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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매너리즘에 빠진 當身에게|신동아

삶의 매너리즘에 빠진 當身에게

‘카불의 寫眞師’ ‘未來의 저널리스트에게’

  • 金賢美 東亞日報 出版팀長 khmzip@donga.com

    入力 2008-04-03 20: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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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매너리즘에 빠진 당신에게

    ‘카불의 寫眞師’ : 정은진 지음, 1萬2000원, ‘未來의 저널리스트에게’ : 새뮤얼 프리드먼 지음, 조우석 옮김, 1萬원

    ‘카불의 寫眞師’ 정은진을 처음 만난 것은 2007年 봄. 큰 선글라스로 얼굴을 半쯤 가린 자그마한 몸집의 女子가 出版팀으로 찾아왔다. 아프가니스탄에 居住하는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라고 自身을 紹介했다.

    그는 뉴욕대학에서 寫眞學을, 미주리大學에서 포토저널리즘을 工夫했으며, ‘美洲 韓國日報’ 記者, ‘LA타임스’ 인턴 生活을 했다. 2004年 東南亞에서 發生한 쓰나미 寫眞을 찍어 ‘뉴욕타임스’ 1面 톱을 裝飾했고, 2006年 5月에는 ‘타임’ 아시아版 커버寫眞을 맡기도 했다. 포토 에이전시 ‘월드 픽처 뉴스’ 所屬으로 世界 主要 日刊紙와 雜誌에 寫眞을 揭載하는 프리랜서 寫眞記者. 듣기만 해도 남부럽지 않은 履歷인데, 나는 그의 크고 挑戰的인 눈을 바라보며 ‘저렇게 華奢하고 예쁜 얼굴로 어떻게 아프가니스탄에 살며 取材를 할까’만 궁금했다.

    정은진은 곧 自身이 카불에 머문 지 1年이 되는데 그동안 써온 日記를 冊으로 펴낼 수 있을지 打診했다. 그러나 한두 달 取材도 아니고 아예 住所地를 카불로 옮기고 1年씩 그 險한 地域에서 버티고 있는 그에게 當場 好奇心이 發動했다. 게다가 그의 父母는 딸이 아프가니스탄에서 寫眞作業을 한다는 事實을 모른다. 하루가 멀다 하고 爆彈 테러에 로켓이 터지는 땅에 子息을 보내고 싶은 父母가 어디 있겠는가. 2006年 5月 인도네시아 地震을 取材하러 갈 때도 父母의 反對로 워낙 魂이 난 터라, 그는 처음부터 아프가니스탄行을 祕密에 부쳤다. 2006年 아프가니스탄에서 찍은 寫眞은 ‘김주선’의 이름으로 發表했다.

    2007年 여름 그가 아프가니스탄 産母 死亡率 取材로, 世界的인 報道寫眞展 中 하나인 ‘페르피냥 포토 페스티벌’에서 ‘케어 인터내셔널 휴머니티 르포르타주’ 그랑프리를 受賞했을 때도 모든 言論은 검은 선글라스로 얼굴을 半쯤 가린 정은진의 寫眞과 함께 ‘김주선’의 受賞 消息을 傳해야 했다.

    記者는 現場에 있어야 한다



    정은진의 眞價를 確認한 것은, 2007年 7月 탈레반에 依한 韓國人 拉致事件이 벌어졌을 때였다. 마침 잠깐 韓國에 들어온 그가, 原稿를 相議하러 事務室에 들렀다. 冊의 目次와 原稿 整理에 對한 會議를 하던 中 갑자기 그의 携帶電話가 울려대기 始作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韓國人 20餘 名이 拉致되었다는 첫 消息이 傳해지는 瞬間, 國內外 記者들이 一齊히 그에게 電話를 건 것이다. 外國 記者들은 韓國 側 反應을 알고 싶어 했고, 韓國 言論은 時時刻刻 現地 消息을 傳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진 靑(정은진의 英語이름), 카불 언제 다시 들어가? 來日 當場 들어가면 좋을 텐데.” 英語로, 우리말로 精神없이 通話하는 그를 지켜보며, 그가 왜 아프가니스탄을 固執했는지 알 것 같았다. 記者는 現場에 있어야 한다.

