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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壽企業, 이것이 달랐다]샘표식품|동아일보

[長壽企業, 이것이 달랐다]샘표식품

  • 入力 2009年 9月 19日 03時 03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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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기업 샘표식품의 2대 박승복 회장(왼쪽)과 3대 박진선 사장이 서울 중구 충무로 본사에 위치한 요리교실 지미원에서 마주보며 웃고 있다. ‘내 가족이 먹지 못하는 것은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는 창업주의 소신을 3대째 이어가고 있다. 사진 제공 샘표식품
長壽企業 샘표식품의 2代 박승복 會長(왼쪽)과 3代 박진선 社長이 서울 中區 충무로 本社에 位置한 料理敎室 지미원에서 마주보며 웃고 있다. ‘내 家族이 먹지 못하는 것은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는 創業主의 所信을 3代째 이어가고 있다. 寫眞 提供 샘표식품
“場 담그는 어머니 마음처럼”… 3代 걸쳐 ‘肝腸 代名詞’ 名聲
샘표, 國內서 가장 오래된 商標
韓食 世界化에 맞춰 海外 攻掠

‘샘물처럼 솟아라’라는 뜻에서 이름 지어진 샘표식품. 샘표는 國內에 現存하는 가장 오래된 商標다. 1954年 5月 10日 登錄되었으니 55年이나 된다. 現在 特許廳에 登錄된 68萬餘 件의 商標 가운데 最長壽다. 우리 귀에 如前히 익은 ‘맛을 보면 맛을 아는 샘표간醬∼’ CM송은 1961年에 첫 電波를 탔다. 48年이나 된 CM송이다. 올해로 創立 63周年을 맞은 샘표식품은 創立者 고 박규회 會長에 이어 박승복 會長(87)과 박진선 社長(59)까지 3臺를 이어가며 간醬 市場에서 不動의 1位를 지키고 있다. 朴 會長은 最近 펴낸 ‘長壽經營의 智慧’라는 回顧錄에서 “‘家族을 위해 精誠으로 醬을 담그는 어머니의 마음가짐처럼’이라는 原則이 장수企業의 바탕이 됐다”고 紹介했다.

○ ‘等級 없는 간醬’을 創立 理念으로

샘표식품 歷史는 1946年 서울 中區 충무로에서 始作됐다. 光復 以後 日本人이 버리고 간 三市場油釀造場(三矢醬油釀造場)을 故 朴 會長이 引受하면서부터다. 家庭에서 담가 먹던 간醬을 大量 生産하면서 故 朴 會長은 “내 家族이 먹지 못하는 것은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는 所信을 創業 精神으로 내세웠다.

戰爭과 休戰 等으로 迂餘曲折을 거듭하던 샘표는 1954年 杖流業界 最初로 硏究室을 만들어 天然釀造 間丈人 순곡간醬을 내놓았다. 市販되던 간醬 大部分이 日本製品이던 當時, 品質로 勝負手를 던진 것이다. 現在 샘표간醬의 嚆矢다.

“間或 知人들에게서 우리 집에서 먹는 高級品과 같은 것으로 보내달라는 付託을 받아요. 간醬工場 社長이니까 뭔가 특별한 것을 먹겠거니 했나 봐요. 하지만 우리 會社 製品은 高級이 따로 없어요. 모두 똑같은 샘표간醬日 뿐입니다.”

創業者가 生前 인터뷰에서 强調했던 ‘等級 없는 간醬’은 샘표의 創立理念이었다. 누구나 먹는 간醬만큼은 財産이나 地位 高下를 莫論하고 똑같이 좋은 製品을 먹어야 한다는 게 創業主의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張은 집에서 담가 먹는 것’이라는 固定觀念을 깨고 ‘寺 먹는 場이 맛있다’는 認識으로 바꿔 놓는 데 成功했다.

간醬의 年度別 販賣 增加率은 1954年을 基準으로 1958年에는 4.8倍, 1959年에는 7.3倍로 急激히 增加했다. 忠武路 工場만으로는 需要를 堪當할 수 없어 1959年 現在 서울 道峰區 倉洞 一帶에 工場을 新設했다. 그리고 그해 홍콩으로 첫 海外 輸出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 杖流業界 1位로 자리 잡던 時期였다.

○ 3臺로 이어지며 글로벌 市場 攻略

1970年代에 들어서면서 샘표는 企業 規模를 키웠다. 1971年 株式會社로 轉換하고 샘표식품工業으로 이름을 바꿨다. 杖流뿐만 아니라 다양한 加工食品을 生産했다. 1973年 忠南 燕岐郡에 鳥致院食品을 設立해 과일 桶조림을 生産하고, 1976年에는 慶北 포항시에 洋砲食品을 세워 水産物 加工 桶조림을 生産했다. 創立 30周年을 맞은 1976年 샘표식품은 한국생산성본부 主管의 ‘韓國 10代 經營力 優秀 企業體’로 選定되기도 했다. 現 朴 會長 體制의 2世 經營이 始作된 時點이기도 했다.

하지만 危機가 찾아왔다. 3次例에 걸친 간醬波動은 會社를 휘청이게 했다. 特히 1985年 零細 製造業體의 不良간醬 불똥이 全體 杖流業體로 튀었다. “담가뒀던 마늘장아찌를 통째로 버렸다” 等의 抗議 電話가 빗발쳤다.

“제가 TV에 出演하겠습니다. 正攻法으로 談判을 지으면 됩니다.” 當時 박승복 社長이 나섰다. 그는 “샘표는 安全합니다. 마음 놓고 드십시오. 主婦님들의 工場 見學을 歡迎합니다”라는 文案을 直接 作成하고 廣告에 登場했다. 消費者들이 귀를 기울였고, 信賴도 되찾았다.

그래서 샘표는 家業을 3代째 이어가면서도 ‘始作의 마음(初心)’을 가장 重視한다. 1990年代부터는 消費者의 입맛이 다양해져 간醬 需要가 줄고, 大企業까지 뛰어들면서 競爭이 더욱 加速化된 狀況에서도 信賴를 强調하는 理由다. ‘간醬만 만드는 데 60餘 年이 걸렸다’는 샘표의 3代 박진선 社長은 “海外 進出의 目的은 우리 飮食의 世界化에 있다. ‘우리의 맛으로 世界人을 즐겁게 한다’는 샘표의 글로벌 戰略을 펼치겠다”며 샘표의 새 場을 열고 있다.

샘표식품 藥師

―1946年 고 박규회 會長, 三市場油釀造場 引受

―1954年 샘표 商標 特許廳 登錄

―1959年 서울 창동工場 新設

―1971年 株式會社 轉換, 샘표식품工業으로 社名 變更

―1973年 忠南 鳥致院食品 設立, 과일 桶조림 生産

―1976年 慶北 洋砲食品 設立, 水産物 加工 桶조림 生産

―1987年 京畿 利川工場 竣工 및 稼動

―2000年 金塔産業勳章 受賞

―2001年 忠北 嶺東工場 竣工

―2002年 業界 最初로 醬類 全 部門 HACCP 指定

―2008年 韓國經營者協會 選定 가장 尊敬받는 企業 選定

강혜승 記者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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