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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健熙 생각法으로 산 德에 오늘의 내가 있다” [+映像]|新東亞

“李健熙 생각法으로 산 德에 오늘의 내가 있다” [+映像]

[經濟思想家 李健熙 探究?] 한용외 前 三星文化財團 理事長이 말하는 ‘未來와 心理를 꿰뚫어 보는 눈’

  • 허문명 記者

    angelhuh@donga.com

    入力 2023-12-0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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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世上을 1987年에 豫言하다

    • 앞으로는 ‘空氣’가 重要해진다

    • 核心은 本質이다, 本質을 파고들어라

    • 아픈 것도 서러운데 寢臺 差別 마라

    [+映像] 半導體 戰爭 中인 只今은 '李健熙' 다시 읽을 때



    서울 송파구 蠶室의 事務室에서 만난 한용외 前 三星文化財團 社長(現 人클로버財團 理事長)의 하루는 분주해 보였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電話와 行事 參席 要請으로 時間을 쪼개 살고 있는 듯했다.

    隱退 後 多文化家庭을 支援하는 人클로버財團을 만든 그는 ‘多文化家庭 家族寫眞을 찍어주는 할아버지’로 通한다. 한 달에 두 番씩 地方을 다니며 自願奉仕者들과 함께 家族寫眞을 찍어준 것이 14年째. 只今까지 6500餘 家口가 넘는다. 博士 論文도 多文化家庭 關聯 主題로 썼다. 多文化家庭 靑少年 敎育, 奬學 및 硏究事業度 한다. 2000年에는 大統領表彰, 2006年에는 國民褒章을 받았다.

    한 理事長은 1974年 삼성그룹 公採로 入社해 제일합섬을 始作으로 그룹 祕書室과 삼성전자 生活家電部門 社長, 三星文化財團·三星社會奉仕團·삼성복지재단 社長을 지낸, 뼛속까지 ‘三星맨’이다.

    經營學을 專攻하고 經理 監査 業務에 注力하다 以後 三星文化財團, 湖巖財團, 言論財團을 總括했으니 大企業의 財團 運營에 關한 限 國內에서 가장 많은 經驗을 가진 專門家라고 할 수 있다. 障礙人體育振興會 首席副會長度 지냈다.



    그는 三星에서 平生 한 일을 통해 福祉 活動에 關心을 갖게 됐고 이것이 隱退 後 삶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말한다. ‘李健熙 생각法’으로 산 것이 오늘의 自身을 있게 했다면서 말이다.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은 ‘이건희 생각법’으로 산 것이 자신의 오늘을 있게 했다고 말한다. [박해윤 기자]

    한용외 人클로버財團 理事長은 ‘李健熙 생각法’으로 산 것이 自身의 오늘을 있게 했다고 말한다. [박해윤 記者]

    디지털 世上을 豫言하다

    그와 마주 앉았다.

    李健熙 會長을 처음 만난 것이 언제인가요.

    “1980年에 祕書室로 發令받아 財務팀, 監査팀, 運營팀에서 일하다 1987年 1月에 삼성전자 水原工場 管理擔當으로 옮깁니다. 그해 말 湖巖 創業會長께서 돌아가시고 李健熙 會長님이 就任하신 直後 첫 番째 事業場 訪問으로 온 곳이 水原이었습니다.

    湖巖께서 살아 계실 때에는 副會長 資格으로 祕書室 會議에 參席해 늘 湖巖 옆자리에 陪席하셨을 때 뵈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이 全혀 없으셨고 個人的 對話를 나눈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앉아 계신 그 自體만으로 剛한 오라(aura)라고 할까, 存在感이 있으셨지요. 그러다 水原工場에서 만나 肉聲으로 指示 事項을 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했나요.

    “‘앞으로 世上이 ‘디지털’로 갈 것이니 對備하라’는 것이었습니다. 家電製品도 디지털 아니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저는 大學校 다닐 때 컴퓨터에 關心이 많아서 그 말씀의 뜻을 어렴풋하게나마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韓國 社會에서 ‘디지털’이란 單語를 이야기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 單語는 美國 실리콘밸리나 인텔 같은 企業에서나 나올 수 있는 얘기였지 우리나라에는 全혀 槪念이 없던 時節이죠. 저는 ‘會長님이 技術的으로 깊이 알고 앞을 내다보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속으로 놀랐습니다. 그날 會長님 말씀 以後 삼성전자 內에 ‘디지털 硏究팀’이 만들어졌습니다.

