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太初에 커피나무가 있었다!|신동아

〈새 連載〉 바리스타 朴英淳의 커피 人文學

太初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커피,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갔을까

  • 朴英淳 | 바리스타, 경민대 호텔外食調理學科 兼任敎授 twitnews@naver.com

    入力 2016-05-24 14:52:30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人類는 커피를 正말 사랑한다. ‘世上에서 原油 다음으로 物動量이 많은 原資材’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韓國人에게도 커피는 물처럼 많이 마시는 飮料다. 成人 1人當 1年에 484盞을 마신다. 그런 커피에 對해 우리는 얼마나 알까. 커피가 주는 幸福은 맛과 香뿐만이 아니다. 커피는 그 뛰어난 香味만큼이나 豐盛한 이야기를 피워내는 妙한 魔力을 지녔다.
    커피는 누가 언제부터 먹기 始作했을까. 이를 두고 에티오피아와 예멘은 오래도록 競合을 벌였다. 아프리카(에티오피아)냐 아라비아 半島(예멘)냐, 그리스도 國家(에티오피아)냐, 이슬람 國家(예멘)냐의 自尊心이 걸린 論爭이기도 했다. 攻防 끝에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由來했지만, 最初로 栽培한 곳은 예멘”이라는 쪽으로 折衷案이 나왔지만, 모를 일이다. 언제 어떤 숨은 이야기가 튀어나올지….

    記錄된 歷史가 반드시 眞實이라곤 할 수 없다. 어떤 歷史는 누군가가 꾸며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더욱이 記錄하는 者가 事件의 當事者라면 自身에게 유리한 狀況으로 記錄을 남기려는 誘惑에 빠지리라.



    칼디의 傳說

    커피 入門者들이 가장 먼저 接하는 재미난 이야기는 ‘鹽素知己 칼디(Kaldi)의 傳說’일 것이다. 內容인즉 이렇다.

    “아주 먼 옛날, 에티오피아의 溪谷에 칼디라는 牧童이 살았다. 염소를 溪谷에 풀어놓았는데, 어느 날 늙은 염소가 힘이 솟구치는 듯 活潑히 움직이며 젊은 염소들을 制壓하는 게 아닌가. 가만히 살펴보니, 빨간 열매가 에너지의 源泉이었다. 늙은 염소는 빨간 열매를 먹으면 기운차게 움직였다. 칼디는 그 理由가 궁금해 열매가 많이 달린 가지를 꺾어 마을의 지혜로운 사람(大體로 ‘修道僧’으로 記錄함)에게 가져다줬다.



    칼디는 ‘어르신! 염소가 이 열매만 먹었다 하면 날뜁니다. 理由를 알려주세요’ 라고 請했다. 지혜로운 字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거기에 두고 가거라’ 했다. 며칠이 지나 칼디가 지혜로운 者를 다시 찾았다. 그는 칼디를 보자마자 버선발로 뛰어나와 칼디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는 ‘열매를 더 갖다달라’고 哀願했다. 그 열매를 먹고는 밤새 졸지 않고 祈禱를 잘 올렸다면서 마치 열매에 中毒된 듯한 表情을 지었다.”

    칼디의 傳說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우리네 口傳童話 같은 이야기인데, 커피의 起源을 說明하는 定說처럼 굳어졌다. ‘칼디’라는 이름을 내건 카페나 원두 商標를 世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칼디가 어느 時代 사람이고, 언제부터 그들이 커피氏를 볶는 法을 깨우쳤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커피가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 傳해진 9世紀보다 훨씬 以前이며, 어쩌면 紀元前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커피의 起源과 關聯해 칼디나 에티오피아가 言及되면 그 時期를 具體的으로 적지 않고 ‘아주 먼 옛날’이라고만 한다.

