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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寧하세요. 안영배 記者입니다.

ojong@donga.com

取材分野

2024-04-06~2024-05-06
旅行 67%
文化 一般 17%
社會一般 10%
經濟一般 3%
美術 3%
  • 달을 戱弄하고 바람을 읊었더니 너럭바위까지 風流 철철

    《‘좌안동 禹咸陽’은 嶺南 선비文化를 말할 때 藥房의 甘草처럼 登場한다. 서울을 基準으로 왼쪽의 安東은 中央 權力에 進出한 선비들을 많이 輩出했고, 오른쪽의 涵養은 主로 在野에서 活動하는 氣槪 높은 선비들로 有名했다. 道學(道學)과 義理 思想으로 武裝한 재야 선비들은 絶對王政 體制에서도 꺾이는 法 없이 바른 목소리를 내왔다. 嶺南 士林(士林)의 本鄕임을 自負하는 涵養의 선비文化를 體驗하기 위해 行裝을 꾸렸다.》○정자마다 깃든 朝鮮 선비의 香氣慶南 咸陽에는 朝鮮時代 樓閣과 精子가 많이 남아 있다. 主로 서하면 花林洞 溪谷을 따라 集中的으로 들어서 있다. 누정(樓閣과 亭子)은 自然을 벗 삼아 修養하던 선비들의 休息處이자 만남의 廣場이다. 緋緞처럼 아름다운 溪谷이라는 뜻의 花林洞 溪谷이 ‘선비文化 探訪路’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背景이다. 남덕유산에서 發源한 衿川(南崗의 上流)을 따라 펼쳐지는 花林洞 溪谷, 卽 선비文化 探訪路는 2區間으로 나뉜다. 上流 쪽 거연정에서 始作해 농월정까지의 6km 區間(1區間)과 농월정에서 오리숲까지의 4.1km 區間(2區間)이다. 이 中 1區間은 精子가 集中的으로 配置돼 있어서 ‘程子 探訪路’로 불리기도 한다. 거연정에서부터 探訪을 始作했다. 거연정은 同知中樞府事를 지낸 展示書가 丙子胡亂 當時 淸 太宗에게 降伏하는 國恥를 當한 後 落鄕해 瑞山書院과 함께 지은 亭子다. 1640年頃 억새로 처음 지어졌다가 1872年 再建立된 것이라고 한다. 거연정은 울퉁불퉁한 天然 巖盤 위에 株礎石(柱礎石)과 累荷主(樓下柱)를 屈曲에 맞춰 깎아 絶妙하게 높이를 맞춘 形態를 하고 있다. 마치 精子와 巖盤이 한 몸처럼 붙어 있는 듯하다. 衿川 가운데에 터를 잡은 이 亭子는 玉빛 溪谷수가 내려다보이는 구름다리를 통해 連結되는데, 朝鮮 선비들의 極讚을 받은 名所이기도 하다. 燕巖 朴趾源 等은 거연정을 中心으로 바위와 담수와 소나무가 調和를 이룬 光景을 보고 感歎의 글을 남겼다. 거연정에서 군자정, 英歸正을 거쳐 선비文化 探訪路 里程標를 따라 쭉 걷다 보면 갑자기 엄청난 너럭바위 地帶를 만나게 된다. ‘해를 가리는 天幕처럼 넓고 큰 바위’를 뜻하는 遮日癌(遮日巖)과 水晶처럼 맑은 물을 담고 있는 玉女淡(玉女潭) 等이 凡常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는 곳이다. 바로 이 기운을 즐기기 위해 세운 亭子가 洞호정이다. 花林洞 溪谷의 精子 中 가장 크고 華麗한 面貌를 자랑하는 程子다. 壬辰倭亂 當時 宣祖의 義州 避亂길에서 王을 등에 업고 患亂을 避한 동호 장만리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1895年 그의 9貸損에 依해 세워진 것이다. 朝鮮 선비들은 玉女談에서 濯足(濯足: 발을 씻음)을 즐겼다고 한다. 濯足은 무더운 여름을 보내는 놀이이자 스스로를 反省하고 修養한다는 哲學的 意味도 담겨 있다. 술桶으로 使用됐다는 車일암 곳곳 움푹 팬 바위 웅덩이에서는 선비들의 豪放한 風流도 느껴진다. 때마침 洞호정에서 흘러나오는 國樂 演奏가 韻致를 더해 주었다. 韓服을 곱게 차려입은 國樂人 진막순 先生(韓國國樂協會 咸陽支部長)의 伽倻琴 演奏가 遮日癌에 새겨진 ‘金적암(琴笛岩·樂器를 연주하는 바위)’ ‘靈駕臺(詠歌臺·노래를 부르는 곳)’ 글씨와도 잘 어울린다. 伽倻琴 伴奏와 함께 불러보는 民謠 體驗은 이곳을 찾는 觀光客들로부터 뜨거운 呼應을 끄는 旅行 商品 中 하나다. 선비文化 探訪路 1區間 中 가장 下流에 있는 곳이 농월정(弄月亭)이다. ‘달을 戱弄한다’는 뜻을 지닌 이름처럼 농월정은 고요한 밤 물 위로 달빛이 흐르는 絶景을 鑑賞할 수 있는 곳이다. 농월정 바로 앞 넓게 펼쳐진 盤石 地帶를 ‘月燕巖’ 或은 ‘달바위’라고 부르는 理由다. 농월정은 이 고장 出身 지족당 박명부(1571∼1639)가 즐겨 찾던 곳이라고 한다. 달바위 한쪽에 ‘지족당(박명부)李 지팡이를 끌고 거닐던 곳’이라는 뜻의 ‘知足堂杖區之所’(지족당裝具支所)라는 漢文 글씨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그는 옳고 그름, 나아감과 물러감을 分明히 하는 선비였다. 그는 宣祖 때 壬辰倭亂이 發生하자 郭再祐, 김성일 麾下에서 群舞(軍務)를 도왔고, 光海君 때는 영창大君의 죽음과 仁穆大妃 幽閉에 對한 不當함을 直諫하다 罷免되기도 했다. 丙子胡亂을 맞아서는 三田渡의 屈辱을 當하게 되자 落鄕해 이곳에 書堂을 짓고 隱遁 生活을 했다. 現在 농월정은 人氣 TV 드라마 ‘還魂’의 撮影地로 소문난 以後 觀光客들이 즐겨 찾는 名所가 됐다. ○藍溪書院의 儒生 體驗 咸陽에는 王으로부터 懸板을 下賜받은 賜額書院이 13個나 된다. 安東의 11個보다 많은 數字다. 咸陽 書院 中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 일두 丁汝昌 先生(1450∼1504)을 모신 藍溪書院이다. 스스로를 한 마리의 좀벌레(일두·一두)라고 낮춘 丁汝昌은 東方 5絃(金宏弼, 鄭汝昌, 조광조, 李彦迪, 李滉)에 들 程度로 빼어난 人品과 學識을 지닌 君子였다. 花林洞 溪谷의 君子程度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亭子다. 2019年 世界文化遺産에 登載된 藍溪書院은 書院의 典型을 보여주는 곳으로 有名하다. 入口에서부터 次例로 諷詠루, 東齋·西齋, 講堂, 經板고, 祠堂으로 이어지는 建物 樣式은 以後 우리나라 大部分의 書院이 따르는 空間 配置로 活用됐다. 入口 樓閣인 諷詠壘의 2層 마루는 기운이 밴 明堂터인데, 서원 風景을 한눈에 즐길 수 있는 地點이기도 하다. 저 멀리 講堂(명성당)에서 一般人들을 相對로 祭禮와 禮節 體驗 行事가 進行되고 있었다. 祭禮服을 걸친 觀光客들이 祭禮 順序를 배운 後 서원 맨 뒤 祠堂으로 나아가 直接 祭를 올리는 모습이 자못 敬虔하게 보였다. 선비文化 體驗은 이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藍溪書院에서 至近距離에 있는 개평韓屋마을에서도 즐길 수 있다. 60餘 채의 크고 작은 故宅이 옹기종기 들어선 개평韓屋마을은 嶺南의 代表的인 선비촌 中 한 곳이다. 정여창古宅(일두古宅)을 비롯해 河東鄭氏高架, 五痰古宅, 풍천盧氏 大宗家, 老參判宅 等 名望家가 들어서 있다. 1570年代에 建築된 일두古宅은 솟을大門부터 凡常치 않다. 솟을大門 紅살門에는 임금이 네 名의 孝子와 한 名의 忠臣이 난 곳임을 認證해주는 5個의 旌閭扁額이 걸려 있다. 솟을大門을 지나치니 ㄱ字 模樣의 舍廊채가 눈에 들어온다. 바깥主人이 머무는 舍廊채의 추녀 밑으로는 ‘忠(衝) 孝(孝) 節(절) 義(의)’라는 4個의 漢字 글씨가 門짝 크기처럼 걸려 있는 것도 印象的이다. 젊은 時節 허백련 畫伯이 이곳 舍廊채에서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舍廊채 뒤便 안主人이 居處하는 안채 亦是 빼어난 기운을 가진 明堂터다. 特히 안채 中 한 放은 無條件 갓 시집온 女性이 머물도록 配慮했다고 한다. 일두古宅을 案內한 文化觀光解說師는 “이 房의 기운을 받아서 집안을 빛낼 子孫을 낳도록 한 措置”라고 說明했다. 일두古宅에 얽힌 여러 가지 事緣은 朝鮮時代 生活相을 硏究하는 데 좋은 資料가 되고 있다. 일두古宅은 TV 드라마 ‘토지’ ‘茶母’ ‘미스터 션샤인’ 撮影地여서 愛聽者들의 드라마 體驗 코스로도 有名하고, 古宅 바로 맞은便 ‘솔송週 文化館’에서는 일두故宅의 傳統酒인 솔송週(솔잎술) 體驗을 할 수 있다. 朝鮮 定宗의 孫女이자 일두 先生의 夫人이 創案한 솔송週는 530年 歷史를 가지고 있는데, 주조 祕法을 傳受받은 박흥선 名人이 이곳에서 直接 솔송週 빚기와 칵테일 만들기 프로그램을 進行하고 있다. 이 外에도 盧參判宅의 고추醬 만들기, 押花 만들기 等 다양한 體驗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咸陽郡 韓屋宿泊施設에서 3泊 4日間 머물며 旅行과 體驗을 同時에 즐기는 ‘咸陽 ON데이 프로그램’을 利用하면 된다. 글·寫眞 咸陽=안영배 記者·哲學博士 ojong@donga.com}

    • 202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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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次 産業革命 時代 맞은 中小企業協同組合, 60年 礎石 삼아 革新으로 ‘希望 100年’ 밝힌다

    中小企業協同組合이 우리 經濟에 뿌리내린 지도 60年이 훌쩍 넘었다. 大韓民國의 經濟 成長史에서 協同組合이라는 나이테가 그만큼 켜켜이 새겨져 있다. 1962年 中小企業協同組合中央會(現 中小企業中央會)가 設立되면서 36個 組合이 發起人으로 創立에 參與했다. 中小企業中央會 創立 前後로 設立된 後 現在까지 남아 있는 組合은 모두 60個다. 以後 協同組合은 우리 經濟의 主要 業種과 産業을 代表하는 中小企業團體로서 그 位相을 자랑하기도 했고, 한동안 어려운 時期를 거치면서도 持續的인 成長과 發展을 멈추지 않았다. 1960年代에는 業種別 協同組合 設立이 꾸준히 늘어나 175個에 이르렀다. 1970年代에 이르러 協同組合은 新規 設立이 鈍化하면서 定着 段階로 접어들었다. 이어 1980年代에는 中小企業이 量的·質的 側面에서 發展을 거듭했다. 團體隨意契約 等 中小企業 育成 施策이 制定돼 效果를 거두면서 協同組合도 量的·質的으로 暴發的으로 發展한 結果 組合수가 無慮 451個가 됐다. 1990年代에 이르러서는 韓國 經濟의 世界化가 加速化되면서 協同組合의 自律性과 共同事業이 擴大됐다. 2000年代에는 業種別 組合의 複數 設立 許容, 現實에 맞는 業務區域 調整 許容 等 많은 制度 改善이 이뤄졌다. 그러나 2007年 團體隨意契約 制度가 廢止됨에 따라 組合의 財政 與件이 惡化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10年代부터는 글로벌 金融危機 以後 兩極化 緩和 等 代案的 經濟 모델로서 協同組合에 對한 世界的인 關心이 高調됐다. 우리 政府도 協同組合을 政策支援 對象으로 選定하고 2016年부터 3年마다 協同組合 活性化 計劃을 樹立해 支援해오고 있다.최근 經濟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4次 産業革命 時代를 맞이하고 있다. 새 時代에 맞추어 協同組合은 中小企業 革新의 플랫폼으로서 自主的 成功 모델을 만들기 위해 또다시 挑戰을 準備하고 있다. 안영배 記者 ojong@donga.com}

    •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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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위에 스며든 千年 前 ‘K微笑’… 百濟人의 깔깔대는 웃음소리 들리는듯

    《갈수록 삶이 팍팍해지는 듯한 世上이다. 精神的 肉體的으로 疲困해진 心身을 달래고 싶을 때면 즐겨 찾는 곳이 있다. 서울에서 自動車로 2時間 남짓한 距離의 忠南 瑞山과 泰安이다. ‘백제의 微笑’로 불리는 百濟 時期 磨崖佛像의 그윽한 微笑에서 시름을 덜어내고, 西海岸에서 만나는 絶景들에서는 지친 肉體가 힐링됨을 느낄 수 있다.》○ ‘백제의 微笑’에서 ‘世界의 微笑’로 ‘백제의 微笑’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해안고속도로를 탔다. 서산시 운산면의 용현리 磨崖如來三尊像(瑞山磨崖불)은 午前에 佛像의 微笑를 제대로 鑑賞할 수 있다고 해서다. 果然 그랬다. 溪谷을 가로질러 비탈길을 타고 올라가니 커다란 自然 巖壁에 새겨진 3基의 佛像이 午前의 햇빛을 받아 隱隱한 微笑를 드러내고 있었다. 佛像은 햇빛의 方向, 바라보는 角度에 따라서 獨特한 表情과 微笑를 짓는다. 現在를 의미하는 如來佛像을 中心으로 왼쪽의 菩薩像과 오른쪽의 半跏思惟像은 各各 過去와 未來를 象徵한다고 하는데, 그 모습에서 천진스러운 菩薩들의 웃음소리도 묻어나는 듯했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便安하고 푸근해지는 느낌이다. 이곳을 管理하는 文化觀光解說師는 “瑞山磨崖불은 冬至날(올해는 12月 22日) 해가 뜨는 方向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날 東이 틀 때 如來佛上의 입술이 가장 붉게 빛나면서 아름다운 微笑를 드러낸다”고 말했다. 이는 百濟人들이 해가 가장 낮게 뜨는 날이자 밤이 가장 긴 날인 同志를 重要視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先祖들은 同志를 매우 神聖視했다. 冬至가 지나면서부터 낮이 漸次 길어지기 始作한다. 그러니 同志는 陰(陰·밤) 기운에 가려졌던 量(陽·낮) 기운이 비로소 回生해 새롭게 始作하는 날인 것이다. 冬至날을 작은 설날(亞歲·亞歲)로 부르는 理由다. 그래서 冬至에는 太陽(낮)을 象徵하는 붉은色 팥粥을 먹기도 한다. 얼굴이 복스럽게 통통한 느낌을 주는 瑞山磨崖불은 當時 百濟人들을 닮았다고 한다. 이 佛像은 百濟가 서울에서 忠淸道로 首都를 移轉한 뒤 造成한 것으로 推定되는데, 그 모습에서 언뜻 6世紀頃 백제 聖王(在位 523∼554年)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聖王은 首都를 扶餘로 옮기고 國號를 ‘南夫餘’로 고치면서 백제의 中興을 꿈꾸었던 人物이다. 그는 泰安半島를 통해 中國 南北朝(南北朝)時代 凉나라와 親善을 맺어 對中 西海 루트를 擴張하는 等 백제를 海上强國으로 거듭나게 했고, 日本에 佛敎를 傳播하는 等 백제 文化 隆盛에도 크게 寄與했다. 따라서 1400年 남짓 한결같은 ‘백제의 微笑’를 보여주는 瑞山磨崖불은 東아시아의 燦爛한 백제 文化를 代表하는 象徵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이 瑞山磨崖불에 對해 매우 ‘俗世的인’ 解釋을 하고 있는 點도 興味를 끈다. 1958年 世上에 드러나기 前까지 이 佛像은 山神靈으로 통했다. “바위 위에 환하게 웃는 山神靈님(가운데 釋迦如來上)李 새겨져 있는데, 오른쪽 작은마누라(彌勒半跏思惟像)가 다리 꼬고 앉아 손가락으로 볼을 찌르며 ‘용용 죽겠지’ 놀리니까 왼쪽 本마누라(제화갈라보살上)가 짱돌을 쥐고 집어던지려 하고 있슈!” 現地人들 사이에 傳해지는 이런 말을 듣고 佛像을 바라보면 愉快한 微笑가 피어오르며 고개가 끄덕거려지기도 한다. 이는 瑞山磨崖불이 K컬처의 諧謔的 感覺도 담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백제의 微笑’가 時代와 國境과 宗敎를 뛰어넘어 21世紀를 살아가는 世界人의 普遍的 微笑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을 것이다.○절로 힐링되는 瑞山 絶景 코스 서산시가 選定한 瑞山 9景 中 第2京仁 瑞山磨崖불을 鑑賞한 뒤 가을 山 風景을 즐기고 싶다면 제4경인 개심사(운산면 신창리)로 가볼 일이다. 瑞山磨崖불에서 自動車로 20分 距離에 있는 개심사는 그 初入에 넓게 펼쳐진 牧場 草芝부터가 異國的인 風景을 물씬 풍기는 곳이다. 봉긋봉긋한 野山의 草綠色 草地에서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음이 절로 느긋해진다. 21km²(藥 638萬 坪)에 達하는 이 草地는 ‘畜協 韓牛 改良事業所 農場’으로 불리고 있다. 1969年 政治人 김종필 氏에 依해 造成됐다가 以後 政治的 理由로 國家에 獻納된 곳이라고 한다. 목장길을 드라이브 코스로 삼아 돌다 보면 里程標를 따라 개심사로 進入하게 된다. 개심사는 백제의 마지막 王인 義慈王 14年(654年)에 惠鑑國師가 創建한 것으로 傳해지는 寺刹이다. 개심사 境內에는 寶物로 指定된 大雄殿을 비롯해 많은 文化財가 保存돼 있다. 現在의 建物들은 大雄殿 基壇만 백제時代 것이고, 나머지는 朝鮮 成宗 때 山불로 消失된 것을 重建한 것이다. 개심사는 規模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高雅한 절집 姿態로 名聲이 높다. 다듬지 않은 채로 굽어진 나무 기둥을 그대로 使用한 建物, 自然스럽게 굽이치는 階段 等이 절집의 고즈넉한 雰圍氣와 썩 어울린다. 좀체 보기 힘들다는 靑벚꽃과 王벚꽃, 배롱나무, 丹楓나무 等도 절집 인테리어로 한몫을 하는 곳이다. 瑞山에서 山과 바다를 한꺼번에 즐기고 싶다면 瑞山 第7京仁 黃金山 海邊(대산읍 毒串리 一圓)을 推薦한다. 海松과 野生花가 어우러진 숲길과 몽돌로 이루어진 海岸이 絶景을 이루는 곳이다. 黃金山은 海拔 156m로 그리 높지 않다. 西쪽이 바위 絶壁으로 西海와 接해 있고, 金을 캤다고 傳해지는 2個의 洞窟이 남아 있는 곳이다. 잘 다듬어진 登山路(藥 1km)를 利用해 30餘 分 山을 타고 넘어가면 莊嚴한 西海 바다가 펼쳐진다. 瑞山 사람들이 主로 여름에 海水浴을 즐기는 몽돌 海邊이다. 이곳에서는 바닷물에 빠진 코끼리도 볼 수 있다. 巨大한 코끼리가 긴 코를 바다에 들이밀고 바닷물을 마시기 위해 뒷다리를 접고 앉은 模樣새를 하고 있는 ‘코끼리바위’다. 코끼리바위를 만나기 爲해서는 물때를 잘 맞춰야 하므로 미리 確認하는 것은 必須다. ○泰安의 異國的 가을 情趣西山에 瑞山磨崖불이 있다면 泰安에는 泰安 동문리 마애삼존불立像(泰安磨崖佛)이 있다. 백화산(284m) 8部 稜線쯤에 자리한 泰安磨崖佛은 瑞山磨崖不過 함께 백제를 代表하는 國寶級 磨崖佛像이다. 山 頂上 附近에 있지만, 바로 隣近의 태을암까지 自動車로 오를 수 있어 찾아가기가 쉽다. 瑞山磨崖불보다 이른 時期의 作品으로 推定되는 泰安磨崖佛은 獨特한 構圖로 注目을 받는다. 巨大한 바위 東쪽 面에 龕室을 마련한 뒤 三尊佛을 새겨놓은 形態인데, 佛像 配置가 一般的인 三尊佛 構圖(中央 本尊佛과 左右 夾侍菩薩)와는 確然히 다르다. 泰安磨崖佛은 部處보다 아래 序列로 치는 菩薩이 가운데에 配置돼 있고, 左右로 如來佛이 補佐하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 그것도 中央의 菩薩은 1.8m로 크기가 작은 反面, 左右의 부처像은 2.4∼2.5m 크기로 큼직하게 새겨놓은 等 破格的인 構圖다. 이러한 도상은 全 世界에서 아직 發見된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그 통통한 얼굴에 잔잔한 ‘백제의 微笑’만큼은 瑞山磨崖不過 비슷하다. 泰安郡 南面의 淸算樹木園과 소원면의 海邊길(鮐背길)에서는 異國的인 가을 情趣를 滿喫할 수 있다. 淸算樹木園은 10萬 m² 敷地 規模에 造成한 樹木園인데, 요즘 西洋억새로 불리는 팜파스그래스 祝祭(11月 中旬까지)로 人氣를 끌고 있는 곳이다. 아르헨티나가 原産地인 팜파스그래스는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높이에 바람을 타고 하늘거리는 銀白色 꽃무리가 夢幻的인 雰圍氣를 자아낸다. 팜파스그래스는 9, 10月에 絶頂을 이루는데, 이곳은 웨딩 撮影 名所로도 입所聞이 났다. 리아스式 海岸으로 有名한 泰安의 海邊길 2코스(鮐背길)는 갯벌과 獨特한 海岸絶壁 等으로 절로 힐링이 된다. 글·寫眞 泰安/西山=안영배 記者·哲學 博士 ojong@donga.com}

