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怪物과 싸우다 怪物이 된 MBC의 悲劇|新東亞

怪物과 싸우다 怪物이 된 MBC의 悲劇

[강준만의 灰色地帶] 世上 바뀔 때마다 積弊淸算 乙들의 戰爭

  • 강준만 전북대 新聞放送學科 名譽敎授

    入力 2022-11-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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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言論勞組와 進步學者 바깥에서 쓴 記錄

    • 朴 彈劾 直後 發表된 ‘言論附逆者’ 101名

    • 理事會 與野 構成比 바꾸는 醜態 되풀이

    • 勞組가 特定 政權 支持하면 더 危險한 理由

    • 政派 報道 被害者가 政派 報道 先頭 서다

    • 靑 蔚山市長 選擧介入 疑惑에 對한 無報道

    • 制度는 가만히 두고 人的 報復으로 對應

    MBC 노동조합이 2012년 1월 30일 총파업에 돌입한 지 170일 만에 파업을 중단했다. MBC 노조는 같은 해 7월 17일 여의도 MBC 사옥에서 조합원 총회를 열고 파업 중단 안건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고 밝혔다. [동아DB]

    MBC 勞動組合이 2012年 1月 30日 總罷業에 突入한 지 170日 만에 罷業을 中斷했다. MBC 勞組는 같은 해 7月 17日 汝矣島 MBC 社屋에서 組合員 總會를 열고 罷業 中斷 案件을 滿場一致로 可決했다고 밝혔다. [東亞DB]

    혹 ‘170日 罷業’을 아시는지. 韓國 放送社의 빼놓을 수 없는 事件으로, MBC에서 2012年 1月 30日부터 7月 17日까지 이루어진 罷業을 말한다. 김도인은 “極甚한 理念 對立의 結果라는 點도 그렇고, 數많은 死傷者를 내고 깊은 傷痕을 남긴 內戰이라는 點도 비슷했다”며 MBC의 170日 罷業을 ‘6·25 戰爭’에 比喩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MBC의 6·25 戰爭’

    “170日 罷業은 MBC 사람들에게 큰 傷處를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罷業 後遺症으로 神經精神科 診療를 받아야 했다. 罷業에 參加한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罷業 때 내려가지 않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前까지 同僚로 지내던 사람과 不俱戴天의 怨讐처럼 서로 싸워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170日 罷業 때 어느 便이었느냐에 따라 兩쪽 陣營에는 건널 수 없는 골이 파였다.”

    김도인은 누구인가? 2019年 12月 出刊된 ‘積弊몰이, 公營放送을 무너뜨리다: 言論勞組의 MBC 掌握 記錄’이라는 冊의 著者다. 1986年 MBC에 라디오PD로 入社해 2017年 2月 編成製作本部長이 됐지만, 言論勞組가 ‘言論 附逆者’ ‘言論 積弊’라는 烙印을 찍어 彈壓해 대는 바람에 1年을 채 못 버티고 2018年 1月 MBC를 退職한 放送人이다.

    進步는 保守 쪽의 冊을 읽지 않고, 保守는 進步 쪽의 冊을 읽지 않는다. 나는 進步니 保守니 하는 作名과 區分法을 믿지 않으며 가소롭다고 생각하지만, 一旦 疏通을 위해 旣存 用語들을 쓰기로 하자. 글은 進步 쪽이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김도인度 指摘했듯이, “只今까지 傷痕이 남아 있는 2012年, 2017年의 MBC 罷業에 對해 言論勞組와 進步 學者들의 觀點에서 본 記錄은 많았지만 反對便의 視角에서 본 記錄은 거의 없다.”



    맞다. 이게 그가 冊을 쓰게 된 理由이기도 하다. 나 亦是 그間 MBC 問題에 對해 言論勞組와 進步 學者들의 觀點에서 본 記錄만 接해 왔기에 이 冊은 視角의 均衡을 잡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이 冊의 主張에 對한 同意 與否와 無關하게, 著者가 强한 主張을 하기보다는 自身이 겪은 일을 比較的 차분하고 淡淡하게 記錄하는 일에 充實한 點이 印象的이었다.

