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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冒險 두倍, 危險 折半’ 背囊旅行 노하우|新東亞

‘冒險 두倍, 危險 折半’ 背囊旅行 노하우

20年間 60個國 돌아다닌 권삼윤의

  • 권삼윤 < 문화비평가=""> tumida@hanmail.net

    入力 2004-11-08 17: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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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國을 旅行하던 女大生이 被殺된 事件을 契機로 背囊旅行 熱氣가 얼어붙었다. 그러나 令監과 洞察力을 얻으려면 떠나야 한다. 지난 20年間 世界 60餘個國을 單身으로 돌아다닌 旅行家 권삼윤이 冒險은 즐기되 危險은 避할 수 있는 背囊旅行의 智慧를 들려준다.
    집 나서면 地獄’이란 말이 있다. 旅行이란 苦痛이 隨伴되는 것이니 웬만하면 집을 떠나지 말라는 慇懃한 暗示가 담겨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집이란 自身이 태어나 자란 곳과 祖上이 물려준 땅 모두를 뜻한다. 그러므로 집을 떠난다는 것은 故鄕, 祖上의 酸素, 生業인 農事일로부터의 離別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理由로 農耕文化圈에서는 旅行이 自制되어야 했고, 이렇다 할 旅行家가 태어나지 않았으며, 旅行文化 또한 發達하지 못했다.

    굳이 이러한 文化的 脈絡을 따지지 않더라도 집을 떠나는 瞬間부터 우리는 어려움과 危險에 露出된다. 우리의 몸은 익숙한 것에 順應하고 낯선 것을 拒否하는 이른바 ‘慣性의 支配’를 받는데, 길 위에서는 모든 것이 내 統制 밖에 있기에 몸이 힘들어하는 것이다. 먹는 것, 자는 것, 交通便, 돈 管理, 安全問題 等 걱정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다 그걸 解決하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야 하고 머리를 굴려야 하니 힘겹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種種 길을 떠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도 돈과 時間의 餘裕만 생긴다면 第一 먼저 하고 싶은 게 旅行이라고 했다. 그들 中에는 오로지 旅行資金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몸은 익숙한 것을 願하는데, 우리의 마음은 그 익숙한 것들로부터 脫出을 꿈꾼다. 왜 그럴까.

    우리의 肉身(魄)은 죽으면 땅으로 돌아간다. 그렇지만 精神(魂)은 하늘로 올라간다. 몸에는 固定된 住所가 있으나 마음에는 그런 게 없다. 땅은 不動(不動)하나 하늘은 桐(動)한다. 그저 ‘東’하는 程度가 아니라 붕붕 떠다닐 수 있는 運動의 空間이다.



    그래서 마음은 늘 새로운 世界를 志向한다. ‘身土不二’란 말은 있어도 ‘審土佛이’란 말은 없다. 집 떠나면 苦生이란 말을 입에 올렸던 東아시아 農耕民들도 魂魄이 갖는 이런 性質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집을 못 떠나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몸이 고달파야 마음이 즐겁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마음이다. 이것은 몸이 고달파야 즐거워하는, 참으로 稀罕한 性質을 갖고 있다. 假令 힘들게 運動하고 땀을 비오듯 흘린 뒤나, 맡은 바 또는 스스로 決心한 바를 熱心히 遂行하고 난 뒤에 어떤 氣分을 갖게 되는지 생각해보라.

    이런 緣由로 옛 사람들은 몸을 鍛鍊함으로써 精神을 단련시키려 했다. 윗사람에게 人事하기, 規則的인 生活習慣 기르기, 周邊 環境 깨끗이 하기, 모든 일에 率先垂範하기와 같은 몸의 熟達 없이는 精神의 고양이 이뤄질 수 없다고 보고 受信(修身)을 强調했다.

    佛敎 또한 功德(功德) 쌓기를 勸奬했다. 修道者들이 ‘道 닦는’ 光景을 떠올려봐도 得道와 苦行은 同伴者 關係에 있음을 알게 된다. 몸에 便한 것은 人間의 本性을 망가뜨리고, 그리하여 자칫 人間을 墮落의 길로 이끌 수 있다. 精神의 偉大함은 欲望의 自己統制를 통해서만 빛난다.

    이런 傾向이 東洋의 傳統社會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西洋社會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中世 修道院의 하루 日課를 살펴봐도 確認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英國의 名門學校人 이튼스쿨이나 옥스퍼드大, 케임브리지對 等에서 크리켓이나 調整(漕艇) 같은 스포츠를 學生들에게 勸奬하는 事例만 봐도 斟酌할 만하다. 그들은 스포츠 活動을 통해 젊은이들의 몸을 단련시킬 뿐 아니라 무엇이 公正하고 公平한 것인지, 社會正義는 어떻게 해야 實現될 수 있는지, 眞正한 勇氣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公正 公平 社會正義 勇氣 等은 抽象的인 價値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具體的인 槪念이 아니다. 그렇다면 冊을 통해 理論的으로 배워도 될 터인데, 왜 스포츠를 통해 그걸 가르치려 하는 것일까. 바로 거기에 몸과 精神의 函數關係가 存在한다(그런데 우리는 社會正義가 무엇인지를 오로지 머리로만 가르치려 한다).