    • 202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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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이 吐한 ‘불의 숨길’ 따라 洞窟 한바퀴… 1萬年의 神祕에 숨이 멎다

    《아홉 마리의 龍이 如意珠를 가지고 논다는 뜻의 ‘九龍農酒(九龍弄珠)’. 如意珠에 該當하는 알 名當 쪽으로 9個 山봉우리가 다투듯 둘러싼 形象을 描寫하는 風水 用語다. 實際로 濟州島에는 ‘알(새끼)오름’을 向해 9個 봉우리가 서 있는 地形이 있다. 濟州市 조천읍 선흘리의 去文오름이다. 漢拏山 白鹿潭보다 無慮 4倍나 큰 噴火口 가운데에 알오름이 치솟아 있는 去文오름은 ‘龍이 불을 吐해 놓은’ 듯한 火山體다. 이곳에서 흘러나온 鎔巖은 萬丈窟, 김녕굴 等 世界的인 天然記念物을 만들어 놓았다. 只今 濟州島에서는 去文오름에서 흘러나온 ‘鎔巖의 길’을 따라 祝祭 한마당이 벌어지고 있다.》 ○ ‘鎔巖의 길’을 따라 體驗하는 龍의 기운 去文오름(海拔 456.6m)은 濟州島의 오름 中 唯一하게 유네스코 世界自然遺産에 登載된 곳이다. ‘거문’이라는 말은 삼나무, 扁柏나무, 소나무 等 樹林이 鬱蒼해 거무스레한 빛깔을 띤 데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한便으론 신령스러운 空間(黔·檢)이라는 意味도 담겨 있는데, 그 뜻답게 아무 때나 出入할 수 없다. 訪問 時 온라인 事前 豫約을 거쳐야 하며, 週 1回(每週 火曜日) 自然 休息日制로 運營된다. 探訪客 數도 嚴格히 制限한다.(하루 450名) 出發 地點인 濟州世界自然遺産센터에서 경사진 길을 따라 50分 程度 걸으면 去文오름의 正常인 展望臺에 到着한다. 展望臺에서는 火山 爆發 때 생긴 噴火口 周圍를 둘러싼 봉우리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濟州의 360餘 個 오름 中 3分의 1이 이곳에서 보인다고 한다. 噴火口 가운데로는 볼록하게 솟아오른 작은 알오름이 보인다. 1萬 年 前 去文오름이 爆發한 뒤 다시 또 火山이 터져서 110m 程度의 오름이 噴火口에 생긴 이중화山體 構造다. 바로 이 알오름, 卽 如意珠에서부터 ‘鎔巖의 길’이 始作된다. 鎔巖은 너비 80∼150m, 깊이 15∼34m 規模로 去文오름의 北東쪽으로 긴 峽谷을 이루어 놓았다. 그리고 直線距離로 월정리 海岸가까지 約 14km 흘러가는 동안 地質學的 價値가 높은 火山 地形과 20餘 個의 크고 작은 鎔巖 洞窟을 탄생시켰다. 萬丈窟(7.4km), 김녕굴(700m), 벵뒤굴(4.5km), 용천洞窟(3.4km) 等 世界的인 名聲을 얻고 있는 洞窟들이 바로 去文오름의 ‘子息’들이다. 이를 ‘去文오름鎔巖洞窟系’라고 부른다. 只今 이 鎔巖의 길에서 다양한 祝祭가 벌어지고 있다. 代表的인 行事가 ‘2022 世界遺産祝電―濟州 火山섬과 鎔巖 洞窟’(10月 1∼16日). 濟州道 世界自然遺産마을保存會가 進行하는 이 프로그램은 코로나19로 인해 非對面으로 進行하다가 2年 만에 對面 行事로 돌아왔다. 主催 側이 마련한 여러 프로그램 中 ‘世界自然遺産 워킹투어―불의 숨길’이 一般人들에게 人氣가 높다. 去文오름용암동굴계의 生成 全 過程을 直接 걸으며 體驗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去文오름 噴火口에서 鎔巖이 噴出되기 始作한 ‘始原의 길’(1區間), 鎔巖이 흐르며 빚어낸 巨大 峽谷인 ‘鎔巖의 길’(2區間), 鎔巖이 굳어 가며 만들어낸 ‘洞窟의 길’(3區間), 鎔巖이 바다로 뻗어가며 生成된 ‘돌과 새 生命의 길’(4區間) 等 總 4個 코스(銃 26km)로 이뤄져 있다. 鎔巖을 通해 ‘龍의 기운’을 느껴볼 수 있는 특별한 體驗이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은 9月 初부터 事前 豫約(世界遺産祝電 濟州 홈페이지)을 받았는데, 이미 4000名 線에서 豫約이 完了됐을 程度로 呼應이 높았다. 다만 3區間의 平地 一部와 4區間인 ‘돌과 새 生命의 길’(萬丈窟 駐車場∼구좌읍 월정리 區間·6.9km)은 行使 期間 中 濟州를 訪問한 모든 이들도 參與할 수 있다. 行事 進行者인 강경모 總監督은 “鎔巖이 흘러가면서 峽谷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월정리 바다를 만나면서 식어가는 過程과 이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環境과 生活까지 確認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機會”라고 말했다. 이番 祝典에서는 一般人의 接近이 어려운 非公開 區間도 開放해 注目을 끌고 있다. △萬丈窟(非公開 區間)과 김녕굴, 벵뒤굴을 探險하는 ‘世界自然遺産 特別探險隊’ △萬丈窟 全 區間을 探査할 수 있는 ‘萬丈窟 全 區間 探險隊’(12名) △去文오름용암동굴계를 비롯해 漢拏山, 城山日出峰 一帶를 걸으며 體驗하는 ‘世界自然遺産 巡禮團’(30名·5泊 6日) 等은 平素 接近이 어려운 곳까지 프로그램에 담고 있다. 江 總監督은 “非公開 區間은 事前에 文化財廳의 許可를 받아야 하는 코스여서 志願者들 간 熾烈한 競爭을 거쳐야 했다”고 밝혔다.○신비한 모습 드러낸 非公開 洞窟 區間去文오름동굴계에서 가장 規模가 크고 雄壯한 萬丈窟(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3入口. 世界遺産祝電 言論 現場 브리핑에서 取材陣이 가장 먼저 訪問한 곳이다. ‘萬丈窟 全 區間 探險隊’에 選拔된 12名의 隊員만이 祝典 期間(15日) 中 探査할 수 있는 非公開 區間(1, 3區間) 中 一部다. 萬丈窟의 3入口는 地上에서 15m 程度 아래에 있어 來펠로 내려가야 한다. 解說을 맡은 김상수 運營丹粧은 “洞窟 3入口에 햇빛이 비치면 雄壯하면서도 신비로운 雰圍氣가 演出된다”고 말했다. 박쥐가 棲息하는 구멍과 排泄物들을 만나면서 進入한 非公開 區間 洞窟의 內部는 바닥과 壁面 곳곳에 鎔巖이 흘러간 痕跡이 鮮明했다. 새끼줄처럼 꼬이거나 거친 물결이 굽이치는 듯한 모습의 鎔巖 痕跡, 브이(V)字 峽谷처럼 길게 뻗어 있는 洞窟 形態 等을 통해 鎔巖流가 어디서 어느 方向으로 흘러갔는지를 確認할 수 있다고 한다. 安全上의 理由로 開放하지 않고 있던 김녕굴과 벵뒤굴度 祝典 期間 中 열린다. 김녕굴은 模樣이 꾸불꾸불하고 뱀과 關聯한 傳說을 간직하고 있어 ‘사굴’이라고도 불린다. 洞窟 入口에 바람을 타고 날아온 고운 모래가 덮여 있는 게 印象的이다. 조개껍데기와 珊瑚가루로 된 모래라고 한다. 벵뒤굴은 鎔巖이 뚫고 갈 곳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헤매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世界的으로 가장 複雜한 迷路型 洞窟로 손꼽힌다.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 있는 危險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特徵 때문에 濟州4·3事件 때 討伐隊를 避하려는 住民들이 이곳으로 숨어들기도 했다. 祝典 期間에는 濟州 마을 住民들과 함께 7個의 世界自然遺産마을을 直接 體驗해볼 수 있는 機會도 마련돼 있다. 特히 ‘덕천리 自然流産 스테이’(제주시 구좌읍 덕천리) 프로그램에서는 ‘某산이 蓮못’을 낀 넓은 잔디밭에서 進行하는 캠핑과 濟州의 傳統 떡으로 불리는 ‘기름떡’을 만드는 體驗을 할 수 있다. 양영선 덕천리 事務長은 “봄가을로 新婚夫婦들이 웨딩 撮影을 하러 찾아올 만큼 예쁜 마을”이라고 紹介했다. 김녕리 마을의 境遇 ‘濟州의 文化 海女 그리고 어머니’를 主題로 한 프로그램을 進行한다. 요트 體驗, ‘태왁’(海女가 物質을 할 때 가슴에 받쳐 몸을 뜨게 하는 뒤웅박) 만들기를 直接 해볼 수 있다. 海女 고영희 氏(72)는 “海女들이 直接 태왁 만드는 法을 가르쳐줄 뿐만 아니라 本人이 直接 만든 태왁을 가지고 바다에 들어가서 體驗도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外에도 祝典 期間 中 濟州의 自然 親和的 雰圍氣를 한 空間에서 만날 수 있는 ‘페스티벌 사이트’, 뮤직 페스티벌, 정크아트 等이 進行된다.글·사진 濟州=안영배 記者·哲學博士 ojong@donga.com}

    • 202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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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時間의 鐵橋 건너온 藝術列車, 노을 그리고 싶어 멈추었나

    《“어진 이(仁者)는 山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이(知者)는 물을 좋아한다”는 게 2500餘 年 前 孔子의 말이다. 地自가 좋아하는 물은 過去부터 物流와 交易 等 經濟 活動이 旺盛하게 펼쳐지는 生活 空間이었다.‘물은 財物을 主管한다’(水管財物)는 風水 論理, 그리고 지자를 利속이 바르고 빠른 사람으로 풀이하는 經濟的 觀點도 이런 背景과 함께한다. 全北의 穀倉地帶를 적시며 西海로 흘러가는 萬頃江 물길은 知者의 슬기와 豐饒의 기운을 壓縮的으로 담고 있는 곳이다. 물길 旅行에서 만나는 絶景은 덤이다.》○만경강에서 만난 傳說的 豫言全北 完州郡을 휘둘러 西海로 빠져나가는 萬頃江(藥 80km)은 發源地에서부터 旅行을 즐길 수 있는, 國內에서 몇 안 되는 물길 探査 코스다. 現在 發源地인 밤샘(동상면 사봉리 밤티마을)에서 非非情(삼례읍 後整理)까지 이어지는 44km 區間이 ‘完走 萬頃江길’이라는 이름으로 開發돼 있다. 本來 있던 山길과 마을길, 둑길과 自轉車길을 이은 道路다. 萬頃江의 살아 있는 生態系를 만날 수 있다는 點 때문에 지난해 韓國觀光公社로부터 ‘環境을 지키는 착한 발걸음’ 테마 推薦 觀光地로 選定되기도 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도 쉽게 發源地를 구경할 수 있다는 完州郡 文化觀光解說師의 말을 듣고 밤샘으로 向한다. 밤티마을에서 溪谷의 밤샘까지는 約 1.5km의 賃搗로 이어진다. 길이 急하게 경사지지 않아 어린이를 同伴한 뚜벅이 旅行도 좋고, 時間이 急하면 밤샘 앞까지 乘用車로도 갈 수 있다. 溪谷 끝部分에서 만난 밤샘은 조그만 웅덩이에 물이 고인 샘이다. 四季節 물이 마르지 않는 이곳은 샘 周邊을 돌로 쌓은 것을 除外하면 自然 그대로의 모습이다. 실처럼 가느다란 물줄기가 불고 불어서 큰 萬頃江을 이룬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程度다. 밤샘을 오가는 林道에서는 새소리와 물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고, 길가에 수줍게 핀 다양한 野生花들度 눈을 맑혀 준다. 밤샘에서 始作한 물길은 큰 人物이 난다는 巨人마을(동상면 신월리)을 지난 뒤 동상호와 大我號라는 큰 湖水를 이루게 된다. 둘 다 自然 湖水가 아니라 人間의 技術이 適用된 人工 貯水池다. 1966年에 完工된 동상호 周邊은 印度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그 代身 貯水池를 낀 아름다운 길은 自動車 드라이브 코스로 人氣가 높다. 동상호를 낀 마을 이름은 數萬里(水滿里)다. 只今이야 ‘물이 가득하다’는 뜻의 마을 이름이 語塞하지 않지만, 稀罕하게도 朝鮮時代부터 그렇게 불려 왔다. 不過 50餘 年 前만 해도 全國 8代 奧地에 들어갈 만큼 疊疊山中인 데다 개울 같은 萬頃江 물줄기만 흐르던 이곳이 왜 數萬里로 불리게 됐을까. 여기에는 事緣이 있다. 朝鮮 영·正祖 때의 文臣인 이서구(1754∼1825)가 全羅監司로 赴任해 이곳을 지나면서 “將次 물이 가득 찰 것”이라고 豫言했다고 한다. 全羅監司를 두 番이나 지낸 이서구는 油價(儒家) 系列의 道學者로 天文과 地理에 能通한 人物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數萬里 一帶에는 風水 名當들이 到處에 똬리를 틀고 있다. 마을 뒷山에 ‘非學歸巢形’(飛鶴歸巢形·날아가던 鶴이 둥지로 돌아오는 形象) 明堂이 있다고 해서 由來한 鶴洞마을, ‘갈마음受刑’(渴馬飮水形·목마른 말이 물을 들이켜는 形象) 明堂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陰數마을 等이 有名하다. 그中 白眉는 近處 대부산 頂上 쪽의 數萬里 磨崖石佛(全北道 有形文化財 第84號). 自然 巖壁에 새겨 놓은 巨大한 磨崖佛로, 新羅 末에서 高麗 初 作品으로 推定된다. 磨崖佛像은 1000年을 훨씬 넘겼으면서도 狀態가 良好한 便이다. 기운이 出衆한 明堂 터에 石像을 造成한 先人들의 眼目에 感歎詞가 절로 터져 나온다. 頂上을 向해 1∼2km 登攀의 수고로움은 이 터에서 기운을 누리는 것으로 充分히 報償을 받을 程度다. 萬頃江을 가두는 또 다른 貯水池인 臺雅號는 동상호와 달리 車에서 내려 빼어난 景觀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奇巖絶壁을 거느린 운암산과 優雅하고 부드러운 同性산이 兩옆으로 屛風처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湖水의 反映(反影)李 매우 아름답다. 이른 새벽의 물안개는 神仙世界를 演出하는 長官을 이룬다고 한다. 貯水池 안쪽으로는 全州 崔氏 墓域이 자리 잡고 있다. 마치 자라가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地形을 하고 있어 印象的인 곳이다. 이 墓域에 對한 案內板을 보면 風水 明堂이란 自負心이 넘쳐난다. 운암산 將軍峯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無學大師가 墓所를 잡아주면서 “자라穴(鰲穴)이라서 물에 잠길 때가 되면 子孫이 크게 繁昌할 것”이라고 豫言했고, 實際로 日帝强占期인 1922年 農業用水를 確保하기 위해 大我貯水池가 생기면서 現實化됐다는 內容이다. 大我貯水池에서 흘러나온 萬頃江의 滔滔한 물줄기는 完州郡 곳곳에서 멋진 江邊 風景을 演出하다가 삼례읍 非非情(飛飛亭)에서 絶頂을 이룬다. 非非情은 朝鮮 宣祖 때 無人 최영길이 지은 亭子인데, ‘비비落雁’(飛飛落雁·江邊 白沙場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에서 따온 말이다. 只今의 非非情은 1998年에 復元한 建物이다. 옛 선비들은 非秕政에 올라 白沙場을 오르내리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며 風流를 즐겼다고 한다. 그때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限內’라 불리는 三禮천이 悠悠히 흐르고 周邊으로 드넓은 湖南平野가 펼쳐지는 場面은 壯快한 느낌을 준다. 물길을 가로지르는 옛 萬頃江 鐵橋도 눈에 띈다. 日本이 湖南平野의 農産物을 搬出하기 위해 세운 다리다. 漢江鐵道에 이어 두 番째로 긴 나무로 만들어져 當時 關心을 모았던 다리다. 그러다 2011年 近處에 湖南線 鐵橋가 세워지면서 肺鐵橋가 됐다. 肺鐵橋 위에는 非非情藝術列車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새마을列車 客車를 改造해 레스토랑, 카페, 手工藝品 가게, 갤러리 等으로 活用하고 있다. 맨 마지막 客車 칸의 카페에서 바라보는 萬頃江의 노을은 그야말로 藝術 作品이다. ○BTS 追憶 旅行 프로그램 豐盛完州 가을맞이 旅行은 完州郡이 마련한 觀光 프로그램을 利用하는 것도 좋다. 먼저 完州郡은 孤山自然休養林에서 完州와일드&로컬푸드祝祭(9月 30日∼10月 2日)를 開催한다. 孤山自然休養林은 親環境 宿泊 施設, 카라반을 갖춘 오토캠핑場, 各種 體育施設, 體驗館 等 다양한 施設을 갖춘 데다 四季節 모두 아름다운 風景을 자랑하는 곳이다. 完州郡은 家族 休養地인 孤山自然休養林의 特徵을 살려 完州 ‘自然 親環境 體驗과 健康한 로컬푸드 맛 體驗’이라는 主題로 다양한 體驗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軍 關係者는 “와일드한 飮食과 볏집 놀이터, 메뚜기 잡기, 殊常한 놀이터 等 子女들과 함께 追憶을 떠올리게 하는 傳統 祝祭”라고 말했다. 조금은 不便할 수 있겠지만 親環境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캠핑 空間에서 家族과 함께 오붓한 時間을 보낼 수 있다고도 한다. 完州郡이 마련한 가을 시티투어 버스도 利用해 볼 만하다. 11月 19日까지 每週 土曜日 防彈少年團(BTS)의 畫報 主要 撮影地 中心으로 투어가 進行된다. 투어를 豫約한 後 코레일 列車(5∼10% 割引)를 利用해 益山驛에서 내려 三禮文化藝術村, 위봉산性, 오성韓屋마을 等을 둘러보는 코스다. 特히 防彈少年團이 5日間 머문 오성韓屋마을은 옛 모습 그대로의 傳統 家屋과 現代式 갤러리가 調和를 이뤄 觀光客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글·寫眞 完州=안영배 記者·哲學博士 ojong@donga.com}

    •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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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홉個의 祕境 아홉番의 歎聲… 神仙들 놀이터에 앉아 바둑 한판