    우리는 ‘MBC의 6·25戰爭’에 對해 어느 한쪽 便을 들어야 하는가? 아니면 兩쪽 모두를 批判하면서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가? 이 質問에 答하기 위해 于先 ‘MBC의 6·25戰爭’이 어떤 結果를 가져왔는지, 2年 後인 2014年에 벌어진 한 風景을 鑑賞해 보자. MBC 少數勞組人 第3勞組 非對委員長 오정환은 中央日報(2022年 10月 5日)에 寄稿한 글에 다음과 같이 썼다.

    “MBC 報道局에서 한 男性 記者가 親舊와 電話로 잡담하고 있었다. 그때 한 女性 記者가 지나갔다. 男性 記者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야, 電話 끊어. 財數 없는 X 지나간다.’ 길거리 不良輩가 했어도 非難받을 行動이다. 그러나 2014年 무렵 MBC에서는 나서서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侮辱을 當한 當事者 亦是 아무 對應도 할 수 없었다. 男性 記者는 氣勢騰騰한 ‘민주노총 傘下 言論勞組 MBC本部’ 所屬 MBC 公採 記者였고, 女性 記者는 勞組의 罷業 期間 會社가 採用한 經歷 記者로 言論勞組 所屬이 아니었다. 나중에 文在寅 政權이 들어서고 言論勞組 側이 MBC 經營權을 掌握한 뒤 이 男性 記者는 强한 政治色을 드러내며 乘勝長驅했다.”

    문재인이 등 떠민 MBC 積弊淸算

    길거리 不良輩가 했어도 非難받을 行動은 2014年에 끝난 게 아니다. 程度의 差異는 있을망정 如前히 現在進行形이다. 언제부턴가 MBC는 아예 政治판이 됐고, 主要 政治的 葛藤의 最前線이 됐다. 모든 悲劇은 保守와 進步를 莫論하고 똑같이 恣行된 歷代 政權들의 公營放送 掌握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李明博·朴槿惠 政權에서 言論勞組를 支持하던 放送人들이 放送 現場에서 쫓겨난 가운데 完成된 ‘御用 放送’의 모습은 어떠했던가? 2016年 11月 촛불集會 現場에서 市民들로부터 이런저런 逢變을 當한 MBC 記者들의 證言을 들어보자.

    “이러려고 記者 된 것도 아니지만, 무엇보다 MBC 記者라는 事實이 時代의 罪人이 된 氣分이다.” “MBC 取材陣인지를 알아챌까 봐 마이크 태그마저 떼어낸 채 ‘몰래 中繼車’를 타야 했다.” “‘짖어봐’라거나 ‘부끄럽지 않으냐’고 호통을 치는 분들도 있어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인터뷰를 試圖하면 ‘배터리 아깝게 왜 찍으려 그러느냐’ ‘靑瓦데스크 말고 뉴스데스크에 나가는 거 맞느냐’ 等等 嘲笑와 비아냥거림만 날아들기가 茶飯事다.” “集會 내내 取材陣을 쫓아다니며 ‘여기는 MBC 記者들이니 인터뷰하지 말라’고 案內하는 市民들도 만나게 된다.”

    문재인 當時 더불어民主黨 大選候補는 2017年 3月 21日 大選 競選 候補 討論會에서 “言論 積弊淸算을 해야 하고, MBC가 甚하게 무너졌다”고 非難했다. 5月 9日 大選에서 문재인이 勝利함으로써 다음 날 文在寅 政權이 出帆함에 따라 MBC에서도 經營陣 交替 움직임이 일어나기 始作했다. 事實上 문재인이 積弊淸算을 하라고 MBC의 등을 떠민 셈이었다. 言論勞組 MBC本部 委員長 김연국은 6月 2日 열린 勞組 集會에서 다음과 같이 主張했다.

