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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YS 말고 새 人物 어때요”… JP “政局 大混亂 올수도”|동아일보

盧 “YS 말고 새 人物 어때요”… JP “政局 大混亂 올수도”

  • 東亞日報
  • 入力 2015年 3月 7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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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憧憬 東京 李鍾贊 回顧錄]〈28〉JP의 갈지(之)자

1992년 5월 4일 이종찬 의원의 서울 세종로 대선 후보 경선 사무실을 찾은 JP(가운데). JP는 그 직전 김영삼 후보 추대위원회 명예위원장을 맡았고, 박태준 최고위원(왼쪽)은 이종찬 측 명예위원장을 맡았다. 동아일보 DB
1992年 5月 4日 이종찬 議員의 서울 世宗路 大選 候補 競選 事務室을 찾은 JP(가운데). JP는 그 直前 김영삼 候補 推戴委員會 名譽委員長을 맡았고, 朴泰俊 最高委員(왼쪽)은 李鍾贊 側 名譽委員長을 맡았다. 東亞日報 DB
1992年 4月 2日 午後 박태준, 李鍾贊, 李漢東, 심명보, 박준병, 박철언 等 6人이 모였다. 민정系 重鎭協議會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날 朴泰俊 最高委員은 相當히 鼓舞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朴 最高委員에 對한 靑瓦臺쪽 牽制가 繼續 마음에 걸렸다.

다음 날 아침 공화系 重鎭 김용환 議員을 만났다. 金鍾泌(JP) 最高委員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내가 競選에 나서게 될 때의 反應도 궁금했다. 김용환 議員은 JP가 나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며 몇 가지 忠告를 해줬다.

첫째, JP는 YS에 對해 相當히 失望하고 있으나 아직은 분명한 態度를 定하지 않고 觀望 狀態다. 그러므로 積極的인 接近이 必要하다.

둘째, 于先 黨內의 潛在的 李鍾贊 反對 勢力들을 撫摩해야 한다. 議員들 사이에 섭섭해 하는 雰圍氣가 많다.

셋째, TK가 一般的으로 이종찬을 反對하고 있다. 그렇다고 YS 支持도 아니다. 이를테면 김윤환과 금진호는 確固하게 YS를 支持하고 있지만 김복동, 박철언은 徹底한 反YS다. 그 사이에서 정호용은 觀望勢이지만 YS 支持로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정호용은 이종찬이 自己를 앞지른 데 對해 自尊心이 傷해 있다.

넷째, JP는 複雜한 心理構造를 갖고 있다. 좀더 情感 있게 接近해야 한다. “이종찬은 아직…”이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나는 親舊인 김우중 대우그룹 會長을 찾았다. 그에게 JP 說得을 付託했다. 그는 가까운 時日 안에 自身의 始興 別莊에서 김종필, 김용환과 3者會同을 갖고 確實하게 付託하겠다고 約束했다.

그렇게 하고선 밤늦게 JP의 청구동 집을 찾아갔다. 그는 YS에 對해 몹시 不快해 하고 있었다. 마침 그날 아침 YS는 또 問題의 發言을 했다. “盧 大統領 自身이 中立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政權 再創出 때까지 盧 大統領과 나는 한 몸이 돼서 간다는 말을 留念해 달라.” 結局 競選이란 形式에 不過하다는 發言이었다.

내가 이런 ‘들러리 競選’에 對해 不滿을 吐露하자 JP는 4月 8日 靑瓦臺에서 晩餐會同이 있다면서 “이番에는 다릅니다. 내가 그동안 참아 왔던 말을 하고 올 거예요”라고 다짐했다. 決心이 단단해 보여 期待가 됐다. 特히 그 무렵 盧 大統領도 YS에 對해 不滿이 쌓여가고 있었다.

‘YS가 果然 約束을 지킬 사람일까?’ ‘第3의 候補는 없을까?’ 그게 盧 大統領의 苦悶이었다.

그런 낌새를 靑瓦臺 內의 YS 側近이 捕捉했던 模樣이다. 그 側近은 急히 이만섭 議員에게 SOS를 쳤다. 盧 大統領의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사람은 이만섭밖에 없다고 判斷했던 것이다.

盧泰愚-김종필 晩餐會同 直前 이만섭이 靑瓦臺를 訪問했다. 그는 노태우와 大邱 同鄕이었고, 나이도 같았다. 高等學校는 갈렸지만 이만섭도 한때 空軍士官學校에 다닌 經歷이 있다 보니 基本的으로 통하는 사이였다.

이만섭은 大統領 接見室에서 나오면서 밖에 있던 李秉岐 儀典首席祕書官에게 ‘大統領의 마음을 돌렸다’는 사인을 보낸 뒤 靑瓦臺를 떠났다.

그날 午後 6時, JP가 靑瓦臺에 到着했을 때는 이렇게 事前 整地作業이 끝난 狀況이었다. 盧 大統領은 JP의 意中을 떠보기 위해 말을 돌렸다.

“새 人物을 내세우면 어떻겠습니까?”

段數가 높은 JP는 이 말이 聲東擊西(聲東擊西)임을 금세 알았다.

“새 人物이 나오면 5·16이나 10·26 같은 큰 소용돌이를 覺悟해야 합니다. 김영삼이란 사람은 突破力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政局의 大混亂이 와도 覺悟하시겠다면….”

對話 끝에 盧 大統領이 本論에 들어가려 하자 JP는 挽留했다. 더以上 들을 必要가 없다는 뜻이었다.

