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효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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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효민
作家 情報
出生 1904年 1月 21日
京畿道 漣川郡
死亡 1975年 9月 21日
서울
國籍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職業 評論家,作家,敎育인
장르 文學評論,小說

홍효민 (洪曉民, 1904年 1月 21日 ~ 1975年 9月 21日 [1] )은 韓國 의 文學評論家이며 小說家이다. 本名은 홍순준 (洪淳俊)이며 안재좌(安在左), 정복영(鄭復榮), 紅暈(洪熏), 효민學人(曉民學人) 等의 여러 筆名을 使用했다.

生涯 [ 編輯 ]

京畿道 漣川 出身으로, 도쿄 에 留學하여 正則英語學校 를 卒業했다. 東亞日報·每日申報 記者 및 弘益大學校 敎授를 歷任하였다. [2]

1927年 조중곤 , 김두용 , 이북만 等과 함께 《 第3戰線 》을 發行하고 朝鮮프롤레타리아藝術家同盟 의 한 軸을 이룬 第3戰線派를 形成했다. 홍효민은 카프 成員은 아니었으나, 文學의 社會的 價値와 機能을 重視하는 一貫된 觀點에 共通點이 있어 同伴者 作家 로 分類된다.

歸國한 뒤 《 東亞日報 》와 《 每日申報 》 記者를 지내면서 1930年代의 代表的인 文學評論家 中 한 사람으로 評壇에서 活動했다. 文壇 登壇作은 1927年 《 開拓 》에 發表한 〈文藝詩評〉(文藝時評)이다. 1936年 《仁祖反正》을 執筆한 以來 명성황후 를 素材로 한 《閔妃哀史》 等 歷史 小說도 꾸준히 發表했다.

日帝强占期 末期에 〈미영사上의 本質〉(1943年) 等 總 5篇의 親日 論說과 隨筆을 發表하고 親日 文人團體인 朝鮮文人輔國會 評論隨筆分會 幹事를 맡았다. [3] 2002年 發表된 親日 文學인 42人 名單 에 包含되었다.

光復 後에는 左翼 系列의 조선프로레타리아문학동맹 에 參加했다가 이 團體가 조선문학건설본부 와 統合하는 過程에서 意見 差異를 드러내며 脫退한 뒤로는 左右翼 文學 運動에 參與하지 않고 中間子的 立場을 내세웠다. 韓國 戰爭 後로는 〈愛國思想과 愛國文學〉(1956) 等을 통하여 愛國主義文學論을 主唱하였고, 弘益大學校 敎授를 歷任했다.

參考資料 [ 編輯 ]

  • 권영민 (2004年 2月 25日). 《韓國現代文學大辭典》.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1088쪽쪽. ISBN   8952104617 .  

各州 [ 編輯 ]

  1. “作家 洪曉民氏 別世” (PDF) . 韓國日報. 1975年 9月 23日. 7面面. 2016年 3月 7日에 原本 文書 (PDF) 에서 保存된 文書 . 2008年 6月 8日에 確認함 .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3. 김재용 (2002年 8月). “親日文學 作品目錄” . 《실천문학》 (67號): 123~148쪽. 2007年 9月 28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07年 9月 28日에 確認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