    “靑瓦臺 關係者는 放送改革 意志가 있어도 直接 나설 수 없으니 放送界 從事者, 市民社會團體가 積極 나서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끌어내려야 한다. 우리가 들고일어나 公營放送을 國民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

    MBC 言論勞組는 朴槿惠 大統領에 對한 彈劾訴追案이 國會에서 可決된 지 5日 後인 2016年 12月 14日부터 2017年 6月 15日까지 總 3次에 걸쳐 101名을 ‘言論附逆者’로 選定해 發表하면서 이들을 쫓아내기 위한 大大的인 攻勢를 펴기 始作했다. 7月 15日, 2012年 MBC·KBS 兩大 公營放送社 總罷業을 이끌었다는 理由로 解雇된 前 MBC 勞組委員長이자 前 PD 최승호가 만든 다큐映畫 ‘共犯者들’李 富川 판타스틱 映畫祭에서 처음 公開됐다.

    이 映畫는 이명박 政權 出帆 以後 MBC·KBS 兩大 公營放送에서 言論勞組 所屬의 記者와 PD들이 어떤 彈壓을 받아왔는지를 생생하게 그린 作品이다. 최승호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共犯者들’을 만들어야겠다고 決心한 건 언젠가”라는 質問에 이렇게 答했다. “지난해 12月, 촛불集會가 한창일 때였다. 大統領이 彈劾되고 大選이 있을 것 같았다. 政權이 바뀔 텐데 社長 任期가 定해진 公營放送은 ‘凍土의 王國’처럼 남아 바뀐 世上에 民弊를 끼칠 것 같았다. 이 狀況을 打開할 무언가가 必要하다고 생각했다.”

    經營陣 물갈이 爲한 MBC·KBS 同時 罷業

    2017년 8월 8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年 8月 8日 문재인 當時 大統領이 靑瓦臺에서 이효성 放送通信委員長에게 任命狀을 授與하고 있다. [靑瓦臺寫眞記者團]

    7月 31日 문재인이 野3黨의 反對에도 不拘하고 放送通信委員會 委員長에 進步的 言論學者인 이효성 성균관대 新聞放送學科 名譽敎授 任命을 强行했다. 文在寅은 8月 8日 이효성에게 任命狀을 주는 자리에서 “지난 10年間 우리 社會에서 가장 甚하고 慘澹하게 무너진 部分이 公營放送”이라고 했다. 이효성은 다음 날 ‘共犯者들’ 試寫會에 參席했고, 8月 11日 記者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破格的 主張을 했다.

    “MBC 社長과 理事會人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理事의 任期는 法的으로 保障돼 있지만, 다른 한 側面에서 그것이 無條件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放通委가 (放文振의) 理事長과 移徙를 임명하는 것으로 돼 있어서 任免도 할 수 있고, 窮極的으로 辭退를 包含한 責任을 물을 수 있는 權限도 包含되는 것이다.”

    放通委가 방문진 理事와 KBS 理事의 解任을 통해 MBC·KBS 社長을 交替하겠다는 뜻을 分明히 했고, 이어 민주당이 支援射擊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민주당은 8月 31日 國會 議員會館에서 ‘共犯者들’ 試寫會를 열었는데, 여기엔 추미애 民主黨 代表, 禹元植 院內代表를 包含한 全 指導部와 言論勞組 MBC 本部長 김연국, 言論勞組 KBS 성재호 本部長, PD 최승호 等이 參席했다.

    9月 4日부터 經營陣 물갈이를 위한 MBC·KBS의 同時 罷業이 始作됐다. 다음 날엔 韓國言論學會·韓國放送學會·韓國言論情報學會 等 3個 學會 所屬 學者 467名이 ‘公營放送 正常化를 위한 言論·放送學者 共同 聲明書’를 發表했다. 이들은 “公營放送의 核心 價値인 獨立性과 公正性, 그리고 言論自由를 毁損해 온 公營放送 社長과 理事長 等은 卽時 물러나야 한다”고 主張했다.

