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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重根 義士 殉國 100周忌] 安醫師 子女들, 一齊 計略 휘말려 謝罪 ‘屈辱’|東亞日報

[安重根 義士 殉國 100周忌] 安醫師 子女들, 一齊 計略 휘말려 謝罪 ‘屈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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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入力 2010年 3月 26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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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家族들도 苦難의 삶
러서 숨진 長男 一齊 毒殺說
男동생 中 충칭서 行方不明
딸 6·25때 大邱서 敎授生活

安重根 義士는 夫人 김아려 女史(1878∼1946)와의 사이에 長女 現生(1902年生)과 長男 分도(1905년생), 次男 준생(1907年生) 等 2男 1女를 두었다. 安 義士가 遺言을 통해 가톨릭 神父가 되기를 바랐던 長男은 러시아 亡命生活 中 어린 나이(7歲 또는 12歲)에 死亡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日帝의 毒殺說이 提起돼 왔다.

준생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安 醫師가 擧事를 위해 집을 떠났기 때문에 아버지를 한 番도 보지 못했다. 1930年代 後半 日本이 占領한 中國 상하이에서 그는 樂器商을 열고 食堂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어렵게 지냈다. 及其也 日帝의 計略에 휘말려 1939年 이토 히로부미를 追慕하는 뜻으로 지은 서울 南山 기슭의 박문사를 參拜하고 이토의 아들을 만나 아버지의 ‘잘못’을 謝罪하는 悲劇의 主人公이 되고 말았다. 그는 1950年 6月 歸國했으나 1952年 11月 肺結核으로 死亡했다. 否認 정옥녀 女史는 子女(1男 2女)를 데리고 美國으로 갔다. 26日 열리는 殉國 100周忌 追念式에 參席하기 위해 준생의 딸인 안연호 女史(73)가 歸國했다. 준생의 遺骸는 京畿 抱川郡 天主敎 公園墓地에 묻혀 있다.

安 義士 家族의 삶을 追跡한 창원대 도진순 敎授(史學科)에 따르면 長女인 現生徒 日帝의 執拗한 計略에 휘말려 1941年 3月 26日 安 醫師의 期日에 박문사를 參拜하고 아버지의 ‘罪’를 謝罪하는 苦痛을 겪어야 했다. 現生은 1946年 中國 상하이에서 歸國해 6·25戰爭 避亂時節에 大邱 효성여대 프랑스語科 敎授로 生活하다 1959年 4月 世上을 떠났다. 두 딸인 황은주(82·國內 居住) 황은실 女史(79·美國 居住)가 100周忌 追念式에 參席한다.

安 醫師의 夫人인 金 女史는 祖國 땅을 밟지도 못하고 1946年 2月 상하이에서 68歲로 死亡했다. 安 義士의 둘째 동생인 정근은 金九 先生과 신한청년단을 만들어 靑山里戰鬪에도 參與했으며, 1949年 상하이에서 死亡했다. 그 아래 동생 恭勤은 金九 先生의 側近으로 祕密結社 隊員들의 武器를 調達하는 任務를 遂行했다. 李奉昌 尹奉吉 義士의 義擧도 그가 도왔다. 그러나 1939年 5月 충칭에서 失踪됐고 遺骸도 찾지 못한 狀態다. 공근의 長男 愚生은 南北連席會議 때 金九 先生을 遂行했으나 金九 先生 暗殺 以後 홍콩으로 건너가 자취를 감추었다가 以後 北韓으로 갔다. 平壤의 愛國熱사릉에 墓가 있고 後孫 20餘 名은 北韓에 살고 있다.

安 醫師 아들의 後孫은 美國, 딸의 後孫은 南韓, 동생 정근의 後孫은 南韓과 美國, 공근의 後孫은 北韓과 파나마에 흩어져 살고 있다.

허진석 記者 jameshuh@donga.com


▲ 動映像 = 安重根 義士 殉國 100周年…삶과 죽음까지의 映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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