    탈레반의 韓國人 人質事件은 ‘카불의 寫眞師’ 정은진에게 機會이자 不幸이었다. 그는 拉致事件이 解決되는 마지막까지 ‘김주선’으로 韓國 言論에서 猛活躍했다. 拉致期間 韓國人에게도 익숙했던 ‘탈레반의 입’ 아마디 代辯人과 數次例 通話하며 速報를 傳했고, 關聯者들의 인터뷰를 따냈다. 危險地域인 가즈니 主로 들어가려다가 카불 警察局長으로부터 “當身, 스물두 番째 人質이 되고 싶냐?”는 호통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2007年 8月10日까지 韓國僑民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撤收하라는 命令이 떨어졌다. 2008年 8月 16日 아프가니스탄으로 와서 1年을 며칠 못 채우고 그는 떠나야 했다. 눈물을 머금은 撤收였다.

    豫想치 못한 人質 事態로 카불에서 早期 撤收하는 바람에, 代身 本格的으로 冊을 위한 原稿 整理에 들어갈 수 있었다. 筆者는 그를 世界的인 寫眞家의 班列에 올려놓은 포토 스토리 ‘아프가니스탄 産母 死亡率’ 取材記에서 始作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낸 1年을 엮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助言했다. ‘나는 이렇게 世界的인 寫眞作家가 되었다’는 式의 成功한 女子의 堂堂한 삶을 期待했던 것도 事實이다.

    그러나 정은진은 너무 率直했다. 原稿에는 20~30臺를 報道寫眞 記者로 살아왔지만 如前히 그 바닥에서 存在感이 없다는 挫折感, 함께 寫眞을 찍던 記者들이 이라크다 아프가니스탄이다 現場으로 뛰어갈 때 뉴욕에서 虛送歲月했다는 自責感, 所屬社도 없고 돈도 없이 機會가 오기를 기다리는 不安感, 이렇게 찍은 寫眞들이 果然 世上에 어떤 寄與를 할까 하는 懷疑感이 가득했다.

    險難한 紛爭地域을 使命感 하나로 거침없이 누비는 카메라 記者 정은진을 期待했다면 失望할 수도 있는 內容이었다. 그러나 나는 ‘率直한 그女’가 좋았다. 日記를 土臺로 했기 때문에 그날그날 自身의 感情에 忠實했다. 이런 式이다.

    “한창 寫眞을 工夫할 때는 여러 質問이 나를 괴롭혔다. 世界的인 寫眞家가 되기 위해서는 꼭 戰爭터에 뛰어들어야 하는 걸까, 꼭 紛爭 地域을 取材해야 하는가…. 그러나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안타까운 現實이지만 世界的인 寫眞家, 特히 人間性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領域에서는 紛爭 地域을 뛰어야 한다. 뛰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날아다녀야 한다. 寫眞은 발로 찍는 것이다. 熱心히 발품을 들여야 가끔 좋은 寫眞이 한두 張 나온다.”

    “認定하기 싫은 事實이지만 寫眞係에서는 賞을 타야 認定을 받는다. 商道 하나 못 탄 나 같은 寫眞作家는(이 日記를 쓸 때는 아직 페르피냥에서 賞을 받기 前이다) 淘汰되게 마련이다. 淘汰되면 일감도 안 들어오고 知名度도 떨어진다. 먹고살 窮理 以外에도 이런 걱정까지 해야 산다. 다큐멘터리 및 에이전시 寫眞係에 들어오면 一旦 잘 먹고 잘 산다는 생각은 접고 일을 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베테랑 픽서(fixer·해외파견 나온 記者들을 위해 現地에서 通譯과 인터뷰 涉外 等을 하는 現地 가이드 또는 코디네이터)로 通하는 카이스가 애송이 寫眞記者 앞에서 一場演說을 하는 場面은 더욱 可觀이다. 카이스는 스티브 매커리처럼 世界的인 寫眞記者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오면 꼭 찾는 픽서로 웬만한 西方 寫眞記者의 取材過程에 同行했다. 나중에 ‘알자지라 잉글리시’의 피디가 됐다.