    칼디에 對해 말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記錄으로 傳해지면서 歷史的 事實처럼 커피 愛好家들을 매료시킨다. 비록 칼디가 우리를 官能的으로 幸福하게 만드는 커피의 향미와 直接的인 關聯은 없지만, 칼디의 存在 德分에 커피 마시는 자리의 이야깃거리는 더욱 豐盛해진다. ‘스토리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버전으로 傳해지는 칼디 이야기의 虛點을 파고 들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칼디를 羊치기라고 해놓고는 커피 체리를 먹고 춤추는 염소를 봤다고 말하는 矛盾. 2~3世紀의 일이라면서 칼디가 이슬람 修道僧에게 커피를 傳했다는 歷史的 錯覺. 마호메트가 이슬람敎를 創始한 것이 610年이니, 7世紀 初 以前엔 이슬람 修道僧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에티오피아 起源說

    우리도 이런 失手를 저지른다. 1896年 俄館播遷 때라면서 高宗皇帝에게 융드립한 커피를 提供하는 어느 映畫 속 한 場面은 커피 愛好家들을 虛脫하게 만든다. 커피를 필터링海 마시는 것은 그로부터 12年 뒤인 1908年 獨逸의 멜리타 女史가 道具를 만듦으로써 可能해졌다.

    어쨌든 아랍의 적지 않은 歷史學者가 自身들의 論文이나 著書에 칼디를 예멘의 牧童이라고 記錄하고 있다. 世界人을 熱狂시키는 커피가 ‘자랑스러운 이슬람의 文化’라는 論理를 完成하려면 커피의 起源 亦是 이슬람 國家 어느 곳이 必要했을 것이다.

    그러나 眞實은 歲月이 드러내주는 法. DNA 分析을 통해 커피나무의 起源이 아랍人들이 主張하듯 人類史에서 커피를 처음 耕作한 自身들의 땅 예멘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高原이란 事實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힘을 잃고 말았다. 只今 이 瞬間에도 에티오피아 高原에선 在來種 커피나무가 續續 發見된다. 커피의 起源地라고 말하려면 이처럼 元宗(native variety)이 있어야 說得力을 지닌다.

    에티오피아는 3000年 前 이스라엘의 솔로몬王과 시바의 女王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메넬리크 1歲가 初代 皇帝가 됐다는 建國神話를 가진 그리스도 國家다. 只今도 크리스마스에 염소를 잡아 家族과 함께 나누며 祝賀하는 風習이 있다. 에티오피아가 外勢의 支配를 받은 것은 16世紀 이슬람 敎徒에게 14年, 20世紀 이탈리아에 5年뿐이다. 앞서 6世紀쯤엔 當時 아비시니아(現在의 에티오피아)가 예멘을 包含한 아라비아 南部地域을 攻擊했다. 아마도 이때 예멘으로 커피가 傳播됐을 것이란 게 에티오피아의 視角에서 본 커피의 歷史다.

    그렇다면 에티오피아인은 왜 커피의 起源에 對한 自身들의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야기를 만들긴 했지만 퍼트리지 못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4大 커피 起源說(뒤에서 說明하기로 한다) 中 칼디, 오마르, 마호메트의 傳說은 ‘커피의 覺醒效果’를 土臺로 이슬람 쪽에서 만든 이야기라고 본다. 나머지 하나인 에티오피아 起源說은 覺醒效果가 아니라 ‘에너지 源泉으로서의 커피’에 焦點을 맞춘 이야기로 흐른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由來說은 記錄이 아니라 口傳人 탓에 生命力을 지니기엔 不足했다.

    커피의 起源에 對한 人類의 첫 記錄은 이탈리아 로마臺 言語學 敎授인 안토니 파우스트 나이로니가 1671年에 쓴 ‘잠들지 않는 修道院’이다. 이 冊에 “이슬람 修道僧이 칼디가 준 커피 열매의 쓰임새를 몰라 불에 내던졌는데, 氣分 좋은 香이 나자 볶은 콩을 갈아 따뜻한 물에 타서 먹었다”라고 적혀 있다. 칼디 때 이미 커피氏를 볶아 먹는 段階를 깨우쳤다는 말인데, 飛躍이 이 程度면 대단한 이야기꾼임에 분명하다. 이 이야기는 1922年 커피의 起源을 深度 있게 追跡한 윌리엄 유커스의 ‘커피의 모든 것(All About Coffee)’에 引用되면서 定說처럼 됐다.

