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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士들의 寫眞사랑 이야기] <9>윤현수 韓國貯蓄銀行 會長|東亞日報 </9>

[名士들의 寫眞사랑 이야기] <9>윤현수 韓國貯蓄銀行 會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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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入力 2010年 10月 1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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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眞은 내 삶의 旅程을 드러내는 窓… 렌즈에 담는 재미에 푹”


《중앙대 敎養學部 講義室. 學生 60餘 名의 초롱한 視線을 한 몸에 받으며 한 中年敎授가 講義를 進行하고 있다. 講義 內容은 ‘寫眞의 祕密’. 寫眞에 果然 무슨 祕密이 存在할까.

“寫眞이란 프레임 內에 갇혀 있는 빛의 形象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바깥에 存在하는 삶의 마음이다”는 命題를 두고 秋史의 ‘세한도’, 들라크루아의 그림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스티글리츠의 1930年代 寫眞 等을 통해 ‘寫眞에 담긴 精神과 마음’을 다양하게 解釋해 보이는 사람. 이 授業의 講師는 바로 윤현수 韓國貯蓄銀行 會長(58)이다.

現在 中央大 大學院 寫眞學 碩士課程을 마치고 博士課程을 履修 中인 學生 身分이지만 寫眞學 講義를 맡게 된 것. 요즘 週 4日을 學校에서 보내며 저자, 寫眞作家, 메세나로서 旺盛한 寫眞 關聯 活動을 하는 그다. 事實 尹 會長은 經營 關聯 著書 ‘거미를 배워라’, ‘열린 經營이야기’ 等 4卷을 著述했으며 성균관대에서 오랫동안 經營學 兼任敎授를 지낸 經營學博士다.

現在는 韓國貯蓄銀行을 비롯해 金融 關聯 會社들을 運營하는 經營者지만 經營에 關한 業務는 專門經營人에게 委任하고, 요즈음 本業보다는 寫眞 關聯 活動에 注力하는 느낌이다. 業務와 關聯해서는 可及的 사람을 만나지 않지만 寫眞 이야기만은 빗장을 풀었다.》
―딴 분들과 달리 寫眞을 배워야겠다는 目的이 다른 느낌입니다.

“투우장에서 부딪치고 싸우며 상대가 도망갈 때까지 애를쓰는 한명이의 모습에서 제 삶을 보았습니다.” 한명이 연작, 2008년
“鬪牛場에서 부딪치고 싸우며 相對가 도망갈 때까지 애를쓰는 한名이의 모습에서 제 삶을 보았습니다.” 한名이 聯作, 2008年
“寫眞을 배우는 初期, 寫眞이 意味傳達 媒體로서 影響力 있고 效果的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只今까지 살아 온 제 삶의 이야기를 寫眞으로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짧은 時間에 많은 寫眞 關聯 일을 하셨습니다.

“寫眞을 始作한 지 이제 3年이 넘어갔네요. 그동안 ‘안단테 소스테누토’, ‘한名이’ 等 5卷의 寫眞集과 ‘寫眞의 祕密’, ‘寫眞價値의 祕密’ 2卷의 寫眞 關聯 書籍을 냈고 서울과 스페인에서 展示會도 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動力은 제 自身의 이야기를 寫眞으로 만드는 재미였고요. 삶을 寫眞으로 풀어가는 재미와 이를 통해 제 正體性을 確認하는 기쁨이 컸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3年은 짧은 時間이 아닐 수도 있죠.”

―오늘 講義室에도 카메라를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늘 가지고 다닌다고 봐야죠. 講義 때도 가지고 들어가니깐 저의 分身이나 다름없어요. 授業時間 中 學生들과 웃고 떠들며 서로 撮影을 놀이같이 하기도 합니다. 제가 主로 쓰는 카메라 機種은 캐논 EOS시리즈 中 1D Mark3이고, 렌즈는 캐논17-35廣角 줌렌즈에서부터 500mm 望遠렌즈까지 폭넓게 使用하는 便입니다.”

그는 아직도 젊은 사람들처럼 工夫에 목마르다. 새롭게 배우는 工夫는 그를 늘 들뜨게 한단다. “學校에 있으면 젊어지고 新天地에 온 느낌입니다. 寫眞 講義 뿐 아니라 美術, 演劇映畫, 音樂 쪽 講義도 聽講하는데 平素 關心 가졌던 分野에 對한 궁금症을 解消할 수 있어 正말 좋아요.”

―大部分의 사람들은 冊과 經驗으로 寫眞을 배웁니다.


