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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映畫 監督’이 좋다는 78歲 이장호와 53歲 봉만대의 ‘무릎과 무릎 사이’?[유재영의 全國깐부자랑]|東亞日報

‘에로映畫 監督’이 좋다는 78歲 이장호와 53歲 봉만대의 ‘무릎과 무릎 사이’?[유재영의 全國깐부자랑]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8月 19日 09時 00分


코멘트
깐부. 國語辭典에는 ‘같은 便’, 나아가 ‘어떤 境遇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補充 說明이 달려 있습니다.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人生도 健全한 交感을 나누는 平生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美國 하버드 醫大 로버트 月딩어 敎授는 東亞日報 新年 인터뷰에서 “幸福을 決定하는 決定的 要因은 不渡, 名譽도, 學閥도 아닌 사람들과 따뜻하게 依支할 수 있는 關係”라고 했습니다. 좋은 人間關係는 健康에도 肯定的인 影響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價値’를 紹介합니다.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한국 에로 영화의 대표 감독 이장호(오른쪽)-봉만대 브로맨스. 각자의 에로티시즘에 꽃힌 것이 인연이 돼 평생 친구가 됐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韓國 에로 映畫의 代表 監督 李長鎬(오른쪽)-봉만대 브로맨스. 各自의 에로티시즘에 꽃힌 것이 因緣이 돼 平生 親舊가 됐다. 유재영 記者 elegant@donga.com
“李 監督님이 劇場用 다큐멘터리를 準備하신다는데 그냥 딴 생각하지 마시고 ‘무릎과 무릎 사이 2’(續編)를 다시 찍으셨으면 좋겠어요. 前 無條件 그 映畫 보고 싶습니다.”

相對方의 말門을 닫아버린 ‘사이다’直擊이다. 獨特한 캐릭터의 後輩 映畫監督이, 25살 많은 大先輩 映畫監督에게 핀잔 같은 딴죽을 걸고 있으니 分明 普通 사이가 아닌 게 맞다.

先輩는 後輩가 얼마나 좋은지 後輩의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助言으로 듣는다. 對話 하나하나를 안 놓친다. 幸여 奇拔한 後輩의 아이디어가 對話 中間에 스치고 지나갈까봐 集中을 한다. 時代를 넘어 韓國 리얼리즘 映畫의 系譜를 잇는 李長鎬(78)-봉만대(53)監督이 무릎과 무릎을 대고 앉아 나누는 對話의 品格이다.

最近 서울 仁寺洞에서 이 監督을 만난 奉 監督은 이 監督이 次期作 準備 얘기를 꺼내자마자 거침없이 制動(?)을 걸었다. 李 監督은 그런 奉 監督의 ‘브레이크’가 싫지 않다. 오래 微動조차 없는 ‘이장호’의 存在感을 甚하게 흔들어 깨워주는 것만 같아 고맙다.

● 거침없는 ‘봉만대’ 앞에서 率直해지는 ‘이장호’
體重 調節로 날씬해진 李 監督은 이날도 아침 食事를 거르고 地下鐵을 타고 걸어서 인사동에 왔다. ‘愛着 봉만대’를 만난다는 설렘에 빠른 걸음으로 오다보니 티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트레이드마크인 휘감기는 웨이브 앞머리를 歲月이 밀어냈지만 티셔츠 위로 멜빵을 바지에 걸친 실루엣에서 如前히 現場을 그리워하는 懇切함이 묻어난다. 李 監督이 수많은 親舊들을 제치고 特別히 깐부로 찍었다는 말에 “저를요? ”라고 놀라 反問하던 奉 監督이 “땀 흘리는 거 設定이시죠?”라고 弄談을 던지며 반갑게 李 監督을 맞는다.
李 監督은 奉 監督을 보면 궁금한 게 많아지고, 지나간 에피소드가 생각나고, 또 自己 얘기가 하고 싶어지는 것 같다. 술 얘기부터 어디 가서 말못할 苦悶까지 털어놓는 率直한 ‘이장호’가 된다.

