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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進化하는 韓屋의 再發見] <4>김영섭의 京畿 坡州 운정聖堂|東亞日報 </4>

[進化하는 韓屋의 再發見] <4>김영섭의 京畿 坡州 운정聖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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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入力 2010年 9月 15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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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燈불처럼… 마을을 비추는 聖所

공간을 구성한 양식으로 따진다면 경기 파주시 운정성당은 ‘한옥’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마당부터 안채까지 느릿느릿 걸으면서 경험하는 공간은 어느 한옥보다 고즈넉하다. 이 성당은 평생 한옥에서 살아온 건축가가 지어낸 처마와 대청 없는 한옥이다. 사진 제공 성균건축도시설계원
空間을 構成한 樣式으로 따진다면 京畿 파주시 雲井聖堂은 ‘韓屋’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마당부터 안채까지 느릿느릿 걸으면서 經驗하는 空間은 어느 韓屋보다 고즈넉하다. 이 聖堂은 平生 韓屋에서 살아온 建築家가 지어낸 처마와 大廳 없는 韓屋이다. 寫眞 提供 성균建築都市設計員
燈籠(燈籠) 닮은 建物.

지난달 28日 해질녘 찾아간 京畿 파주시 교하읍 다율리 雲井聖堂은 불 밝힌 燃燈처럼 東쪽에 免한 8m 너비의 마을 앞길을 은은히 비추고 있었다. 검정 기와를 차곡차곡 얹어 야트막히 올린 지붕에 슬쩍 추어올린 처마曲線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첫눈에 이 建物은 딱 ‘韓屋’이다. 翁이 엉긴 나무 기둥이나 기지개 켜듯 뒤틀린 널마루는 보이지 않아도, 鐵筋콘크리트 構造 안채와 鐵製 컨테이너박스로 만든 바깥채 사이 마당에는 韓屋 大廳에서 大門 사이를 걸으며 經驗하는 點이(漸移) 空間의 開放感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設計者인 김영섭 성균관대 建築都市設計員 敎授(60)는 “韓屋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추녀의 曲線이나 나무 기둥, 들보의 構造 같은 形態 以前에 先祖들이 空間을 통해서 自然을 對했던 ‘態度’에 있다”고 말했다. 自然에 맞서서 홀로 두드러지려 하기보다는 몸을 낮춰 어우러지려 애쓰면서 얻어낸 智慧가 쌓여 韓屋만의 특별한 힘을 이뤄냈다는 說明이다.

雲井聖堂 美事實에 앉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視線은 正面의 星團(聖壇)만을 向하지 않는다. 東쪽으로 널찍이 트인 통琉璃 窓을 넘어 스며든 마당의 햇볕이 美事實 空氣와 뒤얽혀 퍼지기 때문이다. 聖堂을 짓는 데 주어진 用地는 1931m². 計劃管理地域 建蔽率 40%를 適用해 남는 面積은 772m²뿐이었다. 普通 敎會처럼 星團 뒤와 出入口에만 트임을 냈다면 좁은 房에 갇힌 氣分으로 祈禱를 드려야 했을 것이다. 金 敎授는 안팎 境界를 明確히 갈라 나누기를 꺼렸던 韓屋 空間의 作法에서 이 建物의 全般的 構成 原理를 가져왔다.

“建物 밖 空間을 內部에서 最大限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韓屋 空間은 어둑한 듯 밝으며 좁은 듯 넓다. 障지門을 젖히면 담 너머 情景이 마당과 집 안으로 밀려들어와 空間을 擴張한다.”

검은色 기와는 本디 낮게 지은 2層 建物을 한層 더 낮아 보이도록 만든다. 붉은 기와로 채워 넣은 여느 聖堂 지붕과는 다르다. 金 敎授는 “色이야 어떻든 기와의 材料는 똑같은 흙이다. 우리 祖上들이 예쁘고 단단한 붉은 기와 굽는 方法을 몰라서 못 만들었겠느냐”고 했다.

