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男子의 競爭力]② 시골醫師 박경철의 ‘工夫法’|東亞日報

[이 男子의 競爭力]② 시골醫師 박경철의 ‘工夫法’

  • 入力 2008年 9月 21日 10時 24分


경제평론가 박경철 씨는 \'통섭(通涉)\'의 철학을 일찍부터 자신의 공부에 접목시켰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를 두루 통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원리다. 사진=조영철 신동아 기자
經濟評論家 박경철 氏는 \'通涉(通涉)\'의 哲學을 일찍부터 自身의 工夫에 椄木시켰다. 한 分野의 專門家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分野를 두루 통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原理다. 寫眞=조영철 新東亞 記者
그의 독서 제1원칙은 ‘내가 읽기에 조금 버거운 책을 선택한다’는 것. 자신을 괴롭히며 책을 읽다보면 그 고통조차 쾌감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그의 讀書 第1原則은 ‘내가 읽기에 조금 버거운 冊을 選擇한다’는 것. 自身을 괴롭히며 冊을 읽다보면 그 苦痛조차 快感으로 變한다고 말한다. 동아일보 資料寫眞
올 10월1일 출간되는 박 씨의 신작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올 10月1日 出刊되는 朴 氏의 新作 ‘株式投資란 무엇인가?’.
의사이면서 주식 투자자로 성공한 박경철 씨의 다음 목표는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다. 주제는 경제학이 아닌 철학이다. 사진=조영철 신동아 기자
醫師이면서 株式 投資者로 成功한 박경철 氏의 다음 目標는 降壇에서 學生을 가르치는 것이다. 主題는 經濟學이 아닌 哲學이다. 寫眞=조영철 新東亞 記者
"니체가 이렇게 말했죠. '네게 닿지 않는 것에 善意(善意)를 갖고 對하면 언젠가 그것이 네 것이 된다'고…."

촌스러운 폴로 티셔츠를 입은 經濟評論家의 입에선 豫想 外로 '프리드리히 니체'의 警句가 흘러나왔다. 經濟評論家로 有名한 '시골醫師' 박경철(43·慶北 安東 新世紀病院 院長) 氏. 醫師이면서도 정작 證券市場에 발을 담근 이들 사이에선 經濟 專攻者보다 더 信賴받는 그다. '都大體 어떻게 工夫했느냐'는 平凡한 質問에 對한 對答치곤 衒學的이었다.

成功한 投資者에게 어울릴 듯한 서울 江南의 大型빌딩이 아닌 강북의 자그마한 工夫房(오피스텔)에서 만난 그는 "隱退가 머지않았다"고 읊조렸다. 그는 自身의 投資經驗과 理論을 記錄한 새 冊 '株式投資란 무엇인가'를 막 脫稿한 狀態였다. 疲勞感이 몰려 온 탓일까.

"賢者(賢者) 피터 린치의 隱退 時點이 47살이었어요. 自身의 幸福과 名譽를 지킨 絶妙한 選擇이죠. 저도 그처럼 適切한 時點을 찾고 있습니다. 已往이면 大學에서 工夫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10年 前 '시골醫師'라는 筆名으로 이름을 알린 뒤 그의 活躍相은 證市에 발을 담근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程度로 두드러졌다. 지난해에는 대한의사협회 代辯人, 민주당 公薦 審査委員 까지 活動의 幅을 넓혀 注目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그는 '2007年 9月 韓國證市 高點論'과 상하이 指數 6000포인트 突破 時點에 '中國 證市 거품崩壞' 警告를 市場에 내보내는 等 卓越한 豫測 能力을 선보였다. 그의 發言을 조금 신중하게 받아들인 개미投資者라면 現在의 金融 危機局面에서 남들보다 打擊이 敵을 지도 모르겠다.