    溪谷의 물줄기를 따라 펼쳐지는 아홉 곳의 빼어난 景致를 ‘구곡(九曲)’이라고 한다. 中國 宋나라 때 儒學者 走者가 푸젠(福建)省 우이산(무이산) 溪谷에서 노래한 ‘무이구곡’에서 따온 말이다. 朝鮮 性理學者들은 朱子의 度를 尊崇하는 意味로 우리나라 山中 溪谷에 110個가 넘는 九穀을 設定했다. 그中 화양구곡(화양동溪谷)으로 有名한 槐山郡에만 無慮 7個의 舊曲이 存在한다. ‘自然山水’인 溪谷이 구곡이란 人文學的 이름을 얻으면 ‘文化山水’로 變身하게 된다. 8月 下旬 늦무더위를 식힐 兼 槐山에서 ‘구곡 山水文化(山水文化)’를 즐겨본다.○ 山幕이옛길로 遁甲한 年下구곡槐山 구곡 文化의 中心點은 군자산(948m)이라고 할 수 있다. 君子山자락 南쪽 溪谷으로는 線維鳩曲과 화양구곡이 陰陽 짝처럼 펼쳐져 있고, 北東쪽으로는 쌍곡九穀이, 西쪽으로는 年下구곡(山幕이옛길)과 갈은구곡이 連달아 存在하기 때문이다. 구곡 山水文化의 主唱者인 이상주 前 중원대 敎授와 함께 군자산 西쪽 괴산호에서부터 踏査를 始作했다. 괴산호는 1957年 南漢江 支流인 達川에 槐山댐이 完工되면서 形成된 湖水다. 景致가 아름다운 데다 峽谷을 끼고 도는 山幕이옛길로 最近 有名해지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바로 이곳이 朝鮮 선비들이 心身을 修養하고 學問을 硏究하던 年下구곡(煙霞九曲)의 現場이었음을 아는 이는 드물다. 年下舊曲의 存在를 밝혀낸 李 前 敎授는 “槐山댐과 함께 水沒된 연하구曲은 노성도가 남긴 ‘연하구穀價’를 통해 實體가 確認됐다”고 말한다. 노성도는 이곳에서 流配 生活을 했던 先祖 노수신(朝鮮中期 文身)을 기리기 위해 九穀을 造成했다. 現在 남아 있는 곳은 第1曲 탑바위(塔癌·塔巖)와 第9曲 屛巖(屛巖)이다. 탑바위는 마치 塔을 쌓아놓은 듯 바위가 層層이 쌓여 있는 形態이고, 屛巖은 天障鳳 아래 絶壁이 屛風처럼 둘러쳐진 곳인데 바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비록 水沒 現場이지만 年下舊曲의 아름다운 絶景은 達川을 오가는 배를 利用하거나 山幕이옛길을 거닐면서 즐길 수 있다. 車돌배기船着場에서 遊覽船이나 보트를 利用하면 第5曲에서 제9곡까지 물굽이가 太極扇으로 휘돌아 흐르면서 자아내는 江邊 風景이 一品이다. 山幕이옛길은 2011年 槐山郡이 年下구곡 區間 一部를 開發해 지은 둘레길(칠성면 외사리 四五랑마을∼山幕이마을 約 4km 區間)이다. 李 前 敎授의 硏究에 依하면 ‘山幕이’는 山幕(山幕)에서 由來한 말이다. 이곳 山에서 粉靑沙器를 굽던 陶工들이 가마의 불을 管理하기 위해 지은 臨時 집, 卽 山幕에서 마을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다. 現在도 山幕이나루터에서 山기슭 쪽 도랑街에는 當時의 가마터 痕跡이 여러 곳 남아 있고 陶瓷器 破片 等도 쉽게 發見된다. 괴산호를 끼고 도는 山幕이옛길은 옛 情趣가 흠씬 묻어난다. 괴산호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人 年下協구름다리(167m)에서 自動車로 不過 10分 程度 距離에 갈론溪谷(칠성면 갈론리)이 있다. 갈은구곡(葛隱九曲)으로 불리는 이곳은 ‘칡뿌리를 캐먹으며 숨어 지내는 곳’이라는 이름처럼 외진 곳이어서 最近에야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됐다. 갈론마을 끝에서 溪谷 길을 따라 1km 程度 가면 오른쪽에 ‘갈은동문(葛隱洞門)’이라고 새겨진 바위 絶壁이 있다. 갈은구곡의 新鮮世上으로 들어가는 出入口라는 뜻이다. 갈은구곡은 溪谷 上流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次例로 구곡 이름이 붙여져 있다. 槐山 出身 전덕호(1844∼1922)가 만들었다는 이곳은 아홉 個의 바위 絶景마다 各各 다양한 書體의 한時가 새겨져 있는 點이 獨特하다. 구곡市價 바위에 빠짐없이 새겨진 唯一한 구곡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바람 앞의 燈불처럼 흔들리던 舊韓末 時代를 살아가던 朝鮮 선비가 以上世界(仙界)를 그리워하는 애잔한 情緖도 느낄 수 있다. 神仙이 내려온 강선대(降僊臺·第3曲), 神仙을 象徵하는 일곱 마리 鶴이 사는 칠학동천(七鶴洞天·第8曲), 神仙들이 바둑을 두는 바위인 선국암(仙局癌·第9曲) 等이 그렇다. 선국암에는 實際로 바둑版圖 새겨져 있다. 2015年 9月 선국암에서는 바둑으로 入神의 班列에 오른 김인과 유창혁의 對決이 벌어졌다. 두 立身은 두루마기를 걸치고 陰刻된 바둑板에서 神仙놀음을 했다. 한낮 무더위에 찾은 갈은구곡에서는 뒤늦게 避暑를 즐기는 觀光客들도 눈에 띄었다. 溪谷의 勝景과 맑은 물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갈은구곡을 紹介하는 案內板 하나도 없는 게 玉에 티라고나 할까. ○自動車로 즐기는 화양구곡과 線維鳩曲군자산 南쪽의 화양구곡과 線維鳩曲은 自動車를 利用해 九穀을 즐길 수 있다. 먼저 화양구곡은 朝鮮時代 性理學者인 尤庵 宋時烈(1607∼1689)李 한때 머물렀던 곳으로 有名하다. 2014年 全國의 구곡 中 最初로 名勝(國家指定文化財)으로 登錄된 화양구곡은 普通 駐車場 옆에 位置한 第1谷인 敬天壁을 出發點으로 해서 제9곡인 播遷까지의 3.1km 距離를 가리킨다. 구름이 맑게 비치는 玉빛 蓮못 같은 第2曲 運營談을 지나면 동그란 구멍이 무늬처럼 새겨진 제3곡 읍궁암, 第4曲 金사담이 나타나는데 이 一帶가 바로 宋時烈 遺跡地다. 金사담 건너便에는 宋時烈이 後學을 길렀다는 癌書齋가 韻致 있게 자리 잡고 있다. 隣近에 復元된 萬東廟와 華陽書院度 宋時烈과 關聯이 깊은 遺跡地다. 이곳이 朝鮮 性理學의 精神的 中心 役割을 한 때문인지 日帝强占期에 박아놓은 쇠말뚝이 唯獨 많이 發見됐다고 한다. 李 前 敎授는 “읍궁암 巖盤에서 5個, 金사담 巖盤에서 6個의 쇠말뚝이 나왔다”면서 “朝鮮 儒敎文化의 道脈을 이어가는 聖所(구곡)에다 正氣를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박은 것은 日帝의 容恕받지 못할 犯罪 行爲”라고 말했다. 溪谷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큰 바위가 疊疊이 쌓인 第5曲 瞻星臺, 구름을 찌를 듯 높다는 제6곡 凌雲臺가 나온다. 巖壁마다 구곡 이름을 새긴 各自(刻字)를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다. 이곳을 管理하는 俗離山國立公園事務所는 華陽洞 探訪支援센터에서 凌雲臺까지 親環境 無公害 電氣버스를 運行하고 있다. 버스는 15名이 搭乘할 수 있고, 運行 回數는 하루 8回로 無料다. 용이 누워 꿈틀거리는 모습을 닮았다는 제7곡 와룡암부터는 山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靑鶴이 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는 第8曲 학소대를 지나면 最終 目的地인 第9曲 播遷(或은 派곶)이 나온다. 播遷은 흰 바위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흐르는 물결이 龍의 비늘을 꿰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는 溪谷의 물 흐름이 ‘巴’ 形象으로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도 보인다. 播遷에는 數百 年 前부터 自身이 다녀갔음을 認證하는 이름과 벼슬名이 바위 곳곳에 새겨져 있다. 화양구곡이 宋時烈로 象徵된다면 線維鳩曲은 退溪 李滉과 깊은 關聯이 있다. 退溪는 泥濘이 設定한 宣諭8景의 詩를 지어주었다. 그 後 1700年代 老論系列 4名의 선비가 제1곡인 선유동門을 비롯해 敬天壁, 謔笑癌, 演壇로, 臥龍瀑布, 亂家對, 器局癌, 구암, 은선癌 等 宣諭9曲을 지었다고 한다. 溪谷 入口에 大規模 駐車場이 있고 乘用車를 利用해 溪谷 끝까지 올라갈 수 있다. 乘用車를 利用할 때는 구곡 길이 一方通行이므로 반드시 入口인 第1曲에서 제9곡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구곡 中間中間에 쉼터가 있어 잠깐씩 멈춰 絶景을 鑑賞할 수 있다. 글·寫眞 槐山=안영배 記者·哲學博士 ojong@donga.com}

    • 20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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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누 타고 歷史물길 헤치니… 800年 高麗藏經 佛心에 시름 스르르

    《陜川을 東西로 가로지르는 황강에서 늦더위를 보낸다. 아름다운 景致를 鑑賞하며 受賞 레저를 즐길 수도 있고, 江邊을 따라 우리 近現代史 자취를 만나는 興趣度 있다. 황강 邊에는 北岳山자락 實物 靑瓦臺를 68% 크기로 再現한 靑瓦臺세트場을 비롯해 近現代의 有名 建築物과 距離 等을 造成해 놓은 陜川映像테마파크가 있고, 陜川이 故鄕인 전두환 前 大統領의 生家도 있다. 마치 그의 傳記인 ‘황강에서 北岳까지’가 이곳에서 再現된 듯하다. 最近 600年 만에 一般에 公開된 海印寺 장경판전의 八萬大藏經도 6·25戰爭과 빨치산 때문에 消失될 뻔했던 現代史의 아픔을 간직한 現場이다.》 ○황강 名物 카누 타고 함벽루 鑑賞歷代 大統領들을 輩出한 生家는 代替로 觀光 名所가 된다. 昨年 11月 死亡한 전두환 前 大統領에 對한 否定的 評價와는 別個로 그가 태어난 陜川의 生家(율곡면 내천리) 亦是 사람들이 즐겨 訪問하는 곳이다. 좋은 터에서 큰 人物이 난다는 情緖 때문일 것이다. 황강 물줄기가 감싸주듯 휘둘러가는 地形에 있는 그의 生家는 조촐한 規模와는 달리 剛한 權力과 무(武) 에너지를 내뿜는 터로 評價받는다. 生家 마루에 앉아 있다 보니 强力한 天機(天氣)에 어질어질 取하는 느낌까지 받을 程度다. 少年 全斗煥이 즐겨 씨름을 했다는 황강 便 모래沙場을 起點으로 합천호 쪽으로의 물길은 受賞 레포츠를 즐기는 名所다. 먼저 陜川 文化財인 함벽루(高麗時代 樓閣) 隣近에는 鄭孃레포츠公園이 있다. 황강의 名物인 카누 體驗을 할 수 있는 곳이다. 安全敎育과 牌들 젓는 要領을 簡單히 익힌 後 카누를 타면 銀빛 白沙場과 잔잔한 江물, 그리고 함벽루가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風光을 만나게 된다. 황강카누體驗敎室을 運營하는 김일상 氏는 “水深이 얕고 잔잔해 子女를 둔 父母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더 다양한 受賞 레포츠를 즐기고 싶으면 황강 물길을 막아 人工的으로 만든 湖水인 합천호로 가면 된다. 이곳에서는 모터보트, 水上스키, 웨이크보드, 바나나보트, 제트스키, 하늘을 나는 플라이피시 等 짜릿한 受賞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7億9000萬 t의 貯水量을 자랑하는 합천호는 湖水를 둘러보는 둘레길이 아름답다. 草綠빛 山허리를 끼고서 約 40km에 걸쳐 湖畔을 돌아보는 드라이브 코스가 人氣를 끈다. 합천호는 이른 새벽 山안개와 물안개가 서로 섞이는 場面이 白眉로 꼽힌다. ○時空間을 超越한 時間旅行 名所‘水(水)려한 陜川’에서 물놀이를 즐긴 後 歷史 속으로 旅行을 떠나보자. 합천호 隣近의 陜川映像테마파크(용주면 가호리)는 ‘時間 旅行’을 즐기려는 이들이 찾는 國內 時代物 오픈 세트場이다. 테마파크 內에서는 各 時代의 情趣가 느껴지는 建物과 看板들이 눈길을 끈다. 1920年代 日帝强占期의 京城(서울) 距離 및 建物들에서부터 1980年代 서울의 거리 等이 精巧하게 再現돼 있다. 2004年 映畫 ‘太極旗 휘날리며’를 撮影하기 위해 만들어진 陜川映像테마파크는 映畫가 ‘大舶’을 터뜨리면서 함께 有名해졌다. 以後 ‘暗殺’ ‘써니’ ‘告知前’ ‘택시運轉士’ 等 수많은 映畫와 드라마가 이곳에서 撮影됐다. 한 地上波 放送에서 세트場 한쪽 區間을 賃借해 드라마를 撮影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陜川郡 關係者는 映畫 및 드라마 撮影用 세트場 賃貸 收入이 짭짤하다고 밝혔다. 陜川映像테마파크의 세트場은 作品 스토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게 特徵이다. 觀覽客들은 드라마나 映畫 속 名場面을 떠올리게 하는 建物과 小品 等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드라마에서 가게로 선보인 一部 建物들은 實際로 觀覽客들을 相對로 食飮料 等을 팔기도 한다. 當代의 衣裳을 빌려 입고 積極的으로 時間旅行을 즐기는 MZ世代들도 눈에 띄었다. 映像테마파크 뒤便의 庭園테마파크에는 實物 靑瓦臺를 再現해놓은 撮影세트場이 있다. 높은 地帶에 있기 때문에 映像테마파크에서 모노레일(5000원)을 搭乘해 올라가면 된다. 靑瓦臺가 登場하는 大部分의 映畫와 드라마가 이곳에서 撮影됐다. 大統領 執務室 椅子에 앉아보거나 靑瓦臺 代辯人 役割 놀이 等을 해볼 수 있다.○화마에도 八萬大藏經만 멀쩡한 理由 最近 海印寺는 꽁꽁 숨겨두었던 八萬大藏經을 電擊的으로 國民에게 公開했다. 事前 豫約을 통해 每週 土曜日과 日曜日, 20名 限定으로 海印寺 藏經板前 ‘八萬大藏經 巡禮’를 할 수 있다. 海印寺 홈페이지에서 月曜日에 豫約 接受를 하면 금세 마감될 程度로 反應이 뜨겁다. 八萬大藏經은 高麗 高宗 때 江華島에서 만들어졌다. 不審으로 몽골軍을 물리쳐 나라를 지키고자 한 高麗人들의 念願이 담긴 作品이다. 朝鮮王朝가 세워진 以後 只今의 海印寺로 옮겨졌다. 八萬大藏經과 經板을 保管하기 위해 造成된 建物이 藏經板殿이다. 裝飾이나 技巧가 보이지 않는 15世紀 木造 建物이지만, 八萬大藏經을 完璧하게 保存할 수 있는 科學的 建築 技術과 風水的 措置가 담겨 있는 곳이다. 먼저 海印寺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藏經板殿 내 法保全은 最高의 明堂 터로 꼽힌다. 建物 바닥은 60∼90cm 깊이로 숯, 소금, 黃土와 回로 다져놓았는데, 마치 시멘트를 깔아놓은 것처럼 단단한 모습이다. 이렇게 하면 장마철에 濕氣를 빨아들이는 等 適切한 濕度가 維持되고 벌레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建物 壁 위아래에 크기가 다른 窓틀을 만들어놓은 것도 特徵的이다. 西南向 構造의 建物 南쪽 壁은 아래쪽 窓틀이 위쪽 窓틀보다 더 큰 反面, 反對便 北쪽 壁은 거꾸로 돼 있다. 이는 建物 地形과 바람 方向을 計算해 밤낮으로 바깥바람이 建物 內部로 들어와 空氣를 잘 循環시키도록 한 것이다. 實際로 바람이 別로 없는 한낮의 땡볕 날씨임에도 南쪽 壁 窓틀을 통해 시원한 바람이 隨時로 불어왔다. 오늘날의 尖端 建築 技術로도 흉내 낼 수 없는 先祖들의 智慧가 놀라웠다. 살기나 凶한 기운을 막기 위해 지붕에 結界(結界) 裝置를 한 藏經板殿은 오래된 風水 誹謗도 간직하고 있다. 불기운이 드센 地形의 海印寺에서는 每年 소금 묻기 行事를 한다. 1年 中 陽氣가 가장 强한 端午날에 바닷물(소금)로 火氣를 누름으로써 火災 豫防을 祈願하는 行事다. 그런 願力 때문일까, 海印寺는 1695年부터 모두 7次例 火災를 겪었지만 藏經板殿은 單 한 番도 火魔(火魔) 被害를 입지 않았다. 藏經板殿은 6·25戰爭의 爆擊에서도 살아남았다. 當時 伽倻山 자락 海印寺는 빨치산의 主 活動舞臺였다. 我軍은 이 一帶를 焦土化시키려 爆擊 命令을 내렸다. 그러나 當時 空軍 操縱士 金榮煥 大領은 所重한 文化資産을 사라지게 할 수 없다고 判斷했다. 그는 命令을 어기고 爆擊 代身 機關銃으로 敵들을 掃蕩했다. 海印寺 앞에는 그를 기리는 記念碑가 세워져 있다. 事實 海印寺 住持(玄應)의 果敢한 決斷으로 公開하긴 했지만, 一般人이 八萬大藏經을 쉽게 만나기는 아직도 어렵다. 管理와 安全上의 理由로 建物 內部 寫眞 撮影도 嚴格히 禁止된다. 八萬大藏經에 對해 더 仔細히 알고 싶으면 査察을 둘러본 後 大藏經테마파크를 찾아가보길 推薦한다. 大藏經의 傳來와 結集, 經板의 製作 過程, 장경판전의 숨겨진 科學 等을 映像과 미니어처 等으로 살펴볼 수 있다. 大藏經테마파크에서 海印寺까지는 ‘海印寺 소리길’로 有名하다. 가을 丹楓이 떨어지면 ‘흐르는 물조차 붉다’고 해서 홍류洞이라 불리는 溪谷을 따라가는 6.2km(2時間) 區間이다. 溪谷을 따라 흐르는 물·바람·새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면 內面의 소리도 듣게 된다는 길이다. 여름철 힐링 冥想코스로 좋다.글·사진 陜川=안영배 記者·哲學 博士 ojong@donga.com}

    • 202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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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時間이 멈춘, 生命의 草綠絨緞… 靈魂마저 빠져나올 수 없다

