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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을 指揮하지 못한 柔弱한 軍統帥權者 MB|新東亞

軍을 指揮하지 못한 柔弱한 軍統帥權者 MB

美國·中國에 눌리고, 北韓에 밀리고

  • 이정훈 │編輯委員 hoon@donga.com

    入力 2014-02-20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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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韓의 祕密兵器 ‘맞짱 쇼’의 眞實
    • 뒤통수치기 能한 北韓軍, 實속 없이 透明한 韓國軍
    • 유엔司 交戰規則에 充實했던 合參, 報復 決心 못한 MB
    • ‘過度하게’ 攻擊的이냐, ‘均衡 안 맞게’ 攻擊的이냐
    • 執拗한 美國 ‘키맨’들의 1對 1 說得
    • 美國과 中國은 韓半島의 ‘安定的 分斷’ 願해
    • 金章洙의 NSC는 ‘고르디온의 매듭’을 풀 수 있나
    • 虎狼이를 고양이로도 부려먹지 못해
    군을 지휘하지 못한 유약한 군통수권자 MB

    2010年 11月 23日 北韓軍의 集中砲擊을 받은 後 應戰에 들어간 海兵 연평部隊의 k-9 自走砲.

    1月 中旬 大韓民國은 2010年 延坪島 事件 때 美國 國防部 長官이던 로버트 게이츠의 回顧錄 ‘任務(Duty)’로 들썩거렸다. 1月 14日부터 美國에서 販賣에 들어간 이 冊에서 게이츠는 盧武鉉 前 大統領을 ‘反美的이고 若干 미친 것 같았다’(원문은 Presi-dent Roh Moo-Hyun was anti-American and probably a little crazy), 李明博 前 大統領에 對해서는 ‘精神力이 剛하고 現實的이고 몹시 親美的이었다’고 評價해놓았기 때문이다.

    disproportionately

    特定人에 對한 評價에 敏感한 것은 人之常情이다. 評判은 輿論을 만들고 輿論은 政策을 形成하기 때문이다. 게이츠의 人物評을 놓고 論難이 인 것은 大韓民國이 左右 理念으로 尖銳하게 나눠져 있음을 보여준다. 그 바람에 더 重要한 대목을 놓쳤다. 延坪島 砲擊戰 直後 韓美 間 意見 對立과 封合이 그것이다. 다음은 言論이 傳한 게이츠 回顧錄의 內容.

    ‘(韓國 側에서) 報復을 要求했는데, 韓國의 報復 計劃은 軍用機와 砲火를 動員하는 等 過度하게 攻擊的(disproportionately aggressive)이었다.’ ‘韓半島 緊張이 걷잡을 수 없을 程度로 高調되는 것을 憂慮해 오바마 大統領과 클린턴 國務部 長官, 마이크 멀린 合同參謀議長 等과 함께 韓國의 相對 側과 며칠間 通話하면서 論議했다.’ ‘中國도 北韓 指導部를 相對로 狀況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努力을 했다.’

    注目할 것은 ‘過度하게’라고 解釋한 ‘disproportionately’이다. 英韓辭典은 이 單語를 ‘均衡이 안 맞게’로 풀어놓았다. ‘均衡이 안 맞게 攻擊的’이라고 하는 게 異常했는지 ‘過度하게 攻擊的’이라고 意譯했다. 그러나‘過度하게’에 가까운 英語 單語는 ‘excessively’다. excessively라는 쉬운 單語가 있는데도 굳이 disproportionately를 쓴 데는 理由가 있을 텐데, 言論은 이를 따져보지 않았다.



    大統領과 國務·國防長官, 合參議長 等 美國의 實力者가 總 出動해 며칠間 韓國 側을 說得했다는 것도 注目할 部分이다. 天安艦 事件에 이어 ‘또 當한’ 韓國이 美國이 執拗하게 說得한다고 주저앉은 理由는 또 뭔가. 그리고 中國은 北韓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어떤 努力을 했는가.

    그間 우리는 ‘韓半島에 武力衝突 事態가 일어나면 美國과 中國이 介入한다’ ‘美國과 中國이 어떤 妥協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運命이 決定된다’ ‘決定的인 時期 우리는 美國과 中國을 끌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延坪島 砲擊戰 直後 狀況이 그러했다. 그런데 言論은 게이츠 回顧錄에 담긴 노무현 人物評에만 關心을 갖느라 그때 벌어진 ‘큰 게임’의 眞實을 놓쳐버렸다.

    延坪島 事態 때 軍事作戰 樹立에 參與하고 美國 側을 相對했던 人士들은 安保와 國際關係 等을 意識해 匿名을 要求하며 取材에 應했다. 이들의 證言을 土臺로 作成한 延坪島 砲擊戰 祕話는 韓半島의 危機가 어떻게 造成되고, 그때 國際社會는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려준다. 우리 軍과 韓美聯合司令部, 靑瓦臺의 對應 시스템은 어떠한지, 그 시스템의 虛點은 무엇인지도 잘보여준다.

    군을 지휘하지 못한 유약한 군통수권자 MB

    延坪島 砲擊戰이 있은 날 저녁 合參을 찾은 李明博 大統領. 그는 끝내 報復을 指示하지 않았다.(왼쪽) 延坪島 砲擊戰 後 韓國으로 緊急히 날아와 韓民求 合參議長을 만난 멀린 美國 合參議長.(오른쪽)

    北韓은 망나니가 아니다

    먼저 南北韓의 軍事 衝突 시스템부터 살펴보자. 作戰의 屬性은 ‘뒤통수치기’다. 相對가 생각하지도 못한 方法으로 奇襲하는 것이다. 이를 許容하면 우리는 北韓을 “豫測 不可能한 망나니”로 부르는데, 이는 ‘當한 우리가 바보이고, 北韓은 獰惡했다’는 意味가 될 수 있다. 北韓은 內部 統制가 안 되는 망나니 集團이 아니다. 眞짜 망나니라면 벌써 戰爭을 일으켰을 것이다.

