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마이클 케인 分)는 有名 作曲家이자 指揮者다. 祖國인 英國을 거쳐 美國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오랜 期間 指揮者로 지냈다. 이제 나이도 여든이 다 됐고, 隱退를 생각하고 있다. 英國 王室의 積極的인 公演 要請이 있지만 더는 舞臺에 서지 않겠다고 決心한다. 그의 오랜 親舊인 믹(하비 카이틀 분)은 映畫監督이다. 믹은 프레드와 달리 只今도 次期作을 完成하려 애쓰고 있다. 시나리오는 거의 다 됐고, 往年의 스타 브렌다(諸人 폰다 分)만 出演하면 投資도 順調롭게 進行될 것이다. 두 男子는 여름을 맞아 스위스 다보스에서 함께 休暇를 보낸다.
파올로 소렌티노 監督의 ‘유스’는 죽음을 앞둔 두 老將 藝術家의 이 休暇를 다룬다. 소렌티爐의 映畫는 스토리 中心의 一般的인 映畫와 매우 다르다. 所謂 ‘에세이 필름’인데, 마치 필름으로 自己 생각을 整理하는 듯하다. 페데리코 펠리니 監督의 ‘8과 1/2’(1963)을 떠올리면 되겠다. 이야기보다 主觀的인 생각이 더 强調돼 있다. 이런 形式의 映畫로 大衆 觀客을 劇場으로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다. 할리우드 스타 숀 펜을 캐스팅한 소렌티爐의 前作 ‘아버지를 위한 노래’(2011)도 큰 呼應을 받지는 못했다(특히 韓國에서 그랬다). 그런데 如前히 自己 스타일을 固守한 ‘그레이트 뷰티’(2013)가 美國 아카데미 施賞式에서 外國語映畫賞을 받으며 소렌티노는 自己만의 形式을 가진 ‘아티스트’로 收容됐다. 그는 受賞을 契機로 自己 스타일을 더 밀어붙일 발板을 마련했고, 映畫 ‘유스’는 그 結果物이다.
‘유스’의 主人公은 每日 아침 ‘小便 잘 봤나’를 걱정하는 두 老人이다. 그런데 題目은 靑春을 의미하는 ‘유스’다. 映畫 背景이 世界的인 高級 休養地 다보스(世界經濟포럼이 열리는 곳)라 젊은 사람을 보기도 쉽지 않다. 이곳을 訪問하는 사람은 大部分 富者 老人이다. 畵面 中央에 자주 登場하는 老人들의 肉體는 衰殘하고 병들었으며 지쳐 보인다. 프레드와 믹度 그들 가운데 한 名이다. 마치 토마스 만의 小說 ‘魔의 山’에서처럼 이곳 사람들은 죽음의 運命 앞에 順應한 存在처럼 보인다(‘마의 山’의 背景도 다보스다). 畵面에 멜랑콜리가 넘치는 理由다.
‘靑春’의 意味는 逆說에 있다. 肉體的 老化와 精神的 靑春은 別 관계없다는 强調法이다. ‘유스’에 따르면, ‘두려움에의 挑戰’이 가장 讚揚받는 靑春의 美德이다. 이것은 劇 中 할리우드 스타 役을 맡은 폴 다노의 臺詞를 통해 强調됐다. 프레드가 隱退를 決心한 理由도 世上의 期待에 더는 副應하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 때문일 테다. 프레드는 새欌 속에 安全하게 保護된 새를 자주 바라본다. 그 새는 安全할지 몰라도, 날지 않는다면 이미 새가 아닐 것이다.
‘유스’의 마지막 場面은 프레드가 그런 두려움을 뚫고 觀客 앞에 다시 서는 瞬間이다. 프레드의 代表曲 ‘심플 송(Simple Song)’李 소프라노 조수미의 목소리에 依해 새처럼 멀리 날아갈 때 劇場 안 모든 사람은 ‘靑春’에 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