    《慶南 昌寧에는 ‘메기가 하품만 해도 물이 넘쳐나는’ 우포늪과 ‘큰불이 나야 이듬해 豐年이 든다’는 俗說로 有名한 화왕산이 있다. 우포늪 물기운과 화왕산 불기운이 調和를 이뤄 釜谷溫泉 같은 溫泉水가 豐盛하다는 얘기도 傳해진다. 그리고 더 먼 時節에는 이곳에서 伽倻의 神祕한 歷史가 펼쳐졌는데….》○비화가야의 殉葬 少女 ‘송현이’길 雅淡한 키(153.5cm), 가느다란 허리(21.5인치), 동그스름하며 귀여운 얼굴의 少女. ‘송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少女는 16歲 나이에 主人과 함께 殉葬됐다가 1500餘 年이 지난 只今에서야 復活한 伽倻 女性이다. 昌寧 松峴洞古墳群에서 發掘된 人骨을 利用해 尖端技術로 復元해낸 송현이의 國籍은 ‘非火伽倻’. 옛날 佛事國(不斯國), 비사벌(比斯伐) 等으로 불리던 昌寧 地域의 伽倻 小國이다. ‘불’ 或은 ‘빛’을 聯想시키는 옛 이름답게 昌寧의 主山은 불기운이 旺盛한 화왕산(火旺山·756.6m)이다. 창녕읍에서 바라보면 산 頂上이 불꽃처럼 솟구친 모습이어서 ‘불뫼’라고도 불린다. 非火伽倻 支配層은 珠算(화왕산) 西쪽 여러 山등성이를 따라 200餘 基의 무덤을 造成했다. 교동(창녕읍 敎理) 쪽 山줄기엔 교동古墳軍이 자리 잡고 있고, 松峴洞(창녕읍 송현리) 쪽 山줄기를 따라서는 松峴洞古墳群이 있다. 校洞과 松峴洞古墳群(史跡 第341號)은 現在 다른 6個 地域 伽倻 古墳群과 더불어 유네스코 世界文化遺産 登載를 앞두고 있다. 송현이는 松峴洞古墳群 15號墳 主人公의 侍女로 推定된다. 잘 다듬어진 古墳 散策路를 따라 송현이의 ‘故鄕집’에 다다랐다. 松峴洞古墳群은 駱駝 等처럼 생긴 크고 작은 古墳들이 昌寧 市內 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들어선 形態다. 展望 포인트에 올라서니 봉긋한 무덤 輪廓線을 따라 창녕읍 市內가 한 幅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무덤이 亡者의 空間이라는 事實을 잊게 할 程度로 周邊 景觀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平地에 造成된 慶州 古墳들과는 다른 느낌과 雰圍氣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寫眞 撮影 名所인 이곳은 가야 사람들의 터 잡기 感覺을 體驗할 수 있는 現場이기도 하다. 가을 억새草原과 壬辰倭亂 當時 郭再祐 將軍이 지키던 酸性으로 有名한 화왕산 頂上을 오르지 않더라도 이곳 쉼터에 앉아 화왕산의 맑은 기운을 오롯이 느껴볼 수 있다. 松峴洞古墳群 咫尺에 있는 교동古墳軍도 伽倻人들의 獨特한 風水的 眼目이 도드라진 곳이다. 大型 무덤을 中心으로 中小型級 무덤들이 아기자기하게 들어선 모습인데, 王陵 規模의 큰 무덤은 大體로 名當 穴(穴)에 둥지를 틀고 있다. 교동古墳 바로 옆에 位置한 昌寧博物館에는 古墳 築造 過程을 보여주는 디오라마, 古墳에서 出土된 土器와 金工藝品 等 各種 遺物, 王陵級 무덤을 再現해 놓은 展示 空間 等이 있다. 昌寧郡에서는 昌寧博物館을 起點으로 송현이를 기리는 ‘송현이길’(藥 4km)까지 造成해 놓았다. 昌寧博物館∼松峴洞古墳∼松峴洞 磨崖如來坐像∼만옥정공원(昌寧客舍 및 眞興王척경비)∼昌寧石氷庫∼明德水邊公園∼昌寧鄕校∼교동古墳∼昌寧博物館의 循環 코스로 짜인 歷史 散策길인데 2時間 程度면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市內 中心에 石窟庵과 古墳들이 들어서 있는 게 마치 慶北 慶州와 비슷한 雰圍氣다. 이 때문에 昌寧을 ‘第2의 慶州’라고도 부른다. 무더위에 송현이길을 散策할 때는 明德水邊公園을 빼놓을 수 없다. 規模가 비록 크지 않지만 湖水 위를 걷는 덱, 湖水의 反映(反影), 멋스러운 카페 等 都心 속 오아시스 같은 風光 속에서 休息을 取할 수 있다.○ 昌寧 우포늪에서 만난 草綠 絨緞火山 爆發로 生成된 화왕산과 짝을 이루는 우포늪(2.505km²)은 1億4000萬 年 前에 생긴 國內 最大의 內陸 濕地이자 代表的인 철새 渡來地다. 우포늪은 화왕산에서 發源한 討平천이 洛東江으로 流入되기 前 쉬어가는 늪地帶다. 서울 光化門의 獬豸像이 冠岳山의 火氣를 막는 役割을 하듯이, 우포늪은 화왕산의 불기운을 制御하는 自然 防護壁이라는 風水說도 있다. 우포늪은 國際的으로도 그 重要性을 認定받아 1998年 람사르 協約에 따라 保護濕地로 登錄된 데 이어, 2018年에는 世界 最初로 람사르 濕地都市로 引證받았다. 우포늪은 여러 곳의 늪지를 합쳐 놓은 곳이다. 가장 큰 面積의 우포(疏伐)를 비롯해 木浦(나무벌), 사지포(모래벌), 쪽紙벌, 復元濕地인 山밖罰로 이루어져 있다. 各 늪지는 저마다 獨特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우포는 겨울 철새 渡來地로 有名하고, 사지포는 蓮꽃이 出衆하고, 木浦는 늪에 뿌리를 내린 버드나무가 韻致 있고, 쪽紙罰은 가시蓮꽃이 神祕한 姿態를 演出한다. 우포늪을 散策할 수 있는 둘레길度 잘 造成돼 있다. 우포늪生態館∼第1展望臺∼숲 探訪路 1길∼生態館으로 되돌아오는 1km(30分) 짧은 코스를 비롯해, 우포늪 生命길을 탐방하는 8.4km(3時間) 코스, 우포 출렁다리와 山밖罰까지 탐방하는 9.7km(3時間 30分) 코스가 있다. 普通은 男女老少 負擔 없이 우포늪을 즐길 수 있는 우포늪 生命길을 많이 찾는다. 報道로 뚜벅뚜벅 걷거나 自轉車를 利用해 쉽게 둘러볼 수도 있다. 여름 무더위에 찾은 우포늪은 흘린 땀을 充分히 補償해줄 만큼 멋지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그間 모습을 감추었던 마름, 자라풀, 생이가래, 개구리밥 等 水生植物들이 깨어나 늪 專制를 草綠 絨緞으로 깔아놓은 듯하다. 그 위로 새들이 悠悠히 날아다니는 모습도 韻致 있다. 運이 좋으면 國際的 保護種인 따오기를 만날 수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우포늪을 찾았다면 잠자리를 테마로 한 昆蟲體驗學習官印 우포 잠자리나라를 들러볼 일이다. 잠자리 羽化 場面, 水中에서의 잠자리 幼蟲의 먹이 活動 等을 觀察할 수 있다. 韓半島에는 總 11과 58屬 123種의 잠자리가 있는데, 우포늪에만 10과 41屬 73種의 잠자리가 棲息하고 있다고 한다. 觀覽 時間은 午前 10時부터 午後 5時까지이며, 午後 4時까지 入場해야 한다. 어른 8000원 어린이 5000원.○화왕산 불기운으로 데운 釜谷溫泉화왕산 불기운과 우포늪 및 洛東江의 물이 만나 생겼다는 부곡溫泉에서 旅行의 疲勞를 풀어보는 것도 意味가 있다. 釜谷溫泉은 國內 最高 溫度의 硫黃溫泉으로 1977年 國民觀光地로 指定된 後 1970, 80年代 最高 好況을 누렸던 溫泉 觀光地다. 2017年 國內 1號 워터파크 부곡하와이가 廢業한 以後에도 高品質의 溫泉水가 나와 如前히 盛業 中인 곳이다. 부곡溫泉의 起源에 對해서는 正確히 알려진 게 없다. ‘東國輿地勝覽’(靈山玄兆)에 “溫泉이 玄의 東南쪽 17里에 있더니 只今은 廢했다”라는 記錄이 있어서 오래前부터 溫泉이 存在했음을 推定할 수 있다. 地形이 가마솥처럼 생겼다고 해서 ‘部曲(釜谷)’이라 불린 마을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우물이 있었는데, 全國 各地에서 옴 患者와 癩病 患者 等 皮膚疾患者들이 찾아와 治療를 했다는 얘기도 傳해진다. 말하자면 화왕산의 旺盛한 불기운으로 가마솥(部曲)을 데우니 國內에서 가장 높은 水溫인 78度의 溫泉水가 펑펑 솟아나와 患者들을 治療했다는 스토리다. 只今의 釜谷溫泉은 고(故) 신현택 옹이 1972年 부곡면 거문리(元來 이름은 온정리·溫井里)에서 溫泉數(地下 63m)를 찾아낸 後 하루 6000t의 硫黃溫泉을 採收하면서부터다. 釜谷溫泉 觀光特區에는 호텔과 콘도, 골프場, 溫泉 噴水臺 等 溫泉을 基盤으로 한 綜合 休養 施設과 다양한 溫泉場이 들어서 있다. 特히 코로나19 以後 家族만이 오붓하게 즐길 수 있도록 家族湯을 갖춘 客室들이 觀光客들의 人氣를 끌고 있다. 글·寫眞 昌寧=안영배 記者·哲學博士 ojong@donga.com}

    • 202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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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漢陽 600年 時間旅行… 한눈에 보는 過去 榮辱… 한바퀴 돌면 未來도 보일까

    《漢陽(서울)都城을 하루 만에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을 ‘巡省(巡城)놀이’라고 한다. 北岳山과 仁王山을 비롯해 都心을 둘러싼 山등성이를 오르내리며 造成된 18.6km의 城壁을 하루에 完走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純性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믿음도 自然스레 생겨났다. 朝鮮의 科擧 應試者 사이에서는 純性을 해야 及第한다는 所聞이 번졌고, 서울 鍾路 商人들도 福을 받기 위해 純城에 挑戰했다. 日帝强占期에도 이 傳統은 維持됐다. 最近 大統領 執務室이 北岳山 자락에서 南山 자락의 용산으로 移轉해 오면서 서울都城 南山 區間(光熙門∼南大門) 코스가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南山 기운을 느껴보는 巡省놀이는 어떨까.》 ○ 서울 珠算(主山)李 바뀌었다? 漢陽을 象徵하는 山을 놓고서 여러 山이 다투었다. 1394年 朝鮮의 首都를 漢陽으로 定한 後 宮闕의 뒷山 卽, 珠算을 어디로 定할지를 두고 熾烈한 論爭이 벌어진 것이다. 鄭道傳은 北岳山을 主山으로 삼자고 主張했고, 太祖 李成桂의 往事(王師)인 無學은 仁王山을, 그리고 民間에서는 回龍顧祖(回龍顧祖) 名當 形局을 이룬 南山을 꼽았다는 얘기가 膾炙된다. 結局 鄭道傳의 意見이 採擇돼 北岳山이 漢陽의 主山으로 登極했다. 最近 北岳山의 位相이 흔들리고 있다. 大統領 執務室이 南山 자락으로 옮겨간 後부터다. 國家 最高 統治者가 漢陽都城을 벗어난 곳에서 執務室을 마련한 것도 漢陽 程度 628年 만에 처음 벌어진 일이다. 이에 따라 서울의 주산도 南山으로 變更해야 한다는 主張까지 나오고 있다. 南山의 變化된 位相을 느껴보기 위해 南山 區間(5.4km) 巡省 길을 밟아 보았다. 南山 區間은 崇禮門∼白凡廣場·安義士廣場∼漢陽都城遺跡展示館∼木覓山(南山)烽燧臺∼國立劇場∼반얀트리클럽&스파서울∼장충체육관∼光熙門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勿論 거꾸로 밟아도 된다. 崇禮門에서 出發해 南山公園임을 알리는 出入口 階段을 밟고 올라서니 廣場이 펼쳐진다. 白凡廣場과 安義士廣場이다. 廣場에 造成된 金九, 이시영, 安重根 等 愛國志士 銅像 앞에서 參拜한 後 城壁을 따라 더 올라가면 漢陽都城遺跡展示館이 눈에 들어온다. 2013∼2014年 發掘調査 때 드러난 都城 城壁 遺跡을 展示하는 野外 施設이다. 그 옆으로는 조선신궁 配電(拜殿) 터가 一部 復元돼 있고, 맨 끝段에는 日帝强占期에 지은 防空壕도 보인다. 日帝가 都城 城壁을 무너뜨리면서 參拜 施設을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現場이다. 日帝는 1920年 5月 3·1運動이 일어난 지 1年 만에 조선신궁을 着工해 1925年에 完工했다. 以後 朝鮮人들도 이곳에서 參拜하도록 强要했다. 韓國人들의 獨立과 抵抗 精神을 무너뜨리기 위한 術策이었다. 1945年 日帝 敗亡과 함께 撤去된 조선신궁은 南山에서도 터 기운이 剛한 곳 中 하나다. 南山의 天機(天氣)를 받은 조선신궁은 北쪽 正面으로 내려다보이는 朝鮮總督府(景福宮 터)와 함께 韓國人들을 精神的, 物理的으로 掌握하고자 했다. 光復 後 조선신궁 터에는 白凡廣場과 安重根記念館 等이 들어섰다. 獨立運動家의 精神으로 日帝의 侵略 기운을 지우기 위한 象徵的 措置로 解釋된다. ○南山으로 옮겨간 서울의 中心點烽燧臺와 N서울타워가 있는 南山 頂上으로 올라서니 八角亭에서 觀光客들이 休息을 取하며 앉아 있다. 朝鮮에서 가장 神聖한 空間 中 하나였던 國師堂이 있던 터로 推定되는 곳이다. 朝鮮 太祖 4年(1395年) 12月에 세워진 國師堂은 南山 山神을 목멱大王(木覓大王)으로 봉한 後 國家 次元에서 祭祀를 지내는 空間이었다. 500年 넘게 南山을 지키던 國師堂은 1925年 仁王山 기슭으로 옮겨간다. 日帝의 强壓에 依한 措置였다. 國師堂이 조선신궁을 굽어보는 位置에 있는 데다 터 기운마저 조선신궁 못지않으니 日帝의 눈에 곱게 보일 理 없었다. 只今도 八角亭 一帶는 明堂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땀 흘리며 正常을 찾은 이들에게 좋은 에너지로 ‘補償’을 해준다고나 할까. 八角亭 廣場에는 南山의 ‘威嚴’을 알려주는 表紙돌도 있다. 廣場 東쪽 끝 외진 곳에 있는 ‘서울의 中心點’ 表紙돌이다. 둥근 圓形의 表紙돌에는 25個 自治區가 明記돼 있다. 2010年 서울市가 科學的으로 調査한 結果 南山 頂上이 서울의 中心點임을 表示한 것이다. 行政 境界로 서울의 中心이 되는 南山은 大統領 執務室도 품고 있다. 南山의 한 줄기인 둔지산(65.5m) 자락에 大統領 執務室이 있다. 南山 南側 ‘소나무 숲 探訪路’ 隣近의 展望臺에서는 이런 地形 및 地勢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南山에서 불거져 나온 山줄기가 地下鐵 6號線 녹사평역 一帶를 거쳐 龍山公園 쪽으로 내려가면서 자그마한 野山을 이루는 模樣새다. 大統領 執務室을 비롯해 戰爭記念館, 國立博物館 等이 둔지산 자락에 둥지를 틀고 있다. 둔지산은 大韓帝國 時期 皇帝가 하늘에 祭祀를 지내던 南郊(南郊)가 設置됐던 곳이기도 하다. 그 外에도 原緞, 風雲雷雨壇, 靈星壇, 老人星壇 等 重要한 國家 儀禮가 이곳에서 치러졌다. 이런 理由로 南山에서 둔지산으로 이어지는 山줄기를 南山의 主脈(主脈)으로 보는 視角도 있다. 이처럼 신령스러운 기운이 가득한 남산은 高麗 때 引慶山(引慶山)으로 불렸다. 警査를 끌어들이는 山이라는 뜻이다. 大統領 執務室이 기운 歲饌 北岳山에서 부드러운 南山으로 移轉한 게 경사스러운 일이 되기를 期待한다.○조선 未來 ‘豫言’韓 光熙門南山 頂上에서 城壁을 따라 내려가면 奬忠壇 方向이다. 南山 東便에 該當하는 이 巡省 길은 太祖 時期에 지은 初聲(初城·처음 쌓은 城)李 原形 그대로 남아 있고, 南山을 象徵하는 소나무 숲이 우거져서 南山 區間 中 가장 아름다운 길로 通한다. 이 길에서는 우리나라 最初의 顯忠院이라고 할 수 있는 奬忠壇과 光熙門 等을 만나게 된다. 大韓帝國 時期인 1900年 殉國 軍人들을 기리기 위해 造成한 奬忠壇은 元來 國立劇場, 반얀트리호텔, 南山自由센터, 신라호텔까지 아우르는 廣範圍한 地域이었다. 그런데 日帝强占期에 이 祭享 空間이 植民統治를 치켜세우는 行事場으로 쓰이더니 及其也 市民들의 休息 空間인 公園으로 格下됐다. 1923年에는 朝鮮 侵略의 元兇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査察 박문사(博文寺)까지 세워졌다. 光復 後 박문사(迎賓館 터)는 撤去됐고, 公園에는 李儁, 柳寬順 烈士 銅像, 3·1運動 記念塔 等이 들어섰다. 코스의 마지막인 光熙門(光熙門)은 漢陽都城 네 個의 所聞 中 하나로 1396年에 創建된 建物이다. ‘屍口門(屍口門)’이란 別稱도 있다. 屍身을 都城 밖으로 運柩할 때 通過하던 門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光熙門 名稱과 關聯해 興味로운 讖言이 있다. 光熙門의 ‘光’은 光武(光武) 年號를 쓴 高宗을 가리키고, ‘喜’는 隆熙(隆熙) 年號를 쓴 順從을 의미한다는 것. 따라서 高宗과 純宗 臺에 이르러 屍口門 이름처럼 朝鮮이 死亡 宣告를 받는다는 거다. 이는 鄭道傳이 光熙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點에서 그럴싸하게 流布됐다. 鄭道傳은 겉으로는 儒學者였지만 周易과 力學 等에 밝았던 이로 알려졌다. 李成桂 執權 後 王權(王權)보다는 新券(臣權)을 꿈꾸던 그가 北岳山 아래 景福宮을 南向으로 틀어 王室 弱化를 꾀했다는 ‘陰謀說’도 이런 背景에서 나온 것이다. 北岳山 자락 景福宮은 朝鮮 내내 風水人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고, 靑瓦臺가 들어선 以後에도 口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南山 大統領 時代를 맞아 讖言이 사그라들길 바란다.글·사진 안영배 記者·哲學 博士 ojong@donga.com}

    • 2022-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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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나누며 모두가 잘사는 社會’

    新韓金融그룹이 實踐하고 있는 社會貢獻 事業이 注目받고 있다. 宸翰金融은 最近 한 ESG 調査專門機關의 評價 結果 4大 金融持株社 가운데 가장 높은 最優秀 等級(AA)을 받았다. 2019年부터 只今까지 ESG 最優秀 等級을 維持해오고 있다. 이는 社會貢獻 事業에 對한 조용병 會長의 剛한 意志와 實行力이 뒷받침됐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조 會長은 就任 直後인 2017年 末부터 金融圈 最大 規模의 ‘希望社會 프로젝트’를 始作했다. 希望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뜻의 ‘호프 투게더(Hope Together)’라는 슬로건 아래 先導的으로 社會貢獻 事業에 앞장서온 것이다. 이는 顧客과 社會의 價値를 함께 높임으로써 ‘未來를 함께하는 따뜻한 金融’이라는 그룹의 미션을 實現하기 위한 것이다. 實際로 宸翰金融이 그間 實踐해온 社會貢獻 事業은 廣幅 橫步라고 부를 만하다. ‘希望社會 프로젝트’의 元年인 2018年에는 新韓金融希望財團이 出帆해 그동안 그룹社가 個別的으로 推進해 오던 여러 社會貢獻 프로그램을 새롭게 組織化하는 等 統合 體系를 마련했다. 2019年에는 靑年 失業, 信用 危機 等 우리 社會가 當面한 問題를 解決하기 위해 新韓金融希望財團의 事業 領域을 靑年層으로 擴張했다. 2020年에는 持續可能發展目標(SDGs)를 通해 글로벌 基準에 맞는 有意味한 社會的 價値를 導出하는 事業을 進行하는 等 ‘希望社會 프로젝트’의 價値를 높였다. ‘希望社會 프로젝트’ 3個年 두 番째 시즌을 맞은 2021年부터는 ‘호프 투게더 S.F.G.’를 推進해 오고 있다. 이는 스타트업(Start up) 生態系 構築, 金融 脆弱階層(Financial Literacy) 支援 事業 强化, 地域社會 相生(Group of Community)을 爲한 努力 等을 뼈대로 하는 새로운 事業이다. 未來 짊어진 靑年·靑少年들을 위한 金融敎育조용병 會長은 特히 大韓民國의 未來인 靑年과 靑少年들을 위한 事業에 積極的이라는 게 그룹 關係者들의 얘기다. 조 會長은 未來 世代가 金融을 쉽게 理解하고 金融을 통해 自身의 未來를 設計하는 데 實質的으로 도움을 주는 게 重要하다고 强調해왔다. 이 같은 조 會長의 意志에 따라 2022年 1月 銀行, 카드, 金投, 라이프 等 系列社別로 進行하던 金融敎育을 그룹社 統合으로 運營하는 플랫폼인 ‘新韓이지(easy)’를 出帆했다. 新韓이지는 現在 어린이 金融體驗 敎室, 靑少年 進路 職業 體驗 敎育, 金融 疏外階層 生活金融敎育 等 年齡別·學歷別 맞춤 金融敎育 프로그램을 運營하고 있다. 앞으로도 金融詐欺 保護 等 最近 擡頭되고 있는 主要 이슈와 關聯해 金融消費者들이 알아야 할 必須 金融情報를 提供하는 金融體驗館 運營, 新韓金融의 主要 오프라인 金融敎育 申請 및 後記 登錄 等 多樣한 콘텐츠를 提供할 計劃이라고 한다. 宸翰金融은 靑年負債 問題 解決에도 積極 나서고 있다. ‘靑年負債 토털케어’ 프로젝트에 選拔된 靑年들을 對象으로 生活費 支援, 職業 力量 强化 支援金 等을 통해 負債 脫出을 돕고 있으며 한便으론 新韓金融의 글로벌 競爭力을 活用해 靑年들의 海外 求職活動을 돕고 있다. 特히 宸翰金融은 5年間 모두 1000餘 名의 글로벌 靑年 人材 養成을 目標로 國內外 硏修, 現地企業 實務 敎育, 先輩 企業人과의 멘토링 서비스 等을 支援하고 있다. 宸翰金融은 이와 같은 靑年 雇傭 成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月 雇傭勞動部로터 ‘2021年 일자리 創出 有功 褒賞’을 受賞했다. 社會脆弱階層에 希望의 빛을!초등학생 돌봄 共同育兒 나눔터人 ‘宸翰 꿈度담터’는 맞벌이 家庭으로부터 呼應이 높은 社會貢獻 事業으로 꼽힌다. ‘宸翰 꿈度담터’는 初等學生 子女들의 放課後 돌봄 空間을 改補修하는 事業으로 現在 123個所가 運營되고 있다. 新韓金融側은 “只今까지 累積 89萬4000名이 꿈도담터를 利用했으며 2023年까지 200個所가 開所될 豫定”이라고 밝혔다. 障礙靑年드림팀 事業 亦是 宸翰金融이 長期間 後援해온 社會貢獻 活動이다. 宸翰金融은 國內外의 有能한 障礙靑年 發掘과 訓鍊(海外 硏修, 就業 인턴십, 創業 敎育) 等을 實施해왔다. 障礙 靑年과 非障礙 靑年이 스스로 팀을 이뤄 海外 硏修를 통해 國際 社會로의 進出을 支援하거나 海外의 有能한 障礙 靑年들을 韓國으로 招請해 다양한 經驗을 提供해주는 等 障礙人 認識 改善 努力을 꾸준히 하고 있다. 宸翰金融은 지난 17年間 約 1000名의 障礙靑年들을 對象으로 約 97億 원을 支援했다. 新韓金融의 希望社會 프로젝트는 우리 社會의 어두운 그늘이 있는 곳에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스스로 힘으로는 回生 不可能한 家庭을 對象으로 經濟的 支援을 통해 自立 機會를 提供하는 것은 希望社會 프로젝트의 代表 事業 中 하나다. 危機 狀況에 놓인 脆弱階層 맞춤型 再起 支援, 虐待 被害를 입은 兒童들의 再起 支援, 社會的 義人에 對한 ‘希望英雄’ 褒賞 等의 프로그램이 運營되고 있다. 新韓金融 社會貢獻事業 關係者는 “希望社會 프로젝트를 통해 每年 300億 원씩 社會的 支援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함께 나누며 모두가 잘 사는 ‘따뜻한 希望社會’를 위한 프로젝트는 只今도 이어지고 있다.안영배 記者 ojong@donga.com}

