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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豆滿江邊의 背信] <제1화>國境의 덫|東亞日報 </제1화>

[豆滿江邊의 背信] <제1화>國境의 덫

  • 東亞日報
  • 入力 2013年 9月 30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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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사내 둘이 다가왔다, 다짜고짜 手匣을 채웠다
脫北者 家族 拉致 北送事件의 眞實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記者 beanoil@donga.com
《 豆滿江에는 野蠻의 法則이 흐른다. 相對를 죽여 내가 사는 것이 中國 豆滿江 國境의 生理다. 9年 前 어린 男妹의 아버지였던 脫北者 스파이 채○○ 氏(48)는 卑劣한 順應을 擇했다. 그는 自身과 가까웠던 또 다른 아버지를 犧牲羊으로 삼았다. 救援의 손길을 假裝한 背信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韓國에 가려 했던 脫北者 一家族은 사지(死地)로 내몰렸다. 夫婦는 20代였고 아들은 8個月 된 젖먹이였다.

北韓 國家安全保衛部는 婦人科 13歲 딸, 8歲 아들을 北韓에 남겨두고 脫北한 채 氏에게 ‘作業’을 提案하며 “家族을 잊지 말라”고 했다. 否定(父情)과 認定(人情). 그 사이에서 채 氏는 한쪽을 擇했다. “내 子息들은 나처럼 꿈 없이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채 氏의 選擇으로 다른 脫北者 家族의 삶은 風飛雹散이 났다. 채 氏의 罪값은 果然 얼마일까.

東亞日報 探査報道팀은 채 氏가 脫北者 一家族 拉致 北送에 加擔하기까지 지난 10餘 年間 行跡을 되짚어봤다. 銃聲이 사라진 北-中 國境에서 南北韓 情報當局이 벌이는 陰謀, 北韓體制의 弄奸에 스러져간 두 家族의 挫折과 鬪爭을 目擊했다. ‘드라마’ 形式을 빌리지 않고는 제대로 傳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取材팀은 8月부터 두 달間 채 氏와 被害者, 兩쪽 家族들, 檢警 搜査팀, 事件 目擊者와 申告者 等 周邊 人物을 2∼7次例 만나 深層 인터뷰했다. 記事는 檢察 公訴狀과 搜査記錄, 1審 判決文, 當事者 證言 等을 통해 確認된 事實만을 土臺로 再構成했다. 本報는 事件의 眞實을 파헤쳐 100% 實話를 再現하는 ‘논픽션 드라마’를 앞으로도 繼續 선보일 計劃이다. 》

灰色 지프車에는 5名이 타고 있었다. 助手席의 男子는 낯이 익었다. 두 달 前 집에서 본 男子였다. 運轉士는 말이 없었다. 韓國말을 모르는 中國男性人 듯 했다. 왼쪽에 앉은 男便 가슴팍에 生後 8個月 된 아들이 잠들어 있었다. 장은희(假名·當時 24歲)는 車窓 밖을 내다봤다. 꽁꽁 언 豆滿江이 어둠 속에 멈춰 있었다. 半 年 前 아들을 업고 건널 땐 가슴까지 차오르던 江이었다.

2004年 12月 15日 午後 9時. 中國 옌볜(延邊) 豆滿江 接境都市人 투먼(圖們)의 外郭道路를 10餘 分째 가고 있었다. 車 안은 고요했다. 男便이 焦燥한 말套로 입을 열었다.

"兄, 저 豆滿江 건너에 있는 게 강양군臺(北韓軍 國境警備隊) 아닌가?"

助手席의 男子는 反應이 없었다. '南韓行' 車에 탔지만 은희는 安心하지 못했다. 가는 길에 中國 公安이 車를 세우는 想像이 떠올랐다. 6個月 間 숨어 살 때 制服 입은 사람을 보면 心臟이 내려앉던 慣性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순조로웠다. 南쪽으로 간다면 왼便에 있어야 할 豆滿江이 오른쪽 車窓 밖으로 내다보이는 것 말고는….

○ 隱身處에 찾아온 男子

助手席의 男子가 집에 나타난 건 두 달 前인 10月 어느 날이었다. 짧은 스포츠型 머리에 검은 洋服 차림이었다. 키는 北韓에선 平均인 165㎝ 程度. 그는 雙꺼풀 진 큰 눈을 번뜩이며 目禮를 했다.

"우리를 韓國에 보내줄 채 兄이야."

男便 이명호(假名·當時 23世)가 그를 紹介했다. 은희는 生後 6個月 된 아들 賢俊(假名)이를 안고 채민철(假名·當時 39歲)을 빤히 쳐다봤다. 낯선 사람이 집에 온 건 中國 투먼에 숨어 산 지 넉 달 만에 처음이었다.

투먼은 北韓 最北端인 咸北 穩城郡에서 豆滿江만 건너면 나오는 中國 땅. 南韓에 가려고 '線'을 찾는 脫北者가 많다. 명호와 은희는 그해 6月 갓난아기를 데리고 이곳으로 脫北했다. 명호가 密貿易을 할 때 親해놓은 朝鮮族의 집에 숨어 지냈다. 隱身處는 中國과 北韓을 잇는 투먼大橋 옆 8層짜리 아파트 꼭대기 層이었다. 望遠鏡으로 보면 北韓 哨所의 軍人들 얼굴表情이 보였다.