-누가 술이 세셔요?
“監督님이 끝까지 남아계십니다.”(봉만대)

“나이가 드니까 술이 좀 줄어요. 이제는 燒酒 2甁쯤 마시면 물만 많이 마셔요. 그런데 봉만대를 만나면 ‘鳳’이 나를 英雄으로 만들거든. ‘그 年歲에 술을 어떻게 잘 드시느냐’고 하면 英雄心理가 發動해서 길게 마셔요. (봉만대 때문에) 氣分 좋으면 그날은 술에 當합니다.”(이장호)

“監督님. 제가 最近에 ‘꿀酒’라는 걸 알아냈어요. 燒酒컵에 燒酒를 適當量 따르고 麥酒를 조금 따르면 꿀맛이 나요. 6時間은 버틸 수 있어요.“(봉만대)

“그건 술 같지도 않다.”(이장호)

“監督님. 年歲가 있으시잖아요.”(봉만대)

“연세, 捐世하니까 연세대도 안나왔는데 氣分 나쁘네. 하하.”(이장호)

“監督님 周邊 분들 中에 누가 술이 가장 셌어요?”(봉만대)

“젊은 사람들은 그다지 센 사람을 못 봤고, 생각을 해보니 世上을 떠난 강수연이가 眞짜 셌어. 예전에 배창호 監督이 강수연하고 술을 對酌하다가 漫醉가 되서 몸집이 작은 수연이가 裵 監督을 업어서 집까지 데려다줬다고. 奉 監督, 그런데 신설동에 有名한 설렁湯 집이 있다고 안 했나?”(이장호)

길가다 三千浦로 빠지는 것과 같은 이 監督의 急激한 對話 흐름 變更에도 奉 監督은 아랑곳하지 않고 “요즘 너무 풀만 드시는 거 아녀요? OO 설렁湯인데, OO먹은 꼴뚜기 宿懷 집도 有名하다. 大韓民國 딱 한 곳 있을만한 스타일이다. 꼴뚜기가 엄청 크다. 그거 드셔보라”고 雰圍氣를 이어준다.

李 監督은 1980年代 韓國 映畫를 代表하는 스타 製作者다. 作品性과 興行性을 同時에 인정받았던 레전드다. 1974年 監督 데뷔作인 故 신성일 主演의 ‘별들의 故鄕’부터 大舶을 쳤다. 興行 監督 隊列에 合流해 1980年代 變化無雙한 장르를 넘나들며 大作들을 선보였다. 바람불어 좋은 날(1980), 어둠의 子息들(1981), 바보선언(1983) 等에서 가난과 抑壓, 不平等 같은 社會 어두운 面을 낱낱이 告發하더니 이보희라는 女俳優를 發掘해 무릎과 무릎사이(1984), 於宇同(1985) 等의 破格的인 에로티시즘 映畫로 새 人物, 더 刺戟的인 作品을 期待하던 成人 觀客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더니 漫畫에 꽂혀 漫畫家 이현세의 原作 野球 漫畫를 이장호의 外人球團(1986)으로 내놓아 또 한 番 히트를 쳤다. 野球에 사랑을 엮은 스토리가 只今 보면 陳腐할 수 있으니 哀切한 OST 等을 絶妙하게 붙여 觀客들의 感性을 貫通하고 心琴을 울렸다.

‘이장호의 외인구단’ 촬영 당시 배우들에게 연기 설명을 하고 있는 이장호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 왼쪽은 배우 최재성, 오른쪽은 안성기.
‘이장호의 外人球團’ 撮影 當時 俳優들에게 演技 說明을 하고 있는 이장호 監督(왼쪽에서 두 番째). 왼쪽은 俳優 崔宰誠, 오른쪽은 안성기.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별보다 예쁘고 꽃보다 더 고운 나의 親舊야. 이 世上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나의 親舊야….’ (映畫 揷入 精髓라 ‘난 너에게’에서)
둘이 만날 때 對話의 空白의 생기면 무척 語塞해 보인다.
“그런데 原作이 ‘恐怖의 外人球團’인데 왜 ‘이장호의 外人球團’으로 題目을 定하셨어요?”(봉만대)