    • 202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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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大韓帝國 天帝 지낸 터에 들어선 ‘大統領執務室’ [안영배의 都市와 風水]

    ○ 靑瓦臺를 外面하는 무정(無情)韓 北岳山서울의 象徵的인 中心軸이 바뀌는 初有의 일을 맞이했다. 北岳山자락 靑瓦臺 大統領執務室과 官邸가 용산의 南山자락으로 옮겨갔다. 漢陽 程度 630年만에 서울의 象徵的 珠算(主山)李 바뀌게 된 셈이다. 이와 關聯 景福宮·靑瓦臺와 용산의 立地 等을 集中 照明하는 學術 세미나가 注目을 받고 있다. 風水, 命理 等 東洋學의 多樣한 分野를 硏究하는 學術團體인 韓國風水命理哲學會는 ‘空間 意識, 그리고 運命’이라는 主題로 7月9日 成均館大學校 600周年 記念館 大講堂(203號)에서 이를 公式 發表할 豫定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關聯 論文을 바탕으로 한 著者들의 發表 內容이다. 지종학 博士(大寒風水地理學會 理事長)는 景福宮과 靑瓦臺의 立地에 對해 風水地理學的 視角으로 診斷했다. 그는 “景福宮과 靑瓦臺는 珠算과 靑龍, 白虎 等 地形的 條件이 같기 때문에 한묶음으로 볼 수 있다”라고 前提한 뒤 “이곳에서 居住하면서 統治한 朝鮮의 歷代 임금(16名)과 大韓民國 歷代 大統領(12名)의 行步를 볼 때 좋은 터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特히 光復 以後 靑瓦臺 主人들이 유난히 試鍊을 많이 겪다보니 國家信認度 墜落과 連繫되고, 風水學의 信賴性에도 疑問을 提起하는 事態까지 불러오게 됐다는 것이다. 지 博士는 靑瓦臺·景福宮의 主山인 北岳山이 무정(無情)한 게 가장 큰 風水的 缺陷이라고 診斷했다. 北岳山은 힘 있게 우뚝 솟은 모습이지만, 山의 머리 部分이 東쪽을 向하면서 景福宮·靑瓦臺를 外面함으로써 無情한 主山이 돼버렸다는 主張이다. 이는 朝鮮 初期 景福宮 立地를 決定하는 過程에서 정도전, 權仲和 等 留學者 그룹이 風水地理學에서 重視하는 山의 免倍(面背·앞面과 뒷面)와 有·무정(有無情)을 따지지 않고 넓은 明堂터만을 固執하다보니 現在와 같은 配置가 됐다는 것이다. 山勢(山勢)만 그런 게 아니다. 財貨, 卽 經濟力과 競爭力을 象徵하는 물길度 景福宮을 外面하고 있다. 主山인 北岳山이 景福宮(靑瓦臺)을 外面하다보니 뒷山에서 감싸주듯이 내려오는 安定的인 물 供給을 받지 못한 채, 右白虎(右白虎)에 該當하는 仁王山의 물에 依存할 수밖에 없는 形局이 됐다. 比喩하자면 내 집 안에 우물이 없어서 이웃집 우물을 눈치보며 길어 마시는 格이다. 이는 漢나라의 主權과 經濟的 自立 側面에서 매우 脆弱한 構造가 된다. 지博士는 景福宮 터가 좋지 않다고 해서 서울의 風水地理的 價値가 否定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서울은 北漢山과 韓江이 絶妙하게 어우러진 대단한 風水 明堂이라는 것이다. 그는 靑瓦臺의 代案으로 삼청동과 용산이 좋다고 主張했다. ○ 天帝(天祭) 지내던 둔지산 품에 안긴 大統領執務室이덕형 博士는 大統領 執務室이 들어선 용산의 둔지산에 對해 集中 照明했다. 둔지산은 南山(木覓山) 줄기에서 뻗어내린 支龍(支龍)에 該當하는 곳이다. 朝鮮時代에 ‘鈍地理’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던 둔지산 자락은 以後 日本軍 兵營基地, 美8軍 駐屯地, 國防部 및 韓美聯合司令部 等 軍 關聯 權力機關이 들어서게 됐다. 둔지산은 元來 國家的인 儀禮를 行하던 祭壇이 設置됐던 곳이다. ‘世宗實錄地理志’에 依하면 元旦(圓壇) 老人星壇(老人星壇) 風雲雷雨壇(風雲雷雨壇) 等 朝鮮時代 國家的인 儀禮를 지내던 곳이다. 大韓帝國 時期에는 皇帝가 하늘에 祭祀를 지내는 南郊(南郊)가 設置되기도 했다. 그런데 둔지산은 事實 ‘龍山(龍山)’이라는 地名과는 別 關係가 없는 山이다. 서울에서 元來 용산으로 불리던 곳은 天主敎 龍山聖堂(산천동)을 中心으로 효창동, 원효로桐 一帶와 只今은 麻浦區로 變更된 도화동과 공덕동 等 一部를 包含하는 地域이었다. 龍山은 또한 山 이름이기도 했다. 朝鮮時代 地理誌인 ‘동국여지지’에서는 “무악산의 南쪽 줄기가 漢陽을 감싸며 돌아나가다 漢江邊에서 끝나는데, 이를 龍山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卽 仁王山에서 祈願하는 무악산 줄기가 만리동 고개(만리재)와 孝昌公園을 거쳐 漢江 바로 앞에서 우뚝 멈춰선 地形을 表現한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龍처럼 보인다고 해서 용산이 됐다. 反面 둔지산은 景福宮의 安山에 該當하는 南山에서 祈願한다. 山의 系譜가 儼然히 다른 셈이다. 元來의 용산 一帶는 水路를 통해 漢陽으로 物流가 集積되던 풍요로운 空間이었다면, 신용산(梨泰院洞, 한남동 等)의 舞臺인 둔지산자락 一帶는 신령스러운 터가 된다. 李 博士는 大統領執務室이 둔지산에 들어선 것과 關聯해 “高宗이 朝鮮을 새롭게 만들겠다는 意志로 大韓帝國의 皇帝임을 宣布하면서 하늘 祭祀를 지내던 空間이었던 둔지산에서 歷史的 精神的 意味가 後代에도 이어져 가길 期待한다”고 밝혔다. 이番 學術세미나는 景福宮과 용산의 風水的 立地 外에도 ‘朝鮮時代 山林政策과 風水의 相關關係’ ‘現代 韓國 命理學의 發展過程 硏究’ ‘節氣時間에 따른 일진의 變化 硏究’ 等 東洋學 關聯 深度 깊은 論文들이 發表된다. 이 學術 세미나를 企劃한 박정해 漢陽大 敎授는 “東洋學이 그間 時代的 變化와 社會的 狀況을 外面해 스스로 孤立되는 側面이 있었던 點을 反省하고, 風水와 名利에 關한 學術的 論理體系를 構築해 積極的으로 社會의 흐름을 읽고 그 代案을 提示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고 말했다. 안영배 記者 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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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流配길 落心했던 茶山… 풍요한 집터 만나니 著述까지 多産이로구나

    《배부른 황소가 한가로이 엎드린 채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와우形(臥牛形) 터에서 지내봤다. 茶山 丁若鏞(1762∼1836)李 全南 康津에서 첫 流配 生活을 했던 ‘辭意再’ 옆 韓屋體驗館, 바로 황소 얼굴에 該當한다는 터다. 이름 그대로 넉넉한 터 기운 때문일까. 茶山의 자취가 밴 强震을 旅行하는 동안 몸이 平安해지고 마음은 여유로웠다.》 ○ 强震 황소 名當에서 기운 차린 정약용 221年 前인 1801年 겨울, 全南 康津 땅을 밟은 茶山은 깊은 那落에 빠져 있었다. 賃金(正祖)의 寵愛를 한 몸에 받다가 猝地에 ‘천주쟁이’라는 逆賊으로 낙인찍혀 아무도 그를 반겨주지 않았다. 康津邑內 同門마을에 사는 酒幕집 酒母만이 茶山에게 飮食을 내주었다. 허겁지겁 아욱국에 밥을 말아먹는 多産을 가엽게 여긴 酒母는 골房까지 내주며 머물도록 했다. 酒母는 智慧도 깊었다. 茶山에게 “어찌 그냥 헛되이 社시려 하는가? 弟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匕首 같은 忠告를 던졌다. 茶山은 精神이 번쩍 들었다. 그가 마음을 다잡아 後學을 養成하며 ‘經世遺表’ 等 偉大한 實學 著書들을 執筆하게 된 것은 酒幕집에서의 이런 事緣 때문이라고 傳해진다. 茶山은 酒母와 그 외동딸의 보살핌을 받으며 4年間 머문 酒幕집 堂號를 ‘辭意再(四宜齋)’라고 지었다. ‘생각과 容貌와 言語와 行動,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居處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스스로를 警戒하는 文句이기도 했던 ‘辭意再’는 後代에 歷史的 名所로 誕生하게 된다. 康津郡이 오랜 考證 끝에 復元해낸 사의재는 茶山과의 因緣, 고풍스러운 草家, 水菊이 활짝 핀 蓮못 等으로 사람들이 즐겨 찾는 踏査 코스가 됐다. 辭意再 터에서 흘러나오는 豐饒로운 知己(地氣)는 酒幕집 酒母의 넉넉한 마음씨까지 傳해주는 듯하다. 辭意再 바로 옆으로는 宿泊이 可能한 辭意再 韓屋體驗館(9個 客室)李 運營되고 있다. 사의재를 낀 同門마을에는 明堂임을 알려주는 表式이 있다. 韓屋體驗館 入口에 있는 ‘同門샘’이라는 우물이다. 標말은 샘을 風水的으로 說明해놓았다. 이에 따르면 步銀産 우두봉(牛頭峰) 자락 아래 强震邑城으로 둘러싸였던 강진읍은 全體的으로 와우形 터에 該當한다. 邑城 4大門 中 하나인 同門 쪽 샘(東門井), 卽 바로 이곳은 소의 왼쪽 눈이라는 說明이다. 소의 오른쪽 눈인 西門 쪽 샘(西門井·서성리)도 있었지만 只今은 없어졌다.다산은 1805年 겨울 사의재를 떠나 우두봉 기슭의 고성사(高聲寺·當時는 高聲癌)에서 머물게 된다. 親分을 맺은 白蓮社 住持 혜장의 配慮 德分이었다. 强震 市內가 굽어보이는 이곳에서 茶山은 ‘報恩山房’이란 看板을 내걸고 長男(學緣)과 강진읍 6弟子를 對象으로 ‘周易’ 等 學問을 가르쳤다. 사의재에서 車로 10餘 分 距離의 고성사는 現在 ‘水菊 길’ 散策 코스로 有名하다. 그런데 現地 사람들은 고성사의 저녁 鐘소리(高庵暮鐘·고암모種)를 더 높게 친다. 고성사가 황소의 귀밑 或은 목방울을 매다는 部位에 該當하는데, 이곳에서 소리가 울려 퍼져야 强震이 發展한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높은(高) 소리(聲)’라는 뜻의 고성사는 實際로 ‘소리 名當’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南道의 판소리 하는 사람들에게는 有名한 得音(得音) 場所 中 하나로 꼽혔다. 茶山은 겨울 한철을 고성사에서 보낸 後 弟子의 집을 轉轉하다가 1808年 만덕산 자락 아래 茶山草堂(도암면 만덕리)에 定着하게 된다. 그는 다산초당에서 ‘牧民心書’ ‘欽欽新書’ 等 500餘 卷의 厖大한 著書를 完成했다. 事實 茶山은 發福(發福)을 祈願하는 風水地理를 剛하게 否定했던 人物이다. 그런 그가 와우形 名當에서 기운을 차리고 마침내 自身의 實學思想을 集大成했다는 點은 逆說的이다.○가우도 開發과 황소의 멍에 강진읍의 主要 建物들은 風水的으로 ‘소 판’으로 配置됐다고 말할 만하다. 康津郡靑果 强震警察署는 소의 콧등에 該當하고, 康津郡 圖書館은 소의 콧구멍 明堂으로 불려왔다. 강진읍 들머리에 있는 强震醫療院과 强震高校 一帶는 예전부터 소의 ‘혀 끝’이란 뜻의 ‘새끝’이라고 불렸다. 또 옛 이름이 草地(草地)인 木理마을은 소가 풀을 뜯어 먹는 場所라고 한다. 强震 風水의 白眉는 가우도(駕牛島)에 있다. 바닷물이 강진읍 쪽으로 깊숙이 들어온 강진만의 섬 가우도는 地形이 소(牛)의 멍에(駕)처럼 생겼다. 멍에는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해 마소의 목에 얹는 나무 막대다. 그러니 康津邑內에 한가롭게 누워 있는 황소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가우도의 멍에를 씌워야 한다는 論理도 생겨난다. 2013年 陸地와 가우도를 잇는 다리가 竣工됐다. 대구면 저두리와 이어지는 聽者다리(438m)와 다산초당이 있는 쪽인 도암면 망호리와 이어지는 茶山다리(716m)가 생김으로써 가우도는 康津郡의 代表的 觀光 名所로 浮上했다. 海上보도교 2個가 생김으로써 가우도의 멍에가 활짝 펴진 形局이 되고, 이어 멍에가 씌워진 강진읍 황소가 벌떡 일어나 밭을 갈기 始作했다는 風水的 解釋도 뒤따랐다. 實際로 가우도를 찾는 觀光客들이 늘어났다. 가우도 海岸을 따라 펼쳐지는 덱과 厚朴나무, 곰솔이 우거진 숲길을 利用해 섬 한 바퀴를 돌아보는 一名 ‘함께해(海) 길’(2.5km)은 트레킹 코스로 人氣가 높다. 또 섬의 頂上部에 設置된 靑瓷타워까지 태워주는 모노레일과 타워 展望臺에서 펼쳐지는 海上 風景도 핫플레이스다. 높이 25m 靑瓷타워에서 바다를 훌쩍 뛰어넘어 저두리로 건너가는 ‘하늘길’(집트랙)은 짜릿함을 膳賜한다.○강진 月出山의 숨겨진 寶物 강진읍 西쪽, 卽 月出山 南쪽 山자락 아래 성전면의 月南寺址 一帶도 康津의 빼놓을 수 없는 祕境이다. 最近 完全히 復元된 月南寺址 三層石塔(寶物 第298號)으로 有名한 月南寺는 考慮 진각國師(1178∼1234)가 茶를 마시며 遂行했던 절로 알려져 있다. 16世紀 前後에 斃死된 以後 現在 3萬3057m²(藥 1萬 坪) 規模에 達했던 절터를 復元하고 있다. 三層石塔 周邊에 形成된 터의 기운도 出衆할뿐더러 石塔과 어우러지는 月出山의 風景은 北쪽 靈巖에서 바라다본 月出山 景致와는 또 다른 맛을 자아낸다. 山에도 앞面과 뒷面이 있다. 靈巖 쪽 月出山은 山의 뒷面으로 莊重하고 무겁게 느껴진다면 康津 쪽 月出山은 山의 앞面으로 밝고 따뜻한 느낌을 받게 된다. 月南寺址 周邊의 백운동 원림, 康津 茶밭(多元) 等도 빠뜨릴 수 없는 곳이다. 백운동 原林은 朝鮮 中期 이담로(1627∼1701)가 꾸민 別墅庭園이다. 自然과 人工이 調和를 이룬 이곳은 潭陽 瀟灑園, 莞島 부용동과 함께 湖南 3代 別墅庭園으로 꼽힌다. 백운동原林은 朝鮮의 선비들에게도 人氣 있는 訪問地였다. 茶山 亦是 1812年 이곳을 다녀간 後 백운동原林의 12勝景을 노래한 詩文인 ‘白雲첩’을 남겼다. 現在의 庭園은 白雲妾에 남겨진 ‘백운동度(白雲洞圖)’를 바탕으로 再現해놓은 建物이다. 案內板이 없으면 進入하기가 힘든 ‘祕密의 庭園’ 백운동園林을 둘러본 後 강진다원의 有名한 茶밭 風景을 즐기거나 ‘이한영車文化院’에서 茶 한盞 마시는 것으로도 旅行의 한 코스가 될 수 있다. ‘이한영車文化院’은 백운동原林 5代 主人이자 茶山의 가장 어린 弟子 이시헌의 後孫(이현정)李 車를 만들고 茶道 敎育을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月出山 精氣도 쬘 수 있다. 글·寫眞 强震=안영배 記者·哲學博士 ojong@donga.com}

    • 2022-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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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千年을 덖은 車香氣… 高僧들 마음까지 살랑살랑

    《智異山 토끼봉 자락 海拔 800餘 m에 둥지를 튼 七佛寺에서 雀舌茶를 맛본다. 都膺 住持스님이 河東郡 화개면의 野生 茶잎으로 우려낸 車는 입안에 달짝지근한 香味를 남긴다. 이곳이 우리나라 車 始培地이자 초의선사에 依한 茶道 中興地라는 點도 茶 맛을 북돋워준다. 초의선사는 七佛寺에서 參禪하면서 ‘다신전(茶神傳)’을 草綠했고, 또 다른 著述인 ‘동다송(東茶頌)’에서는 河東의 茶밭을 讚歎했다. 七佛寺는 가야 金首露王의 7王子 成佛 說話가 있는 古刹이자, 世界 建築士에서 類例가 드문 亞字房(亞字房) 溫突 文化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七佛寺를 起點으로 河東 智異山 旅行을 떠나본다.》○선승들이 貪내는 亞字房 七佛寺 住持가 客을 맞아 車를 따라준 房은 매우 獨特했다. 房 가운데를 中心으로 左右側에 높이 40cm 남짓한 나무 段이 디귿 字 形態로 마주보게 한 模樣새(ㄷコ)다. 나무 段 아래쪽 房바닥은 自然히 열十(十)字 形態가 된다. 房 밑의 溫突 또한 獨特한 構造다. 陶瓷器를 굽는 가마 模樣으로 만들어 놓은 大型 아궁이로 한番 불을 때면 아(亞)자 形態의 溫突을 따라 房 안 溫氣가 며칠間 維持되는 構造라고 한다. 바로 七佛寺 碧眼當(亞字房)을 再現해 놓은 亞字房 溫突體驗館이다. 都膺 스님은 “나무 段 위에서 坐禪이나 冥想을 한 뒤, 房바닥에서 茶를 마시거나 休息을 取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의스님이 參禪을 限 元來의 亞字房은 現在 發掘 및 復元 工事 中이어서 開放되지 않고 있다. 亞字房에 對한 學術 調査 結果 高麗時代 遺物 等이 나와 學界의 注目을 끌기도 했다. 高麗 때 이미 最高의 溫突 建築物이 運營되고 있었음이 確認됐기 때문이다. 事實 亞字房의 傳說과 記錄은 훨씬 以前 時期로 거슬러 올라간다. 新羅 孝恭王(在位 897∼912年) 때 ‘구들道士’로 名聲이 높은 淡공禪師가 이中 溫突房인 亞字房을 만들었다는 傳說이 있고, 甚至於 ‘七佛船員史跡記’엔 新羅 祗摩王 8年(119年)에 金官伽倻 出身 淡공禪師가 지었다고 씌어 있다. 亞字房 溫突은 한番 불을 지피면 100日 或은 49日間 溫氣가 持續됐다고 해서 中國 唐나라까지 所聞이 났다고 한다. 亞字房은 겨울에 눈이 와도 쌓이지 않고 녹아버린다는 明堂 터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風水祕訣書(道詵國師費基)에도 登場한다. “河東 땅에서 北쪽으로 100里 가면 와우形(臥牛形) 名紙가 있는데, 이곳에 집을 지으면 富(富)는 中國의 石崇 못지않고 百子千孫(百子千孫)李 繁昌할 것이며, 祈禱處로 삼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得道할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누워 있는 소(와우)’에 該當하는 곳이 바로 七佛寺다. 七佛寺 境內에는 소의 젖으로 解釋하는 샘물인 ‘유천’이 있고, 소의 몸통에 該當하는 運喪船員이 자리하고 있다. 實際로 七佛寺는 西山大師, 扶携船社 等 有名한 禪僧들의 逸話가 남아 있고, 이곳에서 得道한 高僧들度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七佛寺가 9km 아래쪽의 雙磎寺 말師임에도 ‘洞國際일船員’이란 懸板이 堂堂히 걸려 있는 理由다. 都膺스님은 “亞字房에서 遂行하신 스님들이 잘 풀리셨기 때문에 이곳에서 參禪하고 싶어 하는 스님들의 民願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허왕후가 ‘江南 孟母’의 元祖? 七佛寺에서 外部人 出入이 禁止된 運喪船員은 伽倻國 金首露王의 7王子 說話와도 이어지는 곳이다. 金首露王과 許王后 사이에 난 7王子들은 外三寸 張維火傷을 따라 金海에서 遂行 生活을 始作한 以後 伽倻山, 화왕산, 臥龍山 等地로 옮겨 다니다 마침내 紀元後 101年 智異山 자락 韻賞船員 터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7王子의 成佛(成佛)을 記念해 七佛寺(七佛庵)라는 이름도 붙여졌다. 七佛寺 大雄殿에는 이를 기리는 7部處가 모셔져 있고, 子息을 그리워한 金首露王 夫婦가 蓮못 물에서 부처가 된 7王子의 그림자를 보았다는 ‘影池’도 있다. 七佛寺에서 溪谷을 따라 화개場터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首露王이 7王子를 만나기 爲해 臨時 宮闕(태王宮)을 지었다는 梵王(凡王)마을, 허왕후가 머물렀다는 對備마을(大妃洞·화개면 정금리)도 있다. 또 智異山을 中心으로 東쪽의 山淸에는 伽倻의 마지막 王인 구형왕의 피라미드형 무덤도 있고, 北쪽의 咸陽에는 구형왕臺에 쌓았다는 추성도 있다. 이에 따라 智異山은 歷代 伽倻王室이 隨時로 들락거린 山이었으며, 七佛寺는 智異山卷 伽倻佛敎의 中心舞臺였음을 類推해 볼 수 있다. 河東의 車꾼들은 우리나라 茶 文化 歷史 亦是 伽倻에서 찾곤 한다. 허왕후가 自身의 故鄕 人道에서 茶 種子를 가져옴으로써 茶 文化가 智異山까지 퍼졌다는 主張이다. TV 휴먼다큐에도 紹介된 智異山 ‘車道社’ 송화정 氏는 “아들들의 遂行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智異山까지 찾아와 茶를 供養한 許王后야말로 ‘江南 孟母’의 元祖”라고 말할 程度다. ○河東의 숨은 道士들河東에는 숨은 듯 자리 잡은 名所가 적잖다. ‘無所有’의 著者 법정스님이 生前에 즐겨 찾은 곳으로 有名한 화개場터의 다우茶집은 手製車 專門店이다. 다우茶집의 이승관 社長은 손맛으로 茶를 덖는 ‘덖음 道士’로 有名하다. 그는 법정 스님이 自身이 덖은 茶 맛에 反해 直接 ‘淸心아’라는 車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말했다. “機械가 아닌 손으로 精誠을 다해 茶를 덖으면 덖을수록 茶 맛이 다르다”는 게 그의 車 哲學이다. 화개場터에서 茶 한盞을 마신 後 박경리의 大河小說 ‘토지’에 登場하는 ‘崔參判宅’의 實際 모델도 찾아가 볼 만한 곳이다. 바로 악양면 정서리의 ‘화사別墅’다. 朝鮮 開國功臣인 趙浚의 後孫 조재희(1861∼1941)가 조성한 古宅인데, 200m²(藥 60坪)에 이르는 秀麗한 蓮못은 한때 食率만 40餘 名이던 이 집안의 加勢를 斟酌케 한다. 古宅을 管理하고 있는 조덕상 博士는 “小說 속 主人公 中 한 名인 ‘吉上’은 6·25戰爭 때 死亡한 六寸 長兄의 實際 이름이고, 故鄕을 떠나 滿洲를 돌아다니는 스토리는 우리 집안 이야기를 借用한 事例가 많다”고 말했다. ‘世界 100人 工學者’에 選定된 技術士人 조 博士는 화사別墅의 原形 保存에 남다른 熱情을 보였다. 現在 화사別墅의 안채와 行廊채는 原形 그대로이고, 조 博士의 父親인 조한승 翁(97)李 살고 있다. 只今도 안채 마루에 앉아 儒敎 經典인 ‘書傳 序文’을 끝까지 暗誦해내는 老翁의 모습에서 陶人의 風貌도 느껴진다. ‘書傳 序文’을 熱心히 외면 道에 통한다는 얘기가 儒林 一部에서는 傳說처럼 傳해져 내려온다. 七佛寺처럼 海拔 850m 高地帶에 있는 智異山 청학동 삼성궁(청암면 묵계리)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默契 出身의 강민주 道士(한풀船社)가 1983年부터 ‘靑鶴이 깃드는’ 이 터에다 古朝鮮 時代의 小島(蘇塗)를 復元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桓因·桓雄·檀君을 모신 建國前을 비롯해 1000個가 넘는 돌塔, 韓半島와 滿洲 故土를 象徵하는 듯한 蓮못 等은 寫眞 撮影 名所로도 人氣가 높다. 화개場터에서 삼성궁 가는 길이 벅차다면 하동읍에 있는 松林公園을 推薦한다. 天然記念物로 指定된 소나무 群落地에서 悠悠히 흘러가는 蟾津江邊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힐링이 된다. 글·寫眞 河東=안영배 記者·哲學博士 ojong@donga.com}