“말씀하지 마세요. 말이 또 새로운 말을 만듭니다. 알아들었습니다.”

JP는 밤 10時 가까이 되어서 靑瓦臺를 나왔다. 그는 卽刻 YS의 競選本部가 차려진 하얏트 호텔로 갔다. 이날 JP와 YS의 電擊的인 會談을 두고 ‘4·8密約’이라고 부른다.

한便 나는 그날 밤 오유방, 장경우 議員 等과 함께 盧泰愚-김종필 會同의 結果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JP는 斷乎하게 할 말을 하겠다고 했는데 結果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나는 청구동의 祕書官에게 ‘到着하면 卽時 찾아뵙겠다’고 여러 次例 要請했다. 밤 12時가 다 되어서야 ‘너무 疲困하니 다음에 連絡해주겠다’는 回信을 받았다. 우리는 이미 판이 기울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날 朝刊新聞에 JP의 發言이 실렸다.

“나의 決心은 내려졌다. 그 內容이 무엇인지 밝히지는 않고 留保하겠다. 大選에서 勝利 可能性을 생각해 봐야 한다.”

나로서는 混亂스러웠다. 그래도 나는 ‘密約’이 있었다는 事實을 믿을 수 없었다. 이게 JP式 處世術인가? 아니면 世上을 내 마음대로 주무른다는 發想인가? 5·16의 企劃者였고, 한때 2人者의 位置에서 공화당을 組織한 사람이 할 말인가?

며칠 뒤 청구동을 다시 찾은 나에게 JP는 이렇게 말했다.

“政治란 現實이야. 꼭 최선만 있는 것은 아니고 次線도 있다는 事實을 理解해주기 바라요.”  
▼ “現札 1000億 대줄테니 新黨 創黨하시죠” ▼

박태준 回顧錄 속의 金宇中


李鍾贊 回顧錄에는 金宇中 前 大宇그룹 會長이 여러 次例 登場한다. 첫 番째는 1973年 이른바 ‘윤필용 事件’이 터졌을 때다.

當時 中央情報部에 있던 이종찬은 競技고 動機인 김우중이 保安司令部에 連行됐다는 消息을 듣고 강창성 司令官을 찾아가 救命을 呼訴한다(동아일보 2014年 10月 4日子 李鍾贊 回顧錄 第7回 ‘윤필용 事件과 金宇中’ 參照).

그때 親舊가 들려준 김우중의 ‘嫌疑’는 “윤필용 將軍 側近들과 가깝게 지냈다”는 것이었다. 윤필용 側近들이면 전두환, 노태우, 손영길 等이다.

두 番째는 1992年 민자당 大統領候補 競選 때다. 이番엔 이종찬이 金宇中에게 ‘JP 說得’을 付託한다. 朴正熙 大統領 밑에서 財務長官을 지낸 김용환 議員과 김우중의 關係는 有名하다. “大宇의 折半은 김용환이 키운 것”이라는 말이 있을 程度다.

金宇中은 김용환을 통해 JP와 3者 會同을 갖고 李鍾贊 支持를 付託했다. 李鍾贊의 記憶. “金 會長으로부터 ‘JP와 얘기가 잘 됐다’는 通報를 받았다.”

그러나 JP의 選擇은 달랐다.

그해 開天節인 10月 3日, 金宇中은 서울 북아현동 박태준(TJ) 最高委員의 집을 訪問한다. 이종찬은 이미 競選을 拒否하고 민자당을 脫黨하고 난 다음이었다.

“現札 1000億 원을 대줄테니 新黨을 創黨하시죠!”

TJ는 어이가 없었다. “金 會長, 이종찬 議員에게도 그런 提案을 했던 걸로 아는데 大宇自動車 팔아서 그런 돈 만들 생각이면 會社 財務構造부터 고치세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待遇를 좀 알고 있지 않습니까?”

2004年 發刊된 ‘世界 最高의 鐵鋼人 박태준’에 나오는 얘기다.

金宇中은 박철언 回顧錄에도 登場한다.

“1988年 4·26 總選을 앞두고 金宇中 會長이 나를 꼭 한番 봤으면 했다. (靑瓦臺 政策補佐官으로 있던) 나는 時間도 없었을뿐더러, 특별한 懸案도 없이 財閥 總帥를 만나는 게 適切치 않다고 생각해 此日彼日 미뤘다. 그런데도 하도 끈질기게 만나자고 해 어느 날 힐튼호텔 23層 펜트하우스에서 만났다. 만난 지 30分쯤 지나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金 會長이 遑急히 封套 하나를 내밀었다. 내가 正色을 하고 拒絶하자 金 會長은 몇 次例 强勸하다가 나중에는 ‘이거 事務室 職員들 會食費입니다. 작은 뜻입니다. 拒絶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會食費까지 뿌리치는 건 너무 野薄한 듯싶어 받아왔는데 事務室에 돌아와 封套를 열어보니 職員 50餘 名이 會食을 몇 百 番 하고도 남을 큰돈이었다.”

박철언이 卽刻 封套를 돌려주자 金宇中은 唐慌한다.

金宇中 前 大宇그룹 會長(79)은 대우그룹 워크아웃이 決定된 지 正確히 15年 만인 지난해 8月 26日 ‘待遇特別포럼-金宇中과의 對話’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世界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冊을 통해 “대우그룹 解體 過程은 經營失敗 때문이 아닌 政府의 企劃解體에 가깝다”고 主張한 直後였다.

“나는 國家와 未來 世代에 反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적어도 잘못된 事實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창혁 專門記者 chang@donga.com
#JP #갈지 #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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