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年 洛東江 페놀 汚染 事件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洛東江 페놀 汚染 事件 (洛東江-汚染事件)은 龜尾國家産業團地 안의 두산전자 에서 1991年 3月 14日 4月 22日 두次例에 걸쳐 各各 페놀 30餘 과 1.3 톤이 洛東江 으로 流入된 事件이다.

페놀은 大邱直轄市 地域의 上水源으로 使用되는 다사取水場으로 流入되었으며, 鹽素 를 利用한 淨水處理 過程에서 클로로페놀 로 變하면서 惡臭를 誘發하였다. 當時 大邱市民들이 水道물에서 냄새가 난다고 申告했으나, 取水場에서는 原因 糾明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多量의 염소 消毒劑를 投入해 事態를 더욱 악화시켰다. 페놀은 洛東江을 타고 密陽 咸陽 , 釜山 까지 被害를 주었다. 이 過程에서 洛東江 水系에 있는 1千萬名假量 되는 嶺南地域 住民들이 페놀 汚染 水道물로 極甚한 苦痛을 겪어야했던 前代未聞의 水質 汚染 事件이었다.

當初 이 事件은 單純 水道물 惡臭騷動으로 넘어갈 뻔했으나 當時 KBS 大邱放送總局 類희림 記者의 現場取材로 페놀汚染이 確認되면서 페놀流出 사흘이 지난 1991年 3月 17日 낮 뉴스부터 KBS TV와 라디오를 통해 特種 報道되면서 全國에 알려지기 始作했다. [1] ‘洛東江 페놀 汚染事件’을 最初 報道한 KBS 類희림 記者는 이 事件 特種 報道로 韓國記者協會가 授與하는 特種賞과 KBS報道 金賞을 受賞했다. [2]

1次 流出 [ 編輯 ]

1次 流出은 3月 14日 밤 10時부터 3月 15日 새벽 6時까지 이루어졌다. 30톤의 페놀 漏出로 말미암아, 옥계천을 거쳐 大邱 上水源인 다사取水場으로 흘러들어 水道물을 오염시켰다. 水道물의 페놀 數値가 0.11 ppm 까지 올라간 地域도 있었는데, 이는 當時 大韓民國의 許容値인 0.005 ppm의 22倍, 世界保健機構 의 許容値인 0.001 ppm의 110倍에 達하는 數値였다. 또한, 水道물에서 惡臭가 난다는 大邱 市民들의 民願 申告에도 不拘하고, 다사 取水場은 原因을 糾明하지 못한 채 페놀 消毒에 使用해서는 안 되는 鹽素 를 多量 投入하여, 事態를 더욱 더 악화시켰다. [3]

KBS 特種報道로 페놀 汚染 事實이 알려지자 大邱市에는 수많은 抗議電話가 빗발쳤지만 大邱市 當局은 人體에 有害할 程度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해서 더욱 더 많은 公憤을 샀다. 水道물 汚染에 따른 給水中止 및 이에 對한 非常給水對策은 全無했다. 이로 인해 大邱 隣近 藥水터 에는 食水를 求하려는 수많은 市民들로 人山人海를 이루는 等 市民들은 食水不足으로 큰 不便을 겪었다. 汚染된 水道물로 만든 飮食들과 飮料水 等도 모두 廢棄하는 事態가 벌어지기도 했다. [4]

言論 報道 以後 環境當局과 함께 搜査에 나선 大邱地方檢察廳은 大邱 環境處 職員 7名과 두산전자 關係者 6名等 13名이 拘束되고 關係 公務員 11名이 懲戒處理되었다. [5] 두산전자에 對해서는 30日 營業停止 處分을 하였으나, 故意性이 없었다는 理由로 20日 만인 4月 9日 操業 再開가 許容되었다. [6]

2次 流出 [ 編輯 ]

2次 流出은 4月 22日 午後 12時 5分에 發生하였다. 페놀 탱크 送出 파이프 이음새가 破裂되면서 또다시 페놀 原液 2톤이 流出되었다. [7] 다음날 23日 午前 9時 40分쯤 大邱 다사정수장 原水에서 페놀 0.0045ppm이 檢出돼 午前 10時 30分부터는 洛東江系統인 다사와 洛東江 淨水場의 水道물 生産이 또다시 中斷되었다.

結果 [ 編輯 ]

이 事件의 結果로 박용곤 斗山그룹 會長 等이 물러났다. [8] 두산전자에 對해서는 64日의 營業停止 處分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미 妊娠 한 夫人이 流産하고 大邱地域 住民들은 엄청난 惡臭와 環境汚染 恐怖에 시달리는 等 被害를 입은 뒤였다. 또한 事件 以前에도 淨化費用 月 500餘萬 원을 아끼기 위해서 페놀을 淨化하지 않고 버린 일이 여러 次例 있다는 게 調査 結果 밝혀졌다. [9] 特히 이 事件은 環境汚染 等 社會的으로 物議를 일으킨 企業이 市民들의 不買運動으로 破産할 수도 있다는 警覺心을 일깨워준 우리나라 最初의 自發的인 市民不買運動의 契機가 된 事件으로 記錄되기도 한다.

