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全北 군산시 옥도면 飛雁島 앞바다에서 名品 高麗靑瓷 450餘點이 發見됐다. 當時 言論 들은 이를 報道하면서 ‘靑瓷 인양’이라는 表現과 ‘聽者 水中 發掘’이란 表現을 섞어 使用했다. 關係者들로 마찬가지였다.
最近 考古學者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이에 關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오갔다. 바다에서 聽者를 건져올리는 것이 果然 發掘인가 인양인가 하는 點이었다.
辭典的 意味를 보면, 發掘(發掘)은 ‘땅 속이나 흙더미 等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일’이고 引揚(引揚)은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는 것’을 뜻한다.
한 考古學者는 “聽者를 收拾한 것은 嚴密히 말하면 發掘이 아니라 引揚”이라고 했다. 그는 “發掘은 땅 속에 묻혀 있는 것을 캐내는 行爲인데 이番 境遇는 海底 表面에 露出된 聽者를 건져올린 것이기 때문에 引揚이지 發掘이 아니다. 게다가 遺物 收拾에 參與한 사람들은 考古學者가 아니라 水中 다이버들이다. 그러니 發掘이라는 用語는 適合하지 않다”고 說明했다.
그러자 다른 考古學者가 “海底 表面을 바둑板 式으로 區劃해 遺物을 收拾한 것인데 그런 點에서 보면 地上에서의 發掘과 別 差異가 없는 것 아닌가”하면서 反論을 提示했다.
勿論 어떤 結論이 내려진 건 아니었다. 어찌보면 술坐席에서 考古學者들間에 오간 餘談일 수 있지만 嚴格한 用語 選擇이 얼마나 重要한 지, 그리고 그에 對해 우리가 얼마나 무심하게 살아왔는지를 일깨워 주는 時間이었다.
이광표記者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