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月 11日 우리金融持株 創立 21周年 記念式에는 大韓民國 金融社의 산證人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황영기, 박병원, 이팔성, 이순우 그리고 孫泰升. 우리금융그룹 前·現職 會長들이다. 이들은 우리금융의 ‘完全 民營化’를 祝賀하고 리딩 金融그룹으로 跳躍하겠다는 비전에 힘을 싣기 위해 자리를 함께 했다. 우리금융지주는 外換危機 直後 總 12兆8000億 원의 公的資金이 投入된 지 23年 만인 지난해 12月 完全 民營化의 宿願을 풀었다. 孫泰升 우리금융그룹 會長은 2019年 1月 再出帆한 우리금융지주의 初代 會長으로 完全 民營化를 이끌어냈다. 孫 會長은 創立 21周年 記念式에서 “우리나라 最初이자 最高의 金融그룹이었던 歷史的 自負心을 되찾아야 한다”며 “우리의 堂堂한 歷史에 自負心을 더해 創發的 革新을 이루겠다”는 抱負를 밝혔다. 2019年 再出帆한 우리金融持株 初代 會長손 會長은 1987年 한일은행에 入社해 35年間 金融 외길을 걸어온 金融 專門家다. 44歲에 最年少로 銀行 經營의 밑그림을 그리는 戰略企劃部長에 올라 4年을 지냈다. 美國 로스앤젤레스(LA) 支店長과 글로벌 副文章 等 海外 業務만 10年을 맡은 글로벌 專門家이기도 하다. 孫 會長은 “民營化 以後 우리금융지주가 再出犯할 當時 4個의 目標를 세웠는데 그中 3個를 完遂했고 나머지 1個도 現在 進行 中”이라고 말했다. 孫 會長의 4가지 目標는 支配構造 安定化, 企業價値 向上, 完全 民營化, 事業 포트폴리오 擴張이었다. 우리금융의 最大株主였던 예금보험공사는 2016年 韓國投資證券, 키움證券 等 7個 寡占株主에 우리金融持株 持分 29.7%를 賣却했다. 이를 契機로 우리금융은 寡占株主를 中心으로 理事會를 이끌어나가는 새로운 支配構造가 安着됐다. 지난해 우리금융은 歷代級 實績을 達成했고 이는 完全 民營化의 端初가 됐다. 지난해 우리금융의 純利益은 2兆5879億 원으로 前年 同期 對比 97.9% 늘었다. 4大 金融그룹 中 純利益 增加 幅이 가장 컸다. 特히 利子利益과 非利子利益을 더한 純營業收益은 8兆3440億 원으로 1年 前보다 22.3% 늘었다. 孫 會長이 그동안 注力해온 中小企業 中心 貸出과 低費用性 預金이 늘면서 收益 構造가 改善된 德分이다. 事業 포트폴리오 擴張은 現在 進行 中이다. 우리금융지주는 2019年 再出帆 첫해 國際資産信託, 東洋資産運用, ABL글로벌資産運用을 引受해 各各 우리資産信託, 우리資産運用, 우리글로벌資産運用으로 이름을 바꿨다. 2020年에는 亞洲캐피탈과 아주貯蓄銀行을 引受해 各各 우리金融캐피탈, 우리金融貯蓄銀行으로 使命을 變更했다. 올해 初엔 不實債券 投資 專門會社 ‘우리금융F&I’가 公式 出帆했다.손 회장은 “證券社와 保險社, 벤처캐피털 引受合倂(M&A)을 통해 2023年까지 非銀行部門 收益 比重을 30% 水準까지 擴大하겠다”며 “長期的으로 銀行 水準으로 收益을 創出할 수 있도록 收益 포트폴리오를 强化하겠다”고 强調했다. 自社株 買入으로 ‘責任 經營’ 앞장庶孫 會長은 國內 金融그룹 會長 中 가장 많은 自社株를 保有하고 있다. 20日 現在 孫 會長이 保有한 우리金融持株 株式은 總 11萬3127株로, 17日 宗家(1萬3650원) 基準 15億4418萬 원에 達한다. 