햇살 품는 東쪽 통琉璃窓, 안채-바깥채 사이 마당, 韓屋의 開放感 그대로 살려

운정성당 미사실은 넉넉하지 못했던 용지 조건을 널찍한 채광창으로 해결했다. 밤마다 이 창은 가로등 대신 마을을 밝혔던 한옥 창호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사진 제공 성균건축도시설계원
雲井聖堂 美事實은 넉넉하지 못했던 用紙 條件을 널찍한 採光窓으로 解決했다. 밤마다 이 窓은 街路燈 代身 마을을 밝혔던 韓屋 창호와 같은 役割을 한다. 寫眞 提供 성균建築都市設計員
붉은色 기와는 小成 가마에서 最小限의 열기만 빠져나가게 하면서 3日 程度 約 1300度의 溫度를 維持해 만든다. 검은 기와는 햇볕에 初벌로 건조시킨 것을 가마에 넣어 800度 程度로 달궈졌을 즈음 門을 열어 熱氣를 빼낸다. 燒成 溫度를 일부러 낮추기 때문에 期間은 5日 程度로 더 오래 걸린다.

“검은 기와는 붉은 기와보다 쉽게 부스러진다. 密度가 낮아 雜草가 뿌리박고 자라기도 쉽다. 어느 쪽이 보기에 좋을지는 苦悶할 것도 없다. 하지만 어떤 기와가 그것으로 덮인 空間에 사는 사람을 더 잘 숨쉬게 할까. 검은 빛깔은 밝은 陽氣(陽氣)를 받아들여 품는 空間의 性格도 보여준다.”

建築을 始作할 때부터 金 敎授가 韓屋에 특별한 關心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22年 前 서울 瑞草區 아파트를 팔아 1928年에 지은 종로구 季冬 韓屋으로 移徙한 것이 契機가 됐다. 그때도 그저 故鄕인 全南 목포시 북교동 韓屋에서 自身이 얻었던 ‘마당 깊은 집에 對한 追憶’을 세 아이에게 膳賜해 주려 했을 뿐이다.

“傳統家屋에서 배울 것은 추녀-들보 等의 救助보다 自然과 어우러지는 智慧”

“空間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몸을 낮춰야 머리 찧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뻑뻑한 門을 억지로 당기면 더 열리지 않는다는 것, 壁으로 가려 보이지 않는 이웃 空間의 사람도 配慮해야 한다는 것, 때로 비움이 채움보다 아름답다는 것. 韓屋 德에 子息들 모두 別로 잘난 것 없지만 禮節 바른 사람으로 成長해 줬다.”

大邱地方法院 判事인 둘째 딸은 金 敎授에게 자주 “韓屋에서 살게 해줘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韓屋에서 큰 影響을 받은 것은 金 敎授의 子息들뿐이 아니다. 同年輩 다른 建築家들과 비슷하게 모더니즘을 追求하던 金 敎授 亦是 材料의 本性과 周邊 空間의 與件에 더 注目하게 됐다. 水原 華城(華城)의 壁體와 韓屋 大廳을 借用한 釜山 서대신동 住宅(1992年)을 起點으로 內部 空間의 疏通을 强調한 서울 삼청동 住宅(1997年), 뒷山 精子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삼은 忠南 靑陽聖堂(1999年) 等이 이어졌다.

“木材 韓屋은 튼튼하지 않다고 여기기 쉽지만 江原 江陵市 烏竹軒(烏竹軒) 같은 韓屋은 지은 지 450年을 넘겼다. 콘크리트 建物이 그렇게 오랜 歲月 維持될 수 있을까. 建物은 버틸지 몰라도 그 안의 사람이 버틸 수 없을 거다.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材料로 만든 空間, 그게 내가 韓屋으로부터 얻은 가르침이다.”

손택균 記者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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