    몸의 鍛鍊, 그리고 그것을 통한 精神의 鍛鍊은 過程을 重要視하는 態度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 過程은 省略한 채 그 열매만 얻으려 한다면 目標에 이르지 못할 뿐 아니라, 設令 그 언저리까지 간다 해도 結果가 自身을 이롭게 하기보다는 해롭게 할 蓋然性이 높다.

    旅行도 이와 다를 바 없다. 旅行이야말로 過程을 重視하는 作業이기 때문이다. 파리를 旅行의 目的地로 삼았다 해서 파리에 到着하는 것 自體가 旅行의 目的이 될 수는 없다. 파리에서 그저 定型化된 스케줄에 따라 루브르博物館, 오르세美術館, 에펠塔, 노틀담大聖堂, 베르사유宮殿 같은 名所들을 찾아다닌다고 해서 目的을 達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觀光’일 수는 있어도 ‘旅行’은 되지 못한다.

    집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便安함을 提供하고자 發展해온 觀光은 旅行者에게 過程을 體驗할 機會를 提供하지 않는다. 空港에 내리면 準備된 車가 나와 豫約된 宿所로 데려가고, 때가 되면 레스토랑으로 몰고가서 旅行者의 僞裝이 願하는 바와는 상관없는 食事를 내놓는다.

    安全과 便安함, 快適함을 내세우는 觀光은 旅行者가 그 땅과 사람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機會를 剝奪한다. 旅行者가 失手할 수 있는 機會를 도무지 내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旅行을 통해 鎭靜 얻고자 하는, 반드시 얻어야 하는 그 過程의 價値를 體驗할 수 없게 된다. 觀光은 當身이 旅行길에서 體驗하고자 하는 浪漫的인 瞬間을 決코 提供하지 않는다. 浪漫이란 苦痛과 恐怖와 대면하고자 하는 者의 것이지, 安樂함을 擇하는 自家 享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디를 가든 머물 宿所를 미리 豫約하지 않는다. 스케줄을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하기 때문에 언제쯤 그곳에 到着할지 몰라서이기도 하지만, 直接 몸으로 부딪치면서 그곳을 알고자 함이 더 큰 理由다. 그러므로 宿所는 現地에 到着한 後에야 찾아 나선다. 주머니 事情에 맞는 곳을 찾아다니다 條件이 맞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宿泊屆를 쓴다. 大槪 열 군데 程度를 노크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한두 時間이 今方 지나간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헛수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수고스런 過程을 통해 그 都市의 人心과 文化와 物價水準을 看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經驗을 많이 해봤지만, 子正이 다 된 늦은 밤에 한 番도 찾은 적이 없는 낯선 都市로 발을 들여놓는 瞬間에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漠漠할 때가 있다. 길거리에서 밤을 보내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발을 뻗을 房을 求하고 나면 나는 그 都市를 向해 “너는 이제 내 손 안에 있다”며 큰소리를 치곤 한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이면 自信感을 갖고 눈을 뜰 수 있다.

    나는 偶然을 즐기는 便이다. 偶然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는 旅行만큼 좋은 게 없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한 番도 가본 적이 없는 都市에 묵을 곳도 미리 定해 놓지 않고 밤늦게 불쑥 到着했다면 그 다음부터 일어나는 일은 모두 偶然의 所産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스포츠에 熱狂하는 것도 그런 偶然 때문이 아닐까. 萬若 歷代 全的만으로 勝負가 決定되고, 記錄이 좋은 選手가 繼續 좋은 成跡을 거둔다면 스포츠 競技의 興味는 크게 줄 것이다. 過去의 記錄이나 成績과 다른 結果가 일어날 때 우리는 “멋진 競技였다”며 興奮하고 즐거워한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이런 偶然의 結果이고, 旅行의 짜릿함도 거기서 맛볼 수 있다.

    내가 經驗한 偶然 中에는 이런 境遇도 있다. 이집트의 長距離 버스는 밤에만 달린다. 한낮은 너무 덥기 때문이다. 카이로에서 저녁 7時에 떠난 버스는 다음날 아침 9時에 룩소르에 닿았다. 乘客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몇 사람이 달려와 “싸고 좋은 房 있습니다”며 呼客에 熱을 올렸다. 먼 발치에서 이런 光景을 보고 있던 나에게 40代 後半쯤으로 보이는 한 白人 紳士가 다가와 “혼자인가요?” 하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對答하자 “그러시다면 우리와 한 房을 쓰지 않겠습니까?” 하면서 옆에 있는 夫人을 紹介했다.

