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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文化遺産 扶餘 羅城에 西나성은 애初에 없었을 可能性|東亞日報

世界文化遺産 扶餘 羅城에 西나성은 애初에 없었을 可能性

  • 東亞日報
  • 入力 2015年 10月 8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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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文化財團이 發掘한 結果 城壁 痕跡 代身 建物터가 나와
東쪽-北쪽의 나成果 달리 白馬江이 自然垓子로 기능한 듯
一角선 都城警戒 江 건너 擴張泄道

2012년 충남 부여 능산리사지 근처에서 발굴된 동나성 성벽. 내부를 흙으로 다져 올린 뒤 그 위에 돌을 쌓았다. 백제고도문화재단 제공
2012年 忠南 扶餘 능산리사지 近處에서 發掘된 동나性 城壁. 內部를 흙으로 다져 올린 뒤 그 위에 돌을 쌓았다. 百濟古都文化財團 提供
《 最近 유네스코 世界文化遺産에 登載된 扶餘 羅城(史跡 第58號)의 一部로 推定된 鉏羅城(西羅城)은 애初부터 存在하지 않았을 可能性을 보여 주는 考古學 證據가 發見됐다. 백제의 마지막 旺盛인 泗沘都城이 120年 동안 存續하면서 西羅城 代身 自然垓子(自然垓子)로 쓰인 白馬江 方面으로 都市가 擴張됐을 것이라는 分析이 提起된다. 》

文化財廳과 發掘 機關인 百濟古都文化財團에 따르면 올 6月 忠南 扶餘郡 구교리 丘陵地帶에서 벌인 鉏羅城 推定地 試掘調査에서 城壁의 痕跡이 發見되지 않았다. 그 代身 이곳으로부터 西쪽 白馬江 方向으로 50m假量 떨어진 곳에서 査察 講堂址로 보이는 遺構(遺構·옛 建築의 構造와 樣式을 엿볼 수 있는 痕跡)가 모습을 드러냈다.

심상육 百濟古都文化財團 責任硏究員은 “通商 査察이 나成果 隣接한 곳에 들어서지 않는다는 點을 考慮하면 推定地에 鉏羅城이 애初부터 存在하지 않았을 可能性이 높다”고 말했다. 外吏四肢와 王興寺址 等을 除外하고 定林寺址, 扶蘇山 廢寺地, 군수리 사지, 동남리 사지, 구아리 四肢 等은 모두 羅城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扶餘 나성은 敵의 侵攻에 對備해 王都 周邊을 에워싼 城郭으로 確認된 길이만 6.6km에 이른다. 高句麗의 攻勢에 밀려 急하게 築造된 熊進都城과 달리 泗沘都城은 오랜 期間 遷都를 計劃한 都市답게 百濟 歷史上 처음으로 羅城을 外郭에 둘렀다. 또 백제 初期 都邑인 漢城의 旺盛인 풍납土城과 몽촌토성이 平地에 있는 反面, 泗沘都城은 有事時를 對備한 扶蘇山城(扶蘇山城)을 王窮地 背後에 뒀다. 오랜 戰亂에 시달리면서 高句麗와 新羅, 黨의 侵入을 막기 위해 努力한 痕跡이다.

扶餘 羅城 가운데 北나成果 동나性 遺跡은 이미 發見됐지만, 서·남 나성은 아직까지 確認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日帝强占期부터 丘陵과 堤防을 中心으로 西羅城의 位置를 推定하곤 했다. 그러나 막상 땅을 파 보니 北·桐 나成果는 달리 西쪽에서는 羅城의 痕跡이 發見되지 않은 것이다.

學界에서는 泗沘都城의 西쪽을 휘돌아 나가는 白馬江이 一種의 自然垓子로 기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굳이 城壁을 쌓지 않아도 물길로 外敵의 卽刻的인 侵入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박순발 忠南大 敎授(考古學)는 ‘泗沘都城의 構造에 對하여’ 論文에서 “사비 천도 當時 最大의 假想敵은 高句麗였을 것이므로 都城 防備에 있어서 가장 注意를 기울인 方向은 亦是 東·北方이었을 것”이라며 “反面 南쪽과 西쪽은 白馬江이 自然楷字와 같은 役割을 해 주고 있기 때문에 羅城 建設이 時急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썼다.

羅城이 學者들의 關心을 끄는 것은 都邑의 境界를 明確히 보여 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능산리 사지 옆을 南北으로 지나가는 洞羅城이 泗沘都城의 東쪽 境界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鉏羅城이 없었다고 前提할 때 泗沘都城의 西쪽 境界는 어디인지가 疑問으로 남는다. 이 部分에서는 學者들마다 意見이 조금씩 엇갈린다.

△白馬江 건너便에 王興寺址와 外里死地, 大型 古墳群이 造成된 點 △新羅 宮闕인 月城(月城)도 外郭으로 漸次 擴大된 點 等을 考慮할 때 泗沘都城度 人口가 늘면서 白馬江 너머까지 都城의 境界가 擴張됐을 可能性이 있다는 意見이 나온다. 審 硏究員은 “사비 遷都 初期 白馬江 언저리에 木柵이 設置됐으나 江 건너로 都市가 擴張되면서 木柵 施設이 有名無實化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反面 白馬江 너머까지 都城의 西쪽 境界가 擴大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視角도 있다. 박순발 敎授는 “白馬江 건너便에 市街地가 形成된 痕跡이 없고 東쪽에 王陵 等 主要 古墳群이 集中된 것을 勘案하면 泗沘都城의 西쪽 境界는 白馬江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운 記者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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