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法學專門大學院(以下 로스쿨)에 合格한 이선미(23·寫眞) 氏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履歷의 所有者다. ‘경기과학고 早期卒業, 서울대 醫大 卒業, 醫師國家試驗 最年少 合格, 個人病院 開業’이 그가 이제까지 쌓은 포트폴리오다. 最近에는 로스쿨 入學이란 經歷을 한 줄 보탰다. 來年 봄 豫備 法曹人이 될 이 氏를 만났다.》
과학고 2年 만에 卒業 → 서울대 醫大 → 醫師試驗 最年少 合格- 病院 開業 → 이番엔 로스쿨 合格
그는 어릴 적부터 工夫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다. 집안 일을 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工夫하는 어머니가 記憶 속에 남아 있다. 藥師인 어머니는 이 씨가 어릴 때부터 여러 大學院에서 工夫를 繼續해 學位를 잇달아 받았다. 李 氏는 “어머니 옆에선 工夫 外에 달리 할 게 없었다”고 回想했다.
어린 時節부터 工夫 欲心도 많았다. 初等學校에서 高等學校까지 恒常 全校 1, 2等을 놓치지 않았다. 主要 科目에서 音樂, 美術, 體育 等 藝體能 科目까지 單 한 科目도 1等을 놓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中學校 體力章 前날에는 밤 12時에 아버지와 함께 學校 運動場에 나가 3段 뛰기를 練習하기도 했다. 結局 體力章에서 女學生 全體 2等을 차지했다. 初等學校 때는 컴퓨터 美術 音樂 書藝 跆拳道 合氣道 테니스 等 藝體能 學院을 두루 涉獵할 程度로 關心事가 다양했다. 모두 스스로 고른 學院이었다.
藝體能 以外의 學科 工夫와 關聯된 學院을 다닌 건 中學校 때가 全部다. 과학고를 가려고 特目高 準備 學院에 登錄을 했다. 그곳에는 初等學校 때부터 일찌감치 과학고를 準備해온 아이들이 수두룩했다. 分班 試驗에서 點數가 낮은 班에 配定이 된 이 氏는 學院 講師를 直接 찾아갔다. 講師에게 “數學 警時半에 보내주면 꼭 잘 해낼 수 있다”고 壯談했다. 그리고 約束대로 처음 치른 數學競試大會에서 滿點을 받았다. 李 氏는 “2∼3年 늦게 始作했다고 뒤쳐지는 게 싫어서 남들보다 하루 몇 時間씩 덜 자고 工夫했다”고 말했다.
경기과학고에 가서도 全校 1, 2等을 했다. 試驗 때만 되면 班 親舊들이 李 氏의 空冊을 베끼려고 안달이었다. “선미가 筆記한 內容이 試驗에 나온다”는 所聞이 播多했기 때문이었다. 工夫 祕訣은 簡單했다. 授業 時間에 最大限 集中하는 것이었다. 다른 親舊들이 寄宿舍에서 밤마다 三三五五 모여 두세 時間씩 수다를 떨 때도 이 氏는 12時만 되면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規則的인 生活을 했다. 授業 時間에도 졸지 않고 先生님이 强調하는 內容을 잘 듣고 核心을 要約하기 위해서였다.
李 氏의 아버지 이성영(51) 氏는 “선미는 어릴 때부터 集中力이 剛해서 남보다 理解하고 배우는 速度가 倍로 빨랐다”고 말했다. 李 氏는 6年 동안 배운 書藝를 成跡 向上의 祕訣로 꼽았다. 書藝를 하면서 마음이 차분하고 沈着해져서 試驗을 치를 때 失手가 줄었다는 說明이었다.
李 氏의 父母는 恒常 딸의 꿈을 묻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길을 찾아줬다. 경기과학고를 2年 만에 卒業하고 서울대 醫大에 入學한 건 亦是 藥師인 아버지 德分이었다. 과학고生은 競試大會 受賞 經歷을 바탕으로 2學年 때 早期卒業하고 工學 系列로 進學하는 일이 흔하다. 2學年 때 修能을 치르고 醫大에 進學한 學生은 경기과학고에서 이 氏가 처음이었다.
아버지 이 氏는 敎育人的資源部(現 敎育科學技術部)에 問議해서 關聯 法條項을 確認한 뒤 서울對 等 各 大學 醫大에 早期卒業者를 위한 내신 反映基準을 마련해달라고 要請할 程度였다. 李 氏는 2學年 때 서울대 연세대 울산대 等 세 곳의 醫大에 合格했고, 그中 서울대 醫大를 選擇했다.
로스쿨 試驗에 挑戰하게 된 건 本科 4學年 때 들었던 한 講義 때문이었다. ‘醫師로서의 다양한 삶’이라는 講義는 故 이종욱 世界保健機構(WHO) 事務總長을 비롯해 放送社 醫學 專門記者, 保健福祉部(現 保健福祉家族部) 公務員, 컨설팅 會社 等 醫大 出身으로 多樣한 分野에 進出한 先輩들이 招待되어 各自의 經驗談을 들려주는 式으로 進行됐다. 李 氏는 大法院 裁判硏究官이었던 노태헌 判事의 講義를 印象 깊게 들었다. 올해 初 卒業 以後 個人病院을 運營하면서 本格的으로 로스쿨 工夫를 始作했다. 醫科大學에서 醫療法을 가르치겠다는 것이 앞으로의 抱負다.
醫師로서 法曹人의 꿈에 새롭게 挑戰하려는 李 氏가 남보다 빠른 삶의 速度에 對해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엄청난 速度로 달리는 人生길이 때로는 무섭지 않을까. 그러나 이 氏는 “時間이 지날수록 남보다 어리다는 게 長點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머리가 아직 녹슬지 않았으니 더 많은 工夫를 할 수 있고, 나이 制限에 걸리지 않으니 여러 가지 길을 選擇할 수 있어서”라는 理由도 덧붙였다.
최세미 記者 luckyse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