    9月 8日 ‘朝鮮日報’는 ‘與 “KBS·MBC 野側 理事 非理 浮刻시키고, 市民團體로 壓迫”’이라는 題目의 單獨 記事를 報道했다. 민주당 專門委員室이 作成해서, 8月 25日 민주당 議員 워크숍에서 科學技術情報放送通信委員會 所屬 議員들이 共有했던 內部 文件을 入手해 報道한 것이다. 이 文件에 따르면, 民主黨은 MBC 社長 김장겸, KBS 社長 고대영 退陣 問題와 關聯해 “政治權이 나설 境遇 現 社長들과 結託돼 있는 自由韓國黨 等 野黨들과 極右 保守 勢力들이 談合해 자칫 ‘言論 彈壓’이라는 逆攻 憂慮가 있다”며 ‘放送社 構成員 中心 社長·理事長 退陣 運動’ 展開 必要性 等을 提起했다.

    이와 함께 이 文件에서는 ‘市民社會·學界·專門家 全國的·同時多發的 蹶起大會, 署名 等을 통한 退陣 運動 必要’ ‘言論積弊淸算촛불市民連帶會議(假稱) 構成 및 촛불 集會 開催 論議’ 等도 提案했다. 社長 任免權을 갖고 있는 理事陣에 關해선 “野黨 側 理事들에 對한 綿密한 檢證을 통해 個人 非理 等 不正·非理를 浮刻시켜 理事職에서 退出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政府에서 恣行된 言論 掌握·言論人 彈壓, 勸言癒着 事例 等의 言論 積弊 實相을 國民에게 제대로 알리고 告發하는 弘報·宣傳戰을 展開해야 한다”며 解雇·正直 等 懲戒를 當한 被害者들의 證言大會 開催, 映畫 ‘共犯者들’의 團體 觀覽을 提案했다.

    놀랍게도, 아니 어쩌면 當然하게도, 이 文件의 主要 內容은 大部分 實踐에 옮겨졌고 成功을 거두었다. 任期가 保障된 公營放送 理事들을 거칠게 壓迫해 自進 辭退를 이끌어내고, 理事會의 與野 構成比를 바꿔 社長을 解任하는 ‘公式’은 與野를 莫論하고 政權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惡性 醜態였다.

    ‘御用放送’보다 더 危險한 ‘노영放送’

    11月 13日 방문진 理事會는 在籍 理事 9名 中 6名이 參席한 가운데 贊成 5名, 棄權 1名으로 社長 김장겸에 對한 解任案을 決意했고, 바로 이어 열린 MBC 株主總會에서도 社長 解任案이 議決됐다. MBC勞組는 11月 14日 勝利 무드 속에 72日間에 걸친 罷業을 終了했다.

    11月 22日 崔敏姬 前 民主黨 議員은 팟캐스트 ‘새街날아든다’에 出演해 MBC勞組에 對해 이런 期待感을 披瀝했다. “지난番에 罷業할 때 內部에서 討論한 內容을 보면 그中에 ‘이제 不偏不黨, 中立 이런 거 取하지 않겠다. 眞實과 正義, 그리고 客觀報道의 늪에 빠져서 헤매지 말고 眞짜 正論을 하겠다.’ 이런 얘기들이 나온 걸 봤어요. 그래서 저는 그걸 지키기를 期待하는 거죠.”