민철은 居室로 들어서며 말했다.

"어? 韓國 거 보네."

드라마 '올인'李 TV에 나오고 있었다. 집 안 구석구석을 살피는 민철의 바쁜 눈빛이 은희와 마주쳤다. 민철은 은희 품에 있던 현준이를 끌어안았다.

"야, 이 새끼 잘생겼다."

민철은 아기와 이마를 맞대고 익살스런 表情을 지었다. 은희가 外出 準備를 하는 내내 민철은 아기를 무릎 위에 앉혔다. 민철이 볼을 비비자 현준이는 鬚髥에 따가워하며 몸을 비비 꼬았다. 다 같이 寫眞館으로 옮겨서도 민철은 현준이를 안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녀석, 畫報 모델해도 되겠다."

이날 명호와 은희는 與圈 寫眞을 찍었다. 僞造 旅券으로 飛行機를 타고 韓國에 간다는 게 며칠 前 민철이 명호에게 提示한 計劃이었다.

○ "兄님 배를 따오면 살려준답니다"

명호는 '쫄쿠기(뜯어내기)'를 못 견뎌 脫北을 決心했다. 명호는 中國과 北韓을 오가며 松耳버섯 密貿易으로 生計를 꾸렸다. 장사를 하려면 北韓 最高 情報機關인 國家安全保衛部와 保安員(警察)의 默認이 必須였다. 두 機關에서 하루씩 交代로 명호 집을 찾았다. 달라는 賂物을 주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었다. 이들을 避해 다니자 명호는 곧바로 逮捕 對象이 됐다. 密貿易을 하며 다져놓은 北韓軍과 保衛部 人脈은 名號를 조여 오는 搜査網으로 突變했다. 南韓行은 살기 위한 選擇이었다.

脫北한 지 석 달 만인 2004年 9月 명호는 투먼 市內 飮食店에서 민철을 만났다. 민철은 "淸津에서 軍艦 타고 나갔다가 水營해서 韓國에 歸順했다"고 自身을 紹介했다. 그의 武勇談은 名號를 사로잡았다. 1年 前 脫北者 25名이 베이징 韓國大使館에 들어가려다 中國 公安에게 잡힌 事件 때문이었다. 以後 南韓으로 가는 '先'李 끊겨 민철 같은 有經驗者가 貴했다.

當時 명호는 며칠 前 일 때문에 神經이 더욱 곤두서 있었다. 北韓 國境警備隊 上等兵 김정혁(假名·當時 22歲)과 이광일(假名·當時 22歲)에게서 만나자는 連絡이 왔다. 명호가 密貿易을 할 때 뒤를 봐줬고 脫北할 때도 豆滿江 길을 열어준 軍人들이었다.

"(保衛部에서) 兄님 배를 따오면 살려준답니다."

명호는 表情이 굳어졌다. 親兄弟로 여기는 동생들이라도 操心했어야 했다. 명호 家族의 脫北을 도운 게 發覺돼 銃殺 危機에 놓였다가 逮捕 任務를 받고 派遣된 것이었다. 脫北을 도와준 사람을 逮捕龍 미끼로 쓰는 게 保衛部의 典型的인 手法이었다. 하지만 鼎革은 곧 中國으로 찾아온 속내를 털어놨다.

"兄님 못 죽이겠소.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읍시다. 南韓 같이 가요."

명호는 鼎革과 光日을 숨겨줬다. 家族과 사는 아파트에서 10km쯤 떨어진 石油工場 뒤便 多世帶住宅 3層이었다. 이곳 亦是 名號를 숨겨준 朝鮮族의 집이었다. 명호는 밖에서 자물쇠를 채우고 電氣를 끊어 빈집으로 僞裝했다. 脫營兵 隱匿罪는 잡히면 살 길이 없었다.

○ 非情한 國境 都市

투먼은 돈과 安全을 위한 背信이 日常化된 都市였다. 누군가의 最小限의 善意에 내 生命을 맡겨야 했다. 北韓 工作員들이 中國 公安 服裝을 하거나 脫北 브로커 行世를 하며 脫北者를 索出했다. 돈벌이로 脫北者 隱身處를 保衛部에 일러바치는 朝鮮族도 많았다. 北韓에서 松耳버섯이나 骨董品을 가져올 販路를 保障받는 代價로 情報를 넘기는 式이다. 이들은 北韓 情報를 韓國 國家情報院 要員에게 팔아넘기는 二重 스파이 짓도 했다. 명호 亦是 國精院 諜報網의 한 고리였다. 北韓 쪽 人脈을 통해 빼낸 情報를 넘기며 逃避資金을 벌었다.

명호는 투먼을 벗어나려 했다. 中國 다롄(大連)에 있는 日本 國際學校에 뛰어들어 亡命을 試圖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名號 家族과 脫營兵 둘을 包含해 脫北者 16名이 탄 乘合車가 學校 앞에 到着했을 때 아무도 내리지 못했다. 校門 앞에 公安 車輛이 이미 와 있었다. 車에 탄 누군가에게서 計劃이 새나간 것이었다.

