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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럭바위에 올라서니 ‘세연정’ 風光이 기막히네|주간동아

週刊東亞 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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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럭바위에 올라서니 ‘세연정’ 風光이 기막히네

南海 莞島 甫吉島

  • 글 ·寫眞 양영훈

    入力 2011-06-24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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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럭바위에 올라서니 ‘세연정’ 풍광이 기막히네

    蘆花島와 火興浦項 사이 뱃길에서 만난 무지개.

    너럭바위에 올라서니 ‘세연정’ 풍광이 기막히네

    孤山 尹善道가 조성한 부용동 定員의 洗然亭과 세臙脂.

    全南 莞島의 甫吉島는 孤山 尹善道(1587~1671年)의 오래된 樂園이다. 孤山은 丙子胡亂이 勃發해 王은 勿論, 王室 사람 모두 남한산성과 江華島로 避難했다는 傳喝을 받고 數百 名의 奴僕(奴僕), 義兵을 배에 태운 뒤 江華島로 向했다. 그런데 航海 途中 江華島와 남한산성이 陷落되고 仁祖가 送波 三田渡에서 맨발로 눈길을 걸어가 淸나라 太宗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悲報를 接했다. 이에 世上을 등지고자 마음먹고 濟州島로 向하던 孤山은 風浪을 만나 暫時 甫吉島의 荒原包에 避港했다. 甫吉島의 아름다운 山水에 魅了된 孤山은 “千石(泉石)李 絶勝하니 참으로 물외(物外)의 佳境(佳境)이요 鮮京(仙境)”이라고 感歎하면서 아예 눌러 살기로 作定했다. 그의 나이 51歲인 仁祖 15年(1637) 때 일이다.

    孤山은 自身이 定着한 곳을 부용동(芙蓉洞)이라 稱하고, 격자봉 기슭에 새로 집을 지어 落書再(樂書齋)라 명명했다. 그리고 落書再 건너便 山中턱에는 동천석室이라는 休息空間을 마련했다. 父母에게 많은 遺産을 물려받은 孤山은 부용동 庭園(尹善道 원림)을 精誠껏 꾸몄다. 85歲를 一期로 樂書齋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세연정, 曲手當, 무민當, 정성암 等 모두 25채의 建物과 亭子를 지었다. 特히 ‘세연정(洗然亭)’을 꾸미는 일에 대단한 精誠과 功을 들였다. ‘板石步’라는 굴뚝다리로 시냇물을 막아 2個의 蓮못을 만들고, 蓮못 사이에는 세연정 等의 亭子를 지어 多彩로운 景觀을 演出했다.

    孤山은 부용동에 들어온 以後에도 官職 復歸, 流配, 落鄕을 겪으며 浮沈(浮沈)을 거듭하다 마침내 81歲를 一期로 樂書齋에서 눈을 감았다. 高山이 世上을 뜬 뒤로 부용동 庭園은 한동안 廢墟로 放置됐다. 그러다가 1993年 부용동 定員의 中心인 洗然亭이 復元됐고, 그 뒤로 最近까지 山中턱 바위에 올라앉은 동천석실, 孤山이 講學하던 落書再, 孤山의 아들 學館이 休息空間으로 造成했다는 曲手當이 順次的으로 옛 모습을 되찾았다. 現在 甫吉島의 부용동 定員은 名勝 第34號이자 史跡 第368號다.

    現在 부용동 東區의 甫吉初等學校와 이웃한 洗然亭은 부용동 庭園에서도 原形이 가장 保存된 곳이다. 세연정 周邊에는 굵은 冬柏나무를 비롯한 갖가지 常綠樹가 鬱蒼해 四時四철 푸르다. 洗然亭의 樓마루 欄干에 걸터앉으면 세臙脂, 回收淡, 東臺, 서대, 板石步 等이 고스란히 視野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언제나 눈과 귀가 즐겁다. 周邊 風光이 철마다 다채롭게 달라지고,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너럭바위에 올라서니 ‘세연정’ 풍광이 기막히네

    예송리 깻돌海邊과 廣闊한 톳 養殖場.