    北韓 指導部는 興奮하지 않으며 精巧하게 北韓軍을 統制한다. 理由는 이기기 위해서다. 섣부르게 벌인 戰爭은 敗亡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안다. 따라서 끊임없는 挑發로 相對에게 怯을 줘 唐慌하게 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더 큰 虛點을 만들게 한다. 虛點이 充分히 커졌다고 判斷하면 그들은 ‘모든 것을 결정짓는’ 殘忍한 挑發을 한다. 극대화된 衝擊과 恐怖를 안겨 韓半島를 早期에 席卷하는 戰略이다.

    지난해 이맘때 北韓은 ‘冷靜한 戰死’의 面貌를 보였다. 韓美聯合軍은 3月 1日부터 4月 30日까지 禿수리練習, 3月 11日부터 3月 21日까지 키리졸브練習을 펼쳤다. 大型 軍事作戰은 訓鍊을 名目으로 部隊를 움직이다 펼치는 境遇가 많다. 2月 12日 3次 核實驗을 성공시킨 北韓은 美國이 이 練習을 利用해 奇襲할 수 있다고 본 듯, 戰略로켓軍과 長距離砲兵 部隊에 ‘1號 戰鬪態勢’를 下達했다.

    禿수리練習은 全面戰 時 韓半島로 달려온 美 增援軍과 韓國軍이 하나가 돼 作戰計劃 5027臺로 움직여보는 失(實)機動演習이다. 增援軍으로는 主로 오키나와에 있는 美 海兵隊 3遠征軍 等이 달려온다. 이들은 여러 段階로 나뉘어 달려와 몇 가지 練習을 하고 撤收한다. 그리고 韓美聯合司를 擴大한 全面戰 指揮所가 各種 워게임을 해보는데 그것이 키리졸브練習이다.

    ‘1號 戰鬪態勢’ 發令 直後 北韓은 平壤 隣近 基地에서 ‘舞水端’미사일을 실은 移動式 發射臺 TEL 2대를 꺼내 元山 쪽으로 천천히 이동시켰다. 適當한 곳에 停車한 TEL은 어느 程度 準備한 後 舞水端을 쏠 수 있다. 舞水端은 美 海兵隊 3遠征軍의 本據地인 오키나와는 勿論이고 美 13空軍이 있는 괌의 앤더슨 空軍基地까지 날아간다.

    그 때문에 美 空軍 宇宙司令部는 모든 諜報衛星과 無人偵察機를 動員해 TEL의 動態를 追跡했다. 그러나 山 그림자에 가려지거나 날씨가 나쁜 날은 놓쳤는데, 그때마다 北韓이 舞水端을 發射하지 않을까 緊張했다. 美軍이 그러하니 諜報衛星과 無人偵察機가 없는 韓國軍은 더 緊張했다. ‘귀로 듣는 危險’은 눈으로 보는 敵보다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韓國軍은 美軍의 反應을 보며 따라 움직이는 ‘덩달이’가 돼갔다.

    우리의 準備는 頑强해졌다. 訓鍊에 參與하지 않은 軍團과 師團은 直屬 砲兵旅團과 砲兵聯隊들에 指示해 K-9 自走砲와 韓國型 多連將 로켓인 九龍을 放熱(放列)해놓고 기다리게 했다. K-9과 九龍은 發射 詩 엄청난 後暴風이 日記에 發射 準備를 많이 하는데, 그것이 바로 放熱이다. 連續紗(射)가 可能하도록 相當量의 砲彈도 準備해놓았다. 玄武 미사일을 運用하는 陸軍 誘導彈사와 F-15K와 KF-16, 이지스艦 等을 統制하는 空軍作戰司令部(공작사)와 海軍作戰司令部(해作詞)도 作戰 態勢를 갖췄다.

    맞짱 쇼 ‘1好戰鬪態勢’

    그즈음인 3月 27日 새벽, 2軍團 隸下 師團이 지키는 江原道 華川에서 事件이 일어났다. 뭔가가 鐵柵을 넘어오려는 것으로 判斷한 GOP 中隊가 크레모어를 터뜨리며 日帝 射擊을 한 것. 四端은 ‘珍島개 하나’를 發令했다. 그런데 그 射擊으로 우리만큼 緊張했을 北쪽에서는 單 한 發의 實彈도 날아오지 않았다. 날이 밝자 師團은 짐승이 鐵柵을 건드린 것으로 보고 珍島개 하나를 解除했다.

    2軍團 건너便에는 人民軍 5軍團이 있다. 天安艦 鈹鍼 事件의 眞相이 밝혀진 後 李明博 大統領은 北韓을 强力히 制裁하는 內容의 5·24 談話를 發表했다. 國防部 長官은 그 後續措置로 對北 心理戰 再開를 闡明했다. 그러자 바로 그날 ‘電線中部地區司令官’ 名義로 僞裝한 北韓 5軍團長이 “(韓國軍이) 心理戰 手段을 設置하면 直接 照準擊破射擊을 하겠다”는 公開 警告狀을 보내왔다. 그 氣勢에 눌려 韓國軍은 對北心理戰을 하지 못했다.

    그때 敵 5軍團長은 이용환 上場이었고 後任이 이영길 喪葬이다. 이영길은 北核 危機가 高調된 지난해 2月 作戰局長에 任命됐다. 작전국은 人民軍 作戰計劃인 一名 ‘核全面戰爭計劃’ 等을 발전시키는 部署다. 그런 要職에 任命된 것은 이영길度 天安艦-延坪島 事件을 일으킨 4軍團長(김격식)만큼 好戰的이라는 意味다. 그러한 5軍團이 夜밤에 일어난 우리 軍의 激烈한 射擊에 沈默했다는 것은, 그들도 統制가 되는 訓鍊받은 集團이라는 뜻이다.

    北韓은 느릿느릿 太白山脈을 넘어간 TEL을 咸鏡南道 ○○空軍基地 駐機場(駐機場)에 勞動과 스커드 미사일을 실은 TEL 일곱 臺와 함께 配置했다. 美國 諜報衛星을 向해 ‘잘 찍어줘~’하는 포즈를 取한 것. 美國은 北韓의 意圖를 제대로 斟酌할 수 있었다. ‘맞짱을 뜨겠다는 쇼를 하는구나.’ 北韓은 禿수리練習이 끝난 4月 30日 1號 戰鬪態勢를 解除했다.