    家電製品을 設計하는 設計室度 둘러보셨는데 ‘製圖板을 다 치우라’고 하셨어요. 只今은 想像도 못 하겠지만 그때는 製圖板 위에 鉛筆과 者를 놓고 設計 圖面을 그리던 時節 아닙니까. ‘이제부터는 모든 걸 컴퓨터로 하라’며 없애라고 하신 거죠. 부랴부랴 職員들에게 캐드(CAD), 캠(CAM) 敎育하고 裝備 導入하고 그랬죠. 現場에서는 처음부터 익숙해질 수가 없죠. 한쪽 구석에 製圖板을 놓고 일하다 代表理事한테 들켜서 魂이 난 일도 있었습니다.”

    한 理事長은 ‘李健熙 생각法’의 두 가지 키워드로 ‘未來를 보는 눈’과 ‘心理를 꿰뚫어 보는 눈’이라고 했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

    “사람을 管理하는 能力은 여러 가지가 있죠. 知識일 수도 있고, 未來를 보는 眼目일 수도 있고, 相對方 心理를 꿰뚫어 보는 能力도 있고요. 그中에서도 會長님은 特히 未來를 보는 눈과 相對의 心理를 把握하는 눈이 뛰어나셨던 것 같습니다. 未來를 이야기할 때 그냥 말로만 ‘10年, 20年 後에 뭘 먹고살 것인지 準備하라’는 漠然한 指示가 아니라 眞짜 10年, 20年 後에 이 世上이 어떻게 變할 것인지를 當身 스스로 엄청나게 硏究하고 工夫하셨습니다. 美國과 日本 支社에서 보내오는 비디오테이프들을 보느라 밤에도 안 주무시는 날이 많았고, 그것도 한 番만 보는 게 아니라 數十 番씩 보는 거 같았어요.

    特히 日本에서 온 各種 다큐멘터리 映像物, 비디오테이프, 海外 技術資料를 보면서 ‘10年 後, 20年 後 서울, 韓國 더 나아가 世界는 政治·經濟·社會·技術 面에서 어떻게 變할까? 10年 後 三星은 어떻게 돼 있을까?’ ‘只今부터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하는 質問을 스스로 던지며 苦悶하고 想像하셨습니다.”

    그 豫測 中에 ‘디지털’도 있었던 거죠.

    “맞습니다. 앞으로 世上은 技術이 더욱 支配할 것이고 사람들은 더 便利한 것을 願하며 欲求도 바뀔 것이다, 10年 後에는 디지털 世上이 될 것이고 時代 흐름에 따라 電子製品도 디지털化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신 거죠. 이런 豫測은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습니까. 三星이 結局 半導體라는 業種을 選擇하고 集中해서 只今의 엄청난 成就를 이룬 것이 그 證據이고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産業의 板이 바뀔 것이라는 豫測을 無慮 36年 前에 하셨으니 대단하다는 말조차 不足하죠. 어떻든 會長님은 未來를 보는 눈이 普通 사람과는 달랐고, 이게 그냥 혼자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엄청난 工夫에서 비롯됐다는 걸 많이 經驗했습니다.”

    李 會長이 未來를 내다보는 先知者的 洞察을 가졌다는 것에 對해서는 다양한 證言이 있다.

    배종렬 前 제일기획 社長도 “1993年에 携帶폰을 만들기 始作했을 때 會長이 ‘잘되냐’ 물으시더니 ‘앞으로는 携帶폰을 全 世界 사람들이 제各各 하나씩 손에 쥐고 長男感처럼 갖고 노는 時代가 올 것이라고 하셨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처럼 이 會長과 가까이서 일했던 三星의 退任 任員들을 만날 때면 늘 생각의 軸이 ‘未來’에 있었다는 것이 共通된 傳言인데 한 理事長 말에서는 그것이 엄청난 沒頭와 工夫에 있었다는 것이어서 다시금 새삼스럽게 들렸다.

