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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演劇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동아일보

[리뷰]演劇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 入力 2009年 7月 13日 02時 59分


溫達說話의 悲劇的 再解釋
언제 만나도 새로운 ‘生命力’

“當身은 누굽니까? 그토록 오랜 歲月, 이 몸의 하늘이었으면서도 只今 그렇지 않다고 하시는 當身은 누굽니까?”

서울 명동예술극장 開館公演 시리즈 첫 篇으로 10日 開幕한 演劇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平康公主(서주희)가 죽은 溫達(김수현)에게 던지는 이 質問은 作品을 貫流하는 키워드다. 身分秩序가 뚜렷한 古代社會에서 바보 溫達과 울보 平康의 사랑은 어떻게 可能했을까. 舌禍 뒤에 감춰진 眞實은 무엇일까.

演劇은 이에 答하기 위해 溫達說話의 살집은 발라내고 뼈대에만 集中한다. 그 첫 番째는 公主인 平康과 平民인 溫達의 만남이 어떻게 可能했는가이다. 戱曲을 쓴 作家 최인훈 氏는 平康을 固執 센 울보로 設定한 것에 注目했다. 父王의 말에 抵抗하는 울보란 곧 그女가 當代 權力의 反抗兒였음을 象徵한다. 그런 그가 溫達과 結婚할 수 있었던 것은 宮中 暗鬪의 犧牲者로 밑바닥으로 떨어졌기에 可能하지 않았을까.

첫 番째 答을 求하자마자 演劇은 10年 뒤로 훌쩍 뛴다. 新羅軍과의 戰鬪에서 戰死한 溫達의 棺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說話에 注目하고 그 뒤에 숨겨진 眞實로 肉薄한다. 魂靈이 된 溫達과 살아남은 平康의 獨白을 통해 觀客은 溫達 죽음의 뒤에도 피비린내나는 宮中 暗鬪가 作用했을 것이란 섬뜩한 眞實을 만난다. 演劇은 거기서 고삐를 늦추지 않고 溫達을 잃은 뒤 平康 亦是 悲慘한 最後를 맞는다는 悲劇的 世界觀을 드러낸다.

프랑스의 人類學者인 르네 지라르는 “모든 神話는 集團暴力의 記憶을 감추고 있다”고 喝破했다. 崔 氏 亦是 溫達說話의 裏面에 감춰진 핏빛 眞實을 看破한다. 그러나 그는 眞實의 暴露에만 머물지 않고 再 神話化를 통해 現實의 隱蔽가 아니라 現實의 治癒로서 神話의 힘을 새롭게 提示한다.

序幕에 나오는 溫達의 꿈(까치의 報恩說話)과 마지막 場面의 눈발 속에서 溫達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溫達 어머니(박정자)는 그런 神話의 治癒力을 보여준다. 저승과 이승의 삶이 連結됐다는 韓國 傳統의 샤머니즘과 佛敎的 緣起(緣起) 說話가 結合한 이 場面을 통해 觀客은 藝術로 昇華한 溫達說話를 새롭게 만난다.

演出家 한태숙 氏는 超時間的인 이 作品에 同時代性의 옷을 입혔다. 그는 臺詞는 거의 바꾸지 않은 채 單純하면서도 세련된 舞臺演出과 豐盛한 地文의 解釋을 통해 現代的 生命力을 불어넣었다. 韓屋 構造를 代身한 검은色 大理石 雰圍氣의 舞臺演出, 피아노와 드럼의 不協和音을 活用한 現代的 背景音樂 等이 觀客의 虛를 찌른다. 含蓄的 大使와 濃密한 演技를 펼친 박정자 氏의 演技 못지않게 反抗期 가득한 十代 少女부터 溫達을 誘惑하는 肉感的 女人과 冷徹한 政略家로서 平岡公主의 다양한 內面을 肉化해낸 서주희 氏의 演技도 빼놓을 수 없다. 26日까지 서울 中區 鳴動 명동예술극장. 1644-2003

권재현 記者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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