孫 會長은 2017年 12月 우리銀行長에 就任한 以來 總 18次例에 걸쳐 自社株를 사들였다. 孫 會長은 “月給이나 賞與金이 들어오면 5000萬 원씩 꾸준히 우리社株를 買入하는 데 썼다”며 “앞으로도 自社株를 꾸준히 買入할 것”이라고 했다.최고경영자(CEO)의 自社株 買入은 ‘責任 經營’과 ‘自信感’의 信號로 읽힌다. 孫 會長은 株價가 下落하는 고비 때마다 自社株를 사들이며 經營 成果에 對한 自信感과 企業價値 提高에 對한 强力한 意志를 披瀝했다. 이 같은 行步는 우리금융의 良好한 實績과 맞물려 株價 上昇으로 이어졌다. 豫報가 殘餘 持分을 市場에 賣却할 수 있는 適正 株價를 만드는 데 決定的인 役割을 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11月 豫報가 우리金融持株 持分 9.3%를 民間에 賣却하면서 우리금융은 完全 民營化에 成功했다.손 會長은 職員들의 自社株 買入을 奬勵하며 職員들이 主人意識을 갖고 일할 수 있는 土臺를 마련했다. 앞서 우리금융지주와 우리銀行은 職員들이 自社株를 買入할 때 月 1回 最大 10萬 원을 支援해주는 ‘우리사주 支援制度’를 施行했다. 孫 會長은 2019年 會長 就任 以後 支援 限度를 最大 15萬 원으로 引上하고 支援 對象을 海外 勤務者로 擴大했다. 15日 現在 우리社株 支援制度로 豫度된 株式은 總 2078萬3915週에 이른다. 孫 會長은 “職員들과 食事하면 ‘會長님, 우리 會社 株價 좀 올려주세요’라는 말을 많이 듣게 돼 스스로 채찍질을 하게 된다”며 “우리社株組合이 保有한 株式 約 9%는 우리금융의 完全 民營化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우리社株組合은 지난해 11月 豫報가 持分을 賣却할 때 約 1%의 持分을 配定받아 우리금융의 最大株主(9.8 %)로 올라섰다.경청의 리더십으로 和合-跳躍 발板앞서 孫 會長은 우리은행이 혼란스러웠던 時期에 行長을 맡아 組織의 紀綱을 잡고 和合과 跳躍의 발板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는 2017年 12月 前任 行長이 갑작스럽게 辭任하면서 行長에 올랐다. 當時 우리은행의 前身인 韓日·商業銀行 間 文化 差異의 克服이 組織의 課題로 떠올랐다.손 會長의 座右銘은 ‘세이공청’(洗耳恭聽·귀를 씻고 恭遜하게 듣는다)이다. 孫 會長은 傾聽의 리더십을 통해 混亂했던 組織을 다잡았다. 銀行長 就任 後 4500㎞를 移動하며 全國 곳곳에 있는 營業店을 訪問해 任職員들과 疏通하고 團合을 呼訴했다.그는 行長 就任과 同時에 本部長級 昇進 人事를 하면서 候補群 選定 基準을 事前에 公開하고 外部機關을 連繫한 多面評價 시스템을 新設했다. 能力 中心의 透明한 人事 시스템을 導入한 것이다. 當時 孫 會長은 記者懇談會에서 “나는 色깔이 없는 사람”이라며 組織을 추스를 適任者임을 强調하기도 했다. 孫 會長은 “最近에는 MZ世代(밀레니얼+Z世代) 職員들과 少數로 모여 食事를 하는 等 世代 間 疏通을 많이 하려고 한다”며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擴散이 潛潛해지면 地主와 系列社 間 비슷한 職級과 業務를 맡은 職員들끼리 疏通을 하는 時間을 많이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海外 IR 參席…글로벌·ESG·디지털 革新 拍車손 會長은 銀行長 就任 以後 現在까지 홍콩, 싱가포르, 英國 런던, 日本 도쿄, 中東, 美國 等 總 10次例 海外 企業說明會(IR)에 直接 參席했다. 