慶北 安東의 平凡한 外科醫師 出身으로 成功한 投資者인 그에게 이젠 '市場展望' 或은 '經濟風月'과는 조금 다른 質問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都大體 그가 專攻도 아닌 分野에서 어떻게 市場에 對한 分析能力과 專門的 識見을 갖췄는지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平生學習'을 目標로 하는 現代人들에게 그의 成功事例는 훌륭한 敎科書가 될 수 있을 터이다. 自身의 專門 分野가 아닌 곳에서 특별한 努力을 통해 쌓아올린 知識. 오늘의 '박경철'을 可能케 한 남다른 '學習 方法'은 무엇일까.

b>○ 漢文學習과 集中力

"어릴 때 半强制的으로 書堂에 끌려가 獅子小學(四字小學)과 明心寶鑑(明心寶鑑)을 배웠어요. 어릴 때의 漢文 工夫가 텍스트를 再解釋하는 習慣을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이 過程에서 陰과 뜻을 따로 떼어 놓고 이를 차근차근 再結合해 나가는 '讀解 能力'을 배웠다.

"텍스트 再解釋이 하나의 習慣이 된 거죠. 이게 著者의 眞짜 意圖인지 疑心을 하게 되고, 그런 트레이닝을 위해서 아이들에게도 漢文 工夫를 重要視 합니다."

實際로 그는 現象을 '再解釋'하는 일에서 남다른 能力을 誇示해 왔다. 1997年 携帶電話를 처음 接하고 남들은 "무거워서 實用性이 없다"고 말할 즈음, '移動電話 市場이 마치 인터넷처럼 커질 수 있겠다'는 確信에 場外市場에서 移動電話 株式을 買集해 數百 倍의 差益을 남기기도 했다.

漢文學習과 함께 어릴 때 익힌 學習法은 集中力.

"시골에서 '똑똑하다'는 소리 들으며 크다가 큰 都市(大邱)로 進學하니 내 才能은 平凡하더군요. 그래서 中學生 時節 다른 아이들보다 集中力을 더 發揮해 보자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險한 世上을 살아가는 法을 조금 일찍 깨달은 셈이죠."

冊을 읽을 때도 그는 題目만 봐도 되는 冊, 30分도 안 걸리는 冊, 音節 하나 單語 하나 까지 씹어 먹어야 하는 冊을 分類해 맞춤 方法으로 攻略한다.

그의 安東 本家에는 그가 읽은 冊 1萬 與圈이 書架에 꽂혀 있다. 아직도 그는 引用해야 할 冊과 該當 대목이 생각나면 正確하게 冊 더미 속에서 찾아 낼 수 있는 記憶力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게 다 일찍 習得한 集中力 德分이었다고 말한다.

○ 知識을 道具로 活用하겠다는 執念

하지만 이 亦是 너무 平凡하다. 決定的 祕法은 없을까.

"제가 조금 執拗한 面이 있죠. 30代 初盤 大田에서 雇傭醫師를 하던 무렵이에요. 金剛에서 누군가 대낚시로 잉어를 잡아 올리더군요. 저도 꼭 그렇게 하고 싶더군요. 곧장 '찌맞춤의 原理' 等 理論書 十餘 卷을 사고 낚시 專門誌 購讀을 申請했어요. 빨간 줄 그어가며 理論書들을 讀破한 거죠. 낚시의 原理를 깨우치고 나서야 낚싯대를 購入했어요."

그의 '낚시學' 正服 過程은 悽絶할 程度로 執拗했다. "寢臺에 누워 내가 물고기라면 어떤 떡밥을 좋아할까?"하는 것까지 苦悶했다. 病院에서 쓰는 營養劑는 實驗用 떡밥이 됐고 醫師로서의 解剖學的 知識 亦是 魚類(魚類) 理解의 밑천이 됐다.

그러다 문득 낚시를 平生 趣味로 삼기엔 時間浪費가 너무 甚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낚시는 잉어를 잡을 때까지만 하겠다"고 宣言한 뒤 그해 4月부터 9月18日까지, 甚至於 颱風이 몰려와도 잉어를 낚기 위해 退勤 以後에는 無條件 낚시터로 向했다.