    3次 核實驗 成功에도 美國의 攻擊을 받지 않았으니, 北韓의 ‘舞水端 쇼’는 成功한 셈이었다. 北韓은 危機에 處하면 ‘한판 붙자’는 大型 쇼(show)를 벌여 謀免한다. 5·24談話 直後 照準擊破射擊을 하겠다고 威脅해 國防部의 對北心理戰 再開를 霧散시킨 것이 하나의 事例다. 人民軍은 맞짱 作戰과 함께 속이고 脅迫하는 作戰도 驅使한다. 主로 陰謀를 꾸밀 때다.

    그러나 모든 것을 숨기면 큰 逆襲을 當할 수 있으니 요상한 公開만 한다. 天安艦 事件 發生 4個月 前 大淸島 近海에서 南北韓 艦艇이 맞붙어 우리가 勝利했다(2009년 11·10 大靑海戰). 이 交戰은 正式으로 맞붙으면 北韓이 우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자 北韓은 ‘聖戰(聖戰)’을 言及하며 뒤통수치기에 들어갔다. 末 攻擊과 實際 攻擊 準備를 分離 推進하는 聲東擊西(聲東擊西) 戰術을 驅使한 것.

    韓國軍을 몰아간 北韓軍 作戰

    2009年 12月 21日, 北韓은 日本에서 發行되는 朝總聯 機關紙 ‘조선신보’를 통해 ‘(北韓이 設定한) 西海 海上軍事分界線 北쪽 바다를 海岸과 섬에 있는 砲兵 區分隊들이 平時에 海上射擊을 하는 區域으로 한다’ ‘我軍(北韓軍) 海上射擊區域에서 모든 漁船과 其他 艦船은 被害가 없도록 自體의 安全對策을 스스로 세워야 할 것’이라는 海軍司令部 代辯人 談話를 報道했다.

    바다에는 世界的인 룰이 있다. ‘公海에서는 모든 배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領海에서는 그 나라에 被害를 주지 않는 限 다른 나라 民間 船舶도 自由롭게 通航할 權利가 있다(無害通航權)’는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領海와, 領海에 이어진 公害를 海上射擊區域으로 마구 宣布하는 것은 이 룰을 어긴 行爲다. 그러나 國家는 安保를 위해 서는 海上射擊도 해야 하므로 國際海事機構(IMO)는 그에 對한 協約을 만들어놓았다.

    군을 지휘하지 못한 유약한 군통수권자 MB

    天安艦 事件 4個月 後利子 延坪島 事件 4個月 前인 2010年 7月 21日 靑瓦臺를 訪問한 로버트 게이츠 美 國防部 長官을 만난 李明博 大統領. 오른쪽은 게이츠와 같이 온 클린턴 美 國務部 長官이다.

    이 協約에 따르면 모든 나라는 隣接한 바다에 對한 情報를 提供해야 한다. 領海는 勿論이고 領海에 接한 公害의 氣象 情報와 海上射擊 情報 等을 ‘海上交通文字放送’으로 飜譯되는 ‘나비텍스(NAVITEX)로 送出하게 한 것. 大槪 그 나라 海警이 運營하는 이 放送은 텔렉스처럼 文字로 情報를 찍어준다. 公開된 周波數로 送出하는 것이라 受信機만 있으면 어떤 배도 받아볼 수 있다.

    나비텍스 德澤에 船舶은 氣像이 좋지 않은 바다와 射擊이 進行 中인 바다를 避해 安全하게 航行할 수 있다. 南北韓은 이 協約에 加入했기에 모두 나비텍스 放送을 한다. 이 放送은 그 나라 近處로 가야 受信할 수 있는데, 우리는 栢嶺-延坪島가 北韓에 가까이 있어 北韓 나비텍스 放送을 100% 受信한다. 北韓은 이를 意識해 挑發을 劃策할 때는 繡를 부린다. 北韓의 나비텍스가 아니라 朝總聯 機關紙를 통해 平時 海上射擊區域을 宣布하는 것이다.

    그러나 韓國軍 情報本部는 世界 곳곳에 武官을 派遣해놓았기에 今方 이를 捕捉한다. 報告를 받은 國防部는 言論을 통해 이 事實을 公布했다. 그러자 北韓은 더 약은 數를 만들었다. 해가 바뀐 2010年 1月 25日 러시아의 나비텍스를 通해 白翎島와 대청도 東쪽 바다를 1月 25日부터 1月 29日까지는 海上射擊區域으로, 1月 25日부터 3月 29日까지는 航行禁止區域으로 한다고 宣布한 것.

    自國 일을 다른 나라 나비텍스로 發表하는 境遇도 있다. 지난해 1月 29日 우리는 羅老號 發射에 成功했다. 이날 羅老號의 推進體 1段은 필리핀 近處의 公害로 墜落할 것으로 豫測됐다. 그 때문에 필리핀에 付託해, 필리핀 나비텍스로 ‘어느 바다로 언제쯤 羅老號 推進體 1段이 떨어지니 注意하라’는 情報가 나가게 했다. 이것이 他國의 나비텍스를 利用하는 合理的인 境遇인데, 러시아는 理解가 안 되는 北韓의 付託을 들어준 것이다. 이는 러시아가 생각하는 親舊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事例라고 하겠다.

    우리 情報本部는 이 情報도 捕捉해냈다. 그 때문에 北韓이 1月 27~29日 바다를 向해 日帝 射擊을 하기 前에 우리 艦艇을 미리 빼낼 수 있었다. 그때 一部 砲彈이 北方限界線(NLL)을 넘어왔다. 그에 對해 우리 軍은 NLL 南쪽으로 射擊하는 形式的인 對應射擊만 했다. 그러다 輿論의 叱咤가 거세지자 몇 발을 NLL 너머로 發射했다. 이 事件 後 威脅을 느낀 合同參謀本部는 敵이 쏜 포의 位置를 잡아주는 ‘大(對)砲兵 레이더’를 栢嶺-延坪島에 配置했다(2010년 2月).