    부용동 庭園을 찾은 이들은 大部分 세연정 一帶만 휙 둘러본 뒤 발길을 되돌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洗然亭은 부용동 庭園의 一部에 不過하다. 옥소癌, 落書再, 曲手當, 동천석室을 보지 않으면 부용동 定員을 半도 못 본 셈이다. 그中 옥소癌은 洗然亭에서 올려다 보이는 山中턱에 툭 불거진 너럭바위다. 板石步를 건너 비탈진 山길을 10餘 分間 오르면 이 너럭바위에 올라서는데, 세연정 一帶의 風光이 모두 視野에 들어올 程度로 눈맛이 爽快하다. 近來 復元된 落書재는 洗然亭에서 1.5km쯤 떨어진 적자봉(430m)의 北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落書再 入口에는 穀數糖이 있다.



    동천석실은 落書材와 마주보는 山中턱에 올라앉았다. 작은 개울에 놓인 다리를 건너고 冬柏나무, 소나무가 우거진 山길을 10餘 分間 오르면 展望臺처럼 훤하게 트인 巖壁 위에 다다른다. 바로 孤山이 ‘부용동 第一의 絶勝’이라고 稱頌했던 동천석室이다. 커다란 바위들에 둘러싸인 손바닥만 한 터에 한 칸짜리 작은 亭子 2채가 들어앉았다. 亭子에 올라서면 落書材와 적자봉을 비롯한 부용동 一帶가 거침없이 視野에 들어온다. 참으로 豪放하고 시원스러운 眺望이다. 발아래 부용동 골짜기에 비구름이나 안개가 낮게 깔리면 仙界(仙界)에 들어선 듯한 錯覺마저 든다.

    甫吉島에 本格的으로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始作한 때는 不過 270餘 年 前이라고 한다. 워낙 山地가 많다 보니 孤山이 隱居하던 부용동 外의 마을들은 바닷가에 터를 잡았다. 住民들도 논밭보다 바다에 더 依支해 生計를 이어간다.

    甫吉島에서 가장 큰 마을인 예송리度 적자봉의 南쪽 바닷가에 자리 잡은 갯마을이다. 農耕地는 別로 없어도 住民의 所得水準은 높은 便이라고 한다. 앞바다의 養殖場 德澤이다. 마을 앞에는 예작도, 黨舍도, 所安島, 祈禱(소섬) 等의 여러 섬과 與들이 점점이 떠 있어 먼 바다에서 밀려드는 波濤의 氣勢를 누그러뜨린다. 그 德에 예송리 앞바다는 湖水처럼 아늑하고 잔잔하다. 미역이나 톳을 養殖하기에 좋은 天惠 條件을 갖추었고, 每年 養殖場에서 거둬들이는 收入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近似한 예송리 常綠樹林(天然記念物 第40號)과 자잘한 깻돌로 뒤덮인 海邊이 한데 어우러진 風光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 예송리 깻돌海邊은 여름철에 海水浴을 즐기기에 좋고, 莞島八景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겨울철 해돋이를 鑑賞할 수 있는 名所로도 이름 나 있다. 그래서 四時四철 觀光客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住民들이 觀光客을 相對로 民泊집이나 飮食店을 運營해 벌어들이는 收入도 짭짤하다.

    예송리와 廳別船着場의 中間쯤에 자리한 중통리 海岸에도 海松숲과 모래 海邊을 거느린 통리海水浴場, 중리海水浴場이 있다. 交通, 民泊, 便宜施設이 잘 갖춰진 곳이라, 海水浴을 즐기기에 좋고 野營地로도 適合하다. 중리海水浴場을 지나 甫吉島의 東쪽 끝까지 걸어가면, 尤庵 宋時烈이 濟州島로 귀양 가던 길에 暫時 쉬면서 詩 한 數를 지어 새겼다는 ‘宋時烈 글씐바위’ 앞에 다다른다. 末年에 떠나는 귀양길의 설움이 묻어나는 試圖, 그 詩가 새겨진 바위 앞에서 바라보는 바다도 퍽 印象的이다.