녹색연합 에서는 1999年 "50年代 以後 發生한 大韓民國 環境 10大 事件" 中 洛東江 페놀 汚染 事件을 1位로 選定하였다. [10]

檢察搜査結果 두산전자는 페놀廢水를 全量消却處理해야하는데도 1990年 10月부터 燒却爐 2期 中 1期가 故障나자, 廢드럼桶에 넣어 保管하다가 하루에 2.5톤假量을 無斷放流하는 手法으로 1991年 3月 20日까지 5個月餘 동안 無慮 370餘톤의 페놀廢水를 無斷放流한 것으로 나타났다. [11]

그럼에도 이를 團束하는 環境處 職員들은 現場 團束을 제대로 하지 않고 虛僞 團束書類를 作成한 것으로 調査됐다. 또한 大邱市 上水道 當局은 이 事件이 發生하기 2年 前부터 페놀로 인한 水道물 惡臭 申告를 여러 件을 接受 받고 實際로 水道물에서 페놀이 檢出됐는데도 單純한 여름철 惡臭라며 제대로 原因調査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以後 이어진 페놀水道물 被害 接受에서 1萬 3千件이 넘는 170億원假量 醫質的(疑疾的)·精神的 申告가 接受됐으나 實際로 被害補償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두산전자는 上水道 料金減免에 따른 被害와 내버린 水道물 값, 水道管 等의 淸掃費 名目으로 大邱市에 13億 5,190萬원을 賠償했고 市民 11,000餘 名에게도 11億원만을 賠償했을 뿐이다. [12] 特히 汚染된 水道물을 마시는 바람에 流産한 妊産婦들의 申告件數度 數百件을 넘었는데 이에 對한 被害는 因果關係가 認定되지 않는다며 賠償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 事件 以後 全國的인 單位의 環境保護團體들이 結成이 되고 大檢察廳 에 環境과가 新設되는 等 이 事件은 우리나라 環境保護運動의 轉機가 된 重要한 契機가 됐다.

아울러, 페놀페數를 不法放流하고 허술한 탱크管理로 엄청난 量의 페놀原液을 流出시킨 두산전자의 所行에 對해 市民들의 憤怒는 母그룹인 두산그룹 製品 不買運動으로 이어져 두산그룹은 그해 한해 主力商品인 OB 麥酒 等 商品 賣出額이 1,000億以上 減少하기도 했다. [13]

이 事件은 1970~1980年代 高度成長當時 環境汚染防止에는 全혀 無關心했던 企業들의 環境汚染不感症을 如實히 드러낸 事件이었으며 아울러 形式的인 汚染團束에 그친 行政當局의 安易함, 그리고 有毒性物質의 上水原水 流入을 防止할 수 있는 淨水裝置 等 根本 對策을 세우지 못한 保健當局의 無能함 等이 結合된 人災였다.

또 이 事件은 그동안 無分別한 開發 中心의 政府 政策이 環境 問題를 重要하게 考慮하기 始作하게 된 起點이 됐다는 點에서도 그 意味가 크다고 할 수 있다. 特히 環境犯罪의 處罰에 關한 特別措置法이 처음으로 制定됐으며 工場 設立 市의 環境 基準이 强化되는 等 健康權과 環境權 에 對한 全 國民的 關心을 불러일으킨 契機가 됐다.

같이 보기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

參考 [ 編輯 ]

(<韓國을 뒤흔든 特種>(1994,韓國言論勞動組合聯盟),<韓國言論 백大特種>(2000,허용범-나남출판사) 參照)

各州 [ 編輯 ]

  1. 유희림 記者 (1991年 3月 17日). “大邱 水道물 惡臭” . 《KBS 9時뉴스》.  
  2. “第 7回 이 달의 記者賞 施賞式” . 《KBS》. 1991年 4月 24日.  
  3. 김형민 PD (2014年 5月 23日). “洛東江의 페놀은 이제 大學街로 흐르는가” . 《한겨레》.  
  4. 강찬수 記者 (2019年 6月 22日). “30年 前 페놀 水道물 波動···그 衝擊에도 敎訓 못 얻었다” . 《中央日報》.  
  5. 이창선 記者 (1991年 3月 21日). “페놀放流業體 두산電子 6名拘束” . 《MBC뉴스데스크》.  
  6. “斗山電子 빠르면 9日 操業再開” . 《聯合뉴스》. 1991年 4月 8日.  
  7. 김월화 記者 (1991年 4月 22日). “두산전자 龜尾工場 페놀 재流出” . 《KBS 9時뉴스》.  
  8. 엄기영 記者 (1991年 4月 24日). “斗山그룹 박용곤會長 洛東江 페놀 流出 關聯 辭任” . 《MBC뉴스데스크》.  
  9. 류수열 記者 (1991年 3月 21日). “두산전자, 昨年부터 廢水 버려” . 《MBC뉴스데스크》.  
  10. 김태열 記者 (1999年 9月 7日). “`지난 半世紀 國內 環境 10大 事件 ' . 《聯合뉴스》.  
  11. 오헌 記者 (1991年 3月 25日). “洛東江 食水原 페놀汚染事件, 15名 拘束” . 《KBS 9時뉴스》.  
  12. 백지연 앵커 (1991年 5月 31日). “두산전자, 페놀 流出 事件 賠償 始作” . 《MBC뉴스데스크》.  
  13. 명욱 主流文化칼럼니스트 (2020年 7月 4日). “韓國 麥酒의 歷史(下) [명욱의 술 人文學]” . 《世界日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