    그렇게 하고도 北韓은 거듭해서 ‘聖戰’을 宣布하며 脅迫했다. 그 形勢가 하도 險惡해 우리는 大型 艦艇을 敵 레이더에 捕捉되지 않은 섬 그늘에 待機하게 했다. 그것을 지켜본 北韓은 2010年 3月 26日, 鰱魚級 潛水艇을 침투시켜 CHT-02D 魚雷로 白翎島 섬 그늘에 숨어 있는 天安艦을 擊沈시켰다. 巧妙한 수로 우리의 뒤통수를 ‘제대로’ 갈긴 것이다.

    벌거숭이 對 ‘惡으로 깡으로’

    天安艦 事件의 眞實이 밝혀진 後 人民軍 5軍團長의 脅迫으로 주춤하긴 했지만, 우리는 報復을 檢討했다. 그러나 單獨으로 하지 못하고 美國을 불러 訓鍊하며 摸索했다. 그리고 中國을 說得하려 했는데, 뜻밖에도 中國이 決死的으로 反對하고 나섰다. 후진타오 中國 主席은 상하이 엑스포 祝賀次 訪中한 李明博 大統領은 薄待하고, 北韓의 김정일은 따로 招請해 歡待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美國도 韓國의 報復을 願하지 않았다. 美國은 2012年으로 豫定된 戰作權 轉換 時期를 2015年으로 延長해주는 膳物만 주고 물러서버렸다. 여기서 李明博 政府는 나가떨어졌다. 眞實을 밝혀놓고도 아무것도 못하는 凄凉한 身世가 돼버린 것. 千暗函 事件 直後 情勢는 美國과 中國이 韓半島가 戰爭 狀態가 되는 것을 願치 않다는 것을 明白하게 보여준다.

    北韓이 이런 메세지를 놓쳤을 理 없다. 韓國한테는 最高의 軍事同盟人 美國과 最高의 貿易 파트너인 中國이 決定的인 時期에 韓國을 억눌러주니 마음 놓고 挑發해도 된다고 判斷했을 수 있다. 그런 理解가 있었기에 北韓은 8個月 뒤 延坪島 砲擊戰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이 砲擊戰은 한마디로, 너무너무 正直해서 ‘벌거숭이’가 된 韓國과 ‘惡으로 깡으로’ 武裝한 北韓이 對決한 事件이었다.

    군을 지휘하지 못한 유약한 군통수권자 MB


    군을 지휘하지 못한 유약한 군통수권자 MB

    合參이 延坪島 等에서 하는 모든 海上 射擊 情報를 詳細히 公開해놓은 2010年 11月 16日의 國立海洋調査員 ‘航行警報’사이트에 떠 있는 地圖

    海上射擊 訓鍊이 決定되면 合參은 일찌감치 그 事實을 詳細히 公表한다. 國立海洋調査員 홈페이지의 ‘航行警報’欄과 海警의 나비텍스 放送을 통해서다. 天安艦 事件 後 對應 態勢를 갖추느라 訓鍊을 하지 못한 合參은 그해 11月 護國訓鍊을 하게 됐다. 이 訓鍊과 別途로 11月 23日, 24日 中 栢嶺-延坪島에서의 射擊訓鍊度 再開하기로 했다. 이 射擊은 每달 해오던 것인데, 天安艦 事件 後의 對應態勢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이다.

    天安艦 事件이 일어난 곳에서 實射擊 訓鍊을 再開하는 것이라 北韓의 反撥이 豫想됐다. 合參은 相當한 神經을 썼다. 그러나 正直함만큼은 徹底히 維持했다. 1週日 前인 11月 16日 國立海洋調査員 航行警報란에 地圖까지 添附한 詳細한 海上射擊區域을 公開한 것. 이 地圖에는 陸軍, 海軍(海兵隊 包含), 空軍, 國防科學硏究所, 海警의 訓鍊區域 이름도 正確히 적혔다.

    海洋調査院 航行警報欄은 누구나 볼 수 있게 열린 空間이니 北韓과 中國, 美國도 이 指導를 確認했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內容을 나비텍스로도 放送했으니, 北韓은 4軍團 砲兵旅團을 개머리海岸으로 집결시키는 等의 準備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北韓은 射擊 첫날인 11月 23日 午前 8時 20分 挑戰狀을 내밀었다. 將星級 軍事會談 北側 團長 名義로 “우리(北韓) 領海에 對한 砲射擊이 이뤄질 境遇 卽刻的인 物理的 措置를 한다”는 通報를 ‘奇襲的’으로 보내온 것.

    누구도 豫測 못한 ‘陸上 挑發’

    그때 우리 軍 情報部隊는 人民軍 4軍團 砲兵旅團이 長射程砲를 개머리 海岸에 放熱했다는 것을 몰랐다. 美軍도 몰랐다. 重大한 ‘情報의 虛點’을 보인 것이다. 그러니 卓上公論(卓上空論)이 된 對應이 이어졌다.

    合參 作戰本部는 各 作戰司와 動映像 會議를 했다. 各 作戰司란 陸軍의 1軍士·3軍士·2作詞, 그리고 해作詞와 공작사, 海兵隊社 等을 가리킨다. 이 會議에서는 北韓이 NLL 너머로 砲彈을 떨어뜨리는 ‘海上挑發’을 할 것이라는 豫測만 나왔다. 延坪島를 向해 脯를 쏘는 ‘陸上挑發’은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다. 따라서 北韓이 海上挑發을 하면 어떻게 對應할지만 決意하고 會議를 마쳤다.

    그리고 연평部隊에 射擊을 指示했다. 海洋調査院 航行警報欄에는 ‘午後 1時부터 射擊한다’고 해놓았는데, 午前부터 射擊을 했다. 연평部隊 隸下 砲兵中隊는 벌컨포와 105㎜ 牽引砲, K-9 自走砲(155㎜)를 갖고 있는데 그中 北韓을 加擊할 수 있는 것은 K-9뿐이다. 이 部隊는 北韓의 挑發에 對備해 K-9 2文은 列外하고 4門만으로 射擊했다. 午後에도 射擊 練習을 이어갔다.