    앞으로는 ‘空氣’가 重要해진다

    2001년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만든 공기청정기를 한용외 이사장이 보여주고 있다. [허문명 기자]

    2001年 李健熙 會長의 指示로 만든 空氣淸淨器를 한용외 理事長이 보여주고 있다. [허문명 記者]

    한 理事長은 이 會長의 未來를 보는 眼目이 담긴 電子製品 事例 中 하나로 ‘空氣淸淨器’를 紹介했다.

    “제가 生活家電 擔當 社長을 할 때 이야기니까 2001年쯤 됐을 거예요. 어느 날 直接 電話를 하셔서 ‘空氣淸淨器를 만들어보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重要한 關心事는 ‘健康’ 問題가 될 것이다. 健康에 第一 重要한 게 뭔가? 空氣다. 그렇다고 모두 시골 가서 살 수는 없으니 都市 生活을 하면서도 空氣를 맑게 해주는 게 必要한데 바로 ‘空氣淸淨器’다.

    只今이야 空氣淸淨器가 必須 家電製品이 됐지만 當時만 해도 空氣를 室內에서 깨끗하게 할 수 있는 電子製品을 想像하는 사람은 別로 없었죠. 저희는 곧 製品 開發에 들어갔습니다.”

    마침내 ‘野心 차게’ 만든 샘플 製品을 이 會長 집으로 보냈다.

    “그게 바로 이겁니다.”

    한 理事長은 말하다 말고 앉아 있던 소파 옆에 原木으로 마감된 死角 形態의 電子 機械 하나를 가리켰다. 小型 冷藏庫 程度의 크기였다. 全員 버튼을 누르니 바람개비 模樣의 디스플레이가 켜졌고 換氣口를 통해 바람이 나왔다. ‘앤티크 空氣淸淨器’인 셈이다.

    試製品을 본 이 會長 反應이 어땠나요.

    “꾸중만 들었습니다. 저희들은 當時만 해도 室內 空氣를 깨끗하게 하는 製品을 살 程度의 消費者라면 生活의 餘裕가 있을 테니 高級지게 만드는 게 重要하다고 봤어요. 家口 槪念으로 생각한 거죠. 그래서 바깥 面을 高級 原木으로 마감하고 사람 가까이에 있는 게 重要하다는 생각에 소파나 寢臺 옆에 놓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電話機도 얹어놓고 스탠드도 놓을 수 있게 하고요. 그런데 會長님 첫 反應은 ‘촌스럽다’는 거예요. 機能이 아니라 디자인을 먼저 指摘하셔서 당황스러웠죠.”

    어떤 點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요.

    “저희한테 指示하기 前부터 디자인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等等을 생각하고 계셨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아파트나 住宅에 사는 都市人들의 生活空間이 좁다는 것을 먼저 念頭에 두신 듯 자리를 많이 차지하면 안 된다는 거였죠.

    會長님은 房구석 코너에 둘 수 있도록 길이는 길게, 幅은 좁게 만들어서 스페이스를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모던한 스타일을 생각하셨던 거예요. 요즘에 에어컨이나 空氣淸淨器가 다 그런 式이잖아요. 그걸 20餘 年 前에 이미 생각하셨죠. 10年, 20年 後에는 健康이 至大한 關心事가 될 것이고 그래서 깨끗한 空氣가 重要해질 것이라는 생각도 그대로 맞아떨어졌죠.”

    한 理事長은 “會長님은 ‘생각하는 사람’ ‘質問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생각을 해도 아주 깊게 하는 분이었죠. 저희들에게 끊임없이 ‘왜’라는 質問을 던졌는데 그것은 質問을 통해 여러 雜생각을 去頭截尾하고 本質로 바로 들어가라는 가르침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繼續 “왜” “왜” 하는 會長님 質問을 처음 받을 때는 당혹스러워서 쩔쩔매지만, 나중에 곱씹어 생각하면 ‘아 이런 말씀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옵니다. 그리고 指示대로 일을 하다 보면 空氣淸淨器 事例처럼 생각의 幅과 깊이에 感歎하는 經驗이 많았습니다.”