    좀 荒唐한 느낌이어서 얼떨떨한 表情으로 對答을 못하고 있는 내게 그는 이렇게 事情을 說明했다.

    “우리는 獨逸에서 왔습니다. 이곳에 오기 前 카이로에서 이틀 밤을 보냈는데 에어컨이 없는 房이라 무척 苦生을 했죠. 豫算 範圍 안에서 房을 求하다보니 그렇게 됐답니다. 룩소르에서는 그런 苦生을 하고 싶지 않아 에어컨이 딸린 房을 求하려고 알아보니 그런 房은 모두 寢臺가 4個라는군요. 저희 夫婦가 쓰기엔 벅차니 다른 計劃이 없다면 房을 함께 쓰시죠.”

    나 亦是 카이로에서 그런 苦生을 했다. 주머니 事情에 맞춰 房을 求하다보니 에어컨이 없는 房을 얻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바람이라도 좀 들어오라고 窓門을 열어놓았다가 모기만 날아들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當然히 그의 提案을 받아들이지 않을 理由가 없었고, 그들의 表情이나 言行을 살펴보니 의심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룸메이트가 됐고, 다음날 아침 나는 젊은 外國 女子가 끓여주는 커피 香내를 맡으며 눈을 떴다. 룩소르 旅行도 이들과 同行했는데, 德分에 택시를 탈 때도 料金의 3分의 1만 내면 됐고, 레스토랑에서 食事를 할 때도 세 사람이 여러가지 메뉴를 시켜 다양한 料理를 나눠먹었다. 그렇게 알뜰하고도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들 또한 나와 함께 지내는 것이 싫지 않은 듯 다음 旅行地인 아스완에서도 같이 지내자고 했고, 그런 關係는 카이로로 돌아와서도 繼續됐다. 그들이 카이로에서 獨逸로 歸國해야 했기에 헤어졌을 뿐이다. 그런 因緣으로 두 사람은 서울에도 한 番 다녀갔다.

    나는 交通手段도 可能하다면 大衆交通手段, 그 가운데서도 느린 것을 利用한다. 가까운 距離는 無條件 걷고, 市內에선 버스나 地下鐵을 利用하며, 中東이나 東南아시아에선 우리의 마을버스 같은 미니버스를 자주 利用한다. 아주 時間이 急하거나 大衆交通手段을 利用하기 어려운 狀況에서만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느린 交通手段은 같이 탄 乘客이나 運轉技士와 對話할 수 있는 機會를 준다. 거리의 風景이나 지나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速度가 느리기에 눈으로 보는 것과 생각하는 速度 사이에 時差가 發生하지도 않는다. 郊外로 달릴 때는 그곳에 江이 흐르는지, 山은 어떻게 생겼는지, 밭에는 어떤 作物이 자라는지, 家屋의 形態와 材料, 사람들의 容貌와 服裝 等도 살펴본다.

    그러다 궁금한 게 있으면 옆 사람에게 물어본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對答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더라도 無酌定 對話를 나누다보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내가 ‘風土의 差異가 文化의 差異를 가져온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것도 이런 觀察經驗에 起因한다. 그 內容의 一部를 지난해 出刊한 拙著 ‘文明은 디자인이다’에 싣기도 했다.

    사람들은 내가 旅行家라고 하면 外國語 實力이 뛰어난 줄 알고 몇 個 國語를 하는지 묻곤 한다. 하지만 내 形便은 그렇지가 못하다. 英語는 조금 하지만 能熟함과는 距離가 멀다. 旅行하는 나라의 現地 言語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 나라 말을 배워서 그 나라를 旅行한다는 것은 어렵다 못해 거의 不可能한 일이다. 나이 五十에 새로운 外國語를 배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旅行中에 現地人과 말을 주고받는 것은 冊을 읽거나 授業을 듣는 것과는 다르다. 글字 그대로 대면(face to face) 狀況인데다, 對話의 內容이 특정한 主題에 限定돼 있어 몇 個의 單語만 連結시키면 웬만큼 뜻을 통할 수 있다. 거기에다 손짓과 발짓, 눈빛까지 動員한다면 그 效果는 크게 올라간다. 外國語를 못한다고 주눅들 理由가 없다. 다만 自身의 感覺器官을 總動員하는 수고는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익숙한 곳에선 우리는 눈과 입, 귀 程度만 適當히 열어두면 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렇지만 낯선 곳에선 視覺 聽覺 嗅覺 觸角 味覺까지 動員하되, 그것도 最高의 注意를 기울여야 한다.

    但只 意思疏通과 安全을 確保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곳에 부는 바람과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 레스토랑과 市場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냄새, 목구멍을 넘어가는 飮食과 飮料의 맛,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表情, 어쩌다 부딪치게 되는 그곳 사람들에게서 傳해지는 觸感, 무어라 떠들어대는 소리…. 이런 것들을 몸소 느껴보고 또 내 것으로 만들기 爲해서다. 旅行은 이렇게 平素 잘 쓰지 않는 感覺器官까지 훈련시켜 준다.