    그런데 에서처럼 午後 2時 34分부터 北韓이 쏜 砲彈이 延坪島에 떨어지기 始作했다. ‘꿈에도 생각 못한’ 延坪島 砲擊戰이 始作된 것. 13分 뒤 砲兵中隊는 K-9 砲門의 方向을 돌려 應射에 들어갔다. 그런데 期待했던 對砲兵 레이더로부터 連絡이 없었다. 이 레이더는 正常 稼動 中이었지만 敵 砲擊 原點을 잡지 못했다. 이 部隊는 敵의 砲擊 原點을 모를 때는 延坪島에서 가장 가까운 無挑부터 쏜다는 作戰計劃을 갖고 있었다. 無挑에는 北韓軍 1個 中隊가 布陣해 있다. K-9 包袋는 28分間 無道를 向해 砲彈을 날렸다.

    合參과 공작사는 海上挑發과 함께 北韓이 空軍機를 浸透시킬 것이라는 敎科書的인 豫測만 했기에, 西海 5道上에 空對空 戰鬪機만 띄워놓았다. 그런데 砲擊戰이 벌어졌으니 敵 砲擊 原點을 때릴 空對地 戰鬪機가 必要했다. 合參은 對地攻擊 順航미사일인 SLAM-ER을 搭載한 F-15K 出擊을 準備하도록 指示했다. 그러나 아무리 서둘러도 F-15K가 SLAM-ER을 搭載하고 離陸하는 데는 最短 1時間이 걸린다.

    그때 人民軍 砲兵이 2次 砲擊을 퍼부었다. 그제야 對砲兵 레이더가 제대로 砲擊 原點을 잡아주었다. 개머리海岸으로 砲門을 돌린 K-9이 30餘 發을 發射해 人民軍을 잠재웠다. 그 後 F-15K가 延坪島 上空에 날아왔다. 그러나 北韓이 더는 射擊하지 않았기에 合參은 F-15K를 利用한 砲擊 原點과 4軍團 指揮部에 對한 攻擊을 指示하지 않았다.

    이 砲擊戰으로 李明博 政府는 深刻한 內訌 狀況에 빠졌다. 靑瓦臺에서 强力한 膺懲을 願했는데 合參이 回避했다는 等의 怨聲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러나 合參에서는 ‘F-15K로 4軍團 指揮部를 攻擊하지 않은 것은 잘못한 게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停戰協定 後 大韓民國 領土가 最初로 攻擊을 받았는데, 靑瓦臺와 合參은 서로 完全히 겉돌아버린 것이다. 왜 이렇게 됐는가. 이 問題는 韓半島 停戰體制와 連結된 것이니 찬찬히 살펴보기로 한다.

    聯合司 交戰規則 그대로 받아

    金永三 政府 때인 1994年 韓國은 平時作戰統制權(平作卷)을 還收했다. 平時作戰統制란 簡單히 말하면, 停戰 市의 作戰을 統制하는 것이다. 停戰體制 管理는 유엔司가 擔當하는데 유엔司는 껍데기만 남은 組織이기에 聯合司가 代行해왔다. 聯合司는 停戰體制 維持를 第1의 任務, 北韓이 停戰體制를 깨고 쳐들어오면 作戰計劃 5027을 稼動해 擊滅하고 北韓 政權을 무너뜨려 政權交替(regime change)하는 것을 제2의 任務로 삼았다.

    戰爭은 6·25처럼 人民軍의 全面 南侵으로 일어날 수도 있지만, 작은 衝突이 擴大돼 發生할 수도 있다. 全面 南侵은 停戰體制가 깨진 것이니 聯合司는 電力으로 對應한다. 하지만 작은 衝突이 擴大돼 全面戰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따라서 停戰 時에 일어나는 작은 衝突이 全面戰으로 飛火하지 않도록 複雜한 ‘交戰規則’을 만들어놓았다.

    北韓이 挑發(攻擊)할 때만 싸우는 것을 ‘(現場) 對應’이라고 한다. 그런데 當한 것이 너무 甚해 復讐를 해야겠다고 判斷하면 그 後 우리도 本때 있게 奇襲해 적에 큰 打擊을 加할 수 있다. 이를 ‘(膺懲) 報復’이라고 한다. 報復은 ‘건드리면 죽인다’는 결氣를 보여주니 對應보다 더 좋은 防禦手段이 된다. 對應만으로 國防을 하는 것을 ‘防禦’, 報復 能力으로 지키는 것을 ‘抑制’라고 한다.

    交戰規則은 現場 對應만 하고 膺懲 報復은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北韓의 侵入을 막아냈으니 이를 ‘抑制’로 表現했다. 報復을 하는 것이 抑制인데, 聯合司는 對應만 하는 것을 抑制라고 規定해버린 것이다. 말장난에 가깝지만 聯合司가 이렇게 定義했으니 우리는 그대로 따랐다. 平作卷 還收는 聯合司를 代身해 우리 合參이 停戰體制를 維持하는 것이니, 우리는 聯合司가 만든 交戰規則을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受容했다.

    이 交戰規則대로라면 그날 우리는 연평部隊의 對應射擊만으로도 개머리海岸에 있는 敵 砲兵旅團을 잠재웠고 突破도 當하지 않았으니 抑制한 것이 된다. 反面 F-15K를 띄워 SLAM-ER로 4軍團 指揮部를 攻擊한다면 우리가 새로운 挑發을 했다는 非難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合參은 SLAM-ER로 報復하지 않은 것은 交戰規則上 正當하다고 判斷했다. 靑瓦臺에 있던 豫備役 參謀들도 같은 判斷을 했기에 그날 靑瓦臺에서는 抑制와 擴戰防止란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國民은 개머리海岸의 北韓軍이 깨진 것은 보지 못하고 불타는 延坪島와 犧牲당한 우리 國民과 軍人에게만 注目했다. 天安艦 鈹鍼 事件을 記憶하는 國民은 “우리 軍의 對應이 영 시원찮았다”고 非難했다.