“처음 寫眞을 接한 곳은 삼성경제연구소(SERI)지만 자꾸만 생기는 寫眞에 對한 궁금症을 쫓아 寫眞集團 일우, 몇 분의 寫眞專門家, 社會敎育院 等에서 배웠어요. 그러다가 結局은 좀 더 體系的인 學問의 길로 들어서 中央大 大學院 碩士를 거쳐 博士課程에까지 와 버렸어요. 배우면서 가르치고, 가르치면서 배우는 過程에 들어선 거죠. 틈나면 寫眞 關聯 冊도 쓰고요.”

이렇듯 寫眞의 길로 邁進한 尹 會長은 自己의 自傳的 모습이나 自身이 생각한 哲學的, 人文學的 素材들을 寫眞敵으로 어떻게 풀어냈을까? 궁금症을 풀고 그의 寫眞世界를 理解하기 위해선 ‘寫眞으로 풀어낸 實體’인 그의 寫眞集에서 解答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첫 番째 寫眞集 ‘안단테 소스테누토(일부러 더디게)’는 題目이 音樂的입니다.


“빠른 세상에서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일부러 더디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단테 소스테누토 작품 연작, 2008년
“빠른 世上에서 欲心을 버리고 천천히 일부러 더디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단테 소스테누토 作品 聯作, 2008年
“제 삶의 速度는 個人的으로 남들에 비해 宏壯히 빨랐다는 느낌입니다. 빠른 世上에서 欲心을 버리고 천천히 일부러 더디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유럽旅行을 갔을 때 그곳의 風景과 사람들에게서 삶의 餘裕를 보았습니다. 이 寫眞集은 그런 모습을 捕捉한 것이고 저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希望이 담겼습니다. 題目을 音樂的으로 表現한 것은 젊은 時節 제 人生의 한 軸에는 클래식 音樂이 자리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瞬間 잊고 살다 寫眞을 始作하면서 다시 椄木이 되었어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D960 第2樂章은 안단테 소스테누토로 연주하게 되어있는 部分인데 제 寫眞들과 雰圍氣가 비슷해 여기에서 題目을 따왔습니다.”

그는 音樂 愛好家로서 音樂的 知識 또한 寫眞 못지않아 보였다.

―‘소싸움’ 寫眞도 찍으셨습니다.

“제 故鄕인 晉州는 소싸움으로 有名한 고장입니다. 寫眞集 ‘한名이’는 싸움소의 이름이고 싸움소 한名이에 對한 記錄입니다. 鬪牛場에서 부딪치고 싸우며 相對가 도망갈 때까지 애를 쓰는 한名이의 모습에서 제 삶의 現 地點을 보았습니다. 한名이의 悽絶한 싸움은 바로 제 自身이 오버랩된 것이고 或은 우리 自身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는 工夫하는 것이 適性에 맞았고 工夫만 하며 살고 싶었다. 金融人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自身의 삶이 戰爭터로 내몰렸다는 意味로 自身이 바로 싸움소 ‘한名이’가 된 것이다. 이 寫眞集은 自身을 世上에 存在케 한 企業人이었던 아버지에게 期待를 저버리지 않고 熾烈한 삶을 營爲하는 自身의 모습을 投影해 보이는 寫眞作業이었다.

―네 番째 寫眞集 ‘곤지곤지’에 對한 얘기도 해주시죠.


“제 손금에서 어머니가 주신 삶의 비밀을 찾아본 것이지요.” 곤지곤지 연작, 2010년
“제 손금에서 어머니가 주신 삶의 祕密을 찾아본 것이지요.” 곤지곤지 聯作, 2010年
“곤지곤지(坤地坤地)는 단동(壇童)10勳 中 하나입니다. 檀君 以來 이 땅의 어머니들이 子息과 눈을 마주치며 재미있게 가르치던 놀이입니다. 뜻은 하늘의 理致를 깨닫거든 사람과 萬物이 棲息하는 땅(곤지)의 理致도 깨달으라는 것이죠. 方法은 오른쪽 집게손가락으로 왼쪽 손바닥을 찍는 行爲입니다. 아버지가 하늘이라면 땅은 곧 어머니입니다. 저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오른손 검指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왼손바닥을 寫眞 찍는 行爲’ 自體만으로도 바로 곤지곤지 놀이를 한 것이죠. 勿論 眞짜는 第 손금에서 어머니가 주신 삶의 祕密을 찾아내 寫眞集을 만든 것이고요.”

自身의 人生에서 기억나는 部分을 오려내 意味를 附與하고 寫眞的인 着想을 일궈내는 그만의 아이디어는 놀랍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이로써 그는 ‘한名이’로 아버지를, ‘곤지곤지’로 어머니를 기리는 自身의 이야기를 寫眞에 담게 됐다. 더불어 하늘과 땅의 理致를 저절로 깨달은 셈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寫眞集 中 1卷만 만든 寫眞集이 있다면서요.