    萬若 當身의 센서를 풀 稼動시키고자 한다면 신발을 벗고 旅行을 떠나는 게 좋다. 맨발로 旅行할 수 없는 與件이라면 적어도 마음가짐만은 ‘맨발’이어야 한다.

    印度에서의 일이다. 뉴델리에는 간디의 墓所가 있다. 파란 잔디가 깔려 있는 그곳에선 누구든 신발을 벗게 돼 있다. 甚至於 洋襪까지도.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맨발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맨발로 잔디밭을 걸어보니 느낌이 각별했다. 간지럽기도 하고 포근하기도 한 그 感覺이 곧 머리로 傳達되자 妙한 氣分에 휩싸였다. 決코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참동안 그 잔디밭 위를 거닐었다.

    아그라의 타지마할에서도 신발을 벗어야 했다. 하얀 大理石이 맨발에 와닿는 觸感은 잔디에서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부드러움 바로 그것이었다. 그 瞬間 나는 大理石 타지마할과 하나가 됐다는 느낌에 젖었다.

    그때서야 왜 印度人들이 그들이, 貴한 곳이라 생각하는 곳에선 신발을 벗게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온 몸으로 聖스러운 기운을 느껴보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印度人들은 좀처럼 신발을 신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도 수저를 使用하지 않는다. 오른손으로 飮食을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얼핏 생각하면 가난해서, 衛生觀念이 稀薄해서 그런 것처럼 보인다.

    事實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이 自身의 손만큼 衛生的인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손가락으로 飮食을 만지작거리다 입안으로 집어넣을 때의 그 神祕한 觸感은 金屬이나 나무로 된 수저나 포크로 먹을 때의 그것과는 하늘과 땅 差異다. 우리의 어머니들도 포기김치를 쇠로 만든 칼로 자르면 맛이 없다며 손으로 북북 찢어 먹지 않았던가.

    印度人들은 일을 할 때도 웬만해선 道具나 裝備를 動員하지 않는다. 온몸으로 直接 對象이나 自然, 그리고 世上과 만난다. 그들만큼 自然尊重 意識에 透徹한 民族도 없는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自然과 世上에 對해 매우 肯定的인 態度를 갖고 있다는 좋은 物證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現地人과 現地 文化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신발부터 벗을 일이다. 로마敎皇度 外國땅에 닿으면 飛行機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그 자리에 엎드려 땅에 입맞춤하지 않던가. 그 땅에 對한 愛情 없이 그 나라를 旅行할 생각을 해선 안 된다. 그것은 于先 自己를 속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아일랜드 出身의 陶藝家다. 나이는 50代 中盤인데, 나는 그를 獨逸의 그렌젠하우젠이란 작은 都市에서 만났다. 그에게는 若干 特異한 氣質이 있었다. 海外에서 展示會를 갖게 되면 반드시 그 나라에서 製作한 作品을 내놓는 것이다. 그는 展示會 開催 날짜보다 훨씬 앞서 現地로 달려가 作品을 製作한다.

    따라서 그에게는 現地에서 作品을 만들 스튜디오나 가마를 求하는 일이 第一 重要할 듯한데, 그는 그에 앞서 그 나라에 對한 工夫부터 始作한다고 했다. 工夫는 主로 文學作品과 歷史冊을 통해 하는데, 그 過程에서 作品의 主題를 찾아낸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瞬間, 旅行家인 나는 果然 무슨 準備를 했는지를 自問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에 비하면 나는 참 게으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제대로 된 旅行을 하려면 이처럼 많은 準備가 必要하다. 旅行을 다녀온 사람들이 異口同聲으로 내뱉는 말 또한 ‘徹底한 準備’다. 그렇지만 旅行地에 對해 眞摯하게 工夫했다는 이야기는 잘 들을 수 없다. 그런 準備를 할 處地가 못된다면 적어도 신발을 벗는 努力만큼은 해야 하리라.

    프레야 스타크(Freya Stark·1893∼1992)는 내가 尊敬하는 旅行家다. 파리에서 태어난 이 英國 女性은 어린 時節을 이탈리아에서 보냈으나 20代에 들어선 뒤부터 아랍世界에 關心을 가졌고, 28歲 때는 그곳을 直接 旅行하겠다는 생각에 아랍語 工夫를 始作했다. 現地의 雰圍氣를 直接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다 30代에 들어서자 그女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西아시아 現地로 달려갔다. 그때가 1920年代였으니 아랍地域이 어떤 狀況이었는지를 想像해보라.

    料理師와 始終 하나를 거느리고 나귀와 조랑말에 몸을 실은 채 女子의 몸으로, 當時로는 男子들도 旅行하길 꺼리던 실로 거칠기 짝이 없는 시리아, 요르단, 아라비아半島, 이라크, 이란, 아프간 等地를 旅行했던 것이다. 自國의 領事館을 咫尺에 두고서도 찾지 않았다. 그女는 아랍語, 페르시아語, 쿠르드語, 터키어를 驅使하면서 西아시아 一帶를 旅行한 最初의 西方 女性이었다. 혼자서,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世界와 만났던 것이다.