‘이장호의 외인구단’ 촬영 당시 이 감독(가운데)과 배우 이보희. 이 감독에게 발탁돼 ‘무릎과 무릎 사이’, ‘ 어우동’에서 관능미를 뽐냈던 이보희는 이 영화에서 연기 변신을 했다.
‘이장호의 外人球團’ 撮影 當時 이 監督(가운데)과 俳優 이보희. 李 監督에게 拔擢돼 ‘무릎과 무릎 사이’, ‘ 於宇同’에서 官能美를 뽐냈던 이보희는 이 映畫에서 演技 變身을 했다.
“그 當時에 檢閱이 엄청 셌거든. ‘恐怖’ 뭐 이런 單語 들어가면 다 잘랐어. ‘恐怖’가 嫌惡感을 준다는 거야. 할 수 없이 題目을 바꾼거지. 노래 歌詞에 ‘늑대 같은 사나이들이 몰려온다’가 있으면 늑대를 問題삼더라고. 늑대가 잘려서 나갔어.”(이장호)

반짝 黃金期 바로 直後 그는 긴 내리막길을 限없이 걷고 있는 映畫人이 됐다. Y의 體驗(1987)부터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1989) 명자 아끼꼬 쏘냐(1992) 天才 宣言(1995) 마스터 클래스의 散策(2011) 等이 연이어 興行에 失敗한데다, 自尊心을 걸고 製作한 視線(2014)마저 외면당했다. ‘視線’ 開封 前날에 歲月號 慘事가 터졌다. 正말 興行은 고사하고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었다. ‘별들의 故鄕’ 크랭크인 40周年에 發表한 映畫가 李長鎬 映畫 人生의 ‘黑歷史’가 돼 버렸다. 以後 그는 거의 10年 가까이 메가폰을 잡지 않았다.

急激하게 變해가는 世上과 좋고 싫음이 분명한 젊은 觀客들이 漸漸 두려웠을 수도 있다. 그런 自身과 씨름해서 이겨야하는데 샅바 잡는 것부터 意志가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가요?
“視線 以後에 映畫를 한 番도 안 냈는데 이리 먹고 사는 것도 神奇하죠.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이 成功하고 나서 ‘에로티시즘 映畫가 더 고급스러워져야겠다. 色깔을 달리 해야겠다’고 어설프게 變化를 줬다가 ‘와이스토리’가 안 되고 그 以後 만드는 것마다 失敗했죠. 銀行에 집 抵當 잡히고 쫒기다보니까 ‘손을 다 털어야겠구나’ 생각을 한 거야. 나는 試鍊이 에너지가 돼 頂上까지 올라갔는데 거기서 傲慢해지고 게을러졌어요. 危機는 機會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機會가 다시 危機가 되더라고. 그러다 時間이 흘러 이제 觀客 世代가 完全히 달라졌는데, 그 觀客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이지 않고, 알아도 따라갈 수가 없어서 저 나름대로 宏壯히 오래 萎縮이 됐죠.”

映畫 ‘바보선언’은 別 期待없이, 처음에는 제대로된 시나리오도 없이 찍었는데 오히려 映畫界와 觀客 反應이 豫想外로 좋았던 作品이다. 現場에서 卽興的으로 스토리를 設計하고 場面을 꾸미는 이 監督 스타일이 가장 잘 묻어나는 作品이다.

-‘바보선언’의 續篇 格인 ‘天才 宣言’李 自尊心을 회복시켜줄까. 그間의 失敗를 挽回 해줄까. 그런 期待를 하지 않으셨나요. (奉 監督도 相當히 궁금해 했다)
“김영삼(YS) 政府가 들어서고 檢閱이라는 壁이 낮아졌고, 表現의 自由도 保障이 됐죠. 그러다보니 政治, 社會 諷刺를 세게 해야 하는데 銃을 어디다 쏴야할지 타깃이 안 보이는 거야. 安聖基가 劇中에서 映畫監督으로 나오는데 타깃 없이 本人 自我를 統制하니까 映畫가 目標, 方向을 잃어버리더라고. 내가 보기에도 嘔吐가 나오는 映畫였어요. 그 映畫에서 ‘映畫監督 이장호’의 끝이 보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自尊心의 欠집이 많이 났겠어요.
“映畫를 몇 番 망치니까 後輩 監督에게 실망스럽다는 말도 듣고, 憫惘한 放送 프로그램도 있었죠. 市內에서 사람들에게 無作爲로 ‘이장호 監督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는 內容이 있었는데 全部 ‘안티’더라고. ‘왜 이보희만 出演시키냐’ , ‘왜 그렇게 포르노에 가까운 映畫만 만드느냐’는 사람들의 卽席 質問에 내가 30秒 안에 對答을 해야 했는데 당황스럽더라고. ‘내가 問題가 많구나. 나를 客觀的으로 못 봤구나’라는 自責이 컸어요.”