    便한 삶을 願한다면 名譽를 버려라

    “成功하는 寫眞家와 그렇지 않은 寫眞家의 差異點이 뭔지 알아? 成功한 寫眞家는 아주 일을 질리게 熱心히 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야. 스티브는 이미 나이가 많지만 아직까지 하루에 15時間 以上을 일해. 하루에 얼마나 많은 寫眞을 찍는 줄 알아? 메모리 카드 20期가 程度의 寫眞을 찍어. 여기 올 때 250期가 사이즈 外裝 하드를 갖고 왔는데, 열이틀 만에 다 채우고 돌아갔어.”

    便安한 삶을 願한다면 名譽를 버리고, 名譽를 願한다면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을 取材하면서 힘들게 살라고 忠告한 것도 카이스다. 정은진은 카이스의 얘기를 들으며 自身이 얼마나 게으른 寫眞家인지 돌아보게 되었다고 告白한다.

    펜이든 카메라든 未來의 記者들이 ‘카불의 寫眞師’를 꼭 보았으면 한다. 名譽와 正義와 便安한 삶 사이에서 끊임없이 葛藤하는 한 人間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記者가 아니더라도 이 冊은 有用하다. 남들은 徐徐히 꿈을 접어갈 30代에 如前히 成長痛을 겪고 있는 아주 率直한 女子의 日記帳을 훔쳐볼 機會이니까 말이다. 이 原稿를 다듬으면서 장마 끝에 눅눅해진 菓子처럼 彈力 잃은 내 삶에 불끈 挑戰意識이 생겼다. 그래서 編輯者는 다른 사람의 삶을 代身 살아주는 職業인가 보다.

    最近 그런 冊을 또 한 卷 發見했다. 컬럼비아대학 저널리즘스쿨 敎授인 새뮤얼 프리드먼이 쓴 ‘未來의 저널리스트에게’(미래인)이다. 저널리스트 志望生을 위한 敎材지만 20年 가까이 言論社 밥을 먹은 나를 오랜만에 初心(初心)으로 돌아가게 해준 冊이었다. 어느새 記者는 社會的으로 歡迎받지 못하는 存在가 되었다. 映畫나 드라마에서 記者는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特種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卑劣한 모습으로 描寫되기 일쑤다. 게다가 新聞 雜誌는 放送과 인터넷에 밀려 한물간 産業으로 取扱받는다. 그러나 새뮤얼 프리드먼 敎授는 우리에게 저널리스트란 누구인가라는 根本的인 質問을 던진다.

    “내가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있는 저널리스트 賞이란 무엇보다 情報의 生産과 流通의 매듭에 서 있는 성실한 姿勢의 사람이라는 點이다. 情報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徹底하게 取材되고 正確性을 檢證받아 生産된다. 個人的·社會的 偏見 或은 黨派性을 極力 排除한 것만이 좋은 記事다.”

    저널리즘은 죽지 않았다

    저널리즘 敎科書에서 나올 법한 말이지만, 오늘의 言論 現實은 어떠한가. 公平無私, 不偏不黨, 正確性, 客觀性 따위는 낡은 遺産처럼 取扱된다. 代身 激情的이고 個人的인 見解가 듬뿍 들어간 화끈한 主張이 拍手를 받는다. 그러나 그것이 저널리즘의 程度(正道)일까? 프리드먼 敎授는 同僚 敎授의 말을 빌려, 혼자서 중얼거리는 獨白보다는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傾聽의 姿勢가 더 훌륭한 法이라고 말한다.

    “그게 바로 取材라는 거야! 거울 代身 窓을 들여다보고, 獨白 代身 對話하는 것 말이야! 그걸 너희는 익혀야 돼.”

    이 冊은 未來의 저널리스트뿐 아니라, 오늘도 默默히 現場에서 歡迎받지 못하는 業務를 遂行하고 있는 旣成 言論人들이 보았으면 싶다.

    “知的 好奇心이 살아 있는 훌륭한 眼目, 勇氣가 뒷받침된 取材와 探査企劃, 正確한 分析을 擔保한 날렵하고 멋진 스타일의 글쓰기는 決코 낡아빠지거나 流行을 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런 美德을 두루 갖춘 取材와 報道는 앞으로 더욱 價値를 인정받게 마련이다.”

    나도 그렇게 믿는다. 저널리즘은 決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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