    自身이 무슨 대단한 사람인 체 하거나 돈이 많은 티를 내지 않는 것이 사람을 사귀는 가장 좋은 方法이라고 믿었던 스타크는 現地人들과 허물없이 어울리고자 했고, 險難한 곳도 마다지 않으며 돌아다녔다. 그것은 누가 봐도 苦行길이었다. ‘바그다드 스케치’ ‘유프라테스 江을 넘어서’ 等 모두 23卷의 旅行記를 펴낸 그女는 西아시아를 일러 “空間이자 距離이며, 歷史이고 冒險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꼭 100年을 산 그女는 참으로 오랜 時間을 西아시아를 旅行하며 보냈다. 그 스스로도 “旅行을 통해 寬容과 獨立心을 길렀다”고 告白한 바 있다. 스타크에게 西아시아는 令監과 忍耐心의 源泉이었다.

    이런 그女에게 ‘아라비아의 女子 로렌스’라는 別名이 붙었지만 로렌스와 달리 그女는 現實 政治에 손대지 않았다. 끝까지 旅行家, 奇行文學家로 남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西아시아를 사랑했다. 아무런 條件도 없이. 이것이야말로 旅行家가 가져야 할 眞正한 姿勢가 아니겠는가.

    旅行이 우리에게 膳賜하는 것 中의 하나는 스타크의 例에서 보는 것과 같은 令監과 洞察力이다. 익숙한 것들 속에서는 잘 稼動되지 않는 우리의 感覺體系度 낯선 世界에 들어가면 제 機能을 120% 發揮할 때가 있다. 緊張感이 센서를 銳敏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旅行을 통해 새로운 靈感을 얻고 偉大한 作品을 남긴 사람은 아주 많다. 畫家, 音樂家, 文學家, 學者 等 藝術과 學問의 全 分野에 두루 걸쳐 있다. 事業家의 境遇 그들의 特性上 記錄을 남겨 놓지 않아 確認하긴 힘들지만 그 數도 적지 않을 것이다.

    代表的인 人物로 19世紀의 프랑스 思想家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1805∼59)을 들 수 있다. 그는 26歲 때인 1831年 美國으로 건너가 9個月 동안 머물렀다. 많은 곳을 다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 經驗을 바탕으로 ‘美國의 民主主義’란 冊을 펴냈다.

    自由主義 思想의 힘을 믿었던 프랑스 貴族 靑年 토크빌은 그 冊에서 當時 美國의 政治制度와 國民意識, 文化와 社會構造뿐 아니라 民主主義라는 時代精神이 갖는 進步性과 危險性까지 分明하게 밝혀냈는데, 그 德分에 이 冊은 1835年 出刊된 以來 只今까지 人氣가 식을 줄 모른다.

    萬若 當身이 靈感이나 洞察力을 갖고자 한다면 當身의 感覺器官이 더 以上 무뎌지기 前에 旅行을 떠나야 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람들은 旅行이 아니라 觀光을 찾게 된다. “當場은 經濟的 餘裕가 없으니 旅行은 나이 들어서나 떠나겠다”고 하는 이들에겐 泄瀉 耐乏生活을 하는 限이 있더라도 센서가 돌아가고 있을 때 어떻게든 機會를 만들어 떠나라고 勸하고 싶다. 그래야만 남은 歲月을 즐겁고 보람있게 보낼 수 있다. 이는 當身의 子女들에게도 그대로 適用된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 番 이집트 旅行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다. 룩소르에는 3000餘 年 前에 지은 카르나크 代身前이 있다. 룩소르를 찾는 이들이 반드시 찾는 名所다.

    英國에서 왔다는 젊은이 한 雙을 그곳에서 만났다. 그들은 全體 旅行期間이 15日인데 그 中 11日을 룩소르에서 보낸다고 해서 놀랐다. 그들은 이렇게 理由를 들려줬다.

    “룩소르는 每時間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동틀 때와 햇빛이 쏟아지는 한낮, 노을에 붉게 물들었을 때, 그리고 ‘빛과 소리의 饗宴(Sound and Light show)’이 벌어지는 밤 照明 아래 드러나는 光景 하나하나가 너무도 달라서 到底히 한곳이라고 말할 수 없을 程度지요. 우리는 그렇듯 微妙하게 變해가는 룩소르를 限껏 즐기려 합니다. 勿論 반드시 룩소르만 그처럼 다채로운 面貌를 가진 것은 아니겠지만요.”

    하나라도 제대로 알면 거기에서 世上의 모든 理致를 깨칠 수 있다는 姿勢였다. 그들이 마치 나를 빗대 ‘굳이 이곳저곳 다니면서 時間浪費하며 얕은 知識이나 얻을 必要가 뭐 있겠느냐’고 하는 것 같아 뜨끔했다. ‘한 우물만 파라’는 옛말이 그날처럼 깊이 와 닿은 적은 없었다.

