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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소평 死亡/趙紫陽 復權]年金 部分解除…復權說 나돌아|동아일보

[등소평 死亡/趙紫陽 復權]年金 部分解除…復權說 나돌아

  • 入力 1997年 2月 21日 07時 39分


[정성희記者] 鄧小平(등소평)의 死亡이 지난 89年 天安門事態로 逐出된 當時 中國의 實力者 趙紫陽(조자양·78) 全黨總書記의 復權으로 이어질까. 弔意 去就 問題는 單純히 한 個人의 政治的 將來에 局限되는 것이 아니라 等의 死亡을 契機로 中國 最高 指導層의 權力 改編이 있을 것인가와 天安門事態에 對한 歷史的 再評價가 내려질 것인가를 가늠하는 風向計가 되고 있다. 特히 等이 死亡하기 以前인 95年부터 條가 當局의 許容 아래 골프를 치고 制限的으로 旅行을 한 것이 드러나면서 등소평의 死亡說 만큼이나 弔意 高位職 復歸說은 끈質지게 흘러나왔다. 조는 92年 10月 共産黨 中央위 全體會議人 13期9中全會에서 「國家의 機密을 漏泄하고 黨을 분열시킨 過誤」를 犯했다는 判定을 받아 黨籍만 保有한 채 모든 職位를 박탈당하고 北京의 自宅에서 事實上 軟禁狀態에 있었다. 지난 89年 天安門 事態 當時 李鵬(이붕)과 江澤民(강택민) 等 强勁派가 武力 鎭壓을 主張했던 것과는 달리 當時 等의 왼팔로 黨總書記職을 맡고 있던 조자양은 軍動員과 戒嚴 宣布에 反對함으로써 穩健路線을 걸었다. 때문에 조자양은 天安門 事態以後 學生들의 示威를 背後操縱한 嫌疑로 當局의 調査를 받았으나 結局 「示威 背後 操縱」에 關해서는 無罪 判定을 받았고 그 以後 「國家 機密 漏泄」이라는 엉뚱한 罪目으로 年金生活을 해왔다. 조는 特히 『天安門廣場에서 學生들과 對話한 것은 一生 가운데 最高의 일이었으며 「올바른 決斷」이었다』고 固執을 굽히지 않아 등소평을 비롯한 權力 核心部로부터 外面을 받아왔다. 때문에 中國 當局은 골프나 內陸 旅行은 制限的으로 許容하면서도 記者接觸 禁止 外出制限 等 嚴格한 統制를 했으며 弔意 側近들을 次例로 除去해왔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弔意 去就가 關心을 끄는 것은 中國의 現指導層이 權力 鞏固化를 위해서는 어떤 形態로든 天安門 事態에 對한 歷史的 性格을 규정지어야 하는 負擔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毛澤東의 死亡後 등소평이 바로 復權한 것처럼 等의 死亡으로 조자양이 政治의 中心圈으로 復歸할 것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無理다. 高齡인 그의 나이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天安門事態때 그와 맞섰던 强勁派 강택민 이붕 및 喬石(교석) 等이 現執權層에 布陣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자양은 한때 등소평의 支持를 업고 줄기차게 改革을 主唱해왔으며 泗川(四川)省 第1書記職 在任時 農業改革을 成功的으로 이끌었던 데서 보듯 能力과 經綸을 갖춘 人物이어서 現指導部와의 大妥協을 통해 意外로 復權될 可能性도 없지 않다. 그러나 조자양의 復權與否는 結局 天安門 事態에 對한 現指導部의 歷史的 評價와 맞닿아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事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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