崇禮門 放火 事件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崇禮門 放火 事件
崩壞되는 崇禮門
날짜 2008年 2月 10日 ~ 2月 11日
位置 서울特別市 中區 世宗大路 40
原因 채종기 의 放火
最初 보고자 서울中部消防署
結果 殿閣 部分 全燒 및 崩壞
調査 放火犯 의 有罪 確定
2月 11日 午前 崩壞한 崇禮門

崇禮門 放火 事件 (崇禮門放火事件)은 2008年 2月 10日 부터 2月 11日 에 걸쳐 崇禮門 이 放火로 因해 全燒된 事件이다.

放火犯은 채종기 (當時 69歲, 慶北 漆谷 出身)로 밝혀져 拘束 收監되었다(유죄 判定). [1] 火災는 2008年 2月 10日 20時 40分 前後에 發生하여 다음날인 2008年 2月 11日 0時 40分頃 崇禮門의 樓閣 2層 지붕이 崩壞하였고 이어 1層에도 이 붙어 火災 5時間 만인 1時 54分 石築을 除外한 建物이 모두 崩壞되었다. 그 以後 管理所長들은 各 文化財 丹靑에 CCTV를 달았다.

事件 [ 編輯 ]

發火 位置

2008年 2月 10日 20時 40分頃, 채종기 가 시너를 부은 다음 라이터로 불을 붙여서 일어난 불이 흰 煙氣와 함께 崇禮門 2層에서 發生하여 消防 當局은 申告를 받고 消防車 32代, 消防官 128名을 現場에 출동시켜 불씨를 除去하고자 建物 一部를 잘라내고 물과 消化 藥劑를 뿌리며 火災 鎭壓에 總力을 기울였으나 2月 11日 , 0時 25分頃, 2層 樓閣 全體가 불에 휩싸이고 火災 4時間 만에 0時 58分頃 지붕 뒷面이 崩壞되기 始作했고 곧 2層이 崩壞되었다. 이어 바로 1層에 불이 붙어 새벽 1時 55分 樓閣를 받치고 있던 夕飯만 남긴 채 모두 崩壞되어 發話 5時間 만에 2層 門樓는 90%, 1層 門樓는 10%가 消失 되었다. [2]

被害 規模 [ 編輯 ]

樓閣
2008年 2月 11日, 1時 54分頃 1層 門樓의 10%가 毁損됐고, 2層 門樓의 90% 假量이 毁損되었다.
懸板
火災 鎭壓 中이던 午後 11時 5分쯤 崇禮門에 걸려있던 懸板은 消防官들이 톱으로 懸板을 떼어내 다른 곳으로 옮겼다. [3] [4] 그러나 火災로 인한 열기로 若干 뒤틀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懸板 切斷時에 豫想外로 무거운 懸板을 받칠 道具가 없었기 때문에 對策 없이 紙面으로 떨어졌는데, 이때 받은 衝擊으로 懸板 全體에 크고작은 금이 가고 一部 破片이 遺失되는 等 甚하게 損傷되었다.
懸板 解體 作業을 擔當한 消防官은 불이 2層 樓閣으로 번지기 始作하자 懸板에 對한 憂慮가 들어 同僚와 相議 後 指揮官에 보고, 直接 懸板解體에 나섰다. [5] 그는 解體하려는 瞬間 懸板의 均衡이 무너져 이를 힘으로 버텨보려 했으나 豫想外의 큰 重量을 받치지는 못하고 懸板은 그대로 1層 지붕을 타고 떨어졌으며, 밑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本來 意圖가 아니었음을 示唆했다. [5]

火災 原因 [ 編輯 ]

報道 內容 [ 編輯 ]