    2017년 12월 8일 최승호 당시 MBC 신임사장이 서울 마포구 MBC 사옥으로 출근하며 노조원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MBC 노조]

    2017年 12月 8日 최승호 當時 MBC 新任社長이 서울 麻浦區 MBC 社屋으로 出勤하며 勞組員들의 拍手를 받고 있다. [MBC 勞組]

    12月 7日 ‘共犯者들’을 만든 PD 최승호가 MBC 社長이 됐다. MBC는 12月 26·27日 이틀에 걸쳐 “MBC 뉴스를 反省한다”며 “權力의 입이 됐다”고 告白하는 切切한 ‘懺悔 放送’을 했다. “MBC 뉴스가 지난 5年 동안 저지른 잘못을 告白하고 反省합니다. 國政壟斷 局面에서 MBC 報道는 露骨的인 靑瓦臺 放送, 權力의 喇叭手 그 自體였습니다. 보기 힘들 程度로 靑瓦臺의 눈치만 살피며 靑瓦臺가 좋아할 만한 뉴스만 羅列했고 (…). 政府의 입이 되어 한 方向으로 몰아간 放送, 바로 權力에 충성했기 때문이고, 公營放送의 眞짜 主人인 國民을 背信했기 때문 (…).”

    그렇게 된 理由가 무엇인가? MBC는 ‘御用 放送’을 强要했던 權力보다는 自身들처럼 權力에 抵抗해 싸우지 않은 同僚 放送人들에게 더 큰 責任이 있다고 보는 듯했다. 報道局 國·部長團 全員이 補職 解任됐고, 罷業에 同參하지 않았던 記者 約 80名은 이제 더는 뉴스 마이크를 잡지 못하게 됐다. 以後 16名이 解職되고 6名이 停職 6個月의 重懲戒를 받았다. 李明博·朴槿惠 時節에 親(親)勞組 放送人들에게 加해졌던 報復이 이젠 半(反)·비(非)勞組 放送人들을 向해 加해지는 悲劇이 再現된 것이다.

    勞組는 善과 正義를 代辯하는가? 進步 陣營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사람들은 노영放送(勞營放送·勞組가 支配하는 公營放送)에 別 問題意識이 없거나 바람직스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영방松島 危險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 危險한 點도 있었다. 勞組가 特定 政權을 支持하면 노영放送은 事實上 御用放送이면서도 그걸 僞裝함으로써 抵抗 自體를 어렵게 만들 수 있었다는 點에서 말이다.

    노무현 政權 時節이던 2005年 2月 最初의 勞組委員長 出身 MBC 社長이 된 최문순은 勞組의 問題를 잘 알고 있었다. 當時 최문순은 就任辭에서 勞組를 겨냥해 “生存을 위해 苦痛을 分擔하자”고 했으며, 擴大幹部會議 席上에선 會社와 勞組의 關係 再正立을 主張하고 나섰다. “MBC에서 勞組의 誕生은 公組織이 제 役割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公組織이 行使해야 할 힘과 權威를 勞組와 職能團體가 가져갔다. 이제는 여러분이 이를 바로잡아 公組織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公組織과 勞組·職能團體는 生産的인 拮抗(拮抗) 關係여야 한다.”

    최문순은 ‘勞組와의 對決’을 내세우며 賃金 削減 10%, 單一號俸制 廢止, 組織 改編 等 여러 公約을 내세웠지만, 뜻을 이루진 못했다. 아마도 勞組의 反對 때문에 挫折됐겠지만, 放送이 政權에 충성하는 限 內部의 그런 問題까지 神經 쓰고 싶진 않다는 政權의 態度도 적잖은 影響을 미쳤을 게다.

    최승호가 이끄는 새로운 經營陣은 두 番 다시 2016年 11月의 悲劇이 反復되지 않게끔 制度的 變化를 追求했을까, 아니면 積弊淸算에 注力했을까? 悲劇的이게도 答은 後者였다. 文在寅 政權은 國政壟斷에 對한 國民的 憤怒를 먹고 들어선 政權이었기에 높은 支持率을 누리면서 적어도 初期 2年間은 順航하는 것처럼 보였고, MBC도 別問題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勿論 政權에 충성하는 報道가 問題이긴 했지만, 그렇지 않은 적이 한 番도 없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다.