    • 202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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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문대할망이 빚은 耽羅… 돌 하나하나 五百將軍의 千軍萬馬 기운

    《濟州島는 韓民族이 별을 至極히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음을 알려주는 證票들을 많이 간직한 곳이다. 하늘의 中心인 北極星을 象徵하는 女神(女神)이 있고, 三台星(三台星)을 象徵하는 세 名의 建國始祖가 登場하고, 世上 萬物을 管掌한다는 北斗七星도 存在한다. 하늘의 강인 銀河水를 象徵하는 듯한 물도 있다. 濟州의 별 神話와 기운을 느껴보는 것은 異國的인 濟州 風光만큼이나 색다른 體驗이다.》○ 濟州道知事가 主宰하는 漢拏山神第 濟州大 後門 近處, 所産오름 기슭에 位置한 山川壇(제주시 아라一同 392). 곰솔 群落地인 이곳은 濟州 사람들이 特別히 神聖視하는 空間이다. 每年 漢拏山의 山神을 모시는 祭祀가 열리기 때문이다. 漢拏山神制에서는 濟州道知事가 初獻官(祭享 때 첫 盞을 올리는 祭官)을 맡도록 條例에서 規定하고 있을 程度다. 漢拏山新帝의 歷史는 깊다. 祭主가 獨立된 나라이던 耽羅國 時節부터 始作돼 高麗 後期인 1253年(高宗 40年)에는 國家 次元의 祭禮로 發展했다. 朝鮮王朝에 들어와서도 濟州牧師는 每年 山神 祭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漢拏山神制는 元來는 陰曆 正月 漢拏山 白鹿潭 北쪽 기슭에서 奉行됐다. 漢拏山이 濟州의 中心이자 하늘의 별 기운이 地上에 뻗어 내리는 신령스러운 터였기 때문이다. 朝鮮의 人文地理書人 ‘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한라(漢拏)’라는 山 이름이 “銀河水(銀漢·銀漢 或은 雲漢·雲漢)를 끌어당김”의 뜻이 있다고 解釋한 것도 이런 背景에서다. 卽, 漢拏山 白鹿潭의 물이 바로 銀河水가 흘러내려온 하늘의 물이라는 것이다. 問題는 濟州牧師가 祭祀를 지내기 위해 많은 隨行員을 데리고 白鹿潭까지 올라가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祭物을 지고 險한 길을 올라가다가 얼어 죽거나 負傷을 當하는 일이 잦았다. 朝鮮 成宗 1年(1470年), 濟州牧使로 赴任한 이약동은 決斷을 내렸다. 白鹿潭에서의 山神祭 弊端을 임금에게 告한 뒤 只今의 山川壇에서 天帝를 지내도록 했다. 山川壇은 風水의 눈으로 보아도 凡常치 않은 터다. 現在 天然記念物로 指定된 곰솔 숲 한가운데에 차려진 돌 祭壇은 푸른 이끼가 덕지덕지 끼어 있고, 높이 솟은 곰솔 8그루가 祭壇을 守護하듯 配置돼 있다. 이약동은 山川壇이 漢拏山神이 머무르기에 適當한 터라고 判斷한 듯하다. 山川壇은 커다란 곰솔들이 그늘을 만들어 줘 더운 여름날에도 散策과 힐링하기에 좋은 名所다. ○濟州 原都心에 出現한 北斗七星濟州 사람들의 精神的 意志處仁 漢拏山은 濟州道 創世神話에 登場하는 설문대할망과도 連結된다. 濟州의 1萬8000餘 神들 中 가장 으뜸 新人 설문대할망은 濟州島라는 섬을 만들어낸 主人公이자, 나중에 漢拏山神이 됐다는 傳說이 傳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또 濟州 五百(500)將軍을 길러낸 설문대할망은 事實上 濟州판 마고(三神)할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創世 神話를 象徵的으로 보여주는 空間이 祭主돌文化公園(제주시 조천읍 南朝로 2023)이다. 330萬 m²(藥 100萬 坪) 大地 위에 濟州의 稀貴한 돌들을 展示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설문대할망과 그 子息들인 五百將軍 이미지를 形象化한 돌 記念物들을 展示해 놓고 있다. 한便으로 公園 내 돌博物館 屋上에 마련된 大型 蓮못(하늘 蓮못)은 물 위를 걷는 포토존으로 有名한데, 저 멀리 漢拏山이 蓮못 위로 비치는 反映(反影)은 漢拏山과 설문대할망이 하나임을 象徵하는 듯하다. 설문대할망, 卽 麻姑할미는 別로 치면 北極星에 該當한다. 北極星은 三台星과 깊은 聯關이 있는데, 세 雙의 별로 이루어진 三台星은 濟州島에 나타난 세 名의 新人(神人)에 該當한다. 高氏, 양氏, 不氏의 始祖인 삼을라(고을라, 양을라, 부을라)는 三台星의 기운이 밴 三姓穴에서 出現했다. 이들이 바로 耽羅國 開國始祖가 된다. 三姓穴(私的 第134號·제주시 李燾1棟 1313)은 濟州市 舊都心人 濟州民俗自然史博物館 近處에 있다. 地盤이 꺼져 움푹 팬 넓은 터에 品(品) 字 模樣으로 세 個의 구멍이 난 곳이다. 세 新人이 各各 세 구멍에서 불쑥 솟아올랐다고 한다. 神聖한 구멍들 앞에는 三姓穴이라고 쓰인 돌 碑石이 있고, 그 앞으로 돌로 만든 祭壇 세 개도 나란히 있다. 이곳은 暴雨가 쏟아져도 고이지 않고 暴雪이 내려도 쌓이는 일이 없다고 한다. 名當에서 目擊되는 現象이 이곳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바다 저 멀리 벽랑국에서 온 세 名의 公主들과 婚姻을 했다. 세 公主를 맞이한 곳이 年昏暴(荒樓알)이고, 세 公主가 沐浴齋戒한 곳이 혼인지이고, 그들이 新房을 차린 곳이 新放窟이라고 불린다. 特히 혼인지와 新放굴(西歸浦市 城山邑 온평리 1693)은 男女 間 因緣을 맺어주는 기운이 있는 곳이라고 해서 人氣를 끄는 곳이다. 설문대할망과 세 聖人이 出現하는 濟州 神話는 金首露王의 都邑 說話와도 妙하게 連結된다. ‘三國遺事―駕洛國記’에는 金首露王이 都邑地를 定하기 위해 新畓坪에 行次해 四方의 地形을 살펴본 後 “1에서 3을 이루고, 3에서 7을 만드니 7聖人이 머물 만한 곳”이라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 實際로 濟州 神話에서도 하나(설문대할망과)에서 셋(三星)李 나오고 또 일곱이라는 수도 登場한다. 濟州道 原都心의 七星壇(北斗七星 象徵物)李 바로 7에 該當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濟州목’에서는 “三星이 처음 나왔을 때 三道로 나눠 차지하고, 북두(七)省 模樣으로 대를 쌓아 살았기 때문에 七星圖(七星圖)라고 한다”고 적고 있다. 또 돌로 쌓은 옛터가 있다고도 했다. 이를 根據로 제주시에서는 2011年 七星壇이 있었던 곳으로 推定되는 곳에 7個의 七星壇 標識石을 세워두었다. 그 配置된 곳이 하늘의 국자 模樣 北斗七星과 같다. 제주시 中央로 四거리를 中心으로 半徑 500m 以內에 있는 七星壇은 濟州 原都心을 구경하면서 하나하나 그 位置를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뿐만 아니다. 제주시 삼양동 원당봉의 佛塔社 五層石塔度 三台星 및 北斗七星과 關聯 있는 곳이다. 中國 元나라 順帝의 婦人인 기황후는 三台星과 北斗七星의 기운을 갖춘 곳에 塔을 세우고 祈禱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母國 濟州島에서 三貼칠봉(三疊七峰)의 明堂을 이룬 원당봉에 五層石塔을 세운 後 마침내 아들(小宗 皇帝)을 얻었다. 實際로 五層石塔은 名當 에너지가 充滿한 터이고, 只今도 子息을 얻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佛塔社 住持 스님의 얘기다. 濟州島에서 별의 痕跡을 찾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하늘의 別世界를 구경한 듯한 뿌듯함도 느껴진다.카페 200곳 自由利用券부터 環境 지키는 포인트寄附까지… 費用 줄이고 보람은 두 倍 統合 豫約 플랫폼 ‘濟州패스’濟州島 旅行을 알차고도 보람되게 즐길 수 있도록 考案한 플랫폼이 最近 젊은 旅行客들로부터 人氣를 끌고 있다. 航空, 宿泊, 맛집, 移動手段, 旅行 콘텐츠 等을 合理的인 價格으로 豫約할 수 있는 統合 豫約 플랫폼인 濟州패스(JEJUPASS)다. 스마트폰 앱으로도 선보인 이 플랫폼은 ‘濟州島 카페 自由利用券’(1萬 원)을 購入하면 濟州 地域 人氣 카페 200곳에서 아메리카노를 3日間 無料로 마실 수 있는 ‘카페패스’ 等 實속 企劃 商品으로 旅行客들의 好評을 얻고 있다. 國內 旅行業界 最初로 ESG(環境, 社會, 支配構造) 槪念을 導入해 價値中心 旅行을 追求하고 있는 點도 注目을 받고 있다. 濟州패스 利用者가 加入하는 ‘그린 앰버서더 멤버십’ 制度가 代表的이다. 멤버십 旅行者는 商品 購買 時마다 支出한 費用의 5%까지 積立金(포인트)으로 돌려받게 되며, 이 中 1%는 寄附 포인트로 轉換돼 濟州패스 ESG 캠페인(環境, 動物, 福祉 等 6個 分野) 中 寄附者가 指定하는 캠페인에 自動 積立되는 시스템이다. 濟州패스 設立者인 윤형준 ㈜캐플릭스 代表는 “5月 基準으로 總 寄附額이 1000萬 원을 突破했고, 6個 캠페인 中 環境保護 캠페인은 目標 金額의 78%를 達成했을 程度로 旅行客들의 呼應度가 높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旅行客들이 社會에 貢獻하는 價値中心 旅行에 눈을 뜨게 됐다는 說明이다. 글·寫眞 濟州=안영배 記者·哲學博士 ojong@donga.com}

    • 2022-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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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健康 지켜주는 든든한 執事, 누구나 살고 싶은 都心型 療養 施設

    KB損害保險은 일찌감치 高齡化 社會에 對備해 헬스케어 市場에 進出했다. 2016年 金融業界 처음으로 子會社인 KB골든라이프케어를 設立해 老人療養 事業에 進出한 後 지난해 10月에는 헬스케어 子會社인 KB헬스케어를 만들었다.‘업계 最初’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新事業 進出과 디지털 轉換에 先導的인 企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會社 側은 올해부터는 ‘業界 最高’에 挑戰하기 위해 事業의 本格化에 邁進한다는 方針이다. KB헬스케어, 서비스·커머스·데이터를 아우르는 統合 헬스케어 플랫폼 提供헬스케어 新市場 進出과 産業 活性化를 위해 設立된 KB헬스케어는 ‘헬스케어 플랫폼을 통한 서비스仲介業’을 주된 事業으로 確定했다. 旣存의 헬스케어 솔루션과는 다른 서비스·커머스·데이터를 아우르는 統合 플랫폼을 만들어 差別的인 價値를 提供한다는 戰略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이름은 ‘誤케어(O-Care)’로 지었다. 헬스케어 서비스 供給者들과 消費者가 플랫폼에서 자유롭게 만나 公正하게 去來하며 함께 成長하는 相生의 生態系를 만들어가자는 趣旨다. 會社 側은 이를 위해 市場에서 競爭力을 確保한 多樣한 헬스케어 專門企業들과 協業해 남다른 競爭力을 갖고 있다고 强調했다. 이 플랫폼은 顧客이 必要로 하는 헬스케어 서비스를 提供하는 것을 目標로 삼고 있다. 卽, 맞춤型 健康管理와 個人化된 經驗 提供을 통해 플랫폼을 持續的으로 使用하도록 動機를 附與하는 데 力點을 두고 있다. 1分期 KB金融그룹 任職員을 對象으로 한 헬스케어 서비스 事業도 돋보인다. 국민은행에 勤務하는 40代 職場人 李 氏는 “誤케어의 맞춤型 루틴을 階段 걷기, 食事 寫眞 撮影하기, 冥想하기로 定해놨는데 루틴 完了 與否가 스마트워치로 自動으로 이뤄지고 오케語에서 받은 포인트로 週末에 아내와 커피를 같이 즐긴다”고 말했다. KB헬스케어는 2分期 以後부터는 任職員 健康管理를 願하는 企業을 對象으로 健康管理서비스와 金融商品 連繫 健康管理 서비스를 提供하는 等 順次的으로 市場에서 立地를 다져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플랫폼을 통해 國內 헬스케어 産業이 本格的으로 活性化할 것으로 展望했다. KB골든라이프케어, 來年 下半期 서울 은평구 一帶 新規 療養施設 오픈KB損害保險의 또 다른 子會社인 KB골든라이프케어도 療養 施設 事業 擴大를 推進하고 있다. KB골든라이프케어는 2017年 서울 강동구에 ‘江東케어센터(晝夜間 保護施設)’를 오픈한 데 이어 프리미엄級 老人療養 施設을 續續 設立하고 있다. 2019年 3月 서울 송파구에 設立한 ‘KB골든라이프케어 慰禮빌리지’와 2021年 5月 서울 서초구에 세운 ‘KB골든라이프케어 瑞草빌리지’를 運營하고 있다. 서울 瑞草區 住宅街에 位置한 KB골든라이프케어 瑞草빌리지 入口에 들어서면 于先 ‘클린존’이라는 글씨가 附着된 엘리베이터가 눈에 띈다. 防護服을 입어야 搭乘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로 施設 內 職員이 코로나에 確診된 境遇 一定 期間 職員들은 防護服을 着用하고 勤務해야 한다. 코로나19 等 傳染性 疾患 電波를 源泉 遮斷하겠다는 意圖다.서초빌리지에는 5個의 마을이 있다. 入所者들이 유닛(마을)別로 모여 生活하는 構造다. 1인실과 2人室 中 選擇할 수 있고, 病患(病患)李 비슷한 사람들이 같은 空間에서 生活한다. 建物 어디서나 볼 수 있는 中庭(中庭)과 屋上 庭園이 있고, 地下에는 넓은 再活治療室을 갖췄다. 房 構造는 勿論 建物 인테리어와 動線 하나 하나 어르신들이 生活하기 便하도록 맞춤型으로 꾸몄다. 食事는 아워홈에서 밥과 粥, 米飮 等 맞춤型 食單으로 提供한다. 이미숙 瑞草빌리지 院長은 “施設과 서비스뿐만 아니라 療養 서비스 人力 또한 남다르다”고 말했다. 看護 人力과 療養保護士는 勿論 物理治療師, 作業治療師, 社會福祉士 等을 法廷 人力보다 充分히 確保했다고 한다. 會社 側은 프리미엄 老人療養 施設에 對한 顧客 反應이 좋다고 밝혔다. 慰禮빌리지는 開所 1年 만에 入所 待機者만 1300餘 名을 넘어섰고, 瑞草빌리지는 定員 80名 施設에 오픈 前 事前 接受에 申請者 300餘 名이 몰렸다. KB골든라이프케어는 서울 은평구 一帶에 새로운 프리미엄 老人療養 施設 設立을 準備하고 있다고 밝혔다. 會社 關係者는 “來年 下半期를 目標로 準備 中인 恩平빌리지(假稱)는 서울 江東과 江南 地域에 이어 江北 地域으로 事業場을 擴張한다는 意味가 있다”며 “이를 契機로 首都圈 및 主要 廣域市로의 서비스 擴大 基盤이 마련될 것”으로 내다봤다. 會社 側은 2030年까지 國內 1位 療養事業字로 발돋움하겠다는 抱負를 밝혔다.KB손해보험의 新事業 行步도 速力이 붙고 있다. 金融과 非金融을 連結하는 플랫폼 構築 等을 先導해 顧客의 꿈을 한 段階 업그레이드해 나가는 行步가 注目된다. 안영배 記者 ojong@donga.com}

    • 20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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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油菜꽃 필 무렵 그 바다에 달이 뜨면… 어디선가 孤高한 學 울음소리

