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禁慾의 象徵? 와인-고기 즐기던 ‘人間 칼뱅’ 되살려|동아일보

禁慾의 象徵? 와인-고기 즐기던 ‘人間 칼뱅’ 되살려

  • 入力 2009年 7月 11日 02時 59分


10일 종교개혁가 장 칼뱅 탄생 500주년을 맞아 스위스 제네바 종교개혁의 벽 앞에서 야외 연극 ‘불 속의 제네바’가 공연되고 있다. 종교개혁의 벽 중앙 석상 중 왼쪽에서 두 번째가 칼뱅의 석상, 오른쪽이 장로회의 창시자 존 녹스의 석상이다. 제네바=송평인  기자
10日 宗敎改革家 章 칼뱅 誕生 500周年을 맞아 스위스 제네바 宗敎改革의 壁 앞에서 野外 演劇 ‘불 속의 제네바’가 공연되고 있다. 宗敎改革의 壁 中央 石像 中 왼쪽에서 두 番째가 칼뱅의 石像, 오른쪽이 長老會의 創始者 존 녹스의 石像이다. 제네바=송평인 記者
칼뱅 誕生 500周年
宗敎改革 産室 제네바 르포

宗敎改革家 章 칼뱅이 태어난 지 10日로 꼭 500年이 됐다. 스위스 제네바 ‘宗敎改革의 壁’ 席上에 갇힌 칼뱅이 요즘 每日 밤 살아서 걸어 나온다. ‘宗敎改革의 壁’ 앞에 臨時로 設置된 劇場에서 野外 演劇 ‘칼뱅-불속의 제네바’가 공연되기 때문이다. 舞臺는 1909年 칼뱅 誕生 400周年을 記念해 세워진 實際 宗敎改革의 壁. 長老敎의 始祖인 존 녹스 等 칼뱅의 충성스러운 歲 同志의 石像이 칼뱅의 石像을 護衛하고 있고 그 아래 한 無神論者 俳優가 ‘人間 칼뱅’을 되살려내기 위해 演技한다.

칼뱅의 이미지는 大體로 固執 세고 嚴格하다는 것이다. 기쁨과는 距離를 두고 산 사람, 專制的인 新正(神政)政治家의 이미지도 있다. 20世紀 가장 影響力 있는 칼뱅파 神學者 中 한 名으로 꼽히는 獨逸의 카를 바르트는 “우리 中 누구도 그곳(칼뱅이 統治하던 제네바)에서 살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演劇에서 觀客은 ‘矛盾 속의 人間 칼뱅’을 만난다. 칼뱅적 禁慾의 批判者들 앞에서 스위스의 ‘라 코트’山 화이트 와인을 拒絶하지 않는 칼뱅, 아내의 죽음 앞에서 깊은 슬픔을 吐露하는 칼뱅, 說敎者의 講壇을 끊임없이 낮추려 한 칼뱅, 學校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가르쳐야 한다고 主張하는 칼뱅. 그러나 그는 敎會에서 오르간을 뜯어내고 多聲(多聲)合唱을 單純提唱으로 바꾸고 結婚式의 댄스파티조차 禁止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제네바 宗敎改革의 中心地 상피에르 敎會. 過去 칼뱅이 說敎했던 이 敎會의 뱅상 슈미트 擔任牧師에게 칼뱅 誕生 500周年 行事 計劃을 물었다. 그로부터 “칼뱅이 그것을 願할까”라는 물음이 되돌아왔다. 슈미트 牧師는 “가톨릭은 成人 만들기에 熱中했지만 칼뱅은 그것을 모조리 없앴던 사람”이라며 “自身의 무덤조차 찾을 수 없게 만든 칼뱅을 또 하나의 成人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칼뱅 500周年은 400周年에서와 같은 記念物(宗敎改革의 壁)을 세우지 않았다. 信徒들의 大型 集會도 없다. 固定觀念을 넘어선 ‘眞짜(real) 칼뱅’을 發見하는 데 焦點을 두고 있다. 제네바 國際宗敎改革 博物館에서 열리는 ‘칼뱅의 삶에서의 하루’라는 展示도 그렇다. 展示는 每日 午前 4時에 일어나 午後 9時에 잠자리에 드는 칼뱅의 하루를 통해 그의 삶을 照明한다. 많은 사람이 칼뱅을 얘기하지만 정작 칼뱅을 읽는 사람은 드물다. 이곳에서는 칼뱅의 말을 살아있는 것처럼 들을 수 있다. “난 자주 고기 代身 다른 飮食을 擇한다. 그러나 個人的으로 날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健康이 좋지 않아 避하는 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다.” 칼뱅은 胃臟病으로 苦生했고 그 때문에 마르고 날카로워 보였지만 事實 고기 먹는 기쁨을 잘 알고 있었다.