"그해 9月18日은 平生 잊을 수가 없을 겁니다. 제 손으로 잉어를 잡아 올린 날이거든요. 아직도 제 病院 冷凍室에 保管돼 있습니다. 껄껄. 그리곤 낚시를 딱 卒業했습니다."

그의 關心事는 미추(美醜)와 호오(好惡)를 가리지 않는다. 代身 單純히 消費할 것이 아니라면 徹底히 硏究해 반드시 征服한다. 어떤 知識이건 結局 다른 知識과 맞닿아 있고 그 知識은 언젠가는 새로운 靈感으로 變해 돌아온다. 結局은 知識을 道具化하는 學習哲學이다.

○ 感覺器官 일깨우기

그렇다면 모든 知識과 雜學(雜學)李 人生에 도움이 될까. 그의 對答은 "그렇다"에 가깝다.

大學 時節 그의 別名은 '퀴즈의 帝王'이었다. 퀴즈同好會를 中心으로 PC通信에서 活動했다. 그 當時 그가 가장 싫어했던 퀴즈는 音樂에 關聯된 問題였다. 트로트나 김광석의 旋律에 익숙했던 그의 귀에 클래식이란 넘을 수 없는 山 같았다. 어느 瞬間 그것을 반드시 克服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클래식 매니아인 親舊에게 클래식 入門用 明礬 100張을 推薦 받았어요. 그날로 곧장 音盤 賣場에 가서 레지던트 한 달 치 月給을 投資했습니다. 그 뒤로 手術할 때나 차트 整理할 때 반드시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音樂을 하루 20時間 假量 들었어요. 4個月이 지나니 멜로디가 머리 속을 떠다녔고, 6個月이 지나니 그 音樂을 다시 듣고 싶다는 感興이 일더군요. 꽈배기처럼 꼬였던 旋律들이 하나씩 풀어지고 樂器들이 하나씩 귀에 꽂힌 거지요. 새로운 世上이 열린 겁니다."

이런 努力 以後 그에게 찾아온 變化는 놀라웠다.

"저는 時間이 아까워 골프도 안치고 술도 안 먹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感情을 主體 못할 境遇가 있잖아요. 患者를 接해야 하는 저는 特히 더 그랬어요. 누군가와 布帳馬車에서 술盞을 기울이지 않아도, 모차르트 레퀴엠만으로 때론 感情을 淨化하고 高揚시킬 수가 있게 된 거죠. 이런 느낌은 돈의 價値로 換算할 수 없는 主要資産이 됐습니다."

情報가 길에 널린 時代다. 그는 이런 時代엔 藝術에 感應하는 '感覺器'가 智慧에 다가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强調한다.

"工夫에 꼭 必要한 德目이 바로 '感覺器'입니다. 그림 앞에서 눈물 흘리고 音樂을 듣고 가슴이 따뜻해지지 못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배울 수는 있겠지만 自身의 獨創的인 무엇은 創造할 수가 없는 法이거든요."

○ 經濟學科 想像力

工夫에는 일정한 過程이 必要하다. 一種의 塔 쌓기와 比較할 수 있겠다. 구름 위를 뚫고 올라가면 '偉大한 學者'로 稱頌 받는다. 적어도 남들보다 조금 더 쌓아도 競爭力을 인정받는다. 그런데 單純 '學問의 塔'李 아닌 '市場'에서는 조금 다른 基準이 適用될지 모르겠다. 많이 工夫하고 學識이 높다고 해서 누구나 '成功'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네이버 檢索窓만 두들겨도 이제는 有名 經濟學者들의 理論이 튀어나오는 世上이에요. 絶對로 自身의 學問만 파고든다고 一定 水準에 오를 수 없는 時代가 됐어요. 自身의 知識을 바탕으로 삼아야겠지만 마지막 最後의 甓돌이 必要합니다. 나의 思惟와 理論을 담은 새로운 그 무엇. 그게 바로 '令監(靈感)'입니다. 令監이 없는 사람은 想像力이 없는 거죠. 現象을 把握하는 總體的인 事由가 必要해요."