    한便 배종렬 前 社長은 이런 李 會長의 本質에 對한 穿鑿이 어릴 때부터 몸에 밴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會長으로부터 直接 들은 이야긴데, 初等學校 때부터 라디오는 勿論 새로 나온 電子製品이 있으면 다 뜯어보고 甚至於 손목時計도 分解해서 뜯어봤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原理가 어떻게 돼 있는 건지, 製品의 本質은 뭔지, 그만한 價格을 주고 살 만한 價値가 있는지, 이런 걸 생각했다는 거죠.”

    이건희 회장은 어릴 적 라디오는 물론 손목시계까지 분해해 볼 정도로 기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동아DB]

    李健熙 會長은 어릴 적 라디오는 勿論 손목時計까지 分解해 볼 程度로 機械에 對한 關心이 많았다. [東亞DB]

    20年間 湖巖 會議 陪席하며 쌓인 內功

    다시 한 理事長에게 눈길을 돌려 물었다.

    ‘李健熙 생각法’의 또 다른 키워드인 ‘心理學的 눈’이란 건 무슨 意味인가요.

    “相對方 마음을 꿰뚫어 보는 거죠. 例를 들어 누구와 얘기를 하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이 只今 무슨 생각을 하면서 내 얘기를 듣고 있구나, 무슨 생각으로 저런 對答을 하는구나를 아는 것 같았어요.”

    생각나는 에피소드라도 있다면.

    “한番은 任員 會議를 하는데 갑자기 한 名을 指目하면서 ‘A全無! 밖에 나가서 精神 차리고 들어와’ 하시는 거예요. 모두 온 神經을 集中해 會長 말씀을 듣는 中이어서 우리가 보기에는 A專務가 졸거나 딴청을 피우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말씀을 하셔서 놀랐죠. 나중에 會議가 끝나고 A專務가 우리에게 말하길 ‘집안에 일이 있어서 집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지?’ 하는 거예요.

    會長님은 다들 精神 바짝 차리고 듣고 있는 것 같아도 表情이나 눈瞳子만 봐도 當身이 하는 말에 集中하는지 아닌지 살피新 거죠. 熱心히 當身 이야기를 하면서도 參席者들 意中을 꿰뚫고 있다면 正말 무섭지 않습니까(웃음).

    이러니 敢히 누가 앞에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或如 辨明이나 거짓말을 하면 ‘當身, 只今 이러이러한 일 때문에 뭔가를 감추려고 하는 거지?’ 하실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때는 相對方 마음에 들어앉아 계신 것 같았어요. 無數히 많은 사람과 對話하고 그들을 觀察하면서 그 사람이 말하는 것과 實際 마음을 繼續 對比시키고, 나중에 그 사람이 反省하는 것이 있으면 反省하는 內容까지 包含해서 그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으니까요.

    밑에서부터 올라가면서 일을 배우신 것도 아니고 現場을 直接 經驗하신 것도 아닌데 現場에 있는 사람보다 現場을 더 잘 알고 계신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그런 想像力이 結局 消費者의 마음을 읽는 일로 이어졌다고 한다.

    “結局 비즈니스의 알파요 오메가는 消費者 心理를 把握하는 거잖아요. 會長님은 物件을 사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恒常 생각하셨어요. TV도 보고, 連續劇도 보고, 다큐멘터리도 보면서 ‘아, 物件을 살 때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구나. 物件 보는 눈도 男子와 女子가 이렇게 다르구나. 物件을 살 때 男子가 主導權이 있을까? 女子가 더 있을까?’ 이런 式으로 늘 窮理하고 工夫하셨어요.”

    이番에는 다시 배 前 社長 말이다.

    “會長님은 報告를 받을 때에도 報告書만 보시는 게 아니라 왜 이런 報告를 할까, 뭘 생각하는 걸까, 이런 걸 읽으신다고 하셨어요. 마치 큰 홀 2層에서 1層 舞臺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랄까. 저는 이 亦是 오랜 鍛鍊과 經驗에서 나온 것이라고 봐요. 거의 20年 동안 湖巖 創業會長님과 홍진기 會長님이 主宰하시는 會議에 들어가 한마디도 안 하고 陪席하셨잖아요. 會長님은 제게 ‘내가 많은 걸 봐왔다’고 直接 말한 적이 있어요. 거의 20年 동안 말씀 한마디도 하지 않고 會議에 參席한 社長들의 報告를 들으셨으니 報告하는 사람의 말套, 表情 이런 것을 다 느끼지 않았겠어요. 그런 點에서 누가 報告하면 왜 이런 報告를 하는지에 對해 大略 斟酌이 간다고 할 수 있겠죠.”