칼뱅에 對한 誤解는 異端者로 몰린 세르베투스의 處刑에서 極에 達하고 그는 ‘제네바의 敎皇’이라고까지 불린다. 그러나 公演 展示가 모두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칼뱅은 그의 處刑을 願하지 않았고 좀 더 덜 殘忍한 刑罰로 끝나길 願했다.

유럽 大陸에서 칼뱅의 影響力은 英美圈만큼 크지 않다. 그러나 올해는 獨逸 스위스 네덜란드 外에 프랑스까지 加勢해 칼뱅에 關한 冊이 쏟아져 나왔다. 칼뱅은 프랑스 누아용에서 태어났고 파리 오를레앙 부르주에서 工夫했지만 프랑스에서 사랑받지 못했다. 이브 크뤼므나케르 리옹3大學 敎授는 “過去 프랑스와 獨逸의 사이가 나쁠 때 칼뱅주의者는 루터主義者와 思想的으로 가깝다는 理由로 ‘나쁜 프랑스人’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으나 只今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프랑스의 改新敎權뿐 아니라 가톨릭圈에서조차 칼뱅을 베네딕트나 프란체스코처럼 가톨릭을 改革하려 했던 人物로 새롭게 照明하고 있다고 傳했다.

:腸 칼뱅은:

509年 프랑스 누아용에서 태어났다. 가톨릭 聖職者가 되기 위해 파리 오를레앙 부르주 等地에서 工夫하다 宗敎改革 思想에 心醉해 마르틴 루터와 더불어 宗敎改革의 兩大 人物이 됐다. 스위스 제네바를 ‘宗敎改革의 모델 都市’로 만들려는 過程에서 그가 要求한 嚴格한 道德律 때문에 많은 反撥도 샀다.

제네바=송평인 特派員 pisong@donga.com


■ 칼뱅과 韓國 改新敎는

長老會 傳한 언더우드도 칼뱅파

章 칼뱅과 韓國은 존 녹스라는 스코틀랜드 牧師를 媒介로 連結된다. 칼뱅처럼 宗敎的 迫害를 避해 스위스의 제네바에 와 있던 존 녹스는 칼뱅에게 배우고 함께 일한 後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長老會를 設立했다. 스코틀랜드 長老會는 後에 美國으로 건너가 美國 長老會를 形成했고 그것이 다시 韓國에 傳해졌다.

韓國 最初의 長老敎會人 새門안敎會를 設立한 언더우드 牧師는 美國 뉴브런즈윅神學校에서 徹底한 칼뱅주의 敎育을 받은 宣敎師였다. 韓國은 只今 改新敎 信徒의 折半 以上이 長老敎人이다. 따라서 韓國 改新敎는 如前히 칼뱅주의의 强力한 影響力 아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6∼9日 제네바에서는 主로 英美圈 15個 칼뱅주의 神學校가 主催하는 國際會議가 열렸다. 이 國際會議는 美國 위스콘신대의 로버트 킹던 敎授와 弟子 윌리엄 매코미視 敎授가 主管했다. 킹던 敎授는 나이가 많아 參席하지 못하고 그 論文을 매코미視 敎授가 代身 읽었다. 會議에 參席한 필라델피아 韓人敎會 김재성 牧師에 따르면 킹던 敎授의 아버지는 日帝强占期 平壤에서 神社參拜를 끝까지 拒否한 매퀸 킹던(韓國名 윤산원) 崇實大 學長이었다. 오늘날 世界的인 칼뱅주의者들이 如前히 韓國과 密接한 關係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네바=송평인 特派員 pisong@donga.com

▼“政治權力 갖고있지 않았던 칼뱅, 獨裁者라 하기 어려워 ”▼

크뤼므나케르 佛리옹3大學 敎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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