    反面 에티오피아 起源說은 “커피나무 열매를 다른 穀類와 함께 갈아 食糧으로 먹었다”는 記錄 말고는 別 재미가 없다. 그렇다보니 칼디나 오마르, 甚至於 至極히 宗敎的인 마호메트 起源說보다도 波及力이 떨어졌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起源說은 뿌리가 더 깊고 이야깃거리도 豐盛하다.

    커피 그 自體에 對한 첫 記錄은 나이로니보다 700年 以上 앞선 西紀 900年쯤 페르시아 醫師 라제스가 남겼다. 그는 커피를 ‘番컴(Bunchum)’이라고 적었는데, ‘따뜻하면서도 독한, 그러나 胃腸에 有益한 飮料’라고 表現했다. 이어 1000年頃 무슬림 醫師이자 哲學者인 아비세나는 커피나무와 牲豆를 ‘粉(Bunn)’, 그 飮料를 ‘番컴’이라고 區別해 적으면서 藥理效果度 記述했다.

    두 사람의 記錄은 커피의 起源地가 에티오피아임을 强力히 뒷받침한다. 地球上 어디를 뒤져도 커피를 ‘紛拏(Bunna)’ ‘부나(Buna)’ ‘粉’ ‘番컴’이라고 부르는 곳은 에티오피아밖에 없다. 커피 原産地로 꼽히는 에티오피아의 카파(Kaffa)에선 只今도 커피를 指稱할 때 ‘c’나 ‘k’는 發音조차 하지 않는다. 에티오피아인들이 스토리텔링을 잘했다면 커피는 오늘날 番컴으로 불렸을지 모른다. 에티오피아인들 사이에 傳해지는 커피 起源泄道 꽤 興味롭다. 事緣은 이렇다.


    勝利의 象徵? ‘커피 撞球공’

    에티오피아에 소를 키우며 사는 갈라(Galla)족이 있었다. 遊牧民인 이들은 자주 移動해야 했기에 簡便하게 지니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것을 잘 만들었다. 그러던 中 체리처럼 빨간 열매를 씹으면 힘이 난다는 事實을 알게 됐다. 열매를 통째로 먹다가 그것의 에너지가 씨앗에 濃縮돼 있음을 깨닫고, 오랜 歲月을 거쳐 열매를 動物性 기름과 섞어 볶아 撞球공처럼 뭉쳐 가지고 다니며 힘을 써야 할 때 꺼내 먹었다.

    이 方法은 여러 面에서 有用했다. 사냥을 하거나 새 住居地를 찾으려고 山속을 헤맬 때 ‘커피 撞球공’은 非常食糧으로 제格이었다. 입에 쏙 넣으면 곧 에너지가 불끈 솟아오르고 集中力도 바짝 높아지는 커피의 놀라운 能力은 다른 不足과의 戰鬪를 앞뒀을 때 더욱 要緊했다. 칼디 時節에 에티오피아 部族들은 大部分 遊牧民이었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 住居地를 옮겨야 했기에 不足 間 摩擦이 일었고 크고 작은 戰鬪는 不足의 生存을 위해 不可避했다.

    목숨을 건 戰鬪를 앞두고 各 部族은 커피의 覺醒效果를 높이는 方法을 찾기에 汨沒했다. 戰鬪에 앞서 커피를 마시는 성스러운 意識(儀式)도 생겨났다. 意識은 커피 마시는 方法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들은 그 效果가 氏에 濃縮돼 있음을 깨닫고 씨만 골라내 볶기 始作했다. 그 過程에서 피어나는 氣分 좋은 香氣는 승리에 對한 自信感을 키웠고 ‘톡톡’ 터지는 크랙 소리는 그들에게 勝利를 約束하는 神의 應答이었다.