    배 前 社長은 이어 湖巖 創業會長도 그랬지만 이 會長에게 報告할 때 絶對 해서는 안 되는 一種의 不文律이 하나 있었는데 ‘辨明’과 ‘거짓말’이었다고 한다.

    “辨明도 싫어하셨지만 거짓말은 正말 容納되지 않았어요. 些少한 失手에 對해서도 嚴格하셨는데 ‘祕書가 茶盞 들고 오다 쏟는 格’이란 比喩를 했던 記憶이 납니다. 하지만 人間의 限界로는 어쩔 수 없는 일에 對해서는 限없이 통이 컸습니다.”

    ‘親切의 藝術化’

    李 會長의 新經營 宣言이 있은 直後 삼성그룹에서는 ‘新經營實踐委員會’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新經營 메시지와 李 會長의 哲學을 持續的으로 알리고 推進 過程을 모니터링하는 組織이다.

    新經營 宣言 4年 뒤인 1997年 6月 實踐위는 各 系列社 經營陣을 中心으로 700餘 名으로부터 新經營 實踐 事例와 關聯한 짧은 에세이를 받아 冊으로 냈다. 記者는 最近에 이 資料를 入手했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職種의 三星맨들의 眞率한 事例가 많이 담겨 있었다.

    消費者 마음을 읽기 위해 汨沒하던 李會長의 모습을 傳하는 한 理事長 말을 들으면서 여기에 나온 證言들이 생각나 덧붙이고자 한다(문장은 읽기 便하게 若干의 潤文을 했다. 職銜은 當時 것을 그대로 쓴다).

    李正姬 三星서울病院 看護婦 理事는 病院 開院을 앞두고 이 會長을 통해 消費者의 마음을 읽는 方法을 이렇게 배웠다고 말한다.

    開院을 앞두고 리허설 때 會長께서 오신다고 해서 釜山을 떨고 있을 때 일이다. 最尖端 診療 시스템과 國內의 어느 病院에도 없는 各種 便宜施設을 보여드리며, 超一流 病院을 志向하기 위해 이렇게 準備했노라고 自身 있게 말씀드릴 計劃이었다.

    드디어 會長께서 到着하셨다. 그런데 玄關을 들어서자마자 맨 먼저 하시는 일이 外來 診療 記錄紙를 直接 作成하시겠다는 것 아닌가. 患者 立場이 돼 몸소 시뮬레이션을 하신 것이다. 會長님은 記錄紙를 作成하며 “칸이 좁아 쓰기가 쉽지 않다”고 하셨다.

    病室을 돌아볼 때는 寢臺에 對한 指摘이 있었다.

    우리는 特室에 外國産 全東 寢臺, 1~2人室에는 國産 全東 寢臺, 多人室에는 手動 寢臺를 設置했다. 機能은 비슷하지만 便利한 程度에 조금씩 差異가 있었다. 나를 包含한 任職員 大部分은 入院費에 따라 그 程度 寢臺 差等은 當然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장은 “돈 없는 사람이 아픈 것도 서러울 텐데 寢臺까지 差別해서야 되겠는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企業人은 經濟的 損益에만 關心을 갖고 있다고 平素 생각해 온 나는 會長의 섬세하고 人間味 넘치는 마음 씀씀이에 놀랐다. 이날을 契機로 내가 果然 會長의 顧客 中心 思考를 얼마나 좇아가고 있나? 數없이 自問했다. 한마디로 ‘會長은 머리요, 나는 손발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眞正한 親切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했다. 그 結果 購買의 藝術化, 丈人의 藝術化를 내건 會長님 말씀처럼 看護팀의 그해 目標를 ‘親切의 藝術化’로 定했다.

