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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剛한 大學] <17>獨逸 바우하우스大|東亞日報 </17>

[작지만 剛한 大學] <17>獨逸 바우하우스大

  • 入力 2006年 5月 22日 02時 59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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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바우하우스대는 학생 주도의 프로젝트 참여형 교육을 통해 20세기 초 디자인계에 혁신을 일으켰던 바우하우스의 전통과 명예를 되살리고 있다. 토목학부 학생들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디자인한 ‘하이델베르크 도심 재개발 프로젝트’(위)와 디자인학부 학생의 한 작품. 사진 제공 바우하우스대
바이마르 바우하우스대는 學生 主導의 프로젝트 參與型 敎育을 통해 20世紀 初 디자인界에 革新을 일으켰던 바우하우스의 傳統과 名譽를 되살리고 있다. 土木學部 學生들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디자인한 ‘하이델베르크 都心 再開發 프로젝트’(危)와 디자인學部 學生의 한 作品. 寫眞 提供 바우하우스臺
바이마르 汽車驛에서 市內 中央을 通過해 바우하우스臺로 向하는 동안, 廣場과 거리에 서있는 수많은 文人과 思想家들의 銅像이 내내 視線을 붙잡았다. 괴테, 실러, 헤르더…. 바흐에서 리스트, 바그너로 이어지는 作曲家와 니체, 쇼펜하우어를 비롯한 哲學者들도 이곳에서 活動했다. 1999年 ‘유럽의 文化首都’로 選定됐을 때 新聞들이 ‘이제야 바이마르다’라는 題目을 달았을 程度로 人口 6萬餘 名에 不過한 이 都市는 獨逸의 文化首都로 自負心을 지녀왔다.

그러나 建築과 디자인에 關心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都市는 무엇보다도 현대 造形藝術의 産室로 불리는 ‘바우하우스’란 이름이 먼저 다가오는 名所(名所)다.

建築家 발터 그로피우스(1883∼1969)는 1919年 이 都市에서 ‘집짓기’를 뜻하는 綜合藝術學校 兼 작업소 바우하우스를 設立했다. 이 學校는 建築과 디자인을 主軸으로 産業과 藝術을 結合시킨 機能的 美學을 追求했고, 이 같은 理念은 當代의 美意識에 暴風 같은 革新을 몰고 왔다. 畫家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等도 이 學校에서 敎授로 活動했다.

“우리의 傳統은 偉大합니다. 그러나 傳統만 갖고 살아남을 수는 없죠.”

게르트 치머만 總長은 아직도 그로피우스의 體臭가 남아있는 ‘그로피우스 房’으로 記者를 案內하며 프로젝트 爲主로 進行되는 創意的인 敎育方式이 바우하우스代의 새로운 方式을 만든다고 說明했다.

“敎授가 내주는 課題에 學生이 應하는 方式의 ‘講義’는 우리 學校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建築 土木 디자인 미디어 等 4個 學部마다 20餘 個에 이르는 프로젝트에 5000餘 名의 在學生이 自發的으로 參與하고, 企劃을 主導합니다. 이런 프로젝트에서 發揮한 成果가 쌓여 綜合的인 評價가 이뤄지죠. 다른 어떤 學校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獨特한 敎育形態입니다.”

그는 두툼한 學校年鑑을 내밀었다. 재즈歌手 빌리 홀리데이의 팸플릿 디자인, 하이델베르크 中心街의 再開發 시안, 尖端 손목時計 디자인…. 造形과 關聯해 想像할 수 있는 모든 種類의 프로젝트가 담겨 있었다. 窓밖에는 카메라와 마이크로 인터뷰 作業을 進行 中인 미디어學部 學生들과 露天에서 땀을 흘리며 模型作業에 熱中하는 建築學部 學生들이 눈에 띄었다.

1次大戰 直後의 廢墟에서 디자인을 ‘生産을 위한 原形의 創造’로 定義하며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던 바우하우스. 1925年 生産과 디자인의 더욱 有機的인 結合을 위해 工業都市 데사우로 移轉했다. 그러나 데사우에서 猛威를 떨치기 始作한 나치의 壓力 때문에 1932年 베를린으로 다시 移轉했고, 이듬해 나치가 執權하자 이마저 門을 닫아야 했다.

60餘 年이 흐른 1996年, 옛 바우하우스 자리에 둥지를 틀고 있던 ‘바이마르 建築大學’은 마침내 4個 學部를 둔 바우하우스臺로 새 出發을 했다. 왜 ‘바우하우스’의 이름은 그토록 오래 斷絶되어야 했을까.