2014년 4월 ‘사선’ 개봉을 앞두고 시사회 때의 이 감독. 이틀 후 세월호 사고가 터지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흥행 참패를 겪고 이 감독은 긴 슬럼프에 빠졌었다. 동아 DB
2014年 4月 ‘死線’ 開封을 앞두고 試寫會 때의 이 監督. 이틀 後 세월호 事故가 터지는 等 惡材가 겹치면서 興行 慘敗를 겪고 李 監督은 긴 슬럼프에 빠졌었다. 東亞 DB
奉 監督 앞에서 率直하게 自身의 허물을 얘기하는 이 監督은 大鐘賞 감독상을 두 次例(1980, 1982) 殊常한 名匠 中의 名匠이다. 이미 마음속에서 映畫인 最高의 名譽를 返納하고 지운 걸까. 自己 反省과 省察이 거침없다. 그런 李 監督이 奉 監督은 짠하다.

● 서로의 에로티시즘 ‘덫’에 걸리다
도쿄 섹스피아(1999)로 監督 데뷔를 한 奉 監督은 ‘性(性)’의 리얼리티를 살린 에로티시즘 映畫를 多數 製作해 話題가 됐다. 奇拔하고 발칙한 에로 映畫의 代名詞다. 直接 俳優로도 自己 作品 等에 出演했고, 藝能 프로그램에서도 發掘의 입담으로 座中을 壓倒하는 萬能 엔터테이너다.

2003년 영화 감독으로 첫 극장 개봉작으로 내놓은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당시 33살의 봉만대 감독(왼쪽)과 주인공 김서형(가운데), 김성수.  봉만대 제공.
2003年 映畫 監督으로 첫 劇場 開封作으로 내놓은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當時 33살의 봉만대 監督(왼쪽)과 主人公 金瑞亨(가운데), 金性洙. 봉만대 提供.
2003年 첫 映畫 開封作으로 내놓은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은 現實 男女의 偶發的인 肉體的 이끌림과 戀愛 心理를 리얼하게 다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아티스트 봉만대(2013), 봉준호 監督의 ‘雪國列車’를 패러디한 떡국列車(2015) 等과 같은 코미디 에로와 신데델라(2006), 덫: 致命的인 誘惑(2015) 等 恐怖와 로맨스 스릴러 映畫까지 挑戰을 試圖하며 自己만의 길을 確實하게 構築해갔다.

둘이 만난 것도 에로 映畫가 連結고리다. 때를 달리해 서로의 에로티시즘을 보고 衝擊을 받았다.

李 監督은 ‘視線’의 慘敗 衝擊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時節에 偶然히 奉 監督의 映畫 ‘덫: 致命的인 誘惑’을 보고 에로티시즘의 새로운 世界를 接했다. 이 映畫는 시나리오 執筆을 위해 허름한 山골 民泊을 찾은 作家가 偶然히 官能的 魅力을 가진 少女를 만나 혼란스러운 經驗을 하게 되는 스토리다. 奉 監督의 映畫 中 가장 잘 다듬어졌다고 專門家들이 評價하는 作品이다. 李 監督과 2015年 여름 光州에서 開催된 李長鎬 映畫아카데미에 奉 監督을 招請했다. 첫 만남이다.

“봉만대 냄새가 全혀 나지 않은 本格的인 問題作이었어. 正말 놀랐어.”(이장호)

“저에게는 悲運의 作品이에요. 2010年에 만들어졌는데 開封을 못하고 고생고생하다 어렵게 나왔죠.”(봉만대)

奉 監督도 어린 時節 李 監督의 作品을 보고 宏壯한 文化的 衝擊을 받았다고 했다.

