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者 여러분 安寧하세요.오늘은 지난해 9月 國立現代美術館長에 就任한 뒤 100餘 日 만에 言論 인터뷰에 나선 김성희 館長과의 對話를 紹介합니다. 金 館長은 一週日 前 2024~2026年 美術館 運營 計劃에 關한 밑그림을 밝히기도 했는데요.그 底邊에 金 館長의 어떤 構想이 있는지, 또 그러한 計劃은 어떤 經驗에서 나오게 된 것인지 들었습니다. 要約하면 ‘美術館은 階級章 떼고 工夫하는 機關’으로 만들고, ‘海外 碩學을 招請해 韓國 美術을 國際的으로 알린다’는 것을 金 館長은 가장 重要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미술관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最大限 仔細히 紹介합니다.“국립현대미술관, 階級章 떼고 工夫하는 機關으로”김성희 國立現代美術館長이 大學을 갓 卒業한 큐레이터였을 때 입니다. 金 館長은 백남준의 누님이 하던 ‘미건 갤러리’에서 일을 始作했죠. 이 갤러리에서는 백남준의 일도 맡았고, 그가 韓國에 오면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백남준은 金 館長에게 이렇게 말합니다.“김 先生, 이 커리어 갖고 안돼. 내 展示를 하려해도 그렇고 말이야. 留學을 다녀와.”김 館長은 “제가 只今 結婚도 했고 애도 낳아야 해서 外國에 갈 수 있는 狀況이 아니에요”라며 難處한 氣色을 표했습니다. 그러자 백남준은 다시 “短期間 인턴이라도 하라”며 그 자리에서 뉴욕 현대미술관(MoMA) 큐레이터 바바라 런던에게 推薦書를 보내줍니다. 백남준의 督勵로 金 館長은 牡馬에서 인턴을 하고, 이것이 뉴욕大에서 工夫와 디아 센터 인턴십으로 이어집니다.수십 年 뒤 國立現代美術館長이 된 그는 美國과 韓國, 또 大學 講壇에서의 經驗을 바탕으로 ‘美術 理論과 美術史가 根幹이 되어야한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新年 人事에서 ‘硏究’와 ‘出刊’을 中心으로 하는 機關을 만들겠다고 言及했습니다.“미술관에 오고 韓國에 對한 뜨거운 關心에 놀랐습니다. 現場에서 큐레이터로 일할 때 ‘어떻게 한 番 만날 수 없을까, 名銜이라도 건네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이제 美術館으로 찾아오고 있어요. 이런 關心이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結局 本質的인 컨텐츠가 뒷받침이 되어야하고, 美術에서는 美術 理論과 美術史가 이 役割을 합니다.”― 中·臟器 프로젝트에서 ‘韓國 近現代美術 Re-프로젝트’를 가장 먼저 發表한 것도 그러한 重要性 때문인가요?“미술관에 硏究 分科가 있었는데 그間 弱化되어 있었죠. 學藝士든 學藝官이든 ‘階級章’을 떼고 實驗美術이라면 1970·80年代, 或은 1990年代, 2000年代까지 體系的으로 硏究하고 談論을 活性化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硏究가 土臺가 되어야 海外 碩學을 韓國에 招請하는 ‘MMCA 리서치 펠로우십’이 제대로 進行될 수 있겠죠.”― ‘階級章을 떼고’라는 表現은 水平的 組織 文化를 强調하려는 趣旨인가요?“미술관이 그間 館長과 學藝室長이 空席이었고, 젊은 學藝社와 學藝官 사이 疏通에도 問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部分은 斷乎히 解決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국 美術, ‘神形象’ 等 細部 思潮 들여다봐야”김 館長의 構想은 結局 韓國 美術史를 다시 제대로 硏究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單色畫’를 言及하면서 “展示도 열리고 朴栖甫 作家도 熱心히 뛰었지만, 그것을 世界에 알린 건 結局 조앤 키 같은 硏究者들이 著名한 出版社에서 出刊한 硏究서”라며 “이제는 單色畫가 아닌 다른 談論을 硏究해 提示해야 한다”고 했습니다.