“아이러니입니다. 나치는 바우하우스가 ‘빨갱이’ 機關이라고 斷罪했었죠. 그러나 2次大戰 以後 東獨 政權은 소비에트의 敎條的 ‘社會主義 리얼리즘’과 어긋나는 바우하우스의 傳統을 容認하지 않았습니다. 結局 統一 以後 6年이 흘러서야 ‘바우하우스’의 旗幟를 다시 세울 수 있었던 거죠.”

잃은 時間이 많은 만큼 懶怠함은 容納될 수 없는 일이었다. 理論과 實技가 結合된 탄탄한 프로젝트 授業을 바탕으로 이 學校는 各種 公募展 參與를 最大限 奬勵하고 있다. 그 結果 學校 웹사이트 ‘最新 뉴스’ 코너에는 受賞 消息이 끊이지 않는다. 치머만 總長은 “方今도 最高 權威의 디지털콘텐츠上인 ‘亞니미츠上’에서 우리 學生이 優勝했다는 消息이 들어왔다”며 흐뭇한 表情을 지었다.

各種 公募에서 優勝하는 것만이 學校의 有名稅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5000餘 名의 學生들은 언제나 ‘뭔가 稀罕한 일’을 만들어내며 뉴스를 타고 있다. 最近에는 베른트 號헨게르트너라는 미디어學部 學生이 밀밭에 트랙터로 超大型 바코드를 만드는 ‘안녕, 世界야(Hello, World)’ 프로젝트를 進行해 유럽 全域의 話題를 모았다. 衛星寫眞 프로그램 ‘구글 어스’를 미디어의 道具로 利用하겠다는 ‘劃期的인’ 發想이었다.

“80餘 年 前과 마찬가지로 바우하우스代의 核心理念은 ‘藝術과 産業의 結合’입니다. 그러나 表現 環境은 달라졌습니다. 最尖端 建築素材와 個人携帶情報端末機(PDA), 포드캐스팅(PodCasting·MP3 플레이어를 利用한 放送)을 自由롭게 應用할 수 있는 環境을 造成하기 위해 舊東獨이었던 튀링겐 州政府와 協議해 投資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디자인學部 在學生인 크리스티안 테슈 氏에게 母校의 魅力을 물어보았다. 그는 “자유로운 프로젝트 參與型 敎育이 가장 큰 魅力”이라며 建築學部 學生이 디자인學部의, 디자인學部 學生이 미디어學部의 프로젝트에도 쉽게 參與할 수 있다고 紹介했다.

“이미 在學生의 15%는 外國人입니다. 美國 버지니아技術臺(TUV), 시카고 IIT,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日本 와세다대 等과의 交流도 活潑합니다.”

치머만 總長도 韓國의 연세대, 慶熙大 等과의 協力도 結實 段階에 와 있다며 “才能이 豐富하기로 이름난 韓國人이 우리 學校에서 마음껏 創意性을 發揮하게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프란츠 리스트 音大

文化都市 빛내는 姊妹大學 “最高의 오케스트라 養成所”

‘文化都市 바이마르의 사이좋은 姊妹.’

바이마르 市當局과 市民들은 이 都市에 자리 잡은 두 大學을 이같이 부른다. 두 學校란 바우하우스代와 프란츠 리스트 音樂大學이다.

바이마르 詩는 1996年 바이마르 建築大學이 바우하우스臺로 昇格되면서 “우리도 이제 大學都市”라 宣言했다.

大學都市를 向한 戰略에는 바우하우스代와 함께 獨逸 最高(最古)·最高(最高)의 오케스트라 團員 養成所로 이름을 떨쳐온 프란츠 리스트 音大가 있었음은 勿論이다.

리스트는 1872年 弟子인 카를 뮐러하르퉁을 통해 바이마르에 獨逸 最初의 오케스트라 學校를 세웠다. 2次大戰 後 綜合 音大로 昇格된 이 學校는 1956年부터 設立者인 리스트의 이름을 따서 불리게 됐다.

이 學校와 바우하우스臺는 수많은 共同 프로젝트 및 交流 프로그램을 통해 緊密한 關係를 맺고 있다. 프란츠 리스트 音大와 바우하우스臺 미디어學部가 共同으로 設立한 電子音樂 스튜디오가 代表的인 例.

特히 미디어學部 學生들은 프란츠 리스트 音大의 學生들이 製作한 音響 資料를 프로젝트에 反映해 서로의 活動에 큰 利得이 되고 있다.

프란츠 리스트 音大는 지난해부터 京畿 龍仁의 강남대와 ‘江南大 獨逸 바이마르 音樂學部’를 共同過程으로 運營하고 있다. 龍仁에서 3年, 獨逸에서 1年의 學業을 마치면 共同學位가 認定된다.

바이마르=유윤종 特派員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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