-어땠어요?(봉 監督은 1970年生)
“ ‘별들의 故鄕’은 TV로 봤고, 가장 먼저 ‘무릎과 무릎 사이’를 봤죠. 이장호 監督님 作品인줄 은 그 때 全혀 몰랐죠. 映畫 監督 이름 올라가는 字幕 畵面 보질 않잖아요. 그 映畫가 開封했는데 보고 싶어 勇氣가 생기더라고요. 全羅道 光州 금남로 隣近에 살았었는데 地方은 同時 上映館이 많았잖아요. 中學校 때인데 映畫館 近處에서 어머니가 食堂을 하고 계셔서 酒煎子만 들고‘식당에서 왔다’고 配達하는 척하고 들어가 監督님 映畫를 처음 보게 됐죠.”

-冶한 場面이 많았을텐데.
“衝擊을 너무 크게 받았어요. 나한일 先輩님이 車 안에서 逃亡가는 이보희 先輩님 속옷을 당겼는데 그대로 튀어나가는 場面이 只今도 잊혀지질 않아요. ‘都大體 이 映畫를 만든 監督님은 누굴까’라는 생각에 그 以後로 監督님의 映畫는 다 봤던 것 같아요.”

이장호 감독의 대표 에로 영화 ‘어우동’ .
이장호 監督의 代表 에로 映畫 ‘어우동’ .
-單純한 映畫가 아니라서 어린 나이에 理解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어우동을 보는데 마지막 場面에 洞窟에서 안성기 先輩님이 이보희 先輩님 等에 文身을 해주잖아요. 그 때는 무슨 글씨인가 싶었죠. 나중에 監督님께 물어보니 ‘날 비(飛)’字인 거예요. 제가 映畫를 始作할 때쯤 監督님 映畫를 봤다면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았겠나 싶어요. 只今 저에게 監督님 作品 리메이크 提案이 오면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을 挑戰해보고 싶어요. 監督님한테 ‘무릎과 무릎 사이’ 題目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는데 이렇게 착하게 始作된 映畫가 왜 에로 映畫로 人氣를 얻었을까요? 저는 當代 最高의 映畫 題目이라고 생각해요.”

李 監督이 안 낄 수가 없다.

“當時 ‘무릎’이라는 말이 우리 映畫 題目에 한 番도 안 쓰였더라고. 그러면서 스토리를 만들려고 하니 ‘무릎’ 單語가 주는 語感이 너무나 新鮮하고 깨끗한 거야. 未成年者 男子와 女子가 데이트할 때 서로 마주보는 狀況에서의 그 純粹한 무릎과 무릎을 떠올리고 題目으로 定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亂離가 나더라고. 助監督에 얘기를 하니 엄지를 들고 입을 못 다물더라고. 어디 함부로 얘기하고 다니지 말라고 했어. 하하.”(이장호)

“이 얘기를 監督님께 듣고 제가 어떤 생각을 韓紙 아세요. ‘내 靈魂이 그동안 참 더러웠구나’.”(봉만대)

● ‘봉만대’ 에로가 두려운 ‘이장호’… 誘致한 ‘이장호’를 보고픈 ‘봉만대’
李 監督은 自己에게 없는 것을 가진 ‘봉만대’의 魅力이 凡常치 않다고 본다.

“ ‘덫’이라는 映畫를 보면서 이 親舊가 藝術家的인 섬세함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奉 監督이 映畫를 쉽게 만들지 않더라고. 나처럼 興行에 미친 에로티시즘에서 벗어나면 아주 좋은 作品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後輩의 作品을 높이 評價하면서도, 그로 인해 초라한 내가 비춰질 것 같다는 李 監督이다. ‘봉만대 앞에만 서면’ 또 率直해지는 李 監督이다.

이 감독의 다큐멘터리 제작 계획을 두고 논쟁이 붙은 이 감독과 봉 감독. 봉 감독은 “나는 반대일세”를 외쳤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李 監督의 다큐멘터리 製作 計劃을 두고 論爭이 붙은 이 監督과 奉 監督. 奉 監督은 “나는 反對일세”를 외쳤다. 유재영 記者 elegant@donga.com
“奉 監督의 映畫는 보기가 怯이 나요. 내가 에로티시즘으로 有名해졌기 때문에, 봉만대에게서 자칫 내 失敗의 모습이 發見될까봐 두려운 게 事實입니다.”

