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
(洪慧杰
[1]
,
1967年
2月 6日
~ )
[2]
은
大韓民國
의
豫防醫學者
,
醫師
이자 醫療 分野
放送人
이다.
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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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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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高等學校
卒業(1985年)
- 서울大學校
醫科大學 醫學 學事
- 서울大學校
保健大學院 環境保健學科 産業保健 專攻 保健學 碩士 (學位論文名: 言論機關 從事者들의 代替醫療에 關한 認識도 및 信賴도 調査)
- 서울大學校
醫科大學院 醫學과 豫防醫學 專攻 醫學博士 (學位論文名 - 中年 男性의 生活習慣이 早期 死亡에 미치는 影響: 코호트 硏究)
講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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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星그룹
社長團會議, 삼성그룹 新入任員 對象 5年 連續 講義,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 講師,
三星電子
,
三星生命
,
三星電機
,
三星物産
等 삼성그룹 系列社 講演
- 現代自動車
,
포스코
,
國民銀行
, KT 等 主要 企業 出講
- 全經聯
, 商工會議所, 韓國標準協會, 人間開發硏究院, 韓國能率協會 等 各種 社會團體 포럼 出講
- 企劃豫算處, 保健福祉部, 科學技術部, 海洋水産部, 勞動部, 國家情報院, 靑瓦臺 警護室 等 中央 部處 講演
- 全國 市道 郡廳, 法院과 檢警, 國稅廳 等 地方自治團體 巡廻 講演
放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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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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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難 關聯 事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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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바고 破棄와 황우석 事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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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2年
서울大學校
황우석
敎授의 人間胚芽 줄기細胞 論文의 엠바고를 깨고 中央日報에 報道한 것으로 社會的 論難을 일으킨 바 있다.
사이언스
에 發表되기 하루 前 韓國言論에 먼저 報道됨으로써 硏究陣에게 被害를 입혔다는 것으로 記事를 作成한 홍혜걸과 이를 報道한 中央日報는 많은 批判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對해 그는
황우석
等 硏究陣의 누구도 엠바고를 事前 設定하지 않았고 獨自的 取材로 얻은 結果이므로 通常的 엠바고 破棄와 다르다고 主張하였다. 2005年
황우석
敎授의 두 番째 論文이
中央日報
記者의 失手에 依해 또다시 먼저 報道되자 그는 또다시 엠바고를 깬 것으로 誤認되어 放送出演 停止를 받기도 하였다.
[4]
2005年
MBC
《
PD手帖
》팀이 황우석 敎授 論文의 倫理的 問題를 批判하는 放送을 했다. 硏究陣이 充分한 同意없이 金錢을 動員해 女性의 卵子를 採取했다는 事實이었다. 홍혜걸은 各種 討論 프로그램에 패널로 參與해 國益을 위해서 倫理的 問題는 甘受해야 한다며 黃敎授의 立場을 擁護했다.
홍혜걸은 2014年에도 "황우석의 眞情性을 믿는다"는 發言을 한 바 있다.
[5]
咸翼炳의 막말 波紋에 對한 擁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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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月刊誌와의 인터뷰에서 '막말 波紋'을 일으켰고
[6]
이로 因해 SBS의 프로그램에서 下車한
[7]
皮膚科 專門醫 함익병 院長에 對해, 홍혜걸은 "率直히 그가 조금은 부럽다"면서 擁護하는 듯한 發言을 自身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또한, 같은 글에서 "그의 發言에 對한 輿論이 딱 折半"이라는 主張을 펴기도 했다.
[8]
性犯罪 被害者에 對한 非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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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醉해 잠든 紹介팅女의 알몸을 撮影하고 親舊들에게 電送한 嫌疑로 起訴된 大學病院 인턴이 懲役 1年 및 性暴力 治療프로그램 履修를 宣告받은 事件
[9]
에 對해, "처음 만난 사이에 술에 醉해 잠이 든 女性도 10%의 잘못은 있어 보인다"고 하여 被害者의 行實을 非難하며 責任 一部를 轉嫁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論難이 되었다. 게다가 "男性은 職業이 醫師라는 理由로 새로 생긴 法에 따라 免許停止 等 刑事上 處罰이 加重된다"라고 함으로써 醫師라는 理由로 一般人에 비해 不利益을 받는다는 趣旨의 發言도 함께 하였다.
[10]
[11]
家族 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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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配偶者 :
餘에스더
(1965年 5月 11日 ~ )
- 長男 : 洪性宇 (1995年 ~ )
- 次男 : 홍영우 (1996年 ~ )
- 동생 : 홍창형
- 女同生 : 홍혜진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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