    ‘曺國 守護’ 煽動 前衛隊 MBC

    2019년 9월 28일 서울 서초구 검찰청사 앞에서 이른바 ‘조국 수호 촛불 집회’가 열렸다. 당시 MBC는 집회 현장 상공에 드론을 띄워 영상을 촬영했다. [동아DB]

    2019年 9月 28日 서울 瑞草區 檢察廳舍 앞에서 이른바 ‘曺國 守護 촛불 集會’가 열렸다. 當時 MBC는 集會 現場 上空에 드론을 띄워 映像을 撮影했다. [東亞DB]

    問題는 2019年 8月 27日 午後 祖國 法務部 長官 候補者에 對한 人事聽聞會를 앞두고 尹錫悅 檢察이 電擊的으로 祖國에 對한 押收搜索을 敢行하면서 일어났다. 민주당은 이를 ‘檢察 쿠데타’로 規定했다. 民主黨과 그 支持者들은 以後 數年間 ‘檢察 쿠데타’ ‘司法 쿠데타’ ‘法曹 쿠데타’ ‘延性 쿠데타’ ‘2段階 쿠데타’ ‘조용한 쿠데타’ ‘組暴 檢事들의 쿠데타’ 等 다양한 用語로 尹錫悅을 쿠데타의 ‘首魁’로 몰아가는 爆擊을 퍼붓게 된다.

    9月 28日 서울 서초동 檢察廳舍 앞에서 ‘촛불 集會’가 열렸다. 민주당 側은 “200萬 名이 參與했다”고 主張했다. 親文 네티즌들은 MBC가 드론으로 集會 現場 上空에서 事前 許可 없이 不法 撮影한 映像을 인터넷에 퍼 나르며 “200萬이 參加한 것이 確實하다”며 “MBC가 돌아왔다” “MBC는 믿을 수 있는 唯一한 言論”이라고 讚揚했다. 이런 讚揚에 鼓舞된 MBC는 9月 29日 뉴스에서 追加로 드론 映像을 公開하고 “날이 完全히 어두워지자 촛불의 물결이 더 뚜렷하다”고 했다. 뉴스 앵커는 “하늘에서 본 映像으로 集會의 規模와 位置를 把握할 수 있다”며 ‘200萬 名이 모였다’는 主催 側 主張을 다시 報道했다.

    9月 30日 박성제 MBC 當時 報道局長은 ‘金於俊의 뉴스工場’에 出演해 9月 28日의 ‘曺國 支持 集會’에 對해 “‘이건 10萬 名 以上 올 수도 있겠다. 드론 撮影을 한番 해보자’고 했던 것”이라며, “故(故) 盧武鉉 前 大統領 葬禮式을 다 봤지 않나. 100萬 名 程度 되는 數字가 어느 程度인지 느낌이 있다. (集會를 드론으로) 딱 보니까 ‘이건 그 程度 된다’”라고 했다. 그는 “檢察이 言論 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檢察을 批判하기도 했다.

    아니 이래도 되는 건가? 公營放送이 ‘曺國 守護’의 煽動 前衛隊 노릇을 해도 괜찮단 말인가? 채 2年도 안 된 2017年 12月 MBC가 ‘懺悔 放送’에서 했던 다음 말을 잊었던 말인가? “촛불 集會는 縮小하고 太極旗 集會는 지나치게 擴大해 報道했습니다. 많은 市民들은 MBC 뉴스에 등을 돌렸습니다. 大統領과 太極旗 集會는 國政壟斷 局面에서 MBC가 지켜야 했고 띄워야 했던 對象이었습니다. 太極旗 集會 51萬 名 參加라는 터무니없는 數字를 그대로 傳했고….”