정정기 서울消防災難本部 張 記者會見

처음엔 電氣施設의 漏電 等으로 인한 火災라고 報道되었으나 火災 發火點人 2層에는 電氣施設이 없었고 1層에 있었던 電氣施設은 正常이었다고 修正報道되었다. 이에 이어 崇禮門에 5~60代로 보이는 흰머리의 男性이 흰色 航空점퍼 上衣를 입고 가방을 메고서 携帶用 鐵製 사다리를 타고 鐵杖을 넘어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目擊者들의 陳述이 이어져 事件의 原因이 放火로 推定된다고 訂正 報道되었다. [6] 또, 火災를 申告한 택시技士가 50代로 보이는 男性이 쇼핑백을 들고 崇禮門에 올라간 지 1~2分이 지나자 불꽃과 함께 煙氣가 솟아올랐다는 提報도 있었다. [7] 버스에서 狀況을 目擊한 첫 番째 目擊者는 容疑者로 推定되는 人物이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고 했지만, 두 番째 택시技士 目擊者는 쇼핑백을 들고 있다고 하여 證言이 조금씩 엇갈렸다. 하지만, 兩쪽 다 露宿者 行色이라는 點과, 推定 나이代가 비슷한 것으로 볼 때, 同一人物日 可能性 또한 높다고 알려졌다. 警察은 서울 南大門警察署에 搜査本部를 設置하고 2008年 2月 11日 午前 10時에 첫 公式 브리핑을 發表하였고, 搜査가 進展됨에 따라 追加로 崇禮門 放火 事件과 關聯된 公式 브리핑을 열었다. [8]

한便, 警察은 崇禮門 1層에서 一回用 라이터 2個가 發見됐다고 11日 發表했다. 다만, 이 라이터가 火災 事故와 關聯이 있는지는 아직 確認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消防當局에서는 發話地點으로 推定되는 나무기둥 아래에서 一回用 라이터 2個와 불에 탄 나뭇조각 等을 發見했다고 說明했다. [9]

容疑者 [ 編輯 ]

合同搜査本部는 同年 2月 11日 仁川 江華郡 河岾面에서 69歲의 放火 容疑者 채종기 (1939年, 大韓民國 慶尙北道 漆谷郡)를 붙잡아 搜査에 들어갔다. 그는 目擊者들의 證言과 비슷한 人相着衣(옷, 가방 等)를 하고 있었으며 그의 自宅에서 陳述과 同一한 種類의 사다리, 衣類, 시너 1病을 發見하고 有力 容疑者로 指目, 拘留 및 追窮에 들어갔다. [10] 그는 2006年 4月 에도 昌慶宮 文政殿에 放火하여 400萬원 相當의 被害를 입히고 執行猶豫를 宣告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2月 12日, 채종기는 犯行을 是認했다. [1] 自身이 所有하고 있던 土地 補償問題에 不滿을 품어 犯行을 恣行했으며, 2006年 昌慶宮 放火 때와 같은 動機로 밝혀졌다. 警察은 容疑者의 犯行自白을 土臺로 證據確認 作業에 나섰다. [1]

그리고 채종기가 지난 2006年에 作成한 '오죽하면 이런 짓을 했겠는가'라는 題目의 便紙에는 本人이 昌慶宮에 놀러 갔으며 그곳에서 偶然히 불이 났는데 가까이 있었다는 理由로 放火犯으로 몰렸고, 放火犯으로 몰리면 어쩔 수 없으니, 거짓 自白을 하라는 辯護士의 말에 따라 거짓 自白을 하였고, 또 供託金을 500萬원을 걸었는데 國家에서는 오히려 1500萬원의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며, 내 子息이라도 내가 犯人이 아니라고 믿어줬으면 한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이런 抑鬱한 陋名을 써서 崇禮門에 불을 질렀다고 그는 陳述했다. [11]

서울 南大門警察署는 2月 13日 大韓民國 文化財保護法 違反으로 채종기에 對해 拘束令狀을 申請했다. [12]

2月 14日, 警察은 채종기의 신발에서 崇禮門에 漆해져 있는 것과 同一한 成分의 試料를 採取, 이를 決定的 證據로 보고 嫌疑 事實의 立證을 確信했다. [13] 警察은 前날 確保한 當日 監視 카메라 錄畫 映像에서 채종기의 모습을 確認했으며, 이것이 그의 證言과 一致한다는 點 또한 證據로 내놓고 있다. [13]

10月 9日, 大法院 은 채종기에게 懲役 10年을 宣告한 原審을 確定하였다.