    膺懲 報復 指示 안 한 李明博

    그러자 靑瓦臺 豫備役들의 意見을 受容해 擴戰防止를 擧論했던 李明博 大統領이 輿論의 非難을 避하기 위해서인지 더 以上의 액션을 取하지 않은 合參을 非難했다. 그에 對해 合參 側은 ‘膺懲 報復을 하려면 軍 統帥權者인 大統領이 決心해야 한다. 그런 決心이 없으면 우리는 交戰規則臺로 抑制에 充實할 수밖에 없다’는 見解를 나타냈다. 內訌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도 李明博 大統領은 報復을 指示하지 않았다. 이 部分이 重要하다. 韓國軍 統帥權者인 大統領은 美國 大統領과 同級이다. 聯合司는 戰時에 두 나라 大統領의 戰略指示를 받게 돼 있으니, 韓國 大統領은 聯合司보다 恒常 優位에 있다. 따라서 韓國 大統領이 指示하면 合參은 聯合司 交戰規則을 無視하고 作戰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大統領은 끝내 膺懲 報復을 指示하지 않았다. 大統領의 不滿은 靑瓦臺 안에서만 맴돈 것이다.

    韓國이 報復하면 北韓이 再報復을 하고, 韓國이 再再報復을 하면 全面戰이 일어나 相互防衛條約 等에 따라 美國이 參戰해야 한다. 그때는 聯合司가 韓美 兩國軍을 作戰統制해야 한다. 따라서 美國은 이 大統領이 合參에 剛한 指示를 내리지 않을까 지켜보았다. 그런데도 이 大統領이 움직이지 않자 合參이 決心을 했다. 11月 27日 合參은 “延坪島에서 再射擊을 하겠다. 그때도 北韓이 砲擊을 하면 바로 따라 들어가 엄청난 報復을 하겠다”고 報告한 것. 李 大統領은 이를 承認했다.

    李 大統領은 軍 統帥權者로서 指示한 게 아니라 아래에서 올라온 決定을 承認하는 懦弱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後날 ‘그때 우리 軍이 弱했다’는 套로 이야기를 하니 軍人들은 못마땅해한다. 그때 合參이 올린 計劃案은 北韓이 우리의 再射擊을 妨害하는 攻擊을 하면 砲擊 原點은 勿論이고 支援勢力과 4軍團 指揮部 等을 總攻擊한다는 것이었다.

    合參은 火力을 補强하기 위해 陸軍 砲兵旅團이 運用하던 K-9과 九龍 等을 延坪島에 잔뜩 보냈다. 그런데 延坪島에 들어가 ‘砲擊戰 以後’를 取材하던 記者들이 이를 捕捉해 크게 報道했다. ‘正直한 韓國’의 特性이 다시 露出된 것. 그러자 世界가 시끄러워졌다.

    合參은 보이지 않는 準備도 했다. SLAM-ER과 JDAM(合同直擊彈) 等을 搭載한 F-15K와 KF-16 戰爆機, 해성-2 艦對地 巡航미사일을 搭載한 이지스驅逐艦 等을 ‘보는 눈이 없는’ 하늘과 바다에서 準備하게 한 것. 그러나 韓國 言論 報道로 神經이 곤두선 美國-中國-北韓은 自己 情報網으로 이 機動을 捕捉했을 것이 분명했다.

    北韓은 旗싸움에서 밀릴 수 없다고 判斷한 듯 ‘再射擊을 하면 坐視하지 않겠다’고 警告했다. 韓半島의 戰雲이 더욱 짙어진 것이다. 美國이 움직였다. 11月 26日 샤프 聯合司令官의 延坪島 訪問이 始作이었다. 샤프 司令官의 現場 訪問을 契機로 韓國 合參의 意圖를 把握한 美國은 韓國의 對應을 留意해서 지켜보았다.

    1對 1 說得 나선 美國의 키맨들

    그런데 靑瓦臺가 國防部 長官 交替를 檢討하는 바람에 ‘바람이 빠져’ 膺懲 準備가 주춤했다. 合參議長 等이 長官 候補로 擧論됐으니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이다. 12月 4日 이 大統領은 國防部 長官을 交替했다. 그때 情報司는 北韓軍이 우리의 攻擊에 對備해 坑道에 들어간 事實을 捕捉했다. 北韓이 準備를 하는 以上 우리도 生存性을 强化해야 했다. 延坪島는 좁은 곳이니 密集된 火力이 生存하려면 어느 程度 準備를 해야 했다. 그 바람에 再射擊 날짜를 또 늦췄다.

    그때 美國은 韓半島의 緊張을 緩和하는 것이 最善이라고 判斷한 듯 ‘부드러운 逆行(逆行)’에 들어갔다. 게이츠가 回顧錄에서 밝혔듯 오바마 大統領과 클린턴 國務長官, 게이츠 國防長官, 멀린 合參議長 等이 各各 同級의 韓國 相對에게 電話를 걸어온 것. 그러나 韓國의 主權을 意識해 强한 反對는 하지 않았다. 그들의 意見은 “韓國 軍部의 決定은 尊重하지만 絶對로 오버하지 않도록 韓國 政府가 統制해달라”는 것으로 要約된다.

    李明博 大統領은 合參과 美國 사이에 끼이는 處地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大統領은 合參과 거의 對話하지 않았다. 國家安全保障會議(NSC)를 稼動해야 合參議長 等 軍 指揮官을 불러 意見을 듣고 指示를 내릴 수 있는데 이를 하지 않은 것. 그런 狀態에서 美國의 키맨들이 總出動해 1對 1로 說得하자 이 大統領은 조금씩 弱해져갔다.

    이때의 狀況을 게이츠는 回顧錄에 ‘均衡이 안 맞게’란 뜻의 disproportionately란 單語를 써서 ‘元來 韓國의 報復 計劃은 軍用機와 砲火를 動員하는 等 過度하게 攻擊的(disproportionately aggressive)이었다’라고 적어놓은 것이다. 美國은 停戰體制 維持가 最高의 目標이기에, 報復을 하더라도 均衡 잡힌(공식적인 用語는 ‘比例性을 갖춘’) 報復을 願했다. 그날 北韓이 延坪島에 떨어뜨린 砲彈과 우리가 無道와 개머리海岸에 떨어뜨린 砲彈 數는 엇비슷하니 韓國은 이미 比例性 있는 報復을 했다는 것이 美國의 判斷이었다.

