徹底한 歷史淸算으로 有名한 프랑스에서는 50年도 넘은 戰犯 淸算作業이 아직도 繼續되고 있다.
‘마지막 戰犯’으로 불리는 모리스 派퐁(87)은 2日 10年 懲役에 10年間 市民權 剝奪型을 宣告받았다.
그러나 파퐁은 宣告 直前 40分에 걸친 最後陳述에서 “왜 내 責任이냐”고 抗辯했다. 이 抗辯은 프랑스의 아픈 現代史를 건드리는 것이었다.
6個月동안 進行된 裁判 내내 파퐁은 一貫되게 “나는 當時 보르도시 治安責任者로서 비시政府가 내린 命令을 忠實히 移行했을 뿐”이라고 抗辯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프랑스는 2次大戰이 끝난 뒤 나치政權에 協力했던 비시政府의 高位職들을 大擧 處刑했으나 비시政府 自體의 適法性 與否에 對해서는 只今까지 模糊한 態度를 보여왔다.
오히려 ‘나치 占領期間中 집을 지키는 役割을 했다’는 이른바 ‘防牌理論’으로 비시政府를 慇懃히 斗頓해온 面도 있었다.
따라서 파퐁에 對한 이番 判決이 한 個人에만 局限되는 問題가 아니라면 비시政府에 對한 有罪判決로 擴大解釋될 수 있고 프랑스 現代史도 再評價해야 하는 事件이 될 수 있다.
파퐁이 最後陳述에서 嫌疑事實에 對한 檢察의 ‘一部 無罪 認定’을 拒否하면서 “이 犯罪는 全部 아니면 全無이기 때문에 나는 有罪 아니면 無罪”라고 主張한 것은 이같은 歷史的 背景 때문이었다. 歷史는 再整理하지 않고 왜 個人에게만 責任을 묻느냐는 指摘도 나오고 있다.
또 파퐁처럼 受動的으로 비시政府의 命令을 遂行한 많은 生存者가 있는 點을 考慮한다면 嚴密한 뜻에서 그를 ‘마지막 戰犯’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바로 이런 點들 때문에 프랑스는 이番 裁判에 對해 곤혹스러워했는지도 모른다.
김상영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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