    나도 세 番이나 그 神殿을 찾았기에 그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理解 못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實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렵게 時間을 내어 이집트에 왔다면 룩소르 말고도 볼거리가 너무나 많은데….

    나를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젊은 그들이 그같은 微妙한 빛의 變化를 즐길 줄 안다는 事實이었다. 旅行은 量이 아니라 質을 追求하는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質을 追求하는 旅行家들은 다른 곳에서도 많이 만났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토라子 民俗마을, 터키 이스탄불의 性 소피아 寺院 等地에서 나는 그런 親舊들을 만났다. 그들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았다. 名所 앞에서 찰칵 소리를 내며 셔터를 누른 다음, 정작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는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 사람들이 아니다.

    代身 그들의 손에는 스케치북이 들려 있다. 自身의 눈으로 對象을 보고 버릴 것과 살릴 것을 判斷한 다음, 살릴 것들만 스케치북에 옮겨 놓는다. 이렇게 하면 時間은 꽤 걸리겠지만 그 對象을 穩全히 自身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寫眞만 잔뜩 찍어놓고는 나중에 寫眞을 보고 어디서 찍었는지도 모르는 類의 不祥事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남이 만들어 놓은 가이드북에 따라 對象을 理解하고, 남이 解說해놓은 것을 正答이라 믿으며 거기에 自己 생각을 덧붙일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專門家의 解說을 接해도 아니다 싶으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自身의 생각을 밝힌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갖는 것 自體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寫眞 한 張 찍는 것이 重要한 게 아니다. 남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理解하지 못한, 그래서 오로지 自己만의 느낌을 갖는 것이 重要하다. 그걸 願한다면 카메라는 버려야 한다. 적어도 ‘찰칵’ 하고는 이내 돌아서 버리는 姿勢만큼은 버려야 한다.

    카메라에 對象을 담고 今方 돌아서 버리는 것은, 눈 앞에 맛난 飮食이 있는데도 먹지 않고 倉庫에 넣어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旅行은 現在를 保管하기 위한, 또는 所有하기 위한 作業이 아니다. 現在는 흘러가게 내버려둬야 한다. 旅行者는 둑이 될 것이 아니라 흐름을 타는 물고기가 되어야 한다.

    ‘나그네는 欲心을 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所有의 欲求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旅行을 떠난다. 마음을 비우기에 感覺器官은 빛날 수 있고, 對象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생각이 잘 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어슬렁거리곤 한다. 그러다보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옛날 그리스인들은 圖書館 뒤뜰에 반드시 散策路를 두었다. 어슬렁거리며 생각할 수 있는 時間을 갖기 위해서였다. 매뉴얼대로 處理하면 되는 일이라면 몰라도 새로운 일의 方式을 考案하거나 新鮮한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冊床머리를 지키는 게 能事가 아니다. 그때에는 어슬렁거리는 게 上策이다.

    旅行은 바로 이런 어슬렁거림의 高級스런 形態다. 어슬렁거림에도 基本的으로 갖춰야 할 條件이 있다. ‘슬로 템포’와 ‘마음 비움’이 그것이다. 어느 해 여름, 이스라엘의 하이파項에서 사이프러스를 거쳐 그리스로 가는 3泊4日 間의 뱃길 旅行을 하면서 나는 배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옆 사람과 對話를 나누거나 戀人과 사랑을 속삭이는 이들을 보았다. 西歐人들에게 休暇란, 그리고 旅行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이런 게 아닐까.

    ‘마음 속에 아무런 구김을 남기지 않고,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때그때 주어지는 狀況에 따라 適切히, 그러면서도 能動的으로 對應해가며 가슴속에, 머리속에, 몸속 어딘가에 끼어 있을 찌꺼기, 앙금 같은 것들을 씻어내는 作業’.

    그래서 그들은 남의 視線 같은 것은 의식하지 않고, 體面을 버리고 몸과 마음이 要求하는 대로 行動한다. 바캉스란 元來 ‘빔(空)’을 뜻하는 말이 아니던가. 마음속을 늘 지키고 있는 自意識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眞正한 바캉스라고 한다면 애써 뭔가를 할 必要는 없다. 그때그때 몸이, 마음이 바라는 바를 하면 된다. 그러다보면 自身(自信)을 얻게 될 것이고, 또 自身(自身)을 보게 될 것이기에.

    슬로 템포가 바람직하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이를 勸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職業이 따로 있는 사람에게 無作定 宿泊日數를 늘리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現實的인 妥協案이 必要한데, 이를 위해 ‘트래블 믹스(travel mix)’라는 것을 提案하고 싶다.