코로나19街 擴散된 以後로는 非對面 IR를 통해 海外 國富펀드, 글로벌資産 運用社들을 만났다. 最近엔 5月 싱가포르에서 IR를 開催해 直接 다녀왔고 이달 末 美洲 地域, 가을에는 홍콩, 유럽으로 IR를 떠난다.손 會長은 “最近 글로벌 投資者들이 우리금융의 實績이 成長한 것에 對해 높이 評價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과 金利 引上, 코로나19 被害를 입은 中小企業과 自營業者에 對한 金融支援이 9月 終了를 앞둔 點 等 여러 不確實性에 對備해 下半期(7¤12月)에는 健全性과 內實을 管理하는 데 重點을 두겠다”고 强調했다. 우리금융은 國內 金融그룹 中 가장 많은 24個國, 486個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構築하고 있다. 孫 會長은 글로벌 業務를 擔當하던 時節 우리은행의 인도네시아 소다라銀行 合倂, 미얀마 마이크로 파이낸스 인스티튜션(MFI)과 필리핀 貯蓄銀行 웰스뱅크 引受, 베트남 現地法人 設立, 印度 支店 開設 等을 直接 이끌었다. 孫 會長은 2021年을 ESG(環境, 社會, 支配構造) 元年으로 宣言하며 그룹 經營計劃에 ‘ESG 經營 强化’를 核心 戰略으로 包含시켰다. 以後 그룹社 CEO들을 委員으로 하는 ‘그룹ESG經營協議會’와 理事會 理事들로 構成된 ‘ESG經營委員會’도 新設하며 ESG 經營 體系를 鞏固히 했다. 最近엔 디지털 革新에 힘을 쏟고 있다. 孫 會長은 1月 創立記念辭에서 “디지털 플랫폼 企業으로 再創業한다는 覺悟로 모든 力量을 디지털 大轉換에 쏟아야 한다”고 强調했다. 孫 會長은 그룹 內 디지털革新委員會 委員長을 맡고 있다. 이와 關聯해 우리금융은 올 下半期 金融圈 最初로 MZ世代에 特化된 디지털 플랫폼을 선보일 計劃이다. 孫 會長은 “綜合金融社를 가진 우리금융의 長點을 살려 企業金融 分野에서도 디지털 轉換을 加速化하겠다”고 强調했다.HISTORY우리은행은 韓國 最初의 民族銀行으로 韓國 經濟의 産業化瓦家系의 成長에 寄與했다. 우리은행의 前身은 商業銀行과 한일은행이다. 商業銀行은 1899年 ‘金融 支援을 원활하게 해 經濟 發展에 寄與한다’는 高宗皇帝의 뜻에 따라 ‘大寒천일銀行’이라는 이름으로 設立됐다. 民族資本으로 設立된 우리나라 最初의 株式會社로 日帝强占期 獨立運動 資金을 管理하는 等 民族 自主性을 지켰다. 한일은행은 企業金融을 擔當한 朝鮮信託株式會社와 庶民·中小企業 金融 中心의 朝鮮中央무진株式會社의 두 뿌리로 始作했다. 두 會社는 光復 後 合倂한 뒤 韓國 企業의 成長에 마중물 役割을 했다. 外換危機로 상업·韓日銀行이 合倂하며 한빛은행(現 우리은행)李 誕生했다. 2001年엔 國內 最初의 金融持株會社인 우리금융지주가 設立됐다. 民營化 過程에서 2014年 地主 體制가 解體됐지만 2017年 寡占株主 方式의 賣却이 成功하면서 2019年 우리금융지주가 再出帆했다.링컨이 재밌다는 ‘재동’ 孫泰升 우리금융그룹 會長은 어릴 적부터 持久力과 集中力이 남달랐다. 