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寧하세요. OOO 先生님 통해 連絡드리게 된 東亞日報 송혜미 記者입니다. 取材 同意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感謝드려요. 或是 通話 便하신 때 언제실까요?’
<漂流> 인터랙티브 記事 1回 <
그들이 救急車를 탔던 날
>의 첫 事例者이자
지면 시리즈 記事
主人公이기도 한 種熱 氏와의 因緣은 이 한 通의 文字로 始作됐다. 특별할 것 없는 內容이지만 事實 몇 番을 고쳐 썼다. 長文의 文字를 한바탕 썼다가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지웠다. 親近하게 물결(~)이나 느낌標(!)를 붙일지, 그게 아니면 信賴感을 주도록 마침標만으로 文章을 끝낼지, 電送 버튼 누르기 直前까지 苦悶했다. 그러느라 種熱 氏의 連絡處를 傳達받고도 2時間 後에야 文字를 보낼 수 있었다.
種熱 氏뿐만이 아니다. 모든 漂流 患者와의 첫 만남이 내내 이런 過程을 거쳤다. 누군가의 삶에 발을 들이는 첫 걸음이라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아프고 괴로운 것일수록 망설이는 時間은 더 길어졌다. 漂流 끝에 세 살 子女를 잃은 家族을 取材할 땐 며칠동안 文字를 썼다 지웠다 携帶폰을 붙들고 씨름했다. 하루아침에 아이를 잃은 슬픔 앞에서 어떤 人事말도 무심하게 느껴져서다. 그들의 이야기를 끝내 記事에 다 담지 못한 것도 남겨진 家族들의 苦痛이 너무 크고 깊었기 때문이다.
텍스트 記事와 더불어 인터랙티브 記事를 함께 製作해야 하는 點도 取材를 어렵게 했다. 텍스트 記事엔 이야기만 있으면 되지만 인터랙티브 記事에는 생생한 視聽覺 資料가 必要하다. 活字보다도 그게 優先이다. 漂流 當時 救急車, 應急室, 手術室의 모습을 담은 寫眞과 映像 같은 것들. 旣視感이 들 법한 이 아이템에 確信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생생하게 視覺化했을 때의 衝擊波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視聽覺 資料를 求하고 使用하는 데는 생각보다 難關이 많았다. 救急車나 應急室 CCTV 映像은 保管 期間이 짧았다. 現場에서 내내 카메라를 켜고 있다 만나는 患者가 아닌 以上 지난 事例에 對해 이미지, 映像, 音聲을 求하는 게 어려웠다. 設令 資料를 求하더라도 患者나 家族들이 使用을 쉽게 許諾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漂流의 記憶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했다. 惡夢 같던 그날을 다시 마주볼 自信이 없다고 했다. 이런 事情으로 取材를 한참 進行하다 더 以上 應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어렵게 말을 꺼낸 事例자도 있었다.
取材가 難關에 부딪히던 瞬間을 곱씹어볼수록 알겠다. 선뜻 이야기를 들려주고 取材에 기꺼이 應해주는 사람들을 만난 게 큰 幸運이었다는 걸 말이다. 시리즈에 登場하는 取材源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했다. 이런 일이 繼續될까봐 걱정된다고. 다른 사람들이 같은 일을 겪을까봐 무섭다고. 結局 <漂流> 시리즈는 커다란 苦痛 속에서도 家族이, 親舊가, 이웃이 같은 일을 當하지 않기만을 바란 患者와 그 家族들의 善意에 빚지고 있다.
記事가 끝나도 이들의 삶은 繼續된다. 取材하는 동안 漂流 患者, 그 家族에게 진 빚에 報答하는 길은 이 끝나지 않는 이야기에 繼續해 귀 기울이는 일이다. 또 數年째 같은 苦痛을 外面해온 政府와 政治權이 이番엔 제대로 된 應答을 내놓을지 지켜보는 일이다. 6期 히어로콘텐츠팀은 總 5回로 計劃한 시리즈를 마치고 解團式을 가졌다. 아이러니하게도 解團式에서 나온 決心은 “끝까지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