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 社會는 길고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다. 國民은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李 불러온 社會·經濟的 波長과 政治權의 各種 疑惑에 지쳐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쓴소리를 뱉고 바른길로 案內하는 知性(知性)李 사라진 탓은 아닐까. 그러던 次 이어령 前 文化部 長官(88) 側으로부터 連絡을 받았다. 健康 때문에 미루던 인터뷰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마음에 품은 생각을 整理해야 할 때를 기다렸는데 이제 東亞日報와 이야기할 時間이 됐다”고 했다.그를 만난 곳은 지난해 12月 22日 서울 종로구 平昌로 自宅 書齋. 낮이 가장 짧은 同志(冬至)라는 事實이 無色하게 北韓産 위로 쨍하게 뜬 해가 書齋 안 깊숙이 파고들었다. 긴 時間 癌 鬪病 中인 그의 肉身은 어느 때보다 야위어 있었다. 하지만 韓國語, 英語, 프랑스語, 라틴語, 日本語를 넘나드는 ‘言語術師’의 입담은 如前했다. 學問의 境界를 뛰어넘으며 創意的인 생각을 發見하는 르네상스人의 知性 亦是 반짝였다. 그는 2時間 동안 거침없이 젊은 世代의 絶望과 世代 葛藤에 對한 苦悶, 코로나19街 觸發한 現實에 對한 批判的인 생각을 펼쳐놓았다. 다음은 一問一答.》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書齋에서 내가 말하면 自動으로 文字로 變換되는 스마트폰 프로그램을 使用해 作業한다. 患者의 일과는 아픔에서 始作해서 아픔으로 끝난다고 하지만 난 時間이 없어 切迫하다. 어쩌면 來日 해를 보지 못한다 생각하니 글쓰기를 미루던 옛 習慣이 사라졌다.” ―왜 그렇게 바쁘게 지내나. “이제는 내가 무슨 일만 벌이면 ‘마지막’이라는 單語가 붙는다. 마지막 講演, 마지막 인터뷰…. 나는 마지막이라는 單語를 第一 싫어한다. 마지막이 어디 있나. 왜 生日 케이크의 촛불을 끌까. 그 다음 해 生日에 촛불을 켜려고 끄는 거다. 난 平生 知的 好奇心으로 우물을 판 사람이다. 물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물이 궁금해서 판 것이다. 好奇心엔 끝이 없다. 只今 글 쓰는 것도 새로운 이야기의 始作이라고 생각한다.” ―70餘 年間 韓國 知性의 談論을 左之右之했다. 할 일이 더 남았을까. “‘韓國人 이야기’ ‘메멘토 모리’ 等 내가 契約해두고 아직 出刊 못 한 冊이 40卷에 達한다. 對話집이 20卷, 講演집이 20卷이다. 이 밖에도 인터뷰나 講演에서 말했지만 冊으로 옮기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 ―1955年 서울대 文理大學報에 發表한 ‘理想論’은 只今 읽어도 革新的이다. “當時 理想論은 3가지로 整理할 수 있다. 첫째, 以上(1910∼1937)은 作品에 都市를 담았다. 숭늉 마시던 시골 이야기가 아니라 커피 브랜드 MJB가 나오는 作品을 썼다. 둘째, 韓國말을 發展시켰다. 以上 以前의 作家들은 文章套의 말을 써왔다. 셋째, 自我를 發見했다. ‘마이 파더’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韓國 사람들의 마음에 ‘나’를 심어줬다. 難解하다고 여긴 以上을 나는 쉽게 풀어 ‘天才 李箱’으로 알렸다. 以上이 요즘말로 나한데 ‘한턱 쏴야’ 한다.(웃음)” ―1956年 ‘偶像의 破壞’ 批評文으로 文壇에 커다란 波紋을 일으켰는데…. “사람들은 내가 旣成 文壇을 破壞했다고 誤解한다. 偶像이 問題가 아니라 偶像 옆에 가서 떠받들고, 모시는 사람들이 問題라는 것이다. 作家라면 自身만의 목소리를 내라는 趣旨로 글을 썼다. (카르타고의 政治人) 한니발은 한쪽 눈은 성하고, 다른 눈은 멀었다. 한쪽에선 한니발을 성한 눈의 사내로, 다른 쪽에선 눈이 먼 사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 亦是 한쪽에서만 바라봤다. 제대로 評價하려면 正面에서 봐야 한다.” ―한쪽에서만 評價하는 건 韓國 社會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 아닌가. “맞다. 如前히 우리 社會는 눈이 멀거나, 성하거나 둘 中 하나라고 누군가를 判斷한다. 사람들이 偏見을 가지는 건 當然하다. 이를 바로잡는 役割을 知識人이 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知識人들은 政治, 經濟에 從屬됐다. 知識人이 제 役割을 못하니까 便 가르기와 陳永 싸움판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도 우리 社會는 이 前 長官의 말에 귀 기울여 왔다. “내가 어딘가에 屬하지 않은 ‘아웃사이더’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機會主義者는 많다. 