    藝術과 技術의 差異는 뭘까. 그 속에 생각이나 뜻, 哲學 等을 凝縮시킨 ‘魂(魂)’이 들어가 있는지 없는지에 있다고 본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나 行動으로 表現되는 親切이라야 ‘藝術’이라고 할 수 있다.

    顧客에게 儀禮的인 웃음이나 職業人으로서 갖는 義務的인 關心이 아닌 人間愛를 바탕으로 魂이 들어 있는 精誠을 베풀어야 한다. 會長이 그날 보여준 行動과 말씀은 ‘親切의 藝術化’를 實踐하는 데 確實한 가이드였다.


    은퇴 후 다문화가정을 돕는 복지단체를 만들어 운영하는 한용외 이사장. [박해윤 기자]

    隱退 後 多文化家庭을 돕는 福祉團體를 만들어 運營하는 한용외 理事長. [박해윤 記者]

    立體的 思考

    한 理事長이 또 言及한 李健熙 생각法 키워드는 ‘立體的 思考’다.

    “會長님께서 한番은 다큐멘터리 테이프로 工夫를 하려면 한 ‘100番은 봐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같은 映畫를 여러 番 보라는 말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는 저도 들은 적이 있는데 100番이나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마 100番은 못 볼끼다. 한 50番 볼라나. 그것도 힘들제. 그러면 스무 番이든 서른 番이라도 봐라’고 하셨어요. 그런 方法을 통해서라도 思考力을 끌어올리려는 意圖가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會長님은 ‘처음에 볼 때는 스토리만 들어오지만 反復해서 보다 보면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고 하셨어요. 이 말씀을 저 나름대로 意譯하자면, ‘처음엔 主人公만 보이지만 繼續 보다 보면 助演이 보이고 스무 番쯤 보면 空間과 事物들의 配置, 舞臺가 된 周邊 環境 雰圍氣,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눈에 들어온다’는 거죠.

    例를 들어 畵面 背景에 강아지가 지나가는 場面도 反復해서 보다 보면 그게 演出者의 意圖였는지 아니면 偶然히 카메라에 잡힌 것인지까지 보이는 瞬間이 온다는 겁니다. 反復해서 보다 보면 더 생각하게 되고 解釋하게 되면서 視野가 넓고 깊어진다는 趣旨로 받아들여졌습니다.”

    實際로 이 會長은 프랑크푸르트 新經營 會議에서 “日本 歷史를 알기 위해 45分짜리 비디오테이프 마흔다섯 個를 數十 番 보기도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電氣 映畫는 30番,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0番, 오다 노부나가는 5~6番 보았다. 지난 10年 동안 動物의 世界나 人間 心理, 科學, 컴퓨터, 技術 等 經營에 必要한 비디오나 TV 프로그램도 빼놓지 않고 봤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便 배 前 社長은 이 會長이 映像物을 反復해서 보는 것을 유난히 强調한 것에 對해 이렇게 말했다.

    “當身 스스로 자라난 環境이 一般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間接體驗을 통해 一般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나 思考方式을 理解하려고 한 當身만의 方式이었던 것 같습니다. 新經營 宣言 때도 國內 드라마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한番 하시면 두세 時間이 훌쩍 흘렀습니다. 監督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映畫나 드라마를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에서부터 저 家具가 왜 저기에 있을까, 照明을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본다고 하셨어요.”

    上下左右 살필 줄 아는 能力

    立體的 事故와 關聯해 實踐위가 펴낸 新經營 變化 事例집에서 두 사람의 證言을 追加하고 싶다. 문대윤 三星物産 印度 뉴델리 常務의 證言이다.

    三星物産 자카르타 支店長으로 일할 때다. 1989年 1月이었는데 會長이 東南亞 地域 出張 中 맨 처음 日程으로 인도네시아를 訪問했다.

    空港에서 모시고 市內로 들어가는 데 車 안에서 갑자기 會長이 ‘인도네시아 大學生 數가 몇 名인가?’라고 물었다. 多幸히 事前에 把握해 두어서 어렵지 않게 말씀드릴 수 있었지만 왜 大學生 數를 먼저 물으시는지 理解할 수 없었다.