    이러한 美國을 中國이 支援하고 나섰다. 中國도 美國처럼 韓半島가 現 狀態(安定된 分斷)로 있는 것을 選好하기에, ‘韓國은 北韓을 刺戟해 事態를 악화시키지 말라’는 信號를 보내려 했다. 이를 위해 外交問題를 銃책임진 다이빙궈(戴秉國) 中國 外交擔當 國務委員이 ‘밀어붙이기’ 式으로 이 大統領을 만나러 왔다(11월 27日). 그러나 美國이 韓國을 熱心히 說得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엉뚱한 소리만 하고 돌아갔다.

    美國과 中國의 共助

    中國은 韓國만 주저앉혀서는 안 된다는 點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서울을 떠난 다이빙궈는 바로 平壤을 訪問해 北韓 指導部를 說得하려 했다. 그러나 平壤은 그의 訪北을 斷乎히 拒絶했다.

    美國은 確實한 圖章을 찍고자 했다. 美軍 序列 1番이자 美國 大統領의 1級 軍事參謀人 멀린 合參議長을 12月 8日 서울로 보내 韓民求 合參議長과 會談을 하게 한 것. 이는 外形上 美國이 軍事的으로 韓國을 支援한다는 것을 보이면서, 實際로는 韓國의 ‘過剩 對應’을 막아보려는 努力이었다.

    美國이 情報·監視 資産을 支援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報復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 韓國은 反對給付를 要求하는 쪽으로 旋回했다. 北韓이 다시 挑發하면 그때는 美軍이 韓國軍의 報復을 積極 돕는다는 約束을 받아내야겠다고 생각한 것. 美國이 이 約束을 履行하면 報復-再報復-再再報復을 거쳐 全面戰으로 이어지는 ‘뒤끝’을 없앤다는 效果가 있으니 實利的이다. 게이츠는 두 番이나 挑發을 當하고도 이러한 選擇을 한 韓國이 印象的이었는지 回顧錄에 ‘(李明博 大統領은) 精神力이 剛하고 現實的이고 몹시 親美的이었다’라고 評價해놓았다. ‘몹시’라는 單語를 넣어서.

    韓國은 美國의 約束을 具體化하기 위해 ‘局地挑發對備計劃’을 作成하자고 했다. 北이 挑發하면 挑發 原點은 勿論 그들을 支援하고 指揮하는 勢力까지 膺懲해야 한다는 主張이었다. 美國은 그렇게 하면 새로운 挑發이 된다고 難色을 보였다. 그러다 지난해 2月 12日 北韓이 3次 核實驗에 成功하자 方針을 바꿔 韓國의 計劃에 同意했다. 그해 3月 22日 셔먼 聯合司令官은 鄭承兆 合參議長과 함께 이 計劃에 署名했다.

    멀린 議長의 訪韓으로 韓國을 어느 程度 주저앉힌 美國은 中國에도 제 役割을 하라고 注文했다. 그제야 北韓은 門을 열었다. 멀린 議長의 訪韓 다음 날인 2010年 12月 9日 다이빙궈의 訪北을 許容한 것. 이는 北韓이‘한국이 美國과 協助하면 우리는 中國과 協助한다’는 것을 誇示하려는 意圖로 推定됐다.

    그날의 다이빙궈-김정일 會談에 對해 中國 官營 신화통신은 “兩側은 兩國 關係와 韓半島 情勢에 對해 率直하고 깊이 있는 對話를 통해 重要한 合意를 이뤘다”고 報道했다. 그러나 北韓의 ‘朝鮮中央通信’은 “接見에서는 兆·中 두 나라 親善協助關係를 더욱 鞏固히 발전시킬 方案과 護喪 關心事인 一連의 問題들에 對한 談話가 進行됐다”고만 傳했다. 이는 北韓이 中國 要求를 受容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最善을 다했음을 보이기 위한 듯 베이징으로 돌아온 다이빙궈는 다음 날(12月 10日) 駐中 韓國大使를 불러 訪北 會談 內容을 說明했다. 게이츠는 이러한 中國의 努力이 고마웠는지 ‘中國도 北韓 指導部를 相對로 狀況을 누그러뜨리려 努力했다’고 回顧錄에 밝혀놓은 것이다. 이로써 韓國의 報復 準備는 더 힘이 떨어져버렸다. 그러나 準備한 것을 물릴 수는 없어 12月 20日께 射擊訓鍊을 하겠다고 밝혔다. 坑道生活을 이어가며 有事時에 對備하던 北韓은 韓國의 變化를 半信半疑하는 듯했다.

    再射擊 後 羹도서 나온 北韓軍

    12月 18日 北韓은 祖國平和統一委員會가 運營하는 ‘우리民族끼리’를 통해 ‘北侵을 겨냥한 射擊訓鍊‘이라는 題目으로 “傀儡牌黨이 延坪島 砲擊 事件을 일으킨 場所에서 또다시 砲射擊 訓鍊을 하겠다고 떠드는 것은 朝鮮半島를 戰爭으로 밀어 넣으려는 軍事的 挑發”이라고 非難했다. 그리고 ‘親舊’인 러시아를 통해 한 가지 쇼를 더 벌였다. 12月 19日 러시아로 하여금 ‘延坪島 事態 後 緊張이 高調되는 韓半島 問題’를 다루는 유엔 安保理 緊急會議를 召集하게 한 것.

    12月 20日이 밝아왔다. 그런데 안개가 짙어 射擊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 國民뿐만 아니라 北韓을 包含한 여러 나라가 지켜보고 있어 안 할 수도 없었다. 해무(海霧)는 午後가 돼도 걷히지 않았다. 合參은 射擊을 指示했다. 그런데 國民 豫測과 달리 싱거운 射擊에 그쳤다. 가장 核心인 K-9은 1門만 動員해 4發을 쏘는 것으로 끝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解釋이다. 合參은 射距離가 긴 K-9은 北韓을 때리기 위해 1門만 射擊 訓鍊에 참가시킨 것이다. 代身 같은 155㎜ 自走砲이지만 射距離가 짧고 正確度가 떨어지는 K-55路는 많은 射擊을 하게 했다. 이 意圖를 우리 國民은 誤解했다.