進步인데 右클릭하고, 保守인데 左클릭하는 사람들, 人氣에 迎合해 政治 活動을 始作한 사람들 말이다. 政治 밖에서 政治를 客觀化하는 것이 知識人의 役割이다. 世俗的인 意味에서 나더러 社交的이고, 마당발이라는 評價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하고 行動할 때 集團보다 個人에 傍點을 두고 살아왔다. 남들과 달랐기 때문에 외톨이가 되었다. 나는 恒常 多數보다는 少數에 屬한 사람이었다.” ―只今 韓國 社會의 問題點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過去엔 2030世代가 社會의 未來로 尊重받았다. 物理的으로 苦生도 많이 했지만 社會的으론 貴한 待接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은 젊은이들을 키워야 未來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別로 없다. 韓國의 未來를 未來學者들에게 물어보지 마라. 只今 2030世代의 얼굴을 보면 韓國의 未來가 쓰여 있다. 2030世代가 絶望하는 原因을 把握해 除去해 줘야 한다. 멀리 보지 마라. 只今 내 옆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라.” ―또 어떤 問題에 注目하고 있나. “世代 葛藤이 甚하다. 어느 時代든 世代 葛藤은 있었지만 只今은 ‘創造的 緊張 關係’가 사라진 게 問題다. 왜 그런가. 젊은이들이 ‘表’의 對象으로 轉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政治人들의 포퓰리즘을 ‘表(票)퓰리즘’이라고 부르고 있다. 老年層은 젊은층의 票를 노리며 世代 葛藤을 일으키는 政治人들의 迎合主義에 깊은 傷處를 받는다. 내가 오래前부터 主張해온 것이 ‘8020’이라는 槪念이다. 80臺와 20臺가 共生해야 좋은 世上이 만들어진다.” ―코로나19를 두고도 우리 社會가 分裂됐다는 憂慮가 있다. “傳染病을 契機로 푸코가 말한 ‘바이오폴리틱스(Biopolitics)’, 卽 國家가 個人의 生命을 左之右之하는 生命政治 現象이 世界를 덮쳤다. 過去 獨裁者는 ‘나를 죽이는 사람’이었다. ‘내 말 안 들으면 너를 죽인다’는 式이다. 코로나19街 퍼진 社會에선 ‘내 말 들어야 너를 살려준다’는 式이다. 獨裁者를 避해선 逃亡갈 수라도 있지만, 只今은 逃亡가면 백신도 맞을 수 없다. 國民이 (國家 指導者를) 英雄이라고 떠받들게 된다. 只今의 國家 指導者는 백신을 配給해 生命을 살려주는 神과 같은 存在로 君臨할 수가 있다. 여기서 또 知識人이 할 일이 많다. 이런 걸 모르면 監視社會에서 벗어날 수 없다. 韓國에 限定해 말하는 게 아니다. 世界가, 人類 모두가 處한 狀況이다.” ―포스트 코로나 世上은 어떨까. “팬데믹 以前엔 모든 國家를 國內總生産(GDP) 數値로 判斷했다. 하지만 코로나19 以後엔 患者 數, 死亡者 數가 指標가 됐다. 物質 價値가 ‘生命 價値’로 바뀌고, 人類가 生命 價値를 直接 體驗하게 됐다. 어떤 文明이든 코로나19 앞에선 깡그리 崩壞됐다. 마지막까지 남는 건 生命 價値일 것이다. 마이너리티의 役割도 커질 것이다. 코로나19 백신을 開發한 (獨逸) 바이오엔테크는 터키 移民者 2歲 出身의 獨逸人 夫婦가 세운 會社다. 그들을 도와 mRNA 技術로 3年 걸리던 血淸劑 開發을 한 해 만에 成功한 科學者도 헝가리 難民 出身이다. 포스트 코로나를 이끄는 건 主流가 아니라 보리밭처럼 밟히고 올라온 마이너리티가 될 것이다.” (터키 移民者 2歲 出身 獨逸人 夫婦는 憂懼어 者힌과 외즐렘 튀레치다. 美國 製藥會社 화이자와 코로나19 백신을 함께 開發한 獨逸 바이오엔테크 企業을 세운 人物들이다. 夫婦는 1960年代 獨逸에서 일하려고 터키에서 건너온 移住 勞動者 家庭에서 태어나 獨逸에서 자란 移民 2歲 ‘흙수저’ 出身이다.) ―요즘 韓國 文化가 世界的으로 認定받는 現實을 어떻게 보나. “앞에서 말한 脈絡과 같다. 韓國을 보라. 中國과 日本이 못 하는 일을 K컬처가 해내고 있다. 코로나19 時代를 버티게 한 건 世界에서 脚光받은 韓國 文化다. 防彈少年團과 ‘오징어게임’이 世界를 움직였다. 이들과 테스兄(歌手 羅勳兒)李 답답한 世上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一種의) 백신을 놓아준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大統領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 가운데 제대로 된 文化 政策을 내놓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이어령 前 文化部 長官△1934年 忠南 아산시 溫陽 出生△서울대 國語國文學科 學事·碩士, 檀國大 文學博士△이화여대 國語國文學科 敎授△初代 文化部 長官△대한민국예술원 會員(文學評論)△金冠文化勳章 殊勳인터뷰=김희균 政策社會部長 foryou@donga.com 整理=이호재 記者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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