    疑問은 이튿날 인도네시아 最大 企業인 살림그룹 會長과 午餐하는 자리에서 풀렸다. 會長은 大學生 數를 基本으로 그 나라의 社會 및 産業의 全般的인 水準과 向後 發展 方向을 診斷, 豫測하는 바를 말씀하셨다.

    하나의 指標를 갖고 立體的 分析을 통해 한 國家의 産業을 診斷하고 處方하는 것을 보며, 立體的 思考의 重要性을 크게 깨달았다.

    다음 날에는 市內에서 한 時間假量 떨어져 있는 去來處(YASHINTA)의 纖維工場 訪問이 豫定돼 있었는데 날씨도 너무 덥고 交通滯症도 深海서 躊躇하며 ‘工場 水準이 우리와 比較하면 많이 떨어집니다’라고 말씀드렸다. 如此하면 取消할 수도 있다는 意味였다. 하지만 會長은 ‘어느 程度인지 直接 가서 봐야 알 것 아닌가?’라며 一蹴하고는 길을 나섰다.

    인도네시아 工場 사람들은 우리를 極盡히 歡待했다. 訪問이 끝나고 會長이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나를 極盡히 歡迎하는 理由가 뭔 줄 아는가?’라고 했다. 對答을 못 하고 있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技術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技術을 願하고 있기 때문에 저토록 나를 歡迎해 준 것이다. 제일합섬을 만들 때 日本 도레이에도 우리가 저 사람들처럼 至極精誠으로 했다’고 했다.

    하나를 보더라도 關心을 갖고 分析하면 더 많은 것이 더 깊이 있게 보이는 法이다. 事物의 本質을 보고 根本을 理解하며, 깊이 보고 깊이 생각하는 思考를 가질 수 있도록 平素에 訓鍊해야 되겠다고 다짐하는 契機였다.



    한便 이예민 三星電子 멀티미디어本部 代表는 이 會長와 함께 映畫 觀覽을 한 적이 있다며 이런 에피소드를 傳하고 있다.

    1986年 會長이 美國 現地 工場을 訪問했을 때 일이다. 會長은 事務室 壁이 덩그러니 비어 있는 것을 보고 索莫하다며 ‘우리나라 東洋畫 좋은 것이 좀 많은가? 우리 文化와 慣習, 風習 等을 알릴 兼 西洋化와 나란히 걸어놓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든 經營은 사람으로부터 나오는데 東西의 融和는 文化·情緖의 融和부터 始作되는 것’이라면서 文化의 重要性을 强調했다.

    마침 點心時間이 됐다. 나는 會社 食堂이 초라하다고 생각해서 近處 쇼핑타운 中國집에 豫約을 해놓고 “午餐은 近處 中國집에 마련했습니다”고 했다.

    그랬더니 “뭐라고? 精神 나간 사람 아닌가. 우리 食堂 놔두고 거길 왜 가나?’” 하시는 것 아닌가. 나는 “저희 食堂이 너무 초라해서요. 簡單하고 차가운 飮食밖에 없습니다” 했더니 會長은 “우리 職員들이 다 먹고 있는데 나도 먹어봐야 할 것 아닌가” 하셨다. 그러더니 從業員들이 줄 서 있는 맨 끝으로 가서 次例를 기다렸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後 水原 工場에서 勤務하고 있을 때에도 會長이 訪問해 化粧室과 食堂을 둘러보고 問題點을 指摘한 일이 있었다. 그때도 會長의 知的 事項을 곧바로 改善해서 從業員 滿足度를 높였던 記憶이 새롭다.