復元 [ 編輯 ]

火災 다음날, 警察들이 崇禮門 周邊을 지키고 있다.
가림幕으로 둘러 쌓인 崇禮門 復元 現場.

火災로 崩壞한 國寶 1號 崇禮門 의 原形 復元에는 2~3年假量이 걸리며 豫算은 200億 원 程度 所要될 것으로 推定된다. 그러나 崇禮門의 主要 部分들이 불에 탔기 때문에 原形 그대로 再現하기는 不可能할 것으로 보인다. 重要 木造文化財 防災시스템 構築事業의 하나로 2006年 崇禮門 의 實測 圖面을 作成해두었기 때문에 技術的으로 原形 復元은 可能한 狀況이다. 復元 事業은 文化財委員會 審議 等을 거쳐 서울特別市 中區 靑 主導로 進行될 豫定이다. 崇禮門 韓國 戰爭 으로 말미암은 被害를 復元하고자 지난 1961年 ~ 1963年 한次例 大規模 解體, 補修工事를 거친 바 있으며 以後에는 小規模 整備工事가 進行됐다. [14] 文化財廳 日帝强占期 崇禮門 兩側의 城壁이 잘라내어져 城郭 門樓가 堂堂한 모습을 잃어버린 채 孤立됐다며 이番 復元 過程에서 崇禮門에 兩 날개의 城壁을 달아주는 方案과 元來보다 約 1.5m 程度 올라와 있는 指標를 原狀으로 회복시키는 일을 서울市 와 論議하고 있다.

그러나 事實上, 復元에 쓸 수 있는 大型 大韓民國山 錦江 소나무의 確保에도 오랜 時間이 걸리며, 이를 안전히 使用하기 위해 乾燥하는 데만도 3年이 넘기 때문에, 專門家들은 最小期限을 5年으로 보고 있다. [15] 殘骸狀態의 確認과 이의 再活用 與否, 그리고 建築에 使用된 나무의 守令과 材質, 使用延長 等의 調査에도 長期間 所要되기 때문에 [15] , 專門家들은 當場의 追加崩壞와 毁損을 막기 위해 덧집을 씌우는 것이 時急하다고 밝혔다. [16]

大韓民國 文化財廳 2008年 8月 15日 復舊現場을 公開했고 [17] [18] , 2013年 4月 29日 復元 事業을 마쳤으며, 2013年 5月 4日 에 完工式과 함께 復元된 崇禮門을 一般 市民들에게 公開했다.

또한, 文化財廳은 옛 城郭자리를 그림으로도 復元하겠다고 밝히며 道路위에 옛 城郭자리를 表示했다 [19] .

가림幕 設置 [ 編輯 ]

2月 12日부터 中區廳에 依해 崇禮門 周圍에 6m 높이의 臨時 가림幕이 設置되기 始作했다. 2月 13日에는 15m 높이의 이中 가림幕이 設置되었다. 높이가 12.5m인 崇禮門 周圍에 15m의 가림幕이 追加로 設置되어, 隣近 高層 建物에 오르지 않고서는 崇禮門을 볼 수 없게 되었다. [20] 이에, 事故 現場을 감추기만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非難이 殺到하자 中區廳에서는 强化 플라스틱 素材로 製作된 透明한 판넬로 가림幕을 設置하겠다고 約束했다. [21] 實際로 觀覽窓을 여러 個 만들어두어 市民들이 觀覽窓 사이로 불타버린 崇禮門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文化財廳은 輿論을 反映해 3個月 後인 2008年 5月 頃에는 가림幕을 除去, 낮은 울타리를 設置한 後 復元過程을 公開하기로 했다. [22] 單, 復元 作業 中 비바람을 맞아 追加 崩壞 危險이 생기지 않도록 安全 덮개를 씌우기로 했다. [22]

論難 [ 編輯 ]

火災 鎭壓에 對한 論難 [ 編輯 ]