    갈라族은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커피 撞球공 食文化’를 퍼트린다. 갈라族보다 高地帶에 살던 오로毛族에게 커피가 傳해지면서 새로운 轉機를 맞는다. 커피나무는 海拔高度가 높을수록 향미가 좋아진다. 오로毛族이 더 좋은 커피 열매를 求하게 되면서 커피를 즐기는 文化는 急速히 퍼져나갔다.

    에티오피아를 ‘커피의 故鄕’이라고 일컫는 것은 人類의 起源을 아프리카로 보는 觀點과 비슷하다. 遺傳學的 側面에서 母系 遺傳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역추적해 家系圖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아프리카 大陸의 한 女性이 現 人類의 祈願이란 事實이 드러났다. ‘미토콘드리아 이브(Mitochondria Eve)’라고 命名된 이 女性은 約 20萬 年 前에 살았던 것으로 推定된다.

    이보다 오래된 物證은 化石인데, 에티오피아의 下다르 溪谷에서 發見된 350萬 年 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뼈 化石이 그것이다. 發掘團이 當時 비틀스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다이아몬드를 지닌 하늘의 루시)를 듣고 있다가 發見한 것이 因緣이 돼 ‘루시’라는 이름을 얻은 이 化石의 主人公은 女性이었다. 現在까지 人類의 起源으로 待接받는다. 루시가 發掘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커피가 처음 發見된 地域으로 알려진 카파가 있다. 오늘날엔 짐마(Djimmah)라고 불린다.



    ‘生命의 故鄕’ 에티오피아

    45億 年인 地球 나이를 24時間으로 假定하면 루시를 先頭로 人類가 登場하기 始作한 것은 午後 11時 58分이다. 地球 歷史 24時에서 人類가 登場한 것은 不過 2分 前의 일이다. 하물며 커피가 發見(6~7世紀로 推定)된 지는 눈 깜짝할 사이보다 짧은 100分의 4秒를 지나고 있을 뿐이다.

    커피나무는 아마도 人類보다 훨씬 먼저 生命力을 얻어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險峻한 山岳地帶로, 只今까지도 人間의 손이 닿지 않은 깊은 溪谷이 많다. 植物學者들이 새로운 種子를 찾기 위해 몰려드는 곳이 에티오피아이고, 3000餘 種의 種子가 그 由來를 에티오피아에 두고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 發見된 커피가 世界 各地로 퍼지면서 커피 品種의 多樣性은 深刻한 水準으로 떨어졌다. 生産性을 높이는 方向으로만 品種 改良이 이뤄진 탓이다. 品種의 劃一化는 種의 保存이라는 側面에서 보면 매우 危險한 일이다. 그렇기에 野生 品種을 發見하려는 努力이 必要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커피의 起源地 에티오피아가 갖는 眞正한 價値다.

    壓달 카디르가 1587年에 쓴 ‘커피의 合法性 論爭과 關聯한 無罪 主張’이란 文獻이 있다. 프랑스 國立圖書館에 保管된 이 文獻에 칼디와 오마르(Omar)가 처음으로 言及된다. 칼디에 對해선 時期를 적지 않고 이집트 北部 또는 아비시니아 地方의 鹽素知己라고 紹介하면서, 그에게서 열매를 받은 修道院 院長이 效能을 알게 된 後 修道士들에게 커피 열매 達人 汁을 마셔 밤새 企圖하게 했다고 적었다.

    이슬람圈에서 칼디의 傳說은 ‘不免(不眠)의 修道院’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오마르에 對해선 1258年이라고 時期를 못 박으면서 病을 治療하기 위해 커피 열매를 달여 마신 事緣을 적었다. 마호메트가 大天使 가브리엘을 통해 커피 열매를 알게 됐다는 이른바 ‘마호메트 起源說’은 그 出處를 알 수 없다. 무슬림들 사이에 口傳돼 神話로 굳어진 듯하다.