    해가 설핏 기울 즈음에는 西쪽 海岸의 정자리나 보옥리로 서둘러 移動해야 한다. 정자리의 網끝展望臺와 보옥리 사이에 있는 海岸都市는 甫吉島의 西쪽 바다 및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해넘이와 落照를 鑑賞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깎아지른 絶壁 위로 난 海岸道路를 달리는 氣分도 날아갈 듯 爽快하다. 이 道路가 끝나는 보옥리 바닷가에는 步族山(195m)李 뾰족하고, 그곳의 南쪽 기슭에는 예송리의 깻돌海邊 못지않게 아름다운 몽돌海邊이 있다. 크고 둥글둥글한 갯돌이 마치 恐龍 알처럼 巨大하다고 해서 ‘恐龍알 갯돌밭’이라고 불린다.

    너럭바위에 올라서니 ‘세연정’ 풍광이 기막히네

    1 동천석室에서 누리는 시원스러운 眺望. 맞은便 山기슭에 落書裁可 있다. 2 近來 落書材와 함께 復元된 曲手當. 3 甫吉島의 西쪽 海岸에 位置한 恐龍알 갯돌밭.

    與/行/政/報

    ●宿泊

    부용동 庭園 隣近에 靑기와民泊(061-553-6303), 漁父四時詞民泊(061-553-5019)이 있다. 중리海水浴場과 통리海水浴場이 있는 중통리에서는 해그림펜션(061-553-6254), 솔밭펜션(061-552-2990)을 推薦한다. 예송리에는 高山山莊(061-553-6376), 靑松民泊(061-553-6542), 이레民泊(061-552-0423), 黃土韓屋펜션(061-553-6370), 선아네民泊(061-553-6417, 010-9422-6417) 等의 民泊집이 많다. 甫吉大橋로 連結된 蘆花島 耳目項에도 모텔 等의 宿泊施設이 많다.

    ●맛집

    廳別船着場 附近의 甫吉島醫아침(061-554-1199)은 海物된醬찌개, 바위섬膾집(061-555-5613)은 前복料理를 잘한다. 그 밖에 洗然亭膾집모텔(生鮮膾, 061-553-6782), 懸磬參戰복고기나라(全鰒粥, 061-552-6866) 等의 食堂이 廳別船着場 周邊에 몰려 있다. 甫吉島와 老化度는 우리나라 最大의 樣式 顚覆 生産地여서 低廉하게 顚覆을 購入할 수 있다. 顚覆 直賣場이 군데군데 있다.

    校/通/政/報

    ●莞島↔蘆花島

    莞島(火興浦項)에서 甫吉島에 가려면 먼저 蘆花島 洞天港까지 가는 카페리號를 타야 한다. 火興浦項에서 소안農協(061-553-8188, www.soannh.com) 所屬 카페리號(淸海鎭카훼리1·3·5號)가 하루 12回 往復 運航한다. 蘆花島와 甫吉島는 甫吉大橋로 連結돼 있다. 火興浦項에서 老化도 洞天項까지 約 35分 걸린다.

    ●海南↔蘆花島

    海南 땅끝船着場과 老化도 山良港 사이를 해광運輸(061-533-4269, www. haegwang.kr)의 張保皐號와 뉴張保皐號, 해광훼리2號가 하루 17回 往復 運航한다. 땅끝船着場에서 老化도 山羊項까지 30分 程度 所要된다.

    ●海南↔甫吉島

    海南 땅끝船着場에서 해광運輸의 해광훼리3號가 하루 3回(08:20, 12:30, 16:30) 出港한다. 甫吉島 廳別船着場을 經由해 老化도 耳目港까지 간다.

    ●섬 내 交通

    甫吉버스(061-553-7077)가 廳別船着場에서 隨時로 出發한다. 그리고 甫吉택시(061-553-8876) 所屬의 營業 및 個人택시도 있는데, 料金은 區間別 定額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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