奉 監督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하자 이 監督은 “에로티시즘에는 限界가 分明 있다. 人間이 갖고 있는 것 中에 가장 發見하기 힘들기도 하고…. 肉體에서 가장 銳敏하게 나타나는 게 官能이다. 이것을 大衆들에게 보여주면서 어떻게든 意味附與하고 正當化시키는 게 나는 무서워. 거기서 얻을 게 뭐냐? 話題가 되서 돈 버는 것 外에는 없다고 보거든. 그것을 봉만대에게 發見하는 것보다는 봉만대가 갖고 있는 더 깊은 藝術性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標榜했던 에로티시즘 스토리는 예전 統制된 時代가 아니라 자유로운 雰圍氣에서 나왔기 때문에 時代性은 닮지 않았죠. 그럼에도 잘 準備하겠습니다.”(봉만대)

李 監督은 李承晩, 朴正熙 前 大統領을 再評價하는 다큐멘터리를 製作하려 한다. 厖大한 資料를 모으고 檢證하는 中이다. 그들의 業績을 客觀的으로 評價해 알리고픈 意志가 무척 剛하다. 한쪽으로 치우친 內容이 아니더라도 政治的 論難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래도 밀어붙일 생각이다. 映畫監督으로 마지막 作品이라고 確實하게 線을 그었다.

“反省의 힘을 充電하는 期間이 길었다고 생각해요. 내리막길을 걷는 訓鍊을 오래 했고 이제 죽기 前에 한 番쯤 오르막길로 갈 수 있는 마지막 機會를 얻었다고 봐요.”

奉 監督은 이 監督이 자꾸 내리막길로 간다고 규정짓는 自體가 不便하다.

“作品을 안 찍어서 監督님 스스로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한 番도 監督님 只今 가는 길이 내리막이라고 생각 안했어요. 心理的으로는 내려가고 있지만 監督님 몸은 繼續 映畫界 안에서 그대로 存在하고 있는 거죠.”

“奉 監督. 나를 돌아보고 느낀 것들을 正直하게 作品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한 거야. 내가 劇映畫를 만들 수 있는 與件은 아니고. 歷史 工夫를 다시 하고 있어.”

“그래도 저는 안했으면 좋겠어요.”

奉 監督은 이 監督의 試圖 自體를 反對하지 않는다. 俗物的인 作品이 안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政治的 攻擊을 받을까봐 걱정이 크다.

“저의 映畫的 親舊로만 계셔주면….”

“奉 監督이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監督님 周邊 親舊들은 反對 안하던가요?”

“없는데….”

“그러면 親舊 아니죠. 基督敎人인 監督님의 政治를 뺀 基督敎 映畫라면 보고 싶습니다. 映畫를 해왔던 사람으로 本 基督敎, 3者의 視線에서 본 예수.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政治私, 그리고 그 時代에 監督님이 할 수 있었던 映畫… 그런 것을 다른 사람이 客觀化하는 게 좋지 않나 싶어요. 이 時點에서 監督님은 眞짜 親舊 찾기 하셔야 돼요.”

“所信을 正直하게 밝히느냐, 아니면 눈치를 보면서 所信을 숨겨야할지, 이 둘의 決定이겠다 싶네.”

‘갑雰싸’ 對話는 絶對 서로를 尊重하는 線에서 說得과 說得 攻防으로 津하게 이어진다.

“監督님의 얘기를 더 客觀化할 必要가 있다. 監督님 儀式을 映畫에 그대로 投影하는 건 無理가 있다”는 奉 監督의 提案에 “그동안 장르에 對한 挑戰이 많았다. 내 式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다큐멘터리도 亦是 正答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이 監督이 받아친다.

自身을 늘 ‘B級 監督’이라고 말하는 奉 監督은 아예 自身과 비슷한 캐릭터의 ‘이장호’가 돼 “幼稚한 映畫를 만들어보시라”는 破格 注文을 해보면서 생각을 바꾸려했다. 그러자 이 監督은 “元來 내가 演出을 卽興的으로 한다. 시나리오를 앉아서 쓴 적이 없다. 現場에 나가야 머리 回轉이 된다. 그래서 내 演出은 ‘天水畓’(地下水 施設이 없어 물을 빗물 等에만 依存할 수밖에 없는 形態의 논, ) 演出”이라며 暫時 다큐멘터리 製作 固執을 暫時 접어둔다. 眞心으로 助言을 해주는 後輩에 對한 配慮다.