    《굳이 山을 타지 않아도 産을 鑑賞하는 맛이 나는 곳이 있다. 全南 長興에서는 飛上하는 鶴의 形象을 한 山, 묵직한 山勢가 威風堂堂하게 보이는 社資産, 頂上에 멋진 바위 管을 두른 賃金 山 等을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다. 빼어난 山의 形象과 함께 양념처럼 버무려진 스토리는 旅行의 맛을 더해준다. 李淸俊, 한승원, 송기숙 等 筆談 좋은 小說家들을 唯獨 많이 輩出한 文人의 고장답다. 어디 그뿐이랴.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갑오징어, 키조개 等 싱싱한 膾감은 봄철 입맛까지 북돋워준다.》○‘천년학’의 舞臺, 선학동 油菜마을 全南 長興郡 득량만의 작은 浦口. 바닷가 마을은 물이 차오르고 달이 뜰 때면 西洋의 늑대人間 變身 傳說처럼 모습이 확 바뀐다. 마을 뒷山인 觀音峯은 兩 날개를 활짝 펼친 鶴의 모습으로 水面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마을은 變身한 鶴의 품에 포근히 안긴 形象이 된다. 이 마을이 선학동(仙鶴洞)으로 불리게 된 背景이다. 선학동에서 2.5km假量 떨어진 眞木마을에서 태어난 小說家 이청준이 이 마을의 風光을 보고 스토리를 불어넣었다. 그는 ‘선학동 나그네’라는 小說을 發表했다. 선학동에 밀물이 차고 산이 學으로 變身할 무렵, 南道의 소리꾼인 늙은 아비가 눈먼 어린 딸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 소리를 가르치기 始作한다. 어느덧 소리꾼 父女가 날아오르는 듯한 學科 함께 소리를 하게 되자 先學이 소리를 불러내는 것인지, 소리가 先學을 날게 하는 것인지 分揀하기 어려운 境界에 이른다. 이른바 得音(得音)의 境地다. 目的을 이룬 父女는 마을을 떠났다. 以後 浦口는 干拓事業으로 因해 들판으로 바뀌게 되고, 물을 잃은 觀音峯은 더 以上 學으로 變身할 수 없게 됐다. 20年의 歲月이 흘러 눈먼 딸이 다시 선학동에 나타났다. 觀音峯 明堂에 묻어달라는 아비의 遺言을 지키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得音한 딸은 鶴을 부르는 소리로써 明堂을 必死的으로 지키려는 마을 사람들을 홀린 다음 아비 遺骨을 暗葬하고 떠났다. 그 代身 마을 사람들에게는 鶴이 되살아났다는 믿음을 膳物처럼 남겨두고서…. 實際로 옛 모습을 잃은 선학동은 外地人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名所로 變身했다. 2006年 임권택 映畫監督이 ‘선학동 나그네’를 原作으로 삼아 만든 映畫 ‘천년학’이 上映되면서부터다. 이 마을 갯가 둑에는 ‘천년학’ 세트場(방앗間 兼 선술집)李 只今도 남아 있다. 이 映畫의 마지막 場面을 撮影한 곳인데, TV드라마 撮影地로 愛用되고 있다고 한다. 映畫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선학동은 以後 油菜마을로 더욱 有名해지고 있다. 마을 周邊 논밭과 山자락이 봄만 되면 노랗게 물든 油菜꽃으로 長官을 이룬다. 油菜꽃밭은 30分 程度면 다 돌아볼 수 있는 規模인데, 길이 散策하기 좋도록 잘 다듬어져 있고 中間에 쉬어 갈 수 있는 亭子도 마련돼 있다. 亭子에서 바라보면 油菜꽃밭이 득량만의 쪽빛 바다와 어울려 夢幻的인 風景을 빚어낸다. ○長興 지키는 스핑크스 산 長興 南쪽 선학동이 노란 油菜꽃으로 사람들을 誘惑할 무렵이면 北쪽 제암산(807m) 稜線에서는 철쭉이 津粉紅빛으로 世上을 물들이고 있다. 바로 제암산 곰再 稜線을 中心으로 펼쳐진 철쭉平原이다. 곰再 稜線에서 奸才三거리를 거쳐 社資産까지 이어지는 平原에는 30年 守令의 철쭉이 群落을 이루고 있다. 4月 下旬부터 5月 中旬까지 펼쳐지는 津粉紅빛 꽃밭 길을 거닐다 보면 이곳이 ‘天上의 花園’이라고 불린다는 데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올해는 철쭉이 일찍 滿開해 只今 訪問하면 津하디진한 꽃빛깔을 놓친 아쉬움이 있을 수 있지만, 周邊 景觀이 充分히 補償해준다. 散策하는 氣分으로 곰再 稜線까지 걸어서 올라가면 北쪽으로 1.5km 남짓 떨어진 距離에 제암산의 頂上이 보인다. 頂上은 賃金 第(帝)字 模樣의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높이가 30m 程度 되는 바위가 3段 形態로 서 있는데, 널찍한 바위 꼭대기는 數十 名이 너끈히 한자리에 앉을 수 있는 크기다. 이 바위를 向해 周邊의 奇奇妙妙한 形象의 바위들과 봉우리들이 공손히 절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도 印象的이다. 그래서 이 바위를 賃金바위, 卽 第癌(帝巖)이라고 부른다. 天機(天氣)가 뭉친 바위는 神靈한 기운이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이곳 사람들은 이 바위를 祭祀를 지내는 祭壇이라는 意味로 ‘第癌團’이라고 부른다. 가뭄 때면 바위 기운에 期待 비를 불러들이기 위해서 祈雨祭를 지냈기 때문이다. 곰再 稜線에서 南쪽으로 바라보이는 死者山(666m)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社資産은 제암산, 억불산과 함께 長興의 三山(三山)으로 불린다. 社資産은 威嚴 서린 表情으로 장흥읍을 굽어보고 있는 形象이어서 ‘長興을 지키는 스핑크스’라고 불리기도 하고, 日帝强占期엔 日本 후지(富士)山을 빼닮았다고 해서 日本人들 사이에 ‘長興 후지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社資産은 山 아래에서는 方向에 따라 여러 形象으로 보이지만, 곰再 稜線에서 바라보면 우람한 獅子의 모습이 確然히 드러난다. 正常 西쪽의 獅子 머리(獅子두봉)에서 稜線의 獅子 等을 따라 獅子 꼬리(獅子彌縫) 모습이 펼쳐지는데 마치 獅子가 하늘을 우러러보는 듯한 모습이다. 獅子두봉에는 山神祭를 올리는 큰 바위가 祭壇처럼 마련돼 있고, 가을에는 獅子 갈퀴처럼 山등성이가 누런 억새로 우거져 더욱 長官을 이룬다. 結果的으로 곰再 稜線에서는 철쭉 祝祭를 즐기면서도 北쪽의 賃金바위와 南쪽의 社資産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氣(氣) 體驗 스폿(spot)’李 되는 셈이다. ○피톤치드 香과 長興三合 健康食 北쪽 제암산과 南쪽 선학동 中間 地點에 있는 천관산 亦是 頂上에 솟은 特異한 바위들로 名山의 班列에 오른 山이다. 여기저기 늘어선 여러 基의 立席(立石)들이 마치 머리에 쓰는 관처럼 보인다. 천관산은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봉우리들과 바위들이 불꽃 形象으로도 보인다. 東洋의 陰陽五行論으로 分類하면 火(火) 기운이 剛한 山에 該當한다. 이러한 山은 藝術的 令監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解釋한다. 이런 기운 때문일까, 文壇에 正式으로 登壇한 長興 出身 文人만 60名이 넘는다. 천관산 기슭에는 이를 記念하는 天官文學觀(대덕읍 천관산文學길 301)이 있다. 現代文學의 巨匠으로 꼽히는 李淸俊, 한승원 作家를 비롯해 송기숙, 김녹촌, 이승후 等 長興 出身 作家들의 痕跡이 展示돼 있다. 全南 南海에 있는 長興을 旅行하려면 서울 等 首都圈에서는 最少 1泊 2日은 잡아야 한다. 健康을 考慮한 宿泊地로는 억불산 자락의 ‘정남진 扁柏숲 우드랜드’가 있다. 長興郡이 運營 中인 이곳은 통나무住宅, 黃土住宅, 杉나무 韓屋 等 健康 體驗이 可能한 宿泊施設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40年生 以上의 아름드리 扁柏나무 숲이 造成돼 몸에 좋은 피톤치드가 가득하고, 扁柏소금찜질房에서는 힐링度 할 수 있다. 勿論 豫約은 必須다. 長興의 먹거리 또한 健康 保養食으로 즐길 수 있다. 長興 하면 長興三合과 갑오징어를 빼놓을 수 없다. 長興三合은 營養素 豐富한 갯벌에서 자란 키조개 管子, 참나무에서 키운 표고버섯, 長興山 韓牛가 어우러진 補陽 飮食이다. 세 가지 飮食物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맛이 매우 좋다. 長興 갑오징어는 新鮮한 膾로 먹거나, 津한 먹물과 함께 먹는 먹찜으로 有名하다. 몸통에 큰 뼈를 가지고 있는 갑오징어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봄철에 가장 맛있다. 一般 오징어에 비해 食感이 매우 좋아 美食家들의 食單에 자주 오르는데, 藥으로도 쓰이는 갑오징어의 먹물과 함께 먹으면 고소함이 倍加된다. 글·寫眞 長興=안영배 記者·哲學 博士 ojong@donga.com}

    • 2022-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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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두울수록 빛나는 神仙의 樓閣… 아랑의 冤魂마저 고이 접어 나빌레라

    《돌벼랑 위 威風堂堂하게 서 있는 樓閣에 서니 아래로는 바람 따라 일렁이는 물결 위로 綠色 風景畫가 펼쳐진다. 오솔길을 따라 山새 지저귀는 山寺에 오르다 보면 이곳이 都心 한가운데라는 事實마저 잊게 된다. 秀麗한 景致뿐이랴. 이곳은 韓民族 始祖인 檀君을 모신 祠堂, 朝鮮의 빼어난 木造 建築物, 日帝强占期 아픈 歷史의 痕跡 等 來歷 깊은 遺跡地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傳說의 故鄕’에서나 登場하는 說話 같은 實話(實話)가 傳해져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바로 慶南 密陽 市內에 있는 嶺南樓(寶物 第147號)다. 宗敎와 歷史와 民俗의 綜合展示場인 嶺南樓는 하루 온終日 노닐어도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는 都心 旅行地다.》○거북 名當 樓閣엔 儒佛仙이 한자리에! 四方이 탁 트인 樓閣인 嶺南樓는 그 規模와 立地 環境이 빼어나 晉州 矗石樓, 平壤 浮碧樓와 함께 우리나라 3代 樓閣으로 꼽힌다. 密陽江을 굽어보고 있는 嶺南樓는 地形 自體가 예사롭지 않다. 嶺南樓 건너便 江邊에서 바라보면 거북의 머리처럼 불룩하게 생긴 둔덕 위에 嶺南樓가 서 있다. ‘永久陰數型(靈龜飮水形·신령스러운 거북이 山에서 내려와 물을 마시는 形局)’으로 부를 만한 터다. 거북 머리인 둔덕에서 視線을 옮겨가면 거북의 목 部位인 잘록한 고개가 살짝 보이고, 바로 이어서 거북 等에 該當하는 兒童山(88.1m)도 보인다. 이 一帶가 모두 嶺南樓 圈域에 該當한다. 이 신령스러운 자리에 처음 터를 잡은 쪽은 佛敎다. 嶺南樓는 新羅 法興王 때 영남사의 附屬 樓閣에서 出發했다고 傳해진다. 嶺南樓 名稱도 이 절 이름에서 빌렸다고 한다. 영남사가 斃死된 以後 高麗 恭愍王 때(1365年) 樓閣 規模를 크게 重修했고, 朝鮮時代에 병화(兵禍)나 失火(失火)로 불타버렸다가 1844年 密陽府使 이인재가 現在의 建物 形態로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官廳 建物(密陽都護府 客舍)로 變身한 嶺南樓는 앞面 5칸, 옆面 4칸 規模의 2層 樓閣이다. 建物 左右로는 凌波黨과 침類角이 本채를 護衛하듯 配置돼 있다. 마치 새가 兩 날개를 펼쳐 날아갈 듯한 모습으로 보이는데, 朝鮮 後期를 代表하는 뛰어난 木造 建築物로 評價받고 있다. 風采가 빼어난 外觀만큼이나 樓閣 안의 單層 亦是 創意的이면서도 華麗하다는 評을 듣고 있다. 特히 儒學을 信奉하던 官僚 集團이 造成한 樓閣임에도 不拘하고 道敎를 象徵하는 코드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點도 興味롭다. 樓閣 네 귀퉁이에 配置된 靑龍, 白虎, 朱雀, 玄武의 四神圖는 道敎的 性格이 짙고, 欄干 끝의 빼곡한 구름 文樣은 神仙 世界를 의미한다고 한다. 嶺南樓는 密陽을 訪問한 身分 높은 사람들을 接待하거나 그들이 休息을 取하는 場所로 活用됐다. 이 때문에 樓閣은 當代 名筆과 文章家들이 남긴 懸板들로 가득하다. 樓閣 안에는 懸板 글씨마다 누가 언제 쓴 作品인지를 친절히 說明해 놓고 있어 鑑賞하기가 좋다. ○아랑 傳說과 密陽의 4代 神秘 嶺南樓 돌벼랑 아래 江邊 쪽으로는 대나무 숲이 茂盛하다. 가파른 階段길을 따라 대나무 숲 사이를 걷다 보면 ‘아랑각’이라는 祠堂을 만나게 된다. 貞節을 지키다가 抑鬱하게 죽은 아랑의 넋을 慰勞하는 祭壇이다. 傳說처럼 傳해 내려오는 아랑의 事緣은 이렇다. 朝鮮 明宗(在位 1545∼1567年) 때 密陽府使의 외동딸 아랑娘子(윤동옥)가 乳母의 꾐에 빠져 嶺南樓로 달구경을 나왔다가 癡漢의 襲擊을 받았다. 아랑은 죽음으로 貞操를 지켰고, 屍身은 蹂躪돼 鬱蒼한 대나무 숲에 버려졌다. 猝地에 딸을 잃은 府使는 失意에 빠져 자리를 옮겼고 以後 새로 赴任하는 府使들마다 첫날 밤 疑問의 죽임을 當하는 事件이 벌어졌다. 그러다 膽力이 센 府使가 赴任해 狼藉의 冤魂으로부터 事緣을 듣고서는 犯人을 잡아들인다. 狼藉의 魂이 나비가 돼 癡漢의 어깨 위에 앉았기 때문에 犯人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그 後 400餘 年의 歲月이 흘렀다. 狼藉의 冤魂을 달래려고 세운 아랑각에서는 每年 陰曆 4月이면 密陽아리랑祝祭 때 뽑힌 閨秀가 祭官이 돼 祭祀를 지낸다. 嶺南樓 앞 密陽校 街路燈에는 나비를 象徵하는 照明燈도 設置돼 있다. 밤이 되면 密陽敎義 무지개 照明과 함께 發光다이오드(LED) 나비 照明이 幻想的인 夜景을 펼친다. 嶺南樓엔 ‘아랑 나비’뿐만 아니라 ‘太極 나비’ 얘기도 있다. 王建이 高麗를 建國하기 前 어느 날 春三月이 아닌데도 太極 文樣의 날개가 달린 나비 떼가 四方에서 날아와 嶺南樓 一帶 兒童産을 뒤덮었다. 나라가 혼란스럽던 時節 사람들은 太極 나비가 길조일地 모른다고 期待했다. 果然 高麗가 建國돼 나라가 安定을 되찾았다. 그 後에도 太極 나비가 나타날 때마다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생겼다. 高麗 初에는 이 나비를 保護하라는 命을 내리면서 ‘국성椄(國成蝶)’이라고 부르게 하였다고 한다. 太極 나비는 그 後 보이지 않다가 1945年 8·15光復 때 兒童山 中턱에 있는 無奉仕에서 연달아 出現했고, 政府는 이를 記念하기 위해 1954年 4月 太極 나비를 郵票로까지 製作했다. 嶺南樓와 無奉仕의 太極 나비 傳說은 密陽의 4代 神祕 中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密陽은 奇異한 自然 現象이 나타나는 곳으로 有名하다.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재약산의 얼음골 結氷地, 나라에 變故가 생길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瓢蟲費各科 神祕한 모습의 香나무, 바위에서 鐘소리가 난다는 萬御史 경석 等이 密陽의 代表的 神秘物로 꼽힌다. ○어깨춤 들썩이는 놀이 公演 嶺南樓 一帶가 平凡한 터가 아니라는 點은 天津宮(天眞宮)이라는 建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嶺南樓 맞은便에 자리한 天津宮은 朝鮮時代 客舍 建物이던 要選菅을 새롭게 丹粧해 民族의 始祖인 檀君 王儉 및 歷代 建國 始祖를 모셔놓은 곳이다. 檀君 影幀과 位牌가 奉安된 가운데를 中心으로 왼쪽 東壁에는 扶餘, 高句麗, 伽倻, 高麗의 時調 位牌가 있고 오른쪽 西壁에는 新羅, 백제, 渤海, 朝鮮의 時調 位牌가 있다. 天津宮 建立에는 事緣이 있다. 1894年 東學革命 以後 朝鮮을 掌握한 日本 憲兵隊는 嶺南樓를 强占하고 要選管 建物을 獄事로 使用했다. 1910年 庚戌國恥 때는 이곳의 全敗(王을 象徵하는 位牌)가 日帝에 依해 땅에 묻히는 受難을 겪었고, 1940年에는 嶺南樓 뒷山인 兒童山 中턱에 日本 神社가 設置되면서 嶺南樓 景觀이 크게 毁損되기도 했다. 우리 民族의 正氣를 壓殺하려는 日帝의 奸計였다. 그러다 光復 以後 密陽 有志들이 뜻을 모아 現在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天津宮의 元來 이름은 大德展(大德展)이고, 그 出入門은 萬德門(萬德門)이다. 큰 德을 의미하는 ‘대덕’과 萬 가지 德을 의미하는 ‘萬德’은 檀君의 統治를 象徵하는 코드다. 只今도 檀君숭녕會가 每年 陰曆 3月 15日에는 御天大帝를, 陰曆 10月 3日에는 개川大帝를 이곳에서 奉行하고 있다. 嶺南樓를 訪問한 4月 末, 때마침 天津宮과 嶺南樓 사이 널찍한 마당에서는 民俗 公演이 신바람 나게 펼쳐지고 있었다. 6月 26日까지 每週 土曜日과 日曜日 午後 3時에 民俗 公演이 定期的으로 열리고 있다. 國家 無形文化財인 密陽百中놀이를 비롯해 密陽법흥上院놀이(慶南도 無形文化財), 감내게줄당기기, 務安龍虎놀이 等 다채로운 公演을 선보인다. 風景을 즐기고, 歷史를 吟味하며, 더불어 傳統 놀이까지 더해지니 어깨춤이 저절로 추어지는 듯했다. 嶺南樓를 뒤로하고 아동산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無奉仕가 있다. 영남사의 附屬 庵子로 出發한 無奉仕는 石造如來坐像(寶物 第493號)으로 有名하고, 韻致 있는 風光 때문에 詩人 墨客들의 발걸음이 잦았다. 無奉仕는 密陽 出身 四溟大師의 忠魂을 기리는 表忠寺와도 因緣이 깊어서 隣近에 四溟大師 銅像을 세워놓고 있다. 四溟大師 銅像을 지나면 밀양읍成果 密陽官衙로 자연스럽게 連結되는 散策路 코스가 展開된다. 特히 密陽邑城의 望樓에 올라서면 密陽江과 市內가 한눈에 들어와 長官을 이룬다. 이렇게 嶺南樓 一帶를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가 저물고, 밤이면 嶺南樓 夜景이 또다시 사람들을 불러들인다.글·사진 密陽=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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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海神이 지킨 神들의 庭園… 丁若銓의 流配文化 활짝