그도 한때는 '한 발 앞선 情報'와 '經濟學的 知識'李 絶對的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1993年 처음 株式을 始作했을 때는 親舊들과 스터디 모임을 結成해 마치 醫師考試 準備하듯 50餘 卷의 證券理論書를 讀破해 나갔다. 그러나 돈을 벌기는커녕 10年間 悽慘하게 잃기만 했다.

結局 知識보다 市場을 보는 눈, 市場에 對한 獨創的 思考가 必要하다는 생각에 到達했다. 그 뒤부터 그는 經濟學 工夫를 哲學工夫와 一致시켜 나갔다.

"哲學史를 곰곰이 뜯어보면 人間에 對한 探究이고 世界를 構成하는 原理에 對한 思惟가 녹아 있습니다. 經濟學 亦是 마찬가지입니다. 市場에 對한 洞察力을 얻기 위해서는 結局 哲學을 한다는 姿勢를 가져야 합니다."

○ 想像과 妄想 사이에서 길 찾기

지난 10年間 株式市場에서 卓越한 成功을 거둔 그는 아직도 自家用이 없다. 每日 택시와 地下鐵을 타고 다닌다.

"靈感을 얻으려면 끊임없이 構想하고 空想하고 抽象해야 해요. 택시 뒷자리에 앉으면 거리의 모습과 사람들의 表情을 보면서 머리 속의 實驗室을 돌릴 수가 있거든요."

그는 "單純하게 생각하는 것이 重要한 게 아니라 妄想과 空想을 區分하는 것이 重要하다"고 强調한다. 그의 學習理論에 따르면 妄想(妄想)이란 體系化 되지 못하고 흩어지는 생각이다. 그러나 公傷(空想)이란 생각의 바탕에 階段을 놓을 수 있는 知的 實驗물의 結果物이다.

結局 무엇을 얼마나 오래 工夫했는가가 重要한 것이 아니라, 自身이 내뱉은 言語와 行爲가 一貫된 생각의 바탕 위에서 나오는 것이 重要하다. 그런 바탕에서 나오는 事故는 大體로 合理的이라는 것이 그의 結論이다.

"시골에서 간고등어 굽는 아저씨나 金浦空港 앞의 구두닦이도 自身의 經驗과 생각의 고리 위에서 말할 境遇 누구라도 說得할 수 있고 洞察力 있는 知識을 生産할 수 있습니다. 저 亦是 그 程度의 저잣거리 知識을 풀어 온 水準에 不過해요."

○ 에필로그 - 善意(善意)

그는 10餘 年間 개미投資者들에게 '知識의 鍊金術師'로 통해왔다. 그를 통하면 難解한 經濟理論이나 投資模型이 明瞭한 日常의 스토리로 쉽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自身을 마치 '經濟 專門家'로 對하는 世間의 視線에 對해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저는 絶對 經濟專門家가 아닙니다. 博而不精(博而不精)한 사람이고, 不可(佛家)의 言語로 말하자면 線(禪)을 깨우치지 못한 '알음알이' 段階에 不過합니다. 代身 學者가 아니기 때문에 저잣거리의 論理로 조금 자유롭게 말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저를 高評價하게 만든 原因이겠죠."

金融市場에 對한 수많은 理論이 있지만 豫測 模型을 提示한 理論은 없다. 投資의 鬼才로 推仰받는 워렌 버핏이나 피터 린치 모두 工夫를 많이 한 學者이기 때문에 推仰 받는 것이 아니라 洞察力을 지닌 '賢人(賢人)'이라서다.

"다시 니체로 돌아가면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交響曲은 처음 듣는 사람에겐 不協和音으로 들리는 것이 當然하다고요. 하지만 善意(善意)를 갖고 對하면 어느 瞬間 騷音에 不過하던 소리들이 協和音(協和音)으로 들릴 것이라고, 언젠가 네게 기쁨을 줄 것이라고…. 모든 工夫의 原理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정호재 記者demi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只今 뜨는 뉴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