    두 時間 後 北韓이 反應을 보였다. 朝鮮中央通信은 “우리 軍隊의 自慰的인 2次·3次 對應打擊이 두려워, 計劃했던 射擊水域과 彈着點까지 슬그머니 變更하고 지난 11月 23日 軍事的 挑發 때 쓰다 남은 砲彈이나 날리면서 소리만 搖亂하게 낸 天下 非怯쟁이들의 誘致한 불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人民軍 最高司令部 報道를 發表했다. 그리고 슬그머니 坑道에서 기어나왔다.

    게이츠 回顧錄 發刊을 契機로 追跡한 延坪島 事態의 眞實은 많은 것을 示唆한다. 美國과 中國은 韓半島의 停戰 狀態가 흔들린다 싶으면 積極 介入해 原狀復舊를 試圖한다. 이는 두 나라가 韓半島의 統一을 願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中國이 美國과 拍子를 맞추면 北韓은 러시아를 파트너로 活用한다는 것도 보인다. 北韓은 正式 對決로는 우리를 이길 수 없으니, 別의別 꼼수를 動員한다는 것도 確認됐다. 危機가 高調되면 北韓은 韓國은 勿論이고 美國을 相對로도 맞짱 쇼를 벌인다.

    北韓은 陰凶하게 뒤통수치기를 하는데 우리는 벌거숭이로 對應한다는 事實도 드러났다. 韓國은 너무 透明해서 實力發揮를 못한다는 點도 보인다. 平作卷 還收의 限界와 交戰規則의 盲點도 보인다. 그리고 北韓이 核과 長距離 미사일을 휘두르면 韓國은 모든 것을 美國에 맡기고 따라가야 한다. 그러니 韓國은 美國에 從屬된다. 北韓은 中國에 驅迫을 받지만, 때로는 中國을 制御하는 能力을 보인다. 美國은 韓國을 制御하지만 中國은 北韓을 統制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날 MB는 孤立돼 있었다

    이 많은 問題點 가운데 가장 深刻한 것은 거듭해서 挑發을 當해도 우리는 제대로 報復하지 못한다는 點이다. 그런데도 韓國은 ‘焉敢生心’ 統一을 期待한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格이다. 朴槿惠 大統領은 ‘統一은 大박’이라고 했지만 이 亂麻(亂麻)를 突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亂麻를 끊어낼 方法을 찾지 못하고 薔薇빛 未來를 꿈꾸는 것은 ‘김칫국부터 마신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만 이런 制約을 받는 것일까. 9·11테러를 돌이켜보면 美國도 같은 制約을 받는 것이 確認된다. 美國은 國防情報를 우리보다 많이 公開한다. 우리 大統領은 女性이 아닌 한 軍隊를 갔다 온다(이명박 大統領은 未畢). 美國은 募兵制여서 大槪 軍 經驗이 없는 人物 中에서 大統領이 나온다. 그런데도 危機가 發生하면 決然히 行動한다. 決定的인 危機 때 美國 大統領은 軍을 通水하는데 왜 우리는 하지 못할까.

    取材에 應한 消息通들은 NSC(國家安全保障會議)의 能力 差異를 들었다. 한 豫備役 將星은 “우리는 공은 熱心히 차지만 그 選手들을 부리는 作戰은 硏究하지 않는 蹴球팀”이라고 말했다. 合參 以下의 軍은 몇 가지 虛點을 보이긴 하지만 많은 訓鍊을 한다. 그런데 最高 統帥權者인 大統領은 君을 부리는 練習을 全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練習을 해본 적이 없으니 危機가 닥쳤을 때 大統領은 얼어붙어, 尖端 武器를 쌓아놓고도 活用하지 못하는 것이다.

    美國 大統領도 그러한 練習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危機가 發生하면 對應을 하는데, 이는 NSC가 해야 할 일을 提示하기 때문이다. 李明博 政府는 憲法 機關인 NSC를 形式的으로만 維持하고 全혀 活用하지 않았다. 美國은 活用한다. 美國 NSC에는 合參議長이 參與해 모든 豫測 可能한 危機에 對應策을 準備한다. 그리고 實際 危機가 發生하면 大統領에게 適切한 對應方案을 提示한다.

    天安艦과 延坪島 事件 때 우리 大統領과 合參議長은 이러한 커넥션을 全혀 갖지 못했다. 安保危機가 發生했는데 軍 統帥權者인 大統領이 軍과 連結되지 못한 것이다. 兩쪽을 이어줬어야 할 國防部 長官과 靑瓦臺의 參謀들도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바쁘게 움직였지만 가장 重要한 任務를 하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朴槿惠 政府에서 金章洙 安保室長이 構築한 NSC 體制에 注目한다. 이 NSC가 有事時 軍과 大統領을 바로 連結할 수 있는 體制인지 反問하는 것이다. 金 室長이 構築한 NSC는 外交部와 統一部가 主軸이다. 合參議長 等 軍 指揮官이 參與할 수 있는 空間이 매우 작아 보인다.

    고르디온의 매듭

    延坪島가 포격당하던 그날 李明博 大統領은 孤立돼 있었다. 軍 統帥權者인 그는 軍을 바로 指揮하지 않았다. 虎狼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고양이로도 부리지 못한 것이다. 國防部 長官은 國會에 出席하고 난 後 이 大統領을 만났다. 決定的인 危機에 大統領이 軍을 指揮하지 못했다는 것이 韓國의 眞짜 危機다. 이런 事態를 막으려면 제대로 된 NSC가 있어야 한다.

    2010年 李明博 大統領이 直面했던 危機가 朴槿惠 大統領에게도 닥칠 수 있다. 金章洙 室長의 NSC는 그 危機를 突破할 智慧가 있을까. 그리고 大統領의 決斷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NSC가 제 구실을 한다면 只今의 美國 國防部 長官인 척 헤이글은 後날 回顧錄에 ‘韓國의 朴槿惠 大統領은 고르디온의 매듭을 잘랐다’는 記錄을 남길 것이다. 알렉산더 大王은 누구도 풀지 못한다는 ‘고르디온의 매듭’을 單칼에 잘라 풀어낸 偉大한 指導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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