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위크, 아프간 28歲 女性 敎育家 活躍相 紹介
“탈레반 橫暴에 맞서려면 女性들도 배워야…”
탈레반 監視-威脅 被害
버려진 社員서 몰래 敎育
2800名 授業터전 마련
뿌연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아프가니스탄 東部 ‘고다 마을’의 작은 學校. 부르카(눈만 내놓는 긴 옷)로 온몸을 가린 少女들이 낡은 플라스틱 샌들을 끌고 每日 이곳으로 모여든다. 가는 데만 두 時間 넘게 걸리지만 介意치 않는다. 이곳은 女性 敎育을 禁止한 탈레반의 監視를 避해 글을 배울 수 있는 唯一한 곳이다.
이 學校는 28歲 아프간 女性 社디카 바시리 살림 氏의 눈물과 땀으로 세운 곳이다. 그는 7年 前 女學生 36名으로 始作해 現在 6個 學校에 2800名이 工夫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主人公이다. 最近 뉴스위크 온라인版은 아프간의 劣惡한 現實에 맞서 싸운 살림 氏의 孤軍奮鬪를 紹介했다.
살림 氏가 女學校 設立에 나선 것은 醫師가 되고 싶다는 自身의 꿈이 挫折되면서부터. 파키스탄 難民村에서 熱心히 工夫해 大學까지 들어갔지만 탈레반이 學校를 閉鎖하는 바람에 한 學期 만에 學業을 中斷했다. 그는 “나 같은 境遇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생각에 貯蓄한 돈을 모두 털어 2002年 뜻을 같이한 다른 女性들과 함께 高다 마을의 버려진 이슬람 寺院에서 少女들을 가르치기 始作했다.
살림 氏와 敎師들은 탈레반의 끊임없는 監視와 威脅에 시달렸다. 學父母들조차 “女子애들한테 무슨 敎育이냐”고 했다. 2005年엔 學校로 使用돼온 텐트村이 한밤中에 누군가의 放火로 모두 불타 버려 工夫하는 것이 목숨을 威脅하는 日까지 되어 버렸다. 살림 氏는 屈服하지 않았다. 于先 “아이들이 코란을 읽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神의 뜻”이라면서 집집마다 父母들을 찾아다니며 說得했다. 뙤약볕도 마다하지 않고 露天敎室에서 읽고 쓰는 것과 數學, 生物學, 歷史를 가르쳤다. 學校는 只今 ‘誤뤼地 學習센터’라는 번듯한 이름을 가진 敎育機關으로 자리 잡았다. 살림 氏는 “社會 變革이라는 巨創한 目標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 切實히 느꼈던 배움의 必要性 때문에 이 일을 始作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狀況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失權했던 탈레반이 最近 다시 得勢하면서 敎育 現實은 以前보다 더 힘겨워지고 있다. 아프간 敎育部에 따르면 지난 한 해에만 458個 學校가 各種 暴力과 攻擊 威脅 때문에 門을 닫았고, 40萬 名의 學生이 敎室을 잃었다. 33名이 살해당했고 鹽酸 投擲 事件 等으로 22名이 다쳤다. 이달 初엔 아프간 女性人權 運動家가 살해당하는 等 살림 氏에 對한 身邊 威脅도 커졌다.
하지만 살림 氏는 “나보다도 學生들이 걱정된다”며 “設使 내가 이 일을 中斷한다고 해도 나를 代身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全體 人口의 78%가 文盲人 아프간에서 敎育이야말로 삶을 바꿀 唯一한 方法이라는 게 그의 信念이다. “敎育만이 탈레반 같은 政權의 暴政에 맞설 武器”라고도 했다.
살림 氏는 요즘 暫時 틈을 내 美國 매사추세츠의 마운트 홀요크 大學에서 國際關係學을 工夫하고 있다. 올 放學期間에도 아프간 學校로 돌아가 아이들을 가르칠 計劃인 그는 工夫가 끝나는 대로 祖國으로 돌아가 先進敎育을 가르치고 싶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이정은 記者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