그는 1969年 初等 4學年 때 동아일보가 開催한 自由敎養大會에서 初等部 古典 읽기 金메달을 受賞하며 本報(1969年 11月 27日 5面·寫眞)에 아래와 같이 ‘天才少年’으로 紹介됐다. “링컨이 재미있다는 재동(才童). 1等 하면 아빠가 飛行機 타고 오랬는데 電話가 안 돼 밤車로 내려간다는 孫泰升 軍은 ‘여우와 곰’, ‘링컨’李 재미난다는 才弄둥이. 會社員의 3男 中 2男으로 學級에서 늘 1等을 했다고 자랑하는 손 軍은 財産目錄 1號인 ‘世界兒童文學讀本’을 잃어 안타까운 판에 奬學金 五千원으로는 몽땅 冊을 사겠다고 싱글벙글. 하루 1~2時間의 讀書播多.” 성균관대 法學科를 卒業한 孫 會長은 서울대 大學院 法學科 碩士를 마치고 우리銀行에 入行해 同期들보다 나이가 2, 3歲 많다. 그는 同期의 맏兄으로서 不斷히 努力한 結果 44歲에 우리은행의 最年少 戰略企劃部長이 됐다. 戰略, 經營支援, 經濟調査, 成果評價, 新事業 等 7個 業務를 맡았다. 過重한 業務 속에서도 그의 일處理는 한 치의 誤差도 없던 것으로 定評이 났다. 孫 會長은 “每日 檢討해야 할 書類가 山더미처럼 쌓였는데 業務時間에는 챙겨볼 틈이 없다 보니 出退勤 地下鐵 안에서 書類 業務를 보게 됐다”며 “每日 地下鐵 4號線을 타고 出退勤하는 1時間 20分이 가장 集中이 잘되는 時間이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專門家’인 孫 會長은 海外 企業說明會(IR)에서 글로벌 投資家와 通譯 없이 意見을 나눌 程度로 英語 實力이 뛰어나다. 孫 會長은 高等學校 時節 英語 工夫의 定石으로 불리던 3代 書籍을 모두 涉獵했다. 高等 1學年 때는 城門綜合英語를 20番 讀破했다. 2學年 때는 도쿄대, 와세다대 等 日本 大學入試 本考査에 出題된 英語 問題를 담은 ‘영문解釋 練習 1200題’를 工夫했다. 3學年 때는 ‘英語의 王都’를 마스터했다.손 會長은 ‘努力型 人材’로도 有名하다. 美國 뉴욕支店에서 課長으로 勤務할 當時 土曜日마다 大學 授業을 들으며 英語를 工夫해 會話 實力을 키웠다. 孫 會長은 “남들이 골프를 칠 때 英語 工夫를 하다 보니 3年 半 勤務를 마치고 韓國에 들어오기 前 歡送會에서 知人들과 골프를 쳤는데 100打를 깨지 못했다”고 回想했다. 孫 會長은 “美國 勤務 當時 TV 프로그램들은 聽覺 障礙人을 配慮하기 위해 畵面 아래 字幕을 띄웠는데, 듣기 實力을 키우려고 TV 아래 部分에 검은色 테이프를 붙여 字幕을 가리고 TV를 봤다”고 말했다. 出衆한 英語 實力을 바탕으로 孫 會長은 우리은행의 責任者 昇進 考試에서 英語 科目의 出題 委員을 맡기도 했다.손태승 우리금융그룹 會長 프로필1959年 光州 出生 / 1978年 전주고 卒業 / 1983年 성균관대 法學科 卒業 / 1986年 서울대 大學院 法學科 卒業 1987年 우리銀行 入行 / 2000年 핀란드 헬싱키대 經濟經營大學院 卒業 / 2003年 우리銀行 戰略企劃팀 部長 2006年 우리銀行 美國 로스앤젤레스(LA) 支店長 / 2010年 우리金融持株 常務 / 2012年 우리銀行 冠岳動作營業本部長 2014年 우리銀行 資金市場事業團 常務 / 2017年 우리銀行 글로벌部門長 / 2017~2018年 우리銀行長 2018~2020年 우리銀行長(兼 우리금융그룹 會長) / 2020~現在 우리금융그룹 會長강유현 記者 yh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