    마호메트의 커피

    커피의 由來에 關한 에티오피아의 멋진 스토리텔링에도 不拘하고, 에티오피아 起源說은 이슬람 文化圈의 메카를 訪問하는 ‘下肢(Hajj)’라는 風習에 무릎을 꿇고 만다. 當時 ‘커피를 몸속에 넣고 죽는 者는 地獄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스토리가 만들어져 커피는 瞬息間에 全 世界 이슬람 國家에 퍼졌고, 結局 커피는 이슬람의 文化가 됐다. 그리스도 國家인 에티오피아가 커피의 元祖이면서도 主導權을 잡지 못한 歷史的 事實은 一面 “콘텐츠가 아무리 좋아도 流通(傳播)李 弱하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敎訓을 준다.

    커피가 마호메트에서 由來했다는 이야기는 宗敎的이어서 커피 關聯 敎材에선 言及만 할 뿐 具體的으로 紹介되지 않는다. 要旨는 이렇다.

    “마호메트가 洞窟에서 遂行을 하는데, 거의 죽을 地境이 됐다. 精神이 昏迷해지고 氣力이 다해가는 狀況에서 大天使 가브리엘이 나타나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로 案內했다. 열매를 따먹은 마호메트는 氣力을 回復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2年間 가브리엘 天使가 꿈에 나타나 따라 읽으라며 이야기를 해주는데, 살아가는 데 매우 緊要한 것이었다고 한다. 마호메트는 꿈에서 깨면 天使가 해준 말을 잊지 않도록 羊皮에 적었다. 이것이 코란(Koran)이 됐다.” ?

    이슬람 國家에선 커피의 由來가 마호메트 以前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따라서 무슬림에게 커피는 아무리 일찍 잡아도 7世紀를 넘지 못한다. 마호메트는 570年 4月 메카에서 이 地域을 支配하던 쿠라이시족의 河心(Hashim) 家門에서 태어났다. 遺腹子라 三寸과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이 部族은 舊約에 登場하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일의 子孫이라고 主張한다. 아브라함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의 直系로 描寫되며, 따라서 마호메트는 하느님(무슬림에게는 알라)이 創造한 聖스러운 아담의 핏줄이 된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 祭壇을 짓고 알라신에게 祈禱를 올렸는데, 노아의 方舟를 거치면서 痕跡이 사라졌다. 그것을 다시 찾아 神殿으로 꾸민 人物이 아브라함이다. 다시 오랜 歲月이 흐르면서 位置를 잃어버린 神殿을 되찾은 사람이 마호메트의 할아버지다. 마호메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前 死亡했기에 神殿을 찾은 傳說의 主人公은 할아버지가 됐다.

    神殿은 찾아냈지만 多神敎가 橫行하면서 메카의 神殿은 온갖 雜神을 모아둔 空間으로 轉落했다. 雜神을 모두 쫓아내고 唯一神 알라만을 이곳에 모신 人物이 마호메트다. 그리고 이 神殿이 每年 數百萬 名이 찾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카바(Kaaba) 神殿이다.????? ?

    5~6世紀 아라비아 半島의 信仰 形態는 多神敎였다. 애니미즘的 性格이 强한 原始 宗敎였다. 이에 앞서 西紀 70年頃 예루살렘 聖殿이 破壞된 後 유대敎人들이 아라비아 半島로 내려와 唯一神의 脈絡을 이어갔다.



    最高級 커피 名所 된 예멘

    6世紀 後半에 접어들면서 비잔틴 帝國과 페르시아 사산王朝 間 戰爭으로 말미암아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往來하던 對象들은 아라비아 半島를 지나는 것을 選好하게 됐다. 德分에 메카는 交易의 中心이 됐다. 570年頃 메카를 支配하던 部族이 마호메트가 屬한 家門이었고, 마호메트는 25歲 때 富裕한 未亡人 카디자에게 雇用돼 事業을 크게 성공시켰다.