    이제는 그 反對로 가는 게 ‘公正 放送’이란 말인가? 異常한 일이었다. 歷代 어느 放送社의 報道局長이 그런 政治的 發言을 公開的으로 한 적이 있었던가. 保守政權 治下에서 政派的 報復으로 온갖 苦楚를 겪었던 被害者가 왜 世上 바뀌었다고 政派的 報道의 先頭에 서야 한단 말인가? 박성제는 2017年 7月에 出刊한 ‘權力과 言論’이라는 冊의 結論에서 “權力을 監視하고 批判하는 것은 言論의 宿命”이라며 “文在寅 政權을 어떠한 角度에서 監視하고 批判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信賴를 回復해 가려는 言論人이라면 이 같은 質問을 外面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묻고 答을 苦悶해야 한다”고 했다.

    이 冊을 感銘 깊게 읽었던 나로서는 MBC가 大多數 國民의 信賴를 回復하기를 念願했다. 그러나 MBC는 正反對의 方向으로 치닫고 있었다. 經營難에 허덕이는 MBC가 親文(親文) 나꼼수 出身의 주진우에게 社長 年俸과 맞먹는 出演料(回當 600餘萬 원)를 준다는 批判이 나왔다. 나중에 保守政權이 들어서서 公營放送을 이런 式으로 利用해도 괜찮다는 것이었을까?

    왜 시스템 놔두고 乙끼리 싸우나

    10月 1日 MBC ‘PD手帖’은 ‘長官과 表彰狀’ 便에서 檢察이 曺國의 婦人인 東洋大 敎授 鄭慶心을 私文書 僞造 嫌疑로 起訴한 事件을 다뤘다. ‘한겨레’는 社說을 통해 “‘피디手帖’ 報道는 檢察의 ‘東洋大 表彰狀 僞造’ 主張을 疑心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東洋大 職員 等의 證言은 檢察 ‘拙速 起訴’의 虛點을 赤裸裸하게 暴露하고 있다는 點에서 이番 搜査의 信賴度를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다”고 主張했다. 그러나 當時 東洋代 敎授로서 이 事件에 對해 잘 알고 있던 陳重權은 이 放送에 對해 매우 批判的 立場을 取했는데, 이에 對해선 나중에 仔細히 이야기하기로 하자.

    10月 3日 光化門에선 大大的인 ‘曺國 反對’ 集會가 열렸지만, 이는 公營放送의 注目을 받지 못했다. ‘曺國 死守’ 集會엔 헬기까지 띄우고 50m 높이의 카메라用 크레인까지 세워 톱뉴스로 다룬 MBC는 光化門 曺國 反對 集會는 아홉 番째 뉴스로 報道하면서 이를 “쿠데타 煽動”이라는 與黨 指導部의 목소리도 함께 報道했다. 이에 MBC 少數派 勞組는 “瑞草洞 集會는 自發的이고 光化門 集會는 ‘野黨의 動員’이란 프레임을 짜고 있다”고 批判했다.

    10月 5日 서울 서초동 서울中央地檢 周邊에서 ‘曺國 守護’와 ‘曺國 辭退’를 要求하는 進步-保守 團體의 集會가 잇따라 열렸다. 放送은 이 集會를 어떻게 다뤘을까? ‘KBS 저널리즘토크쇼J’ 記者인 김덕훈은 “放送의 境遇 大多數 言論社들이 檢察改革 促求 集會를 比重 있게 傳하면서도 同時에 保守 團體의 集會를 陣營 間의 對決 構圖로 봤습니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KBS는 ‘우리共和黨 保守 團體, ‘曺國 辭退’ 맞불 集會’라는 題目으로 關聯 消息을 單身으로 報道를 했고요. SBS는 瑞草洞 集會 消息을 다룬 첫 番째 報道에서 ‘이틀 前 光化門 集會에 이어서 다시 한番 進步와 保守가 거리 集會로 勢 對決을 이어가는 雰圍氣’라면서 우리共和黨이 主催한 맞불 集會를 함께 다뤘습니다. (…)反面 MBC는 다른 放送社들과 相反됐는데. MBC는 當日 저녁 綜合뉴스에서 檢察 改革 集會를 톱뉴스로 傳했지만 保守 團體 集會에 對해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12月 13日 MBC 뉴스데스크는 ‘現代版 장발장’이란 題目으로 仁川의 한 便宜店에서 벌어진 竊盜 事件을 報道했다. 34歲 아버지와 12歲 아들이 牛乳와 沙果 等을 훔쳤다가 잡혔는데 “너무 배고파서 한 일”이라는 事緣을 들은 便宜店 主人이 容恕하고 警察은 국밥을 먹여 訓放했다는 內容이었다. 사흘 뒤인 16日 文在寅 大統領은 이 記事를 言及하며 “國民에게 큰 感動을 줬다. 希望 있는 따뜻한 社會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大統領의 發言을 主要 뉴스로 다시 紹介했다. 그러나 이 뉴스는 며칠 뒤 ‘장발장’의 過去 行跡이 드러나면서 事實上 ‘假짜 뉴스’가 됐고, MBC 뉴스를 限껏 추어올린 大統領도 體面을 구겼다. 조선일보는 이를 “‘文비어천가’ 一色… 낯 뜨거운 公營放送”의 한 事例로 指摘했다.