“돌아가신 법정 스님을 찍은 寫眞集으로 題目은 ‘鳳仙花 스님’입니다. 제가 스님과의 因緣으로 가까이에서 寫眞을 찍을 機會가 많았어요. 이때 찍어 둔 寫眞을 모아 스님 死後에 스님을 기리는 意味로 寫眞集 1卷을 만들었고 이는 스님이 居處하시던 江原道 水流山房에 備置하였습니다. 여러 卷을 만드는 것은 스님의 維持를 毁損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寫眞集을 映像化했는데, 노영심 氏가 作曲하고 노래를 붙였지요.”

얼마 前 知人으로부터 韓國寫眞社에 登場하는 主要 作家들의 寫眞을 조금씩 모으는 분이 있다는 所聞을 들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尹 會長이 當事者가 아닌가 싶어 물었더니 正말 本人이 맞았다. “韓國史進士를 工夫하면서 새로이 照明 받고 우리가 歷史的으로 꼭 保存해야 할 寫眞들이 많다는 생각에…. 德分에 이형록 寫眞家 님과의 만남은 잊을 수 없는 經驗이 되었습니다.”

그는 最近 寫眞係 메세나로 떠올랐다. 처음엔 그의 性格처럼 드러내지 않는 메세나였다. 展示會가 열리면 直接 찾아가 作家와 얘기를 나누고 그 作品들을 理解하는 데 功을 들이다가 作品도 살짝 사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寫眞銀行과 갤러리를 만들고 水面 위로 나섰다.

―寫眞銀行은 무슨 일을 하나요.

“쑥스럽습니다. 寫眞銀行은 아직 初步 段階죠. 庶民金融業을 하다 보니 以前에는 主要 顧客層인 어르신들과 親密한 판소리와 大衆小說, 詩人들을 主로 支援해 왔습니다. 3年 前부터 寫眞을 包含하면서 財團 이름을 寫眞銀行으로 變更하게 되었습니다. 財團 出資 金額이 豐足하지 않지만, 可能한 定期的으로 支援하려 努力하고 있습니다.”

―寫眞銀行을 통해 蒐集된 寫眞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寫眞銀行이 買入한 寫眞作品은 저희 갤러리와 貯蓄銀行 營業場에 展示되는 水準입니다. 現在는 이 程度지만 많은 寫眞 컬렉션이 이뤄지면 다양한 活用方案이 생기겠죠.” 그는 釜山에 제비꽃이라는 이름의 寫眞갤러리를 만들었고 ‘제비꽃 寫眞假想’을 制定해 有能한 寫眞家에게 每年 施賞하고 있다.

―寫眞家입니까, 金融人입니까.


“寫眞은 이제 제게 單純히 趣味라기에는 어느 線을 넘은 듯하기도 하고…. 아무튼 寫眞은 視覺媒體라기보다는 제게 삶의 貴重함, 時間, 存在의 品性, 그리고 죽음 等을 깨우쳐 주는 思惟的 媒體라는 생각입니다. 이를 통해 저의 經驗과 삶에 기초한 새로운 寫眞世界를 밟아보고 싶습니다. 어찌 보면 寫眞 그 自體는 삶의 한 表象일 뿐이지요. 암튼 寫眞 때문에 저는 名銜이 두 個이고, 洋服 입는 날도 거의 없어요.”

그가 運營하는 韓國貯蓄銀行은 國內 屈指의 第2金融圈 銀行이다. 個人의 趣味에 關한 인터뷰지만 本業과 關聯된 일도 살짝 물었다.

―貯蓄銀行이 最近 政府로부터 많은 規制를 받은 것으로 압니다만….

“貯蓄銀行들이 規模도 커졌고 好況을 누리던 時期가 있었지만 只今은 더 內實을 다져야 할 時期라고 봅니다. 앞으로 2, 3年 동안 構造調整을 통해 거품을 걷어내고 더욱 堅實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制度 金融圈 안에서 零細商工人이나 個人, 庶民들이 믿고 좀 더 負擔 없이 다가설 수 있겠죠.”

尹 會長은 남의 寫眞은 論理井然하게 理論으로 풀고 自身의 寫眞은 나름의 哲學으로 包裝한다. 어찌 보면 學者다. 그의 寫眞作品은 自身의 寫眞集 ‘무언가’에서처럼 바닷물의 일렁임이나 ‘곤지곤지’처럼 왼손바닥만을 찍어 藝術로 승화시키면서 남들의 視線을 이끌어낸다. 그래선지 그의 寫眞은 딱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冷徹함이 묻어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남의 아프고 슬픈 얘기를 그냥 흘려듣지 못하는 착한 感性의 所有者였다. 尹 會長의 寫眞사랑은 冷徹해야 하는 金融人으로서 가질 수 있는 人生의 숨구멍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現在 그는 金融人과 寫眞家 사이의 境界線을 넘나들며 人生의 幅을 넓히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서영수 專門記者 ku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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