투먼에 돌아온 명호는 더욱 焦燥해했다. 다롄의 乘合車 안에 숨어있던 스파이에게 얼굴이 露出됐기 때문이었다. 바삐 韓國으로 떠나야 했다. 민철과 가까워진 건 그즈음이었다. 大部分의 브로커가 韓國에 가본 적 없는 朝鮮族이었는데 민철은 달랐다. 韓國 住民登錄證을 갖고 있었고 南韓行에 成功한 經驗이 있었다.

명호는 민철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중에 잡히면 政治犯으로 몰릴 수 있어 脫北者들끼리도 함부로 하지 않는 말이었다.

"南韓에 가려고 하는데…. 兄이 도와줄 수 있소?"

민철은 망설임 없이 答했다.

"내가 直接 데려가줄게."

명호는 민철의 反應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脫營兵 둘도 데리고 있어서 걔들부터 빨리 보내야 될 것 같소."

"그러면 네가 다친다. 손 떼는 게 좋지 않겠냐."

명호는 민철이 自身을 걱정해주는 것에 고마워했다. 민철은 돈이 궁하던 명호에게 100달러까지 紙幣를 種種 쥐어줬다.

○ 合乘의 陷穽

민철과 南韓行을 相議한 지 두 달쯤 뒤인 2004年 12月 15日 午後 8時. 명호는 집에서 저녁 食事를 하다 민철의 電話를 받았다. 명호는 電話를 끊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은희랑 애기는 왜 안 데려가겠다는 거야?"

이를 들은 은희가 食卓에 앉은 채 목소리를 높였다.

"이番에 (南韓) 못 가면 언제 간단 말입니까. 우리도 男子들 있을 때 끼어서 갈 기라요."

명호는 다시 민철에게 電話를 걸어 3, 4分 만에 通話를 끝냈다.

"짐 싸라. 다 같이 간다."

명호 家族은 8層을 걸어서 내려왔다. "名號야." 민철의 목소리였다. 200m쯤 떨어진 곳에 지프車가 있었다. 명호 家族이 탄 車는 靜寂 속에 10分쯤 달렸다. 민철의 携帶電話가 울렸다. 그는 車를 세우고 밖에서 通話를 하고 들어왔다.

"名號야. (咸鏡北道 穩城郡) 傷歎에서 사람 하나 넘어오기로 했다. 받아서 같이 가자."

"아, 그럼 그렇게 하기요."

脫北브로커를 한 적이 있는 명호는 '南韓行 合乘'이 間或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車는 交叉路에서 U턴해 豆滿江邊 外郭道路로 들어섰다. 민철의 携帶電話가 다시 울렸다. 이番엔 車 안에서 電話를 받았다.

"어, 어, 어."

민철은 나직이 대꾸만 했다. 運轉士는 곧 閑寂한 갓길에 車를 세웠다. 始動과 헤드라이트도 껐다. 한겨울 國境의 밤은 寂寞했다. 어둠 속에서 男子 2名이 걸어오고 있었다.

"賢俊이 아버지, 둘 다 男子입니다. 南韓 가는 길에 좋겠습니다."

은희는 險한 길에 健壯한 사내들이 同行하는 것을 다행스러워했다.

나란히 오던 男子는 左右로 갈려 各各 뒷座席 쪽으로 다가왔다. 은희가 있는 오른쪽 門을 연 男子는 車에 엉덩이를 들이밀며 말했다.

"야, 이 개간나, 안으로 들어가라."

'이런 막 돼먹은 人間.' 은희는 생각했다. 명호 쪽에도 男子가 끼어 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車 앞쪽에 또 다른 男子 두 名이 나타났다. 은희는 '車는 좁은데 무슨 사람이 이리 많나' 하며 疑訝해했다. 그 瞬間 男子들은 은희와 명호의 팔을 꺾어 手匣을 채웠다. 은희는 車 門을 열려고 몸부림 쳤다. 밖에는 中國 公安 服裝을 한 男子가 한 名 더 와 있었다. 車 밖으로 끌려나와 江邊 쪽 絶壁으로 발길질을 當했다. 그때만 해도 은희는 돈을 얼마나 줘야 公安이 풀어줄지 생각했다.

눈밭에 나뒹구는 엄마 아빠를 보고 現준이가 울기 始作했다. 울음 사이로 北韓말이 들려왔다.

"야, 빨리 빨리 빠져라. 複雜하게 놀지 말고."

怪漢들에게 半말을 하는 민철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은희는 精神이 들었다.

<2火에 繼續>

신광영·손효주 記者 neo@donga.com

[豆滿江邊의 背信] <第2話>베일 벗은 背信者
[豆滿江邊의 背信] <第3話>아버지의 選擇
[豆滿江邊의 背信] <第4話>復讐를 위한 生存
[豆滿江邊의 背信] <第5話·끝>怨讐의 딸




#豆滿江邊의 背信 #脫北者 家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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