    2019年 11, 12月 政局은 靑瓦臺의 蔚山市長 選擧 工作 事件으로 떠들썩했지만, 公營放送만 보면 이 事件은 아예 存在하지 않는 듯했다. 12月 中旬 靑瓦臺 祕書陣이 候補 買收 等에 介入했고 이는 송철호 候補 出馬가 大統領 뜻이었기 때문이라는 事實이 드러났지만 KBS는 12月 18日 메인 뉴스에서 이를 全혀 報道하지 않았으며, MBC 뉴스데스크는 1週日間 蔚山市長 選擧 關聯 記事를 單 한 꼭지도 報道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不公正과 偏頗性은 門 政權 내내, 아니 門 政權 以後에도 持續된다.

    善惡 二分法에 中毒되다

    萬若 以前의 保守 政權들과 그 支持者들이 악(惡)이라면 이 모든 건 正當化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이하랴. 進步 陣營엔 善惡(善惡) 二分法에 中毒돼 自身을 선(善), 反對便을 惡(惡)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긴 했지만, 그건 痲藥中毒이나 알코올中毒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怪物과 싸우는 사람은 그 過程에서 自身마저 怪物이 되지 않도록 注意해야 한다”고 했던 니체의 警告를 援用하자면 우리는 ‘怪物과 싸우다 怪物이 된 MBC의 悲劇’을 目擊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몇 年이 지나면 너무도 쉽게 忘却하곤 했지만, 政權이 交替될 때마다 MBC에서 벌어진 일들은 놀라울 程度로 비슷했다.

    ‘MBC의 6·25 戰爭’은 制度와 시스템의 問題였건만, MBC 사람들은 그걸 根本的으로 바꿔보려고 하기보다는 人的 報復 中心의 積弊淸算으로 對應하는 殘忍함과 어리석음을 反復하곤 했다. 積弊淸算을 내면화한 못나고 못된 權力者들의 弄奸에 놀아난 ‘을(乙)들끼리의 戰爭’이었다. 이런 醜한 遺産을 克服하기 위해서라도 ‘MBC의 悲劇’은 仔細히 記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몇 回에 걸쳐 連載할 이 글에 對해 讀者들의 깊은 關心을 바라마지 않는다.


    康俊晩
    ● 1956年 出生
    ● 성균관대 經營學科 卒業, 美國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言論學 博士
    ● 現 전북대 新聞放送學科 名譽敎授
    ● 著書 : ‘발칙한 李俊錫: THE 人物과사상 2’ ‘싸가지 없는 政治’ ‘不動産 掠奪 國家’ ‘韓流의 歷史’ ‘江南 左派’ ‘노무현과 國民詐欺劇’ ‘김대중 죽이기’ 等 多數



    신동아 12월호 표지.

    신동아 12月號 表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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