    《귀양살이 中인 두 兄弟가 自身이 살고 있는 流配地가 더 좋다고 뽐냈다. 동생은 兄에게 보내는 便紙에서 “겨울 해가 漢陽에 비해 길고 여름 해는 짧다”며 强震이 살기 좋은 故障이라고 으스댔다. 兄은 이에 질세라 “黑山島의 여름날엔 갈옷과 삼베옷 입을 일이 드물고 겨울날엔 서리가 내리거나 얼음 어는 것을 보기 힘들다. 强震이 이처럼 좋은가” 하고 應酬했다. 동생은 茶山 丁若鏞(1762∼1836)이고, 兄은 巽庵 정약전(1758∼1816). 귀양살이하기가 고약했던 곳으로 所聞난 黑山島에서 世上을 떠난 丁若銓은 이곳 사람들을 至極히 아끼고 사랑했다. “世上과 隔離된지라 무릇 世俗의 驕慢, 奢侈, 淫亂, 盜賊질 따위의 惡習에 물들지 않았다”고 評價할 程度였다. 丁若銓이 禮讚한 黑山島를 만나러 바닷길 旅行에 나섰다.》○산 頂上에 나타난 鐵馬(鐵馬) 黑山島는 過去부터 西南端의 漁業 前進基地이자 海上 交通路였기 때문에 海賊 或은 倭寇가 늘 들끓던 곳이었다. 朝鮮時代 武裝 軍人들이 搜索과 討伐로 땅을 지키는 主要 水土(搜討) 地域 中 한 곳이었다. 水土는 軍人들의 몫만은 아니었다. 朝鮮 선비들은 歷史的 遺跡地나 神靈한 기운이 감도는 땅을 觀察하고 돌보는 等으로 水土 行爲를 했다. 丁若銓이 黑山島 一帶 生物 生態系를 記錄한 ‘玆山魚譜’를 남긴 것도 땅을 지키는 水土였다. 丁若銓의 ‘黑山島 水土’를 쫓아 뱃길에 몸을 실었다. 木浦 沿岸旅客船터미널에서 出發한 快速船은 2時間 남짓 높은 波濤에 흔들거리면서 黑山島에 到着했다. 觀光用 택시를 빌려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海岸一周道路(25.4km)를 따라 가장 먼저 찾은 곳은 上라산 頂上의 祭祀 터. 黑山島에서 가장 北쪽 地帶인 이곳은 古代에 山 頂上에서 露天 祭祀를 지내던 空間이다. 風水的으로 하늘의 天氣(天氣)가 下降하는 터에다 祭祀 壇을 마련해 놓은 것을 보면 神聖한 空間이었음은 분명한 듯하다. 이런 터에서 冥想이나 祈禱 等을 통해 自然과 交感海 보는 것도 水土에 該當한다. 祭祀 터에서는 鐵製마 3點을 비롯해 주름무늬甁, 줄무늬病便 等 提議 關聯 遺物이 多數 出土됐다. 이곳을 調査한 木浦大 圖書文化硏究院은 “鐵製마는 큰 바다를 오가는 貿易船이나 使臣船이 하늘에 無事 航海와 運數大通을 빌던 信仰的 行事로 쓰인 것으로 推定된다”고 報告했다. 이 一帶가 烽燧臺로도 活用됐다는 얘기가 傳해진다. 中國 宋나라 使臣 徐兢은 高麗 仁宗 1年(1123年) 7月 4日, 黑山島를 지나가면서 “中國 使臣의 배가 이르렀을 때 밤이 되면 山마루에서 烽火를 밝히고 여러 山들이 次例로 서로 呼應하여 왕성(王城·開京)에까지 가는데, 그 일이 이 山에서부터 始作된다”고 記錄했다(‘고려도경’). 한便 上라산 頂上은 黑山島 第1經이라 할 만큼 展望도 秀麗하다. 이곳 展望臺는 日出과 日沒 撮影地로도 有名하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뱀이 구불텅구불텅 기어가듯 생긴 12굽이길이 長官을 이루고, 길 아래로는 예리항의 平和로운 風光이 펼쳐진다. 上라산 頂上에서 나무 階段을 타고 내려와 一周道路와 만나게 곳에 다다르니 비로소 黑山島를 象徵하는 ‘黑山島 아가씨 노래碑’가 눈에 들어온다. 노래碑를 뒤로 하고 一周道路를 따라 時計 方向으로 移動하면 邑洞마을 뒤便 無審査地(无心寺址) 石塔과 席等을 만나게 된다. ○ 黑山島 神들을 부르는 招靈木 ‘無審査’는 新羅 말인 9世紀頃 創建돼 14世紀까지 運營된 寺刹이었던 것으로 最近 學術調査 過程에서 確認됐다. 歷史的으로 黑山島는 韓半島와 中國을 오가는 中間 據點地帶였다. 張保皐가 東아시아 海上貿易을 掌握해 海上王으로 活動하던 時節 黑山島는 山城과 官廳, 査察이 들어서는 等 重要한 海洋基地 役割을 했던 것으로 推定된다. 歲月이 흘러 절은 斃死됐지만 이곳 邑洞마을 사람들은 石塔을 ‘數塔’, 席等을 ‘癌塔’이라 부르며 每年 正月 初하루 堂祭를 지냈다. 只今은 傳承되지 않고 있지만, 石塔 옆 오래된 팽나무(堂山나무)가 이곳이 마을 住民들의 信仰地였음을 證言하고 있다. 無心死地에서 빠져나와 時計 方向으로 繼續 進行하면 黑山島 神들이 노니는 定員을 만나게 된다. 黑山島에서 가장 盛大하게 堂祭가 열렸던 ‘眞理當’이 바로 ‘神들의 庭園’이다. 마을 숲속 서낭堂과 이곳에서 150m 程度 떨어진 海邊의 龍王黨으로 構成된 眞理黨은 每年 正月 初부터 3日間 神들에게 祭祀를 지내 뱃길의 無事 航海와 豐漁를 祈願하던 곳이라고 한다. 風水的으로 서낭堂은 숭어의 꼬리 部分 明堂에다, 龍王黨은 숭어의 머리 部分 明堂에다 세워졌다는 게 이 마을 사람들의 얘기다. 이 一帶가 ‘神들의 庭園’으로 불리는 데는 또 다른 理由도 있다. 眞理當 周邊으로 堂집을 保護하는 성황림이 우거져 있는데, 그 안에 鬼神들을 부른다고 해서 ‘鬼神나무’로 불리는 招靈木(招靈木) 自生地가 있기 때문이다. 招靈木은 濟州島와 黑山島 圈域에서 自生하는 滅種危機 保護樹이기도 하다. 現在 樹齡 300年인 招靈木은 1994年에 固辭했고, 代身 어린 招靈木 40餘 그루가 自生하고 있다. 招靈木 自生地 周邊으로 散策路가 造成돼 있는데, 神들과 만나는 색다른 體驗을 願한다면 한番 걸어볼 만하다.○ 黑山島의 짝꿍 紅島 祕境 黑山島 北쪽 圈域이 歷史的이고 土俗的 文化의 寶庫라면, 黑山島 南쪽 圈域은 朝鮮 時代 流配 文化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天主敎 彈壓 事件인 辛酉迫害(1801年) 當時 天主敎徒인 丁若銓, 丁若鏞 兄弟는 流配刑을 받았다. 丁若銓은 陸地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서 죽을 때까지 혼자 살도록 處罰하는 ‘竊盜安置’라는 終身刑으로 黑山島에 오게 됐다. 以後 丁若銓은 黑山島 南東쪽 舍利마을에서 流配 生活을 하면서 後學을 養成하는 ‘四寸書堂’을 꾸렸고, 섬 住民 장창대의 도움을 받아 ‘玆山魚譜’를 執筆했던 것. 現在 舍利마을에는 1998年에 復元한 四寸書堂 建物이 있고, 家族을 그리워하는 듯 먼바다를 바라보는 정약전 銅像이 세워져 있다. 新安郡은 아예 이 一帶를 流配文化公園으로 꾸몄다. 高麗 時代부터 黑山島로 流配된 이들을 追慕하는 碑石과 流配人 안내 鼻紋, 流配文化體驗場(流配人 安置 家屋) 等이 造成돼 있다. 한便 舍利마을 隣近의 千村마을 入口에는 최익현 遺跡이 있다. 朝鮮 高宗代의 文臣이자 抗日義兵將人 최익현(1833∼1906)은 1876年 江華島條約에 反對하는 上疏로 因해 黑山島로 流配됐다. 그는 “黑山島를 거쳐 간 名詞들은 많은데, 이를 記憶할 만한 遺跡이 하나 없다”고 恨歎하면서 千村마을 바위에 ‘기봉江山 홍무일月(箕封江山 洪武日月·記者가 봉한 江山이요, 明나라 朱元璋의 歲月이여)’이라는 글을 새겨 놓았던 것이다. 黑山島 旅行을 마친 後 뱃길로 30分 남짓한 距離의 紅桃로 가볼 일이다. 黑山島가 女性的인 섬이라면 그 짝꿍인 홍도는 男性的인 섬으로 比較된다. 景致를 優先視한다면 黑山島를 거쳐 紅桃로 가는 게 感興이 훨씬 크다. 다양하고도 奇異한 形象을 한 紅島의 奇巖怪石은 世界 어디에 내놓아도 떨어지지 않는 長官이다.섬 全體가 天然記念物로 指定된 紅島는 땅에서는 風景을 제대로 볼 수 없다. 遊覽船을 타고 바다로 나가서 섬을 돌아봐야 그 眞面目을 鑑賞할 수 있다. 獨立門바위, 夫婦塔 等 紅島 10景 外에도 33景 等 섬 全體가 恍惚한 祕境을 이룬다. 글·寫眞/黑山島·紅島=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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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내음에 꽃힌 남도마을… 蟾津江 물살따라 ‘꽃캉스’ 誘惑

    《봄꽃은 蟾津江을 거슬러 올라 智異山까지 行進하고 있다. 全南 光陽 매화마을에서 한바탕 꽃잔치를 벌인 梅花는 蟾津江邊을 울긋불긋 수놓더니 全南 求禮 智異山까지 파고든다. 梅花에 뒤질세라 智異山 자락 求禮郡 산동면에서는 山茱萸가 또 世上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中이다. 光陽과 慶南 河東에서 蟾津江을 따라 求禮까지 이어지는 봄꽃 길은 그 옛날 李舜臣 將軍의 ‘朝鮮 水軍 再建의 길’이기도 하다. 1597年 8月 原菌이 이끌던 朝鮮 水軍은 漆川梁 海戰에서 倭軍에게 潰滅되다시피 한다. 이에 白衣從軍하던 李舜臣은 三道水軍統制使로 再任命돼 蟾津江邊을 따라 北上하며 水軍 再建을 摸索했던 것이다. 그때 그 陸路는 李舜臣의 犧牲과 苦惱로 얼룩진 길이었지만, 420餘 年이 지난 只今은 華奢한 꽃길로 變身했다.》 ○ ‘노오란 熱꽃’이 핀 山茱萸마을 全南 求禮는 李舜臣이 남다른 愛情을 보였던 곳이다. 李舜臣이 陸地에서 朝鮮 水軍 再建을 위한 軍糧米를 처음으로 確保했던 곳이 바로 穀倉地帶 求禮다. 白衣從軍으로 南下했을 때도 求禮 縣監과 百姓들로부터 따뜻한 歡待를 받았다. 求禮의 李舜臣 白衣從軍 길목은 只今은 山茱萸마을로 變身했다. 歷史를 밟고 가는 길은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끼지만, 봄날 봄꽃길만큼은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은 설렌다. 노란色 꽃이 봄의 合唱을 하고 있는 求禮 山茱萸마을은 산동면 上位마을, 反曲마을, 계척마을 等 山茱萸가 群落을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마을들을 가리킨다. 山茱萸마을 中 가장 높은 地帶에 있는 上位마을은 아래로 굽어보는 風景이 아름답다. 展望臺 役割을 하는 精子 ‘産乳情’에 올라서면 山茱萸꽃을 ‘마른 가지에 번지는 노오란 熱꽃’으로 描寫한 오세영의 詩가 떠오른다. 上位마을은 智異山 만복대 자락을 따라 形成된 다랑논과 溪谷 사이로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는 市內가 情趣를 더해준다. 山茱萸는 노란 꽃잎 때문에 흔히 개나리와 比較되곤 한다. 그러나 두 꽃은 빛깔 雰圍氣가 다르다. 개나리의 샛노란 빛이 해맑은 어린아이와 같다면 山茱萸의 ‘노오란’ 파스텔톤 빛은 高雅한 女性 같은 느낌을 준다. 上位마을 아래로는 드라마 ‘봄의 왈츠’ 撮影地로 有名해진 反曲마을의 山茱萸 꽃담길이 觀光客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꽃담길을 따라 더 아래로는 山茱萸文化館과 山茱萸사랑公園이 자리 잡고 있다. 언덕배기에 造成된 사랑公園에는 山茱萸를 象徵하는 여러 造形物과 함께 山茱萸 情景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포토존이 여러 군데 있다. 平日임에도 빨간 山茱萸汁을 파는 坐板들이 들어섰고, 이곳에서 맛보는 山茱萸 막걸리 한盞은 봄꽃 饗宴의 興趣를 더욱 돋워준다. 한便 全北 南原에서 求禮로 넘어오는 길목에 있는 계척마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山茱萸나무가 있는 곳이다. 中國 산둥半島가 原産地로 알려진 山茱萸나무는 1000年 前 산둥省 女人이 智異山 자락으로 시집오면서 가져온 것으로 傳해진다. 全國 山茱萸나무의 約 65%(10餘萬 그루)가 이 一帶에서 자라고 있는 理由다. 흥미롭게도 이 마을에는 ‘南道 李舜臣길-白衣從軍로’라는 標말도 세워져 있다. 그러니 李舜臣 將軍이 求禮를 오갈 때도 이 山茱萸나무를 보았을 게다. ○求禮 梅花엔 스토리가 있다 꽃나무는 임자를 만났을 때 그 香氣가 더욱 津해진다. 꽃나무가 사람을 만나 ‘스토리’라는 보이지 않는 물감으로 彩色되기 때문이다. 흐드러지게 핀 山茱萸 사이로 群鷄一鶴(群鷄一鶴)처럼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 있는 求禮 梅花들이 그렇다. 求禮의 梅花나무는 저마다 스토리 빛깔이 다르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暗香(暗香)도 獨特하다. 먼저 求禮 화엄사엔 紅梅花와 들梅花가 있다. 紅梅花는 1702年 系派禪師가 壬辰倭亂 때 불타버린 覺皇殿을 重建하면서 記念으로 심은 梅花나무다.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 귀퉁이에 서 있는 이 紅梅花는 金剛松처럼 꽃송이들이 부챗살처럼 펼쳐진 形態다. 해마다 봄만 되면 莊嚴하면서도 威風堂堂한 이 梅花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화엄사로 몰려든다. 화엄사 側은 아예 ‘華嚴 千年의 空間, 香氣에 醉하다’는 主題로 2022年 ‘紅梅花·들梅花 專門 寫眞 및 携帶電話 카메라 寫眞 콘테스트’를 開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紅梅花 周邊은 專門 寫眞作家들과 一般人들의 寫眞 撮影으로 惹端법석이다. 紅梅花는 꽃色이 매우 蠱惑的이다. 햇살 方向과 날씨에 따라서도 色깔이 달라진다고 한다. 구름이 낀 흐린 날은 粉紅빛, 若干 밝게 흐린 날은 鮮紅빛, 아주 快晴한 날 逆光을 받았을 때는 검붉은 빛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화엄사 紅梅花는 ‘黑매’로도 불린다. 紅梅花와 함께 화엄사를 代表하는 또 다른 梅花나무는 화엄사 뒤便 九層庵 近處(길上岩 入口)에 있다. 땅에 떨어진 씨앗이 저절로 자란 野生 梅花人 들梅花(天然記念物 第485號)다. 元來 4그루가 있었다고 하는데 只今은 한 그루만 남아 있다. 그마저도 老衰해 絶頂의 開化期인데도 활짝 핀 꽃송이를 보기가 어렵지만 올곧게 遂行한 老僧(老僧)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뿐이랴. 山寺에서 벗어나 俗世로 내려오면 매天使(求禮郡 광의면 수월리)의 梅花를 빼놓을 수 없다. 梅泉社는 1910年 日帝에 國權을 빼앗기는 庚戌國恥를 當하자 絶命詩를 남기며 自決한 愛國志士 梅泉 黃玹 先生(1855∼1910)을 기리는 祠堂이다. 祠堂 이곳저곳에 심어놓은 梅花나무는 志操 있는 朝鮮 선비 精神을 象徵하는 듯, 맑고도 서늘한 香氣가 감도는 것 같다. 그 香氣에는 “나라가 선비를 養成한 지 500年이나 되었지만, 나라가 亡하는 날 한 名의 선비도 스스로 죽는 者가 없으니 슬프지 않겠는가” 하는 梅泉의 絶叫가 담겨 있는 듯했다. 梅泉의 발자취는 그 이웃인 운조루(求禮郡 토지면 오미리)에도 나타난다. 京釜 崔富者집과 곧잘 比較되는 湖南의 大富豪 집이 운조루다. 이곳 류氏 主人들은 梅泉과 가까이 交流했다. 梅泉은 七言詩로 운조루의 風光과 情趣를 노래했을 程度로 이 집을 좋아했다. 또 운조루의 主人 流刑業(1886∼1944)은 梅泉의 自決 消息을 듣고서는 “이것은 可히 의로운 죽음이라 할 것이니 流芳百世(流芳百世·香氣가 100代에 걸쳐 흐름)가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글을 日記에 남기기도 했다. 운조루 舍廊채와 連結되는 亭子는 梅泉 等 求禮의 선비들이 즐겨 모여 談笑를 나누던 現場이다. 이 亭子에서는 마당 쪽으로 오래된 梅花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韻조매’라고 불리는 이 梅花나무는 1776年 운조루를 지을 當時 移植했던 나무가 固辭한 뒤 뿌리 附近의 가지 하나가 되살아나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운조루의 歷史와 함께해 온 運祚매는 富者이면서도 나눔을 積極 實踐해온 집主人들을 닮은 듯 華麗하면서도 素朴한 雰圍氣를 내는 게 印象的이다. 운조루 바로 隣近에는 또 다른 富者 明堂인 曲轉載가 있다. ‘金가락지가 떨어진 땅’이라는 意味로 金丸낙지(金環落地) 明堂터로 불리는 이곳은 金가락지처럼 둥글게 돌담을 두른 形態가 特徵的이다. 2.5m 程度의 돌담牆 사이로 紅梅花, 백매화, 山茱萸꽃이 同時에 피어 꽃大闕을 이루고 있다. 現在 韓屋 體驗 民泊으로 運營되고 있는 曲轉載에서 봄꽃을 鑑賞하면서 富者 터 기운을 덤으로 쐬어보는 것도 좋다. 求禮 山茱萸마을처럼 온 洞네가 梅花로 治粧한 곳을 보고 싶다면 光陽 매화마을로 가볼 일이다. 梅泉의 故鄕이기도 한 光陽은 해마다 梅花祝祭가 열리는 다압면 매화마을이 有名한데, 特히 16萬5000m²(藥 5萬 坪) 以上의 山자락에 10萬 그루의 梅花나무들이 들어선 홍쌍리 청매실농원의 風景이 빼어나다. 아득한 구름숲처럼 보이는 梅花꽃밭 사이로는 平日임에도 人波가 넘쳐나고 駐車場은 車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華奢한 紅梅花와 맑고도 깨끗한 백매화 숲 너머로 펼쳐지는 蟾津江邊 風景을 즐기기 위해 봄이면 全國 곳곳에서 觀光客들이 찾아온다. 봄꽃 나들이에는 먹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只今 蟾津江과 南海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나는 벚窟이 제철이다. 成人 男性 손바닥만 한 엄청난 크기에 오동통하면서도 쫄깃쫄깃한 굴 속살이 一品이다. 바다에서 나는 窟과 달리 담백한 맛도 난다. 글·寫眞/求禮·光陽=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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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學點銀行制로 다양한 融合學問 導入

    東洋學科 西洋學, 人文學과 빅데이터 等 다양한 學問 分野 間 接合을 통해 創意的 人材 養成을 目標로 하는 融合學問이 注目받고 있다. 最近 一部 大學願 碩·博士 過程에서 運營되던 融合學問이 首都圈 大學 4年制 學士 過程에서도 선보였다. 漢陽大 에리카(ERICA)캠퍼스 社會敎育院에서 敎養 科目으로 開設한 學點銀行制다. 한양대는 2022學年度부터 一定 基準 學點을 履修할 境遇 한양대 總長 名義의 學事 學位를 授與하는 學點銀行制를 大幅 擴大 改編하면서 一部 融合學問 過程을 導入했다. 心理學 專攻 코스에 9個의 東洋文化學을 敎養科目으로 編成한 것이다. 敎養科目은 純粹 人文學 4科目(東洋文化史, 東洋思想의 展開, 儒敎文化의 理解, 東西文化交流史), 韓國學 3科目(韓國民俗文化史, 韓國民衆生活史, 韓國의 留學思想), 東洋의 人문응용學 2科目(生活風水, 生活力學)으로 構成돼 있다. 한양대 社會敎育院 關係者는 “旣存 心理學 科目(專攻必修 8科目+專攻選擇 12科目)에 東洋文化學을 敎養 科目으로 配置한 것은 東洋 人文學을 習得함으로써 21世紀 未來社會를 先導해 나갈 智慧와 能力을 갖춘 실龍仁乙 排出하기 위한 目的”이라고 밝혔다. 이를테면 東洋의 力學이나 風水學에서 數千年間 쌓아온 빅데이터는 現代 心理學에서도 應用이 可能하며, 나아가 東洋人의 情緖와 思惟體系를 다루는 東洋 人文學은 心理學 硏究 및 發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便 9個 東洋文化學 敎養 科目은 프로그램이 安定的으로 運營될 境遇 心理學 專攻뿐만 아니라 經營學·커뮤니케이션디자인學·體育學·平生敎育社 專攻 等으로 擴大 適用할 豫定이라고 한다. 命理學과 風水學 等 東洋文化學은 首都圈 一部 사이버大學에서 敎科 過程이 運營되고 있었으나, 漢陽大 에리카 캠퍼스 社會敎育院에서 最初로 學位를 認定하는 學點銀行制로 開設되면서 本格的인 制度圈 編入이 期待되고 있다. 漢陽大 融合産業大學院 박정해 敎授는 “學點銀行制를 통해 心理學을 專攻한 學生들은 奬學金 惠澤 等을 附與해 本校 融合産業大學院의 東洋學 碩士 課程까지 履修할 수 있도록 支援할 豫定”이라고 밝혔다. 朴 敎授는 融合産業大學院에서는 風水學과 命理學 等 東洋學 碩士 過程이 運營되고 있으며 融合學問 體系로 敎科目을 編成해 놓았다고 말했다. 風水學과 IT技術을 椄木시킨 ‘IT基盤風水硏究’, 風水學과 美學이 結合된 ‘風水美學硏究’, 命理學과 社會學 或은 心理學이 連結된 ‘命理學과 人間關係論’과 ‘命理學과 職務特性’ 等은 旣存 敎科目에서는 볼 수 없었던 코스다. 特히 風水學은 最近 建築, 不動産, 造景, 都市工學, 인테리어 等 多樣한 分野에 걸쳐 活用되면서 隱退를 앞둔 中壯年層으로부터 큰 關心을 끌고 있다고 한다. 晩學의 꿈을 키우거나 일과 學業을 竝行하는 이들이 主로 利用하는 學點銀行制는 土曜日과 日曜日, 에리카 캠퍼스에서 授業이 이루어진다. 안영배 記者 ojong@donga.com}

    • 20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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