“反對도 해주는 깐부하고 같이 있는 只今이 좋네요.”(이장호)

● 어둠의 鳳? 나는 ‘빛나는 鳳’
李 監督은 ‘殺人의 追憶’, ‘怪物’, ‘寄生蟲’을 製作한 世界的인 名將 봉준호 監督과도 가깝다. 봉준호 監督과 봉만대 監督은 韓國 映畫界에서 흔치 않은 ‘養蜂’ ‘雙峯’으로 불린다. 봉만대 監督 本人은 ‘巨匠’ 봉준호 監督과 比較되는 게 영광스러워 ‘어둠의 奉俊昊’로 불리기를 自處하고 愉快해 한다.

韓國 映畫의 ‘養蜂’ 봉만대 監督(왼쪽)과 봉준호 監督. 봉만대 提供
“俸銀 엔터테이너的인 能力을 갖고 있으면서 리얼리즘을 잘 살리는 映畫監督이다. 人間的이고, 나와는 다른 世界가 있고.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作品이 있으면 늘 같이 作業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는 李 監督에게 奉 監督은 正말 B級일까. 봉준호 監督과 陰陽의 調和가 잘 맞는, 내가 認定하는 後輩?

-奉俊昊 監督과 제대로 견줄만한 ‘어둠의 鳳’인가요?
“奉 監督이 봉준호 監督의 ‘雪國列車’를 흉내내 ‘떡꾹列車’를 내놓을 때 ‘저 親舊가 問題의 監督이 될 수 있다’고 奉俊昊한테 얘기한 적이 있어요. ‘너 氣分 안 나쁘냐’고도 했죠. 그런데 奉俊昊가 아주 愉快하게 봉만대를 치켜세우더라고. (어둠의 鳳은 아니죠?) 社會 諷刺 있잖아. 같은 峯인데 諷刺는 봉만대野.”

봉 감독과 한국의 레전드 영화 감독들. 왼쪽부터 정지영 감독(남부군, 하얀전쟁), 이장호 감독, 봉 감독, 지난 6월 작고한 이원세 감독(엄마없는 하늘아래), 이무영 감독(휴머니스트)
奉 監督과 韓國의 레전드 映畫 監督들. 왼쪽부터 정지영 監督(남부군, 하얀전쟁), 이장호 監督, 奉 監督, 지난 6月 作故한 이원세 監督(엄마없는 하늘아래), 李茂永 監督(휴머니스트)
‘어둠의 鳳’ 當事者는 ‘이장호’에게 어떤 存在로 認識되고 있다고 볼까.
“監督님 周邊에도 深刻한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면 재밌어야 되거든요. 굳이 재미없는 사람들 만나면 곤란하잖아요. 그런 面에서 監督님에게 저는 ‘解放區’가 아닐까 싶어요. 제가 眞摯한 作品도 만들기는 했지만 基本的으로 놀이公園에서 티켓 끊어 노는 건 잘 맞지 않아요. 監督님께는 그냥 놀이터에서 막 노는 後輩죠.”

8年째 因緣. 李 監督에게는 確實히 ‘밝은 鳳’이다.

“봉만대 映畫祭를 하면 재밌을 것 같네. 生活費 마련하는데 도움이 되겠는데.”(이장호)

李 監督의 눈에는 보면 볼수록 奇拔한 아이디어와 才能이 아깝다.

奉 監督은 “2003年 劇場에 ‘맛있는 섹스…’를 내놓고 20年이 됐다. 30周年돼서 하면 映畫制하면 안 될까요. 監督님? 저도 깐느(2019年 봉준호 監督은 ‘寄生蟲’으로 깐느映畫祭에서 黃金棕櫚賞을 받았다)는 다녀와야 한다”며 李 監督을 웃게 한다.

80歲 들어서는 줄에 젊은 ‘봉만대’와 나누는 ‘아무말 에로 大잔치’가 마치 福받은 것 같다. 그래서 ‘鳳’을 만날 때가 기다려진다. 갈수록 映畫를 보는 視角도 닮아가는 것 같다 좋다는 그다. 奉 監督이 定義하는 에로티시즘 世界觀은 들어도 들어도 全羅道말로 기똥차다.