    그는 40歲 때 카디자와 結婚해 經濟的 安定을 얻으면서 影響力 있는 地位를 얻었다. 610年쯤 그는 신들린 狀態의 宗敎的 體驗을 한다. 꿈에서 가브리엘 天使를 통해 알라 以外엔 神이 없다는 唯一神 思想을 갖게 되고, 이 思想을 周邊에 傳播해 宗敎的으로도 ‘成功’했다. 바로 이 대목에 커피 由來說이 끼어 있다. 무슬림은 마호메트에게 健康을 되찾게 해준 커피를 神聖하게 여겼다. 커피를 몸에 담은 者는 地獄 불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澎湃해져 무슬림이라면 모두 마셔야 하는 ‘이슬람의 飮料’처럼 됐다.? ?

    커피 需要가 暴發的으로 늘어나자 예멘은 아예 커피를 直接 栽培하기에 이른다. 최우성 博士(監理敎 태은敎會 牧師)에 따르면, 이와 關聯해선 2가지 理論이 傳해진다. 6世紀 古代 에티오피아는 國力이 剛해 紅海 건너 아라비아半島 西南部에 位置한 시바王國(只今의 예멘地域)을 植民統治했는데 그때 自國의 野生 커피를 예멘 地域에 옮겨 심었다는 古代 에티오피아 植民地설, 1450年 에티오피아를 旅行한 제말 에딘에 依해 커피 灌木의 耕作法과 音用法이 예멘에 傳해졌다는 커피 耕作法 由來說이다.

    어느 이야기도 예멘을 커피나무의 故鄕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예멘의 土質과 氣候가 커피 耕作에 最適의 條件을 갖췄기에 예멘은 얼마 지나지 않아 最高級 커피를 生産하는 名所로 讚辭를 받게 된 것이 事實이다.

    이 대목을 宗敎的 視角으로 살펴보면 더욱 興味롭다. 基督敎, 유대敎, 이슬람敎의 共通 經典인 舊約聖經 創世記에 따르면 太初에 神이 世上을 만들었다. 神은 世上의 모든 動·植物을 만들었고, 땅엔 各種 氏 맺는 菜蔬와 나무가 자라났다. 神은 世上을 創造한 後 에덴이라는 동산을 만들고는 人間으로 하여금 그 동산을 다스리게 委任했다.

    에덴동산엔 4個의 江이 흘렀는데 旣婚, 非婚, 힛데겔, 有브라데다. 유브라데 江은 現在 이라크의 유프라테스 江이었을 것으로 推定된다. 旣婚 江은 구스온 땅에 두루 흐르고 있었는데, 그 곳은 아프리카 南部人 에티오피아 地域이다. ‘구스’는 에티오피아의 옛 이름이다. 이로 미뤄볼 때 에덴동산은 작은 地域을 의미하지 않고,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아프리카 南部까지를 包含하는 廣大한 地域이었을 것이라는 主張이 說得力을 갖는다.



    커피나무 故鄕은 에덴동산

    여기서 한 가지 假說이 成立된다. ‘커피나무의 故鄕은 에티오피아다. 에티오피아는 에덴의 江이 흐르던 곳이다. 그러므로 커피나무의 故鄕은 에덴동산이다.’ 舊約聖經의 句節을 追跡해도 커피나무의 故鄕이 예멘이라는 主張은 에티오피아만큼 단단한 土臺를 지니지 못한다.

    이슬람도 舊約聖書를 믿는다. 더욱이 무슬림은 아담과 아브라함, 이스마일로 내려오는 血統을 이어받고 있다고 主張한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에 太初부터 커피나무가 있었다는 믿음은 設令 그곳이 自身들의 텃밭인 아라비아 半島가 아니라 그리스도 國家인 에티오피아라고 할지라도 그리 서운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닐 성싶다.?

    朴 英 順


    ● 충북대 微生物學科 卒業, 고려대 言論大學院 碩士
    ● 세계일보 記者, 메트로新聞社 取材部長, 포커스新聞社 編輯局長 ?
    ● 現 인터넷新聞 커피데일리 發行人, 커피批評家協會長, 경민대 호텔外食調理學科 兼任敎授, 경민대 平生大學院 바리스타過程 專擔敎授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