崇禮門 火災를 鎭壓하는 데 5時間 以上이 所要되면서 火災 初期 消防 當局과 文化財廳 의 對處가 問題가 있었다는 論難이 있다. 또한, 崇禮門 內에 配置된 消火器 가 1,2層에 나눠 配置되고 上水道 消火栓이 設置된 것과 私設 警備 業體의 無人 警報 시스템에 依存하였으며, 火災 感知器 , 警報 設備 等은 全혀 없었다는 點도 火災 豫防의 脆弱點으로 드러났다. 消防當局은 初期 進化 過程에서 崇禮門이 國寶 1號라는 點을 考慮해서 愼重한 鎭壓作業을 펼쳤으나 正確한 發話地點을 찾지 못하고 消化 藥材를 뿌리는 等 結局 初期 鎭壓에 失敗했다. [23]

復舊 및 保險에 對한 論難 [ 編輯 ]

또한 崇禮門의 文化財 保險金이 9500萬 원밖에 되지 않아, 開放을 했음에도 管理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批判을 받기도 하였다. [24]

責任 論難 [ 編輯 ]

崇禮門 火災와 關聯하여 責任 論難들이 있었다. 放火犯을 除外하고 崇禮門 火災에서 崇禮門을 開放한 서울特別市靑 中區廳 (地自體)에 對한 責任論이 擡頭되었다. 2004年 5月 27日 當時 서울市長이던 李明博 은 崇禮門 開放을 公約하였으며 文化財廳의 否定的 見解를 無視하고 工事를 해 2006年 6月 28日 崇禮門의 虹霓門까지 開放하여 一般 市民들이 接近하기 쉽도록 하였다. 이러한 崇禮門 開放 事業은 淸溪川 復元事業과 함께 重要 治績으로 宣傳되었다. 以後 週間에는 勤務者가 警備하였으나 2008年 初부터는 無線用役經費 業體인 KT텔레캅 이 警備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放火犯이 接近이 容易하게 하였다는 禍根이 되었다는 批判을 받고 있다. 2005年부터는 三星 에스원에게 有料로 맡겨오다가, 豫算節減을 理由로 2008年 1月 文化財 지킴이 캠페인으로 無料警備를 自處한 KT텔레캅側으로 警備를 넘기며 警備人員과 警備再 및 警備回數가 大幅 減少했다. [25]

한便 유홍준 文化財廳長은 2月 12日 國務會議 前 인터뷰에서 "破壞돼도 좋으니까 進化하라"고 事故 當時 消防防災廳 에 委任했었음을 밝혔다. 現在 文化財 管理責任은 地自體 卽 이 事件에서는 서울特別市靑 에 있지만 總括的 指導 監督 및 支援은 文化財廳 의 責任임을 認定하였다. 結局 유홍준 2月 12日 國立故宮博物館에서 記者懇談會를 갖고 "崇禮門 火災 事件을 責任을 지고 大統領에게 辭職書를 提出했다"고 發表했다. [26]

當時 大統領 當選者였던 李明博 은 國民誠金으로 崇禮門을 復元하자고 提案하였으며 2008年 政府 出帆 以後 國民 募金運動을 展開하겠다고 主張하였다. 그러나 以後 國民에 責任을 轉嫁하고 政府와 地自體의 責任을 稀釋시키고자 强制 募金을 企劃한다는 批判이 거세지자, 이경숙 大統領職 引受委員長은 "이 當選人의 本意가 제대로 傳達되지 않은 것 같다"며 强制募金의 意圖가 아니라고 解明했다. [27] 또한 이경숙 引受委員長은 崇禮門 火災가 "當代를 사는 우리 모두의 責任"이라며 反省한다고 말했다. [28]

한便 崇禮門에 發生한 火災 進化에 必須的인 實測 圖面이 火災 發生 2時間 後에 消防當局에 뒤늦게 傳達된 것으로 드러나, 進化 過程에서의 問題點도 多數 指摘되었다. [29]

같이 보기 [ 編輯 ]

脚註와 報道 資料 [ 編輯 ]