그렇다면 單色畫 말고 어떤 思潮가 있을까? 인터뷰 過程에서 金 館長은 ‘神形象’과 ‘槪念美術’, 그리고 1993年 韓國에서 열린 휘트니 비엔날레와 그것이 미친 波及效果 等을 言及했습니다.― 지난週 中企 運營 計劃을 發表하고 ‘海外 美術品 所藏 强化’가 가장 注目을 받았는데, 아직은 實現 段階까지 많은 過程이 必要해보입니다. 國內 美術界에서는 國內 作品 所藏 基準도 궁금할 것 같습니다.“우리 美術界에서 이뤄졌던 여러 思潮에 對한 正確한 硏究가 不足합니다. 單色畫度 아직 談論이 나온지 얼마 안 됐고, 6·70年代 以後 8·90年代 民衆美術度 있지만 ‘神形象’이라는 디테일한 思潮가 있었어요. 또 槪念美術度 많이 나왔고 이런 것들에 對한 硏究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런 硏究를 基盤으로 冊이 나오고 展示가 이뤄지면서, 重要한 活動에 關聯된 作品은 美術館이 所藏하는 順序가 되겠지요.― 結局은 모든 바탕에 硏究가 基本이 되어야 한다는 立場이시군요.“네 事實은 모든 것이 서로 聯關되어 있어요. 國立現代美術館 果川의 ‘幾何學的 抽象美術’ 展示 보셨나요? 擔當 學藝社가 理論을 工夫했습니다. 理論이 뒷받침되면 展示가 다릅니다. 單純히 作品이 좋다는 느낌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學藝社가 冊을 읽고 工夫하면 알찬 展示가 만들어지죠. 商業畫廊度 對案空間度 아닌 美術館에서는 이것이 宏壯히 重要한 部分입니다.반짝반짝한 企劃社 展示, 觀客들이 줄 서서 보는 展示는 그런 分野에서 풀 수 있는 部分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건 正말 國現만 할 수 있다’거나, 아이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全 世代를 아우를 수 있는 展示를 보여줘야 하고, 그런 것들이 저는 참다운 對國民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MMCA 리서치 펠로우십’은 이름을 들어도 알만한 海外 碩學을 招請하고 韓國에 3~6個月 머물게 하면서 韓國 美術을 硏究하게 한다는 프로젝트입니다. 여기서 念頭에 두고 있는 海外 碩學은 어떤 程度의 人物인가요?“이미 關心을 表한 人物도 있지만, ‘빅 네임’을 모시기 위해 愼重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올해 봄쯤이면 輪廓이 나올텐데, 두 가지 條件 ‘빅 네임’과 ‘韓國 美術에 關心이 있는 學者’를 충족시키려고 합니다.”― ‘빅 네임’이라는 것이 어느 程度의 級을 이야기하는 것인가요?“해외 有力 大學의 美術史 敎授들, 或은 有名한 出版社에서 美術史 關聯 著書를 5~10卷 出刊해서 美術史에 言及이 된 분을 말합니다. 國際的으로 큰 展示의 企劃을 맡았던 큐레이터 中에서도 可能하고요. 다시 말하면 冊으로 影響力이 크거나, 重要한 展示를 企劃했던 人物이죠.”“한국 企業, 自國 美術에도 關心을”― 美術館의 硏究와 海外 交流, 두 軸이 重要해 보이는데 이렇게 보시는 理由가 궁금합니다.“스위스 베른에서 1969年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이 ‘態度가 形式이 될 때’라는 歷史的인 展示를 만들었어요. 作家의 作業室을 美術館에 가져와 보여주는 展示였는데, 斬新한 方式이었지만 그만큼 돈이 많이 들었죠. 그런데 當時 유럽의 經濟 狀況이 劣惡했거든요. 이 展示를 美國 필립모리스와 政府가 펀딩을 해서 히트를 했어요여기에 요셉 보이스 같은 유럽 重要 作家와 함께한 參與 作家의 50%가 美國 作家였습니다. 美國 美術을 프로모션하는 場이 됐다는 意味죠. 우리도 自國 美術을 戰略的으로 알려야 합니다.”― 國立現代美術館에 企業 後援은 어떻게 이뤄지나요?“국가기관이기 때문에 直接 받을 수는 없고, 國立現代美術館 文化財團을 통해 寄附를 받습니다. 