    한番은 뉴욕 駐在員들과 함께 브로드웨이의 한 映畫館에서 ‘죠스’를 함께 본 적이 있다. 會長은 스토리 自體만 볼 것이 아니라 俳優들의 役割, 照明, 그 뒤 스태프들 움직임까지 들여다보라고 했다. 모든 걸 立體的으로 보면 더 깊고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거였다. 映畫를 다 보고 우리는 食堂으로 걸어가면서 自然스레 映畫에 關해 많은 對話를 나눌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消化도 시킬 兼 걷자고 하셔서 호텔까지 걸었다. 그때 會長은 道路邊 쇼윈도를 보면서 “商品 陳列 狀態를 봐라. 建物도 보자. 우리가 배울 것은 없는가”라며 有心히 觀察했다. 호텔에 到着해서도 “當場 내 業務에는 該當 事項이 없다고 해도 인테리어나 서비스를 例事로 보아 넘기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그런 會長을 통해 훌륭한 經營者는 이처럼 여러 角度에서 立體的 思考를 해야 하며, 事物을 보는 눈과 생각이 어느 좁은 한 곳이 아니라 全體를 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周邊에게 나누는 情報 共有의 重要性을 배웠다.


    上下左右 살필 줄 아는 能力

    1989년 12월 29일 삼성의 1호 어린이집 천마어린이집 개원 모습. [동아DB]

    1989年 12月 29日 三星의 1號 어린이집 天馬어린이집 開院 모습. [東亞DB]

    한便 소병해 三星火災 相談役은 이 會長의 立體的 思考를 ‘上下左右 狀況을 함께 생각하는 習慣’이라고 消化해서 實踐했다며 이렇게 말한다.

    “會長은 事物이나 社會現象을 깊이 探究하고, 끊임없이 變化를 追求하는 性品을 지녔다. 무슨 일이든 3~4段階 내려가 보면 根本, 根源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그 過程에서 무슨 變數가 作用했는지 깊이 汨沒해 하나하나 追跡해 가다 보면, 좋은 結果든 나쁜 結果든 原因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會長은 비디오를 볼 때도 좀 異常하거나 特異한 場面이 있으면 그 背景까지 깊이 파고들어, 왜 저렇게 設置했는지, 저것이 實物인지 映像 處理限 것인지까지 찾아보기도 했다. 全體가 把握되지 않는다거나 或은 그 테이프에 담긴 메시지가 좋고 意味가 있을 때는 5番이든 10番이든 反復해서 본다고 直接 얘기한 적이 있다. 그만큼 깊이 보고 깊이 생각하는 生活을 日常化하고 있었다.

    ‘立體的 思考’라고 하면 어렵게 생각하는 傾向이 있는데 달리 말하자면 어떤 事案에 對해 ‘上下左右 狀況을 함께 생각하는 習性’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하면 每事 남을 생각할 줄 알고, 사랑을 베풀 줄 아는 人間味 넘치는 사람으로 成長하게 될 것이다. 核家族에서 자란 아이들이 利己的이고 自己中心的이며 情緖的으로 메말라가는 것을 純化시키는 效果도 있을 것이다. 會長은 愛玩犬을 기르는 일처럼 單純하게 여길 수 있는 일에서도 한 部分만 생각하지 않고 複合的으로 크게 생각함으로써 社會에 도움이 되는 哲學으로 正立하고 있다.”

    소 相談役 말처럼 이 會長이 말한 立體的 思考란 요즘 말로 하면 共感이나 疏通 能力과도 連結된다. 소 相談役은 이 會長이 말한 立體的 思考의 代表 事業으로 託兒所 事業을 들었다. 李 會長은 1988年 末頃 託兒所 事業을 指示하는데 이 亦是 複合的 想像力에 基盤한 것이라는 게 소 相談役 말이다. 그가 傳하는 이 會長의 肉聲이다.

    “달동네같이 어려운 곳에 託兒所를 지어 어린이들이 健全하게 자라고, 父母가 安心하고 맞벌이로 就業할 수 있도록 해주면 生活도 安定되고 子女도 正常 敎育을 받게 될 것이다. 맞벌이 就業으로 家計所得이 올라가면 달동네를 빠져나오게 돼 社會 全體의 附加 再分配되는 效果도 나타날 것이다. 企業 利益의 社會 還元이란 말을 많이 하지만, 돈을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自立 基盤을 마련하도록 돕는 것이 健全한 社會로 發展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1席5條의 效果 아닌가.”

    어린이집 事業의 1席5兆 效果를 强調한 이 會長은 말에 그치지 않고 行動에 나섰다. 1980年代 後半만 해도 瘠薄했던 우리나라 어린이집 事業에 뛰어든 것이다. 그 中心에 한용외 理事長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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