“에로 映畫만큼 어려운 게 없어요. 스트레스도 받고 그래서 재밌어요. 冶한 場面이 나오고 다음 얘기를 끌고 가는 게 쉽지 않아요. 여기서 템포를 잃으면 느슨해지죠. 이야기 속에 符合하는 에로가 끊임없이 있어야 돼요.”(봉만대)

“에로 映畫의 가장 큰 敵은 정사신이야.”(이장호)

“예전에 이 監督님께 물어봤어요. ‘에로 映畫 監督’이라는 타이틀이 꼬리票처럼 붙어 있는데 氣分 나쁘지 않냐고요. 그런데 監督님이 ‘얼마나 좋냐. 꼬리票라도 있는 게’라고 웃어 넘기시더라고요. 저는 무엇보다 監督님이 뭔가의 可能性에 對해서 ‘될 거다’라고 해주시는 ‘화이팅’이 좋습니다.”(봉만대)

李 監督은 奉 監督과의 疏通으로 오래 答을 내리지 못한 映畫的 苦悶도 解決한다. ‘映畫的 排泄’의 기쁨을 솔饌히 느낀다.

“한참 에로 映畫를 찍을 때 어디서 보고 얻은 苦悶인데, ‘性的인 映畫가 가장 反體制 映畫’일까라는 물음이야. 解放 氣分이 있는 건 분명하고, 權威에 挑戰하는 것도 틀림없는데 難解하더라고. 體制를 政治라고 보면 性的인 것이 어떻게 反體制 意味가 될 수 있을까. 아직도 把握이 안 돼.”(이장호)

“그 斷面積인 面을 봉준호 監督의 ‘寄生蟲’에서 봤어요. 奉 監督이 唯一하게 演出이 弱한 部分이 섹스신이거든요. 그런데 寄生蟲에서 夫婦가 소파에 누워 오랜만에 行爲를 하는 場面이 나와요. 그들이 보고 있는 視野가 窓門 너머에요. 거기는 아들이 있는 인디언 캠프잖아요. 아이 水準에서 보는 行爲는 反體制 느낌을 주죠. 技巧도 아니고 테크닉도 없고 行爲에 유희가 없어요.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에요. 그런데 그건 제가 못 찍는 것 中에 하나에요.”(봉만대)

“아, 그건 내가 생각 못했던 거다. 亦是 에로 都事의 눈이 있네.”(이장호)

● 우리 무릎과 무릎에는 사이가 없다
“봉만대는 사람을 참 率直하게 만들어. 바보 宣言을 하게 된단 말이야.”

內面을 비워내며 後輩와 가까워진 時間이 神奇한 李 監督. 本人 스스로 내려간다는 人生 길이 안쓰러워 그 길을 地面과 平行하게 놔주고 싶은 奉 監督. 因緣은 마지막을 알 수 없을 程度로 길 것 같다. 奉 監督은 “監督님이 갖고 있는 內功이나 좋음들이 많을 수 있다. 監督님은 모르는데 歲月을 살아오면서 남들이 尊敬하는 監督님만의 敎訓도 分明히 있을 거다”라며 李 監督의 映畫 人生 後半部 꽃길이 열리는 希望을 걸어본다.

팔순을 바라보는 영화 감독이 50대 후배 감독과 소통하며 마지막 비상을 꿈꾸고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八旬을 바라보는 映畫 監督이 50代 後輩 監督과 疏通하며 마지막 飛上을 꿈꾸고 있다. 유재영 記者 elegant@donga.com
그래도 冷靜하다.

“다큐멘터리 시나리오를 쓰고는 계신거죠? 하지만 如前히 저는 監督님의 ‘무릎과 무릎 사이 2’를 보고 싶습니다.”

“봉만대가 이제 나의 ‘鳳’으로 보이네. 아까 다큐멘터리에 對해서 많은 助言을 해줬지? 그거 아이디어된다. 奉 監督 같은 사람이 시나리오도 만져야 돼. 奉 監督! 조 監督.”


유재영 記者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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