다만 國內 企業의 海外 美術館 後援은 活潑한데 國內는 아직 美術館에서 더 아쉬운 狀況입니다. 海外에도 세일즈를 해야 하니 當然한 것이지만 이제는 집에서도 잘 먹고 살아야죠.”― 美術 市場에는 企業 後援이나 이벤트가 活潑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2回까지 열린 프리즈에 브랜드들의 엄청난 마케팅도 話題였고요. 이런 現象에 對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미술 市場도 重要하지만 國內 參與者나 企業도 더 長期的으로 볼 必要가 있습니다. 프리즈와 海外 갤러리는 結局 自身들이 갖고 있는 걸 팔기 위해서 온 것이거든요. 作品을 팔고 파티를 하면서 세련된 先進 美術 文化를 보여준 것으로 그들은 責任을 다 했고, 그걸 뭐라 할 수도 없죠.다만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이냐를 생각해야 됩니다. 프리즈 아트페어가 아직 初盤이니 企業들도 많이 神經을 쓴 것 같기는 하지만, 持續的으로 그렇게 할 必要가 있을까라는 생각은 듭니다. 韓國 作家의 海外 進出, 韓國 美術을 알리는 것에 對한 要求도 해야죠.국립현대미술관은 韓國 美術을 海外에 알리는 것이 役割이지만 國家 豫算은 갑자기 크게 키울 수가 없는 限定된 것이거든요. 그런 點에서 美術館이 展示 컨텐츠를 만들거나, 이런 것을 海外로 보낼 때 企業이 役割을 해 준다면 훨씬 더 좋겠죠. 海外 作家와 콘텐츠 後援도 重要하지만, 같은 比重으로 韓國 美術의 海外 交流를 조금 더 神經 써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작가와 協業이 더 便하고 즐거워”― 商業 畫廊에서도 일한 經驗이 있습니다.“네. 그런데 商業 갤러리에서 일을 하면서 보니, 젊은 作家는 돈이 안 되어서 現實的으로 展示가 不可能했어요. 數百萬 願하는 作品을 팔아서 갤러리를 維持하기는 어렵거든요.그러다 뉴욕 對案空間에서 열리는 實驗的 展示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1999年 ‘사루비아 다방’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健康 惡化(癌 鬪病)로 손을 놓고 治療를 받은 뒤에 다시 工夫를 始作하고, 다시 非營利 對案空間인 ‘캔 파운데이션’을 만들었죠.”― 갤러리에서 非營利機關을 擇한 理由는 무엇인가요?“제 눈에는 갤러리 오너의 삶이 幸福해보이지 않았어요. 華麗하지만 論難의 中心에 서기도 하고…. 作品을 사라고 說得하는 것보다는 作家와 對話하고 일하는 게 더 재미있고 滿足度도 커서 ‘아 나는 이쪽이구나’ 했어요.물론 저도 비싼 옷 입고 最新型 車 몰고 그렇게도 하면 좋겠지만 關心이 잘 안가요. 只今 입고 있는 옷도 男性用 셔츠에요. 그냥 端正하게만 입고, 홈쇼핑에서 3+3 주는 옷 사는 게 좋고요.친구들이 갤러리를 열면 밀어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야 百 하나 살 바에 作家 度와’라고 하는게 더 좋아요. 그래서 제 選擇에 後悔는 없습니다. 勿論 사루비아 茶房을 하다가 몸이 아플 때 조금 後悔했지만 아마 花郞했으면 더 아팠을 거예요.(웃음)― 美術館이 낯선 一般 觀客에게 國立現代美術館은 어떤 機關이 될까요?“세대를 아우르는 展示를 꼭 해보고 싶습니다. 映畫를 보고 感動해서 울고 웃듯, 그런 感動이 있는 展示를 해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展示 序文과 說明글도 쉬워져야 하고 더 親切해져야겠죠. 그리고 觀客이 展示場에 오래 머물 수 있는 展示를 만들 생각입니다.”※ ‘令監 한 스푼’은 藝術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創意性의 事例를 中心으로 美術界 全般의 消息을 紹介하는 뉴스레터입니다. 每週 木曜日 아침 7時 發行됩니다.김민 記者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