現代建築 6位와 7位는 國會議事堂과 靑瓦臺다. 國會議事堂(1975年)은 “國會 或은 民主主義가 무엇인지 全혀 理解를 하지 못하고 있는 建物이다”(서현 한양대 建築學部 敎授), “代表的인 權威主義, 國家主義 建築物로 西洋古典을 借用한 造形은 美的으로 精製되지 않았다. 國會議員들이 黨爭만 일삼는 理由가 이 建築에 있다”(박길룡 國民大 建築大學 名譽敎授)는 評價를 받았다. 노태우 前 大統領 時節 本館과 春秋館, 大統領 살림집인 官邸를 새로 지은 靑瓦臺(1991年)에 對해서는 “軍事政權이 세우려고 한 正統性의 歪曲된 表現”(조남호 率土建築 代表), “콘크리트로 어설프게 흉내 낸 韓國의 傳統, 疏通을 不可能하게 만드는 空間構成”(金訓 studio t.a.g 共同代表)이라는 指摘이 나왔다. 》

國會議事堂과 靑瓦臺가 ‘最惡의 建築’ 目錄 上位圈을 차지한 것은 筆者에게는 多少 意外였다. 두 建物이 ‘最高의 建築’ 目錄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不可能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最惡의 建築’ 目錄의 上位에 나란히 이름을 올릴 만큼 雙璧을 이룰 建物들도 아니다. 그런 두 建物이 나란히 비슷한 順位에 자리하고 있다는 事實은 무엇을 의미할까.

國會議事堂 新築은 우리 建築의 正體性을 담아야 하는 國家的 課題를 안고 始作됐다. 光復 後 변변한 自身의 建物을 갖지 못했던 國會는 李承晩 大統領의 配慮(?)로 南山에 國會議事堂을 가질 機會가 있었지만, 5·16으로 機會를 잃었다.

機會는 다시 찾아왔다. 3共和國이 康男과 漢江沿岸 開發을 推進하면서 汝矣島 開發計劃이 나왔고, 汝矣島 開發은 議事堂을 中心으로 큰 그림이 그려졌다. 當時 여느 國家프로젝트가 그렇듯 國會議事堂은 統一에 對備하는 것을 큰 原則으로, 가장 現代的이면서도 固有文化의 傳統과 特徵을 살려 지어야 했다.

그런데 最高의 議事堂 建物을 갖고 싶었던 國會에서 오늘날에는 理解할 수 없는 決定을 내렸다. 最高의 建築家들이 모여 하나의 案을 내놓는다면 最高의 建築이 될 것이라는 決定이었다. 몇몇 建築家들이 異議를 提起했지만, 많은 建築家들은 國會 決定에 따랐다. 結果的으로 懸賞公募를 통해 當選案을 뽑지 않고 여러 建築家들이 共同 案을 만들어내는 前無後無한 일이 벌어졌다.

最初의 안이 決定된 後에도 國會의 設計 干涉이 繼續되었고 結局 없던 돔을 얹어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國會는 建築主로서 主人 된 權利를 行使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國會의 主人이 國民이라는 事實은 忘却한 듯했다. 建築家들 亦是 意欲은 充滿했지만 民意를 代辯하는 國會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對해서는 無知했고, 光復 後 첫 議事堂에 우리의 正體性을 담고자 했던 意志에 對한 適切한 解法을 提示하지 못했다. 結局 政治人들은 自身의 짧은 識見을 유감없이 發揮했고, 自身들의 뜻을 積極 개입시킨 結果가 오늘의 國會議事堂(1975年)이다.

國會와 마찬가지로 行政府도 自身의 建物 없이 오랜 時間을 보냈다. 多幸히 景福宮 앞에 政府綜合廳舍(1971年)가 지어지기는 했지만 大統領은 日帝强占期에 建築된 ‘舊 總督官邸’에서 生活하고 있었다. 大統領이 우리 손으로 지은 집에서 일을 하는 것은 너무나 當然했고, 그 結果가 現在의 靑瓦臺다.

行政府 首班이 일하는 執務室을 傳統建築樣式으로 짓는 것 亦是 國會議事堂에 우리의 固有文化를 담아야 한다는 强迫觀念만큼이나 當然하게 要求되었다. 建築家가 自身의 디자인을 提示했지만 無視되었고, 靑瓦臺의 要求에 따라 只今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靑瓦臺의 建設에는 建築歷史學者들도 積極 介入해 業務空間으로는 처음으로 傳統建築의 모습을 가진 현대 韓屋이 만들어졌다. 그 韓屋이 最惡의 建物에 選定된 것이다.

當代 最高의 엘리트들이 參與한 두 建築이 當代 最惡의 建築物로 손꼽힌 理由가 무엇일까. 建築界 能力의 限界가 드러난 것일까. 아니면 建築이 무엇인지 理解하지 못하는 建築主와 우리 社會의 水準 탓일까. 두 建物에 對해서는 수많은 惡評이 있지만 評價의 大部分은 建築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는 點에 注目할 必要가 있다. 많은 專門家들의 評價는 建築 外的인 基準에 依한 評價일 뿐 아니라 建築家의 社會的 責務에 對한 叱咤가 內包되어 있다. 그리고 專門家들의 이러한 評價 背景에는 우리가 겪어온 至難한 現實이 存在한다.

政權維持를 위해 建築을 道具로 使用했던 우리의 現代史가 있었다. 南北分斷의 冷戰體制는 歷史 속 戰跡地 復活의 背景이었고, 戰跡地의 祠堂에 세워진 鷄卵色 丹靑의 콘크리트 韓屋을 正當化했으며, 南北對話는 世宗文化會館을 낳았다. 모더니즘에 心醉했던 建築家들은 이러한 콘크리트 韓屋에 對해 批判的이었지만, 그렇다고 專門家로서의 社會的 責務를 다하지도 않았다.

建築을 처음 接하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建築家는 醫師 辯護士와 함께 社會的으로 가장 尊敬받는 專門家이자 自由業이라고. 그리고 ‘建築은 社會의 거울’이며, 그 中心에 建築家가 있고, 그래서 우리는 恒常 使用者를 위한 建築을 만들어야 한다고 배웠다. 이러한 가르침은 建築에 첫발을 내디딘 젊은이들에게 建築家에 對한 自負心을 심어주기에 充分했지만, 現實 속의 建築家는 全혀 달랐다. 그 結果가 國會議事堂과 靑瓦臺 建築이고, 建築家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專門家들이 스스로 내린 最惡의 建築 順位 속에 담겨 있다. 이 두 建物은 建築家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自畫像에 다름 아니다.

안창모 경기대 建築大學院 敎授
#國會議事堂 #靑瓦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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