  1. “崇禮門 放火 有力容疑者 犯行 是認(綜合)” . 聯合뉴스. 2008年 2月 12日. 2008年 2月 17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08年 2月 11日에 確認함 .  
  2. “`國寶 1號' 崇禮門 全燒…完全 崩壞(綜合)” . 聯合뉴스. 2008年 2月 11日.  
  3. 박호근 (2008年 2月 11日). “崇禮門 火災,初動鎭火 失敗가 全燒 原因...放火可能性 높아져” . 世界日報.  
  4. 송진식·審혜리 (2008年 2月 11日). “‘國寶 1號’ 崇禮門 全燒…放火 可能性” . 京鄕新聞.  
  5. “‘“땅에 떨어지는 瞬間 가슴도 무너졌다” 崇禮門 懸板 救한 박성규 消防官” . 京鄕新聞. 2008年 2月 14日.  
  6. “YTN 火災 最初 提報者 인터뷰” . YTN. 2008年 2月 11日.  
  7. “<崇禮門 火災 發火地點ㆍ原因 '미스테리'>” . 聯合뉴스. 2008年 2月 11日.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8. “放火 可能性 集中搜査” . MBC. 2008年 2月 11日.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9. 전준형 (2008年 2月 11日). “警察, 放火에 무게...火災現場서 라이터 發火” .  
  10. “崇禮門 放火 有力容疑者 1名 江華島서 檢擧(綜合)” . 聯合뉴스. 2008年 2月 12日. 2012年 2月 12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08年 2月 11日에 確認함 .  
  11. 崇禮門 放火容疑者 "昌慶宮 放火 하지 않았다" 江邊 《노컷뉴스》 08-02-12 / 08-02-12 P04:39에 읽어봄.
  12. 장재은·이준삼 (2008年 2月 13日). “`崇禮門 放火' 菜氏 拘束令狀 申請” . 聯合뉴스.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13. “`崇禮門 放火' 菜氏 拘束令狀 申請” . 聯合뉴스. 2008年 2月 14日.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14. “文化財廳"‘’崇禮門 復元에 2-3年 所要될 것 " . 聯合뉴스. 2008年 2月 11日.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15. “崇禮門, 復元까지 3年?” . YTN. 2008年 2月 14日.  
  16. “崇禮門 追加 崩壞 憂慮..."덧집 時急하다 " . YTN. 2008年 2月 14日.  
  17. “文化財廳, 崇禮門 復舊現場 公開觀覽 實施” . 聯合뉴스. 2008年 8月 11日. 2012年 2月 12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08年 8月 15日에 確認함 .  
  18. 한채호 (2008年 8月 15日). “崇禮門 復舊現場 一般公開 始作” . 노컷뉴스.  
  19. “崇禮門-옛 서울 城郭 자리 道路바닥 그림 形態로 되살려” . 쿠키뉴스. 2008年 8月 14日.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20. “불탄 崇禮門에 15m 二重 가림幕” . 中央日報. 2008年 2月 13日 . 2020年 8月 30日에 確認함 .  
  21. 김종한 (2008年 2月 13日). “崇禮門 가림幕 透明 판넬로 바꾼다” . 韓國日報 . 2020年 8月 30日에 確認함 .  
  22. “[社會]崇禮門 가림幕 3個月 동안만 設置...復元 過程 公開” . YTN. 2008年 2月 15日 . 2020年 8月 30日에 確認함 .  
  23. “崇禮門 火災 5時間…早期鎭壓 왜 늦어졌나” . 聯合뉴스. 2008年 2月 11日 . 2008年 2月 11日에 確認함 .  
  24. “崇禮門 保險金이 고작 9千 500萬 원?” . 聯合뉴스. 2008年 2月 11日 . 2008年 2月 11日에 確認함 .  
  25. “가슴 쓸어내린 三星” . 서울新聞. 2008年 2月 12日 . 2008年 2月 13日에 確認함 .  
  26. “유홍준 "文化財廳長職 辭職書 提出"(2報)” . 聯合뉴스. 2008年 2月 12日 . 2008年 2月 12日에 確認함 .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27. ' 誠金募金 非難' 擴散에 唐慌한 引受委 "誤解 " . 뷰스앤뉴스.  
  28. “<李當選人 "國民誠金으로 崇禮門 復元">” . 聯合뉴스.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29. 강인영 (2008年 2月 18日). “崇禮門 實測圖면, 火災發生 2時間 餘만에 遲刻 入手” . CBS 노컷뉴스.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