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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11>형난옥 현암사 代表理事 專務|東亞日報 </11>

[나의 아버지] <11>형난옥 현암사 代表理事 專務

  • 入力 2003年 8月 13日 18時 17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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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어느 어린이날에 부모님과 남매들이 모여 가족사진을 찍었다. -사진제공 형난옥씨
1960年代 어느 어린이날에 父母님과 男妹들이 모여 家族寫眞을 찍었다. -寫眞提供 형난옥氏
숯불을 피우시고 곱창 같은 걸 손수 구워 자는 아이들을 깨운 다음 語尾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이듯 여덟이나 되는 아이들 입에 구운 고기를 一一이 넣어주시던 아버지. 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날름날름 받아먹던 風景. 果樹園을 하던 우리 집 한밤中 風景이다.

‘이 風塵 世上을 만났으니/너의 希望이 무엇이냐/…/부귀와 映畫를 누렸으면 希望이 足할까.’

이런 노래를 부르며 술이 거나하게 醉해 들어오시던 아버지. 新聞紙에 둘둘 말아 지푸라기로 질끈 맨 按酒거리를 들고 오셔서 氣分에 醉해 演出하셨던 場面이기도 하다.

나의 아버지는 情이 많은 로맨티스트였다. 일흔이 되어 돌아가시는 날까지 몸져누우시는 날을 빼곤 하루도 술을 거르는 일이 없었지만 맛난 按酒를 혼자 잡숫지 못하고 꼭 사와서 家族에게 먹이셨다. 飮食을 손수 나눠 주시고 나면 平素 말씀이 別로 없던 분이 말씀을 꽤 많이 하셨다.

“눈이 보밴기라, 뭐든 罰로 보지 말고 야무지게 보면 허튼 것들에 寶石이 있는 기라.”

“癌 것도 모르고 살만, 살긴 便해도 사람살이가 아니제. 깨닫고 살아야 사람살이지.”

“배울수록 處身이 御慮분기라. 알수록 고개 숙이고 살아야제.”

“나누어 주면 반드시 福을 받는 기라.”

나의 記憶엔 이런 文句가 끝이 없다.

‘醉中 箴言가’셨던 나의 아버지는 사는 데는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는 法이 없이 곧으셨다. 學生運動을 했던 내가 80年 5月의 事態를 겪을 때 公務員이 된 작은아들 봐서 行政訴訟을 못하신 걸 너무 속상해 하셔서 오히려 내가 憫惘할 地境이었다.

그런 나의 아버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셨다. 내가 ‘머스마’가 아니고 ‘가스나’인 것을 늘 서운해 하셨다. 그래서 난 아버지께 보여드릴 兼 ‘가스나’與도 ‘머스마’한테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애썼다. 내 일에 汨沒해 살다보니 어느 날 사는 모습을 보여드릴 아버지가 世上에 없었다.

아부지! 오늘 正말로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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