    旅行에는 于先 時間(time)이 必要하다. 돈(money)도 있어야 한다. 아무리 背囊旅行이라고 해도 얼마間의 돈은 있어야 하고, 가진 돈이 不足하면 現地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

    세番째로 必要한 것은 體力(energy)이다. 體力이 뒷받침되지 않고서야 旅行에 나설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體力이 부치면 好奇心도 發動하지 않는다. 그래서 旅行이 아니라 觀光이 되고 만다.

    마지막으로 必要한 것은 情報(information)다. 時間, 돈, 體力, 그리고 情報를 일러 ‘旅行의 4拍子’, 그리고 이들을 잘 組合하여 運營하는 것을 經營學的 用語를 빌려 트래블 믹스라 이름 붙이고자 한다.

    트래블 믹스란 例를 들면 이런 것이다. 時間도 많고 體力도 좋은데 돈이 없는 旅行者라면 大衆交通手段과 값싼 宿所를 利用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時間이 많이 所要된다. 勿論 이것도 지나치면 經濟的 支出을 늘리게 되는 結果를 낳으니 나름대로 對策을 세워야 한다.

    體力에 問題가 있는 사람이라면 돈은 좀 들더라도 빠른 交通手段을 利用하는 것이 좋다. 또 꼭 봐야 할 곳이 있는데 時間은 모자라고 그곳으로 가는 마땅한 大衆交通手段이 없을 때는 택시나 飛行機도 利用해야 된다. 여기에는 곧바로 經濟的 支出이 뒤따른다. 代身 時間을 節約하고 體力 消耗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時間, 돈, 體力이라는 세 가지 要素를 함께 切感할 수 있는 祕策이 있다. 情報가 그것이다. 旅行者가 旅行에 必要한 情報에 精通해 있다면, 다시 말해서 自己가 願하는 곳이 어디에 位置하며, 또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타고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곳은 언제 門을 열고 닫는지 等을 잘 알 터이니 時間과 돈, 體力의 浪費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事實 旅行을 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大槪 情報의 不足에서 온다. 제대로 된 情報가 없으면 껍데기만 보고 오기 十常이다. 그 構造와 裝飾, 그것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 等을 놓치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旅行의 效果는 半減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나는 于先 情報부터 챙기고, 그것에 기초하여 旅行計劃을 짠 後 現場으로 달려간다. 또 旅行中에도 새로이 얻는 情報를 잘 消化해서 必要하면 스케줄을 손질한다.

    그러나 旅行에 必要한 情報란 너무나 廣範圍하기 때문에 情報를 얻는다는 게 簡單치가 않다. 흔히 接할 수 있는 旅行 가이드북은 旅行情報의 極히 一部分을 提供할 따름이다. 旅行情報는 크게 세 가지로 區分할 수 있다.

    첫番째는 技術的 情報다. 가이드북의 길 案內나 宿泊·飮食·쇼핑 等에 關한 實用的 情報가 이에 該當된다. 市中에 나와 있는 旅行가이드가 이때 가장 손쉬운 情報源이 된다.

    두番째는 地域 情報다. 旅行하고자 하는 國家나 地域의 歷史, 藝術, 政治, 經濟 等에 關한 情報를 말한다. 그 나라에 對한 全體的인 理解가 없이는 該當 名所나 都市를 제대로 觀察할 수 없다. 이를 解決하기 위해서는 旅行가이드는 勿論 歷史서도 읽어야 하고, 百科事典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세番째는 總括 情報다. 말 그대로 技術的인 것도, 地域的인 것도, 專門的인 것도 아닌, 이 모두를 뛰어넘는 높은 次元의 情報를 말한다. 旅行 自體를 뜻깊게 하고 潤氣나게 하기 위해선 多少 哲學的이고 文學的인 情報들도 包含돼야 하는데 바로 그게 總括 情報다. 앞서 例로 든 陶藝家 마이클의 境遇에서도 봤듯이 旅行의 테마는 大槪 이 總括 情報의 取得段階에서 이뤄진다.

    旅行은 낯선 곳으로 찾아가는 冒險이다. 冒險은 짜릿한 感動을 준다. 거기에는 危險性이 內在돼 있기에 그러하다. 旅行은 必然的으로 危險을 內包한다. 그러므로 危險은 旅行의 本質이라고 할 수도 있다.

    旅行者가 當할 수 있는 危險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身體的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金錢的인 것이다. 前者는 다시 身體的인 威脅과 事故로 나눌 수 있다. 治安이 不安한 地域을 旅行하거나 現金이 많은 티를 내거나 어딘가 허술하게 보일 때 그 蓋然性은 높아진다. 是非가 붙을 만한 일에는 關與하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어떤 狀況에서도 周圍를 잘 살펴 問題의 素地를 미리 豫防하는 努力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金錢的 危險은 盜難과 소매치기, 바가지 等으로 나눠볼 수 있다. 盜難을 防止하려면 짐의 數를 줄이는 게 優先이다. 世界的인 旅行 가이드북 ‘論理 플래닛’에 紹介된 호텔도 全的으로 믿을 수는 없다. 열쇠로 채운다든가 해서 나름의 防備策을 생각해야 된다. 소매치기는 複雜한 버스停留所나 버스 속에서 자주 일어나며, 길거리에선 周圍를 散漫하게 만드는 꼬마녀석들에 依해 大槪 저질러진다. 옷에 샴푸를 묻힌다거나 가까이 와서 뭐라고 떠들어대면 빨리 그 자리를 뜨는 게 좋다.

    바가지 쓰는 일은 物件을 살 때보다는 술집에서 主로 일어난다. 韓國 旅行者들의 大部分은 로마나 파리의 술집에 들렀다가 바가지를 쓰곤 한다. 부끄러운 일이라 남들에게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누군가가 먼저 그 얘기를 꺼내면 “나도 當했는데…” 하면서 實吐한다.

    길거리나 車에서 偶然히 알게 된 사나이가 親切을 베풀고 甚至於는 속에 있는 이야기까지 들려주면서 當身이 ‘이 親舊는 正말 믿을 만하구나’ 하고 마음을 놓는 瞬間, 그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因緣인데, 어디 가서 술이나 한 盞 하지. 내가 쏠 테니까.”

    그 동안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아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말도 통하고 마음씨도 쓸 만하니 이런 親舊라면 ‘까짓거, 내가 쏠 수도 있지’ 하는 생각으로 쉽게 따라나서게 된다.

    그 親舊는 술집에 들어가서도 當身을 치켜세우고 늘씬한 몸매의 아가씨까지 붙여준다. ‘客地에서 이런 待接까지 받다니, 나는 正말 幸運兒야’ 하고 생각할 무렵, 언뜻 精神을 차려보니 그 親舊가 보이지 않는다. 그가 사라졌는데도 아가씨들은 아무 걱정 없이 잘 논다. 걱정은 오히려 當身의 몫이 된다. 속았다는 생각에 술집에서 얼른 빠져나가려고 計算書를 가져달라고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웬 동그라미가 그리도 많이 붙어 있는지. 달러로 換算해보니 500달러가 넘는 巨金이다.

    이렇게 새나간 外貨가 果然 얼마나 될까. 내가 本格的으로 外國 旅行을 다니기 始作한 지 20年이 넘었는데 20年 前에 써먹던 手法이 아직도 그대로 通用되고 있으니 우리는 世界의 ‘鳳’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旅行中에는 理由 없이 親切한 사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自身의 속내까지 드러내는 사람은 于先 警戒해야 한다. 적어도 1週日은 지켜본 다음 마음을 여는 게 좋다. 意圖가 있는 사람들의 親切은 大槪 사나흘을 넘기지 못하니까.

    터키를 旅行하다 그곳 大使館에 勤務하는 領事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리비아의 病院에서 勤務하던 韓國 看護師 세 사람이 일을 마치고 歸國하는 길에 터키에 들렀다. 그곳에서 한 男子를 만났는데, 혼자라면 몰라도 一行이 셋이나 되니 터키 男子가 接近해도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냐며 그다지 警戒를 하지 않았다. 그는 잘 생긴데다 싹싹하기까지 해서 허물없이 사흘 동안 함께 어울렸다.

    일은 사흘째 되던 날 밤에 일어났다. 女子들이 다음날 떠난다고 하자 男子는 헤어지기 섭섭하다며 그女들의 宿所에서 조촐한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했다. 얼마間 술이 오가고 雰圍氣가 무르익었을 즈음 그는 “正말 좋은 커피가 있다”며 몸소 끓여서 한 盞씩 勸했다.

    그걸 마신 女子들은 다음날 늦게 호텔 從業員들이 흔들어 깨워서야 겨우 눈을 떴다. 房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돈도 돈이지만 旅券과 飛行機票마저 사라졌으니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 일은 女子 旅行客들뿐만 아니라 韓國 男子들을 相對로도 種種 일어난다고 한다. 肉身의 苦痛을 甘受하는 것은 旅行의 程度(正道)이기에 勸해야 될 일이지만, 甘言利說에 眩惑돼 危險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人生은 흔히 나그네길에 比喩되곤 한다. 좋은 旅行을 하는 것은 人生을 잘 사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人生을 살아가는 데 딱 ‘이거다’라고 할 수 있는 黃金코스가 없듯이 旅行에도 黃金코스라는 것은 없다. 佛文學者 김화영 敎授는 旅行 에세이 ‘幸福의 衝擊’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참으로 ‘떠난다’는 일은 쉽지 않다. 떠나는 方法은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다. 數없이 떠나본 사람에게도 모든 ‘떠남’은 恒常 最初의 經驗이다. 떠나는 方法은 自己 스스로에게도 敎育할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旅行을 좀 했다는 이도 길에 나서면 늘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驚異感을 느끼기에, 또는 그런 期待感이 있기에 또 